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21-35

용서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카네기는 인간 관계론에서 직장에서의 성공은 실력이 15%, 인간관계가 85%라고 했습니다. 컬럼비아대 MBA에서는 성공이 실력 7%, 인간관계가 93%로까지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그래서 한남대 김형태 총장은 인간관계란 대머리에다가 핀을 꼽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곧 부모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형제자매를 만나고, 또래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동료와 부하와 상사를 만납니다. 만남은 관계입니다.

만남에서 오는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삶의 폭이 달라지고, 삶의 깊이가 달라지고, 삶의 여백이 달라집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말대로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남을 비판하고자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용서를 통해 구원의 은혜가 깊어지고 인간관계가 아름답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남을 용서해야 할 이유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와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18:21).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아마 야고보가 캠프 생활하면서도 청소 시간이나 모임 시간에 혼자 빠져나가 놀다 오기 때문에 용서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큰마음을 먹고 예수님께 관용을 베풀어 일곱 번까지 용서할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것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랍비들은 3번까지 용서했습니다. 우리도 딱 세번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에 비해 일곱 번까지 용서한다는 것은 대단한 관용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대답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일곱 번에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만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18:21). 이것은 용서에 대한 숫자가 아니라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용서해야 할 이유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23-34절의 말씀이 그 내용입니다. 만 달란트 빚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왕에게 끌려왔습니다. 그는 빚을 일생동안 갚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에게 그 자신과 자식들과 아내를 팔아 빚을 갚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종은 왕 앞에 엎드려 통사정을 하면서 조만간에 빚을 갚을 터이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빚을 탕감해 주고 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해서 평생 은혜를 잊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가 무거운 짐을 벗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는 빚진 동료에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어찌해서 갚지 않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내가 꼭 갚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람에게 달려들어 지금 당장 갚지 않으면 감옥에 넣겠다고 독촉했습니다. 그는 빚을 갚지 못하는 동료를 감옥에 넣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자 왕은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를 당장 불러들여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에 용서해 주고 일만 달란트를 탕감까지 해 주었거늘 고작 백 데나리온을 가지고 동료를 감옥에 넣어. 저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을 당장 하옥시키고 만 달란트를 다 갚을 때까지 내주지 말라.”

빚이란 단어는 죄란 단어와 그 어원이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짓고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와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죄는 인간의 힘, 노력, 의지, 엄격한 종교 행위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셔야 합니다. ‘란 너와 나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달란트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 상호간의 빚은 백 데나리온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빚은 만 달란트입니다. 100데나리온은 약 1,000만원에 해당합니다. 이는 노력하면 능히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 달란트는 250년의 품삯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 빚 때문에 인생을 파산하고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포악하고 잔인한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용서를 깨닫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죄 용서는 돈으로 살수 없습니다. 지식으로도 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값없는 은혜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은 우리가 내게 사소한 잘못을 한 형제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만일 용서하지 않으면

서로 용서하지 못하면 피차 불행해집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5). 바울은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이나 단체나 민족이나 국가가 망하는 것은 서로 물고 먹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용서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용서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자이고 용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모두가 죄의 포로일수 밖에 없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나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에 같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용서하면 피차 살게 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9-21).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복하라’, ‘정죄하라’, ‘심판하라’, ‘복수하라는 단어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저주나 심판은 오직 하나님께만 달려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사랑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기뻐하라’, ‘칭찬하라’, ‘복음을 전하라는 단어를 주셨습니다.

원수를 갚는 최대의 무기는 복수가 아니라 용서와 사랑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를 가리켜 보상적 은총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가 한을 품거나 복수심을 가지고 살게 되면 내 가슴이 숯덩이처럼 시커멓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사랑으로 미움을 이겨야 합니다. 용서로 복수심을 이겨야 합니다. 정직함으로 거짓을 이겨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 원칙입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에서 자기 집의 닭이 이웃집 둥지에 알을 낳았습니다. 이 현장을 목격한 어린애가 부모에게 일렀습니다. 여자는 이웃집에 찾아가서 알을 내 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옥신각신 하다가 드디어 부인끼리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으로 끝났으면 불행 중 다행입니다.

그런데 분을 삭이지 못한 앞집 여자가 밤에 뒷집에 불을 놓았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집을 태우고 순간에 바람이 세게 불어 자기 집까지 옮겨져 두 집을 다 태우고 말았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싸우다가 결국 함께 불행을 당했습니다.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3:13).

우리는 살아가면서 불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만을 용서로 바꿀 때 내가 살고 남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하셨습니다(5:23-24). 그리고  바울은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엡 4:26).

셋째, 그러나 용서가 쉽지 않다.

우리는 미움과 시기보다 용서와 사랑이 아름답고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서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지만 용서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용서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말대로 쉽지 않는 것을 매일 체험합니다.

왜 용서가 쉽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시고 또한 당연히 용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쓴 뿌리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12:15).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이 말을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마음에 상처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여입니다. 우리의 원망과 불평, 파괴적인 비판, 증오와 멸시, 시기심의 밑바탕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가 아물지 않으면 조그만 건드려도 아픕니다. 그래서 건드리면 화가 치밀게 됩니다. 반면에 상처가 치료되면 아무리 건드려도 아프지 않습니다.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는 90:10 원칙이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가 기분이 상해있을 때 90%는 과거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0% 정도만이 현재의 경험으로 인한 불쾌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쓴 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뿌리의 특성은 자랍니다. 뿌리는 쉼 없이 자라며 사방으로 뻗어 나가 얽히고설킵니다. 성경에 가라지를 뽑지 못하고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라고 하신 이유도 뿌리가 곡식의 뿌리에 얽혀있었기 때문입니다.

뿌리는 자랄 뿐 아니라 성장합니다.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해서 한 그루의 나무를 키워냅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그 상처가 계속해서 자라고 성장하여 괴로움과 좌절과 열등감, 고통, 시기심, 원망, 불평이라는 나무로 성장하여 악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처럼 쓴 뿌리는 남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상처가 치유되면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힙니다.

상담학에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상처를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유되지 않고 결혼하고 지도자가 되면 자신도 불행하고 그 배우자도 불행하고 부하들도 불행하고 백성들도 불행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넷째,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5). 이 말은 주기도문 끝의 구절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도 형제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6:14-16).

우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할 때에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니다. 반면에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다. 이웃에게 조그만 빚을 탕감하지 않으면 그 죄에 대한 탕감이 무효가 됩니다.

우리가 용서 못하는 사람은 먼 사람이 아니라 항상 가까운 사람입니다. 남편이 용서가 안 되고, 아내가 용서가 안 되고 자식이 용서가 안 되고 부모가 용서가 안 됩니다. 성도가 용서가 안 되고 목사가 용서가 안 됩니다. 상사가 용서가 안 되고 동료가 용서가 안 되고 부하가 용서가 안 됩니다. 가까운 사람은 절대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중에 뒤틀리고 얽힌 인간관계로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픈 상처가 치유가 되지 않아 분노의 쓴 뿌리가 얽혀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도 알 수 없는쓰라린 과거로 인해 고통은 하지 않습니까? 기억조차 하기 싫은 잔재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풀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 나의 쓴 뿌리를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의 피 흘리신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외쳐 봅니다. 주님 용서하겠습니다. 주님 용서합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제 주님 쓴 뿌리가 치료되었습니다. 아멘.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 최고의 왕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괴롭히는 기름 부음 받은 사울 왕을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압살롬으로부터 쫓겨 다윗은 신도 못 신고 맨발로 기드론 시내를 건넜습니다.

그때 길가에서 시므온이 돌을 던지면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를 본 다윗의 장군이 그의 행동이 하도 괘씸해서 죽이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말렸습니다. “그냥 두어라 하나님이 그를 시켜서 그러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나의 잘못을 다 깨닫게 하려고 하는 일일지 모른다.” 나중에 다윗은 죽을 때까지 시므이를 죽이지 낳고 살려 두었었습니다. 다윗은 용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동서독이 통일이 되었는데 왜 우리는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를 동서독의 예를 들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서독을 예로 우리의 남북문제를 접근하면 안 됩니다. 동서독과 남북의 분단은 강대국의 입김으로 분단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북은 동서독과 달리 깊은 미움과 상처가 있습니다. 그것은 6.25의 동족상쟁의 비극입니다.

이로 인해 남한은 인민군, 빨갱이하면 치를 떱니다. 왜냐하면 부모형제가 인민군으로부터 학살을 당하는 비극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빨갱이 하면 그 누구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북한은 미국에 대한 적대감정이 복받쳐 있습니다. 미국의 전투기 B-29F-86으로 평양과 북한 전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피차 한이 맺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 한을 풀지 않으면 남북한이 동시에 망합니다. 그러나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과를 해야 용서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범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짐승 같은 사람은 은혜를 악으로 갚는 것이고, 범인들은 삶의 방식이 주고받는 give-take식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비범한 사람들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고 먼저 용서와 사랑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크리스천의 윤리입니다.

우리는 말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용서 받은 죄인들입니다. 이제 용서 받은 죄인들로써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치면서 왜 우리는 같은 민족끼리 돕지 못합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적대감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적대감정은 단순한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치는 함수는 큽니다. 남북문제가 풀릴 때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은혜 받은 우리는 그들을 사랑으로 다가서서 품고 섬겨야 합니다.

서로 물로 물면 서로가 피해를 입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마음을 열고 사로 간에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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