마태복음 18:1-14

천국에서 큰 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

 

사람들은 대개 위대한 사람하면 어느 자리에 앉느냐, 어느 지위에 있느냐, 월급을 얼마나 받느냐, 얼마나 많은 인사권과 인허가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 등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굴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이것은 비단 남자들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자들도 남편이 어디에 근무하고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에 아주 민감합니다. 이로 인해 여자들도 서로 간에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런 영향을 받아 천국에도 과연 서열이 있는가, 서열이 있다면 누가 첫 번째 서열에 들어가는가에 대하여 아주 민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의미 심장 하게 물었습니다. “천국에는 누가 서열 첫 번째입니까?” 우리는 본문을 통해 진정으로 위대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 겸손하라(18:1-4).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8:1). ‘그 때란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 질문하게 된 배경 설명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6:28). 그리고 예수님은 세 제자만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 그들에게 변형되신 영광스러움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후로부터 세 제자들인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누가 수제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민감했습니다. 민감함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왕이 되시면 우리 아들들을 우의정 좌의정을 시켜달라고 청탁하기까지 했습니다.

세 제자가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을 때 나머지 아홉 제자들은 더 이상 여기에서 밀리면 끝난다고 생각되어 보이지 않는 암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제일 큽니까?” 물은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입니까?” 그들은 천국에 가도 높은 자리 낮은 자리가 있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열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더 합니다. 우리나라의 무서운 병중에 하나가 서열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이 무엇입니까? “죄송하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일가친척을 만나면 항렬이 어떻게 되십니까?” 묻습니다. 그리고 몇 학번 입니까?” 묻습니다. 특히 해병대 출신들은 만나면 즉시 몇 기입니까? 묻습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젊고 기수가 낮고 항렬이 낮고 학번이 낮으면 그 때부터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도 그대로 들어와 직분이 계급인 줄로 생각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는 계급이나 서열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과 교회를 잘 섬기고 봉사하는 위치가 다를 뿐이지 계급이 아닙니다. 이 자리는 봉사와 섬김의 자리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팀 목자님들은 좀 일찍 와서 교회 입구에서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기쁨으로 인사하며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천국에도 서열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서열이 있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앞서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제자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이중 부정을 쓰셔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 어린 아이의 특징은 순진합니다. 어린 아이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합니다. 우리는 방실방실 웃는 해맑은 아이의 모습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린 아이는 우열과 서열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졸병 한다고 갈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장한다고 거만하게 굴지 않습니다. 얼굴이 예쁘냐, 밉냐를 놓고 고민하거나 갈등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갈등하는 것은 부모들이지 아이들은 전혀 상관없이 각자 위치에서 재미있게 놉니다.

물론 요즈음 어린 아이들도 졸병보다 대장 자리를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TV의 좋지 못한 영향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일그러진 표상이지 본래 아이의 모습은 아닙니다. 어린 아이의 본래 모습은 자기를 높일 줄도 모르고 꾸밀 줄도 모릅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는 마음이 넉넉합니다. 서로 높아지고자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아옹다옹하지 않습니다. 풍진 세상에 살면서도 마음이 천진난만하고 생각에 티가 없습니다. 천국은 기름 먹은 강아지처럼 뺀질뺀질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시골티가 나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의 가정이나 공동체는 행복합니다.

남편이 모든 공을 아내에게 돌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공을 돌리는 가정을 생각해 보세요. 부부 싸움이 일어날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주변머리가 없는데 제 아내가 꼼꼼하고 믿음이 있어서 그래요 하는 남편. 아니예요. 저는 워낙 변변치 않은데 제 남편이 믿음이 있고 가정을 잘 살펴서 그래요 하는 아내. 그런 가정에 부부싸움이 있을까요? 우리 옛말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자랑하는 것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이런 칭찬은 팔불출이 아니라 겸손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지옥 같은 가정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 남편은 저렇게 형편없습니다. 저이가 저래요. 이것까지는 그래도 다행입니다. 더 나아가 자식들에게 너희들은 제발 니 애비 닮지 마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야, 너희들은 어찌 그렇게 네 엄마 못된 것만 쏙 닮아냐. 제발 네 엄마 닮지 마라.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제가 여러 번 얘기했지만 엄마 아빠 닮지 않으면 옆집 아줌마 아저씨를 닮아야 합니까? 그러면 그 자녀는 심각합니다.

사회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배가 자기를 낮추어 선배를 섬기고 선배는 후배를 보듬어 섬겨 주고 동료끼리는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이런 곳이 천국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의 특징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런 겸손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에 가면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가 그 어머니를 기념하여 세운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입구를 좁고 또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는 교만하고 뻣뻣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자기를 낮춘 겸손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과 겸손한 사람만이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사람이 겸손하면 무시 받고 짓밟힘을 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기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면에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허세를 부리고 거만을 떠는 사람이 인정을 받고 높은 자리에 앉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성 어거스틴은 크리스천의 덕목 중에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 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처럼 자신을 낮춥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익으면 익을수록 쳐드는 보리이삭처럼 머리를 꼿꼿이 세웁니다.

우리의 인격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겸손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우리가 예수님을 배울 때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큰 자가 되고자 하는 빌립보 자매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5-8).

누가 이 시대를 섬기고, 누가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까? 공산주의자들은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힘은 총구나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과 헌신에서 나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겸손과 헌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높아지고자 하는 제자들을 보시고 허리를 굽혀 거룩한 손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높이어 만백성들로부터 찬양과 영광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낮추고 겸손할 때 높임을 받습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만이 이 시대를 섬길 수 있고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2. 어린 아이를 영접하라(18:5).

높아지고자 하는 자가 범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는 작은 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18:5). 어린 아이란 믿음이 어린 초신자를 말합니다. 초신자는 유리그릇처럼 연약합니다.

세상은 강하고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만을 인정하고 연약한 자는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비방하고 깎아내립니다. 그래서 높아지고자 서로 물고 물리고 뜯고 뜯습니다. 우리 또한 자기보다 좀 실력이 없고 학벌이 좀 낮고 가진 것이 없다 싶으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통순경도 교통사고가 났을 때 에쿠스를 탔으면 사모님, 소나타를 탔으면 소나타고 다닌다며 아줌마라고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즈음 정치꾼들을 보면 조금 약점만 보인다 싶으면 처절할 만큼 물고 물어뜯습니다. NLL문제도 전체 문맥을 보면 전 노무현 대통령이 양보하지 않았는데도 양보했다며 처절하게 물어뜯습니다. 북한에서 이를 빌미로 남쪽에서 NLL을 양보했다며 NLL을 파기한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물고 물어뜯는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습니까?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남의 등급을 낮추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연약한 한 사람을 섬기고 돕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35-45절에서 작은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나를 섬기는 것이라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때 의인이 언제 제가 주님을 영접했습니까?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너희가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외로운 자, 헐벗은 자를 도운 것이 내게 도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연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돌보고 섬기는 것을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과 동격으로 보셨습니다.

세상은 돈 없고 백이 없고 힘없는 자를 무시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귀하게 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그네, 병든 자, 무능한 자, 옥에 갇힌 자,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세상 백이 없는 별 볼 일 없는 그런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어느 교회는 그레인저가 아니면 교회 주차장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거짓말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교회는 간판을 떼고 사교클럽이라고 이름을 바꿔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티코 타고 오든 남루한 옷을 입고 오든 모든 사람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또 교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런 분들은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우리는 지성인 복음 역사를 섬기기 때문에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들을 소홀히 여기고 또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성인 복음 역사를 섬기는 방향은 분명해야 하지만 무시 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3. 작은 자를 실족시키지 말라(18:6-14).

마태복음 186-9절을 보면 예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작은 하나라도 실족할 때 그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18:6). 실족이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거나 상처를 주어 넘어지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초신자를 넘어지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져 고기밥이 되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린 신자를 실족시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큰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하지 않게 초신자를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말로 상처를 줍니다. 말에 조심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 그리고 험담과 부정적인 말은 일절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근거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근거가 있더라도 악한 의도로 퍼트리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그것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잠잠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3체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초신자를 실족시킬 수 있지만 간접적으로 실족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옷차림,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해야 하고 분명한 행동을 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선한 영향력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않으면 초신자들이 실족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추한 냄새를 풍기지 말고 샤론의 꽃 예수님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이 죄를 범하여 실족시키면 찍어 버리고 눈으로 실족시키면 빼어 버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죄 짓지 않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10-14절은 작은 한 사람을 귀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8:10). 천사의 역할은 신자들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이 어린 신자들은 특히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에 천사들도 신경을 더 씁니다. 그래서 작은 한 사람을 무시할 될 때 천사들이 하나님께 상소를 하게 되어 그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됩니다.

계속하여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를 통해 소자 하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었습니다. 실리적으로 보면 100마리에 1마리 쯤 잃는 것은 대수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자는 아흔아홉을 놔두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섭니다. 목자는 양을 상대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로 대합니다. 목자는 양을 실리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18:14). 예수님은 어린 사람이요 쓸모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격과 생명을 가진 고귀한 존재로 대합니다. 우리는 어린 초신자들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실족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는 선한 영향력을 끼쳐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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