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사야서 1:1-17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1:2).

 

새해 하나님이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신년 첫 메시지로 좀 무거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늘을 봐도 소망이 없고, 땅을 봐도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땅에 코를 박고 자기만을 위해 이기적인 삶을 살던지, 아니면 시대와 환경을 탓하며 절망적인 삶을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런 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고망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새해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시대를 바라보아 소망과 비전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이사야가 살던 시대 배경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1:1).

이사야서 11절은 이사야서의 서론이요 이사야서 66장 말씀의 대전제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유다의 네 왕조에 걸치며 그 왕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시대의 고관들과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웃시야는 일명 아사야(왕하 14:21)여호와의 힘이란 뜻입니다. 그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52년간 나라를 통치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의 망대를 세워 국방을 튼튼히 했고, 농경과 목축업을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부흥을 일으키는 등 탁월한 업적들을 남겼습니다(대하 26:4-15). 그런데 그는 마음이 교만해져 제사장 이외는 들어갈 수 없는 성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했습니다. 이를 본 제사장 아사랴가 말렸지만 그가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 향단 곁의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역대하 26:16-23). 그는 처음에는 겸손하게 선정을 베풀었지만 그만 교만해져 가장 못쓰게 된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잠언은 교만한 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

인류가 타락하게 된 원인도 아담이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하는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잘 나가던 사람이 넘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모두가 교만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도 교만 때문에 넘어졌습니다. 교만은 어디에서 옵니까?

첫째, 자기의 의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누거복음 1811-12절을 보면 자신을 높이는 바리새인과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세리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하고 불의하며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자신을 내세울 것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높였으나 세리는 자신을 낮췄습니다. 바리새인은 나는 너보다 낫다는 우월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특권의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의를 앞세우는 교만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둘째, 초신자가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초신자는 연륜이 짧은 사람을 말합니다. 연륜이 짧은 사람은 전문지식과 소양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머리를 숙이고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속담에 빈 수레가 소리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소양이 없는 사람일수록 아는 체하고 허세를 부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독의 요건 중의 하나가 새로 입교한 자는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해져서 정죄에 빠지지 않도록 함이었습니다(딤전 3:6).

셋째, 자신의 미와 부로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악인은 교만한 얼굴로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했습니다(10:4).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보물로 인해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물을 갖다가 바치니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된 양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한 자들을 향해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딤전 6:17). 요즘 어느 재벌 3세가 갑오년에 갑질을 하다가 차가운 감방에 가있습니다. 올해는 을미년인데, 우리 모두가 을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겸손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교만과 부패는 동의어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마음이 부패해져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으니 매사가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가 곧 진리요 법이 됩니다. 지금 한국 대통령을 일컬어 이구동성으로 불통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리더의 최고의 덕목은 경청입니다. 그래서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실에 경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청이라는 휘호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요담은 부친인 웃시야가 나병으로 인해 왕위에서 쫓겨나자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15:5). 요담이란 여호와는 정직하시다는 뜻입니다. 그는 대리로 통치하다가 제 11대 유다 왕으로 16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습니다(대하 27:1). 그는 재임 기간 중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그런데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습니다(왕하 15:34-35). ‘산당’(high place)은 산 위의 푸른 나무 아래 세워졌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산당에서 바알이나 아세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22:41; 왕상 12:31, 14:23). 산당의 예배 의식은 여사제들과 관능적인 행위를 하는 아주 부도덕했습니다(16:1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정복과 함께 우상의 신전들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33:52). 그런데 이스라엘은 산당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2:12). 그 후에 그들은 난잡한 짓을 했습니다.

아하스는 유다의 제 12대 왕으로 20세에 왕위를 물려받아 4년간 아버지 요담과 섭정을 했으며 16년간 통치했습니다(왕하 16:2, 대하 28:1). 아하스 왕 때 활동한 선지자가 이사야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재위 기간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더 의지했으며, 가증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습니다(왕하 16:3-4, 대하 28:2-4). 그리고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경배하게 했습니다(2:8), 우상의 제단에 제사를 드렸으며(왕하 16:11-14),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도움을 구했습니다(대하 28:22-23). 그는 하나님의 전의 기구를 모아 부수고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유다의 각 성읍마다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했습니다(대하 28:22-25).

그는 아람의 르신 왕과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침략해 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을 전하셨지만 이사야의 메시지를 거절했습니다(7:1-14). 이로 인해 끔찍한 참화를 겪었습니다(왕하 16:6, 대하 28:5). 한 역사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 하루 동안에 12만 명이 학살당하고, 20만 명 이상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하스는 여호와를 의지하기보다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더 큰 재난을 재촉했습니다(대하 28:16-21). 이러한 악정과 불신앙은 그가 죽은 뒤에도 왕들의 묘실에 묻히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대하 28:15, 27).

히스기야 왕은 다윗과 요시야와 더불어 성군 중의 하나입니다.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삼킨 후 그 무서운 힘을 발휘하여 남 유다를 삼키려 호시탐탐 노렸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 왕이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장로들을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어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지만 해산할 힘이 없다며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크신 은혜를 베푸심으로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왕하 19:1-35).

그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분향하는 놋뱀을 부수었습니다(왕하 18:1-8).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 터널을 파서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습니다(왕하 20:20,대하 32:30), 성벽을 견고하게 했습니다(이사야서 22:10). 고고학적으로 살펴보면, 이때 예루살렘은 구약 시대에서 가장 큰 예루살렘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자 므낫세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간 남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랍비의 전승에 보면 그는 이사야가 전한 회개 메시지를 듣지 않고 오히려 나무 톱으로 이사야의 허리를 켜서 죽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는 부왕인 히스기야와 달리 포악했습니다. 이런 시대 이사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습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비전입니다.

이사야가 살던 시대는 이스라엘을 삼킨 앗수르가 최대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애굽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쪽에서는 신흥 왕국인 바벨론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어 동족끼리 서로 으르렁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국내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나라의 장래를 보려면 젊은이들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젊은이들은 미래의 창이요 상징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젊은이들은 아침부터 비파와 수금을 타며 독주를 마셨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5:11-12).

그들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꿈도 없었으며 소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현실에 눈이 멀어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 날에 그가 소리를 높여 이르기를 나는 고치는 자가 되지 아니하겠노라 내 집에는 양식도 없고 의복도 없으니 너희는 나로 백성의 통치자로 삼지 말라 하리라”(3:7).

그러면 여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위대한 한 남자의 뒤에는 기도하는 두 여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어진 어머니의 기도이고 또 한 사람은 현숙한 아내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여인들은 유행에 눈이 어둡고, 그들은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아기작거리며 걸었습니다. 그리고 발로는 발고리를 달고 다니며 쟁쟁한 소리를 내고 다녔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작거리며 걸으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낸다 하시도다”(3:16).

그렇다면 고관들은 어떠했습니까? 정치의 생명은 공의와 공의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패역했습니다. 도둑과 짝하여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했습니다. 고아를 위해 신원하지 않고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않았습니다(1:23).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투기를 하여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었습니다(사 사 5:8).

그리고 신실한 성읍이 창기가 되었습니다. 정의가 충만하였고 그 안에는 공의가 거하였지만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습니다. 은은 찌꺼기가 되었고 포도주에는 물이 섞여 있었습니다(1:21-22). 은은 여러 제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은이 찌꺼기가 되었다는 것은 타락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포도주에 물이 섞여있다는 것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이 물질과 우상을 숭배하여 순수하고 거룩한 모습을 찾아볼 내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이사야서 111-15절을 보면 각종 집회를 갖지만 회개가 없었습니다. 성전을 들락거리며 헌금을 하지만 마음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당만 밟는 내용이 없고 형식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시대에 이사야는 온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1:2).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양육합니까? 자녀들은 스스로 큰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는 눈물로 자녀를 키웁니다. 부모는 자녀를 키울 때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부모는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혀 키웁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그 어떤 것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모가 자녀를 키우듯이 키웠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을 어린 양의 피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40년간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로 매일양식을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셔서 그들의 배고픔과 갈증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할 때 메추라기를 원 없이 먹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키우셨습니다.

하나님은 포도원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5:1-4). 하나님은 기름진 산에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환경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율법을 주셨고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19:6). 이제 그들은 열매만 맺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하여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향하여 무엇이라 말씀했습니까?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1:3-4).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을 잘 압니다. 말은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적진지라 할지라도 주인이 가라고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춥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소나 나귀보다 못한 존재가 됩니다.

사람들은 탐욕스러운 사람을 일컬어 돼지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돼지보다 인간은 더 탐욕스럽습니다. 돼지가 아무리 탐욕스러운 존재라도 토하면서 먹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돼지가 아무리 탐욕스럽다 하더라도 소화제를 먹으면서까지 먹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토하면서까 먹습니다. 아니 소화제를 먹어가며 과식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탐욕스럽습니까? 개는 음란의 상징입니다. 개는 비록 아무데서나 방뇨하고 교미를 하지만 동성애는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개보다 더 음란합니다. 우리는 미련한 사람을 일컬어 곰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곰보다 더 미련합니다. 독사보다 더 악하고 거역하기는 뿔 달린 염소보다 더합니다. 더럽기는 구더기보다 더 더럽고 교만하기는 공작보다 더 교만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신령한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며, 부모님의 은혜를 모르고, 형제간의 우애도 모르고, 부부간의 사랑도 모르고 자기를 도와준 분들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책임도 모르는 비참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들이 범죄하고 허물지고 행악의 종자요 부패한 자식이 되었을 때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1:5).

그들은 패역했습니다. ‘패역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거역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고 목자의 말이 옳은 것을 알면서도 거역하는 것이 패역입니다.

패역하면 매를 맞게 됩니다. 매는 징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질병도 하나님의 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매를 맞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엎드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용서를 구하기보다 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패역했을 때 온 머리가 병들었습니다. 이는 정신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돈에 미쳤고, 정욕에 미쳤고, 탐욕에 미쳤고, 유행에 미쳐 있었습니다. 성한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온 마음이 피곤하였습니다.

그것뿐입니까?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전신이 성한 곳이 없었으며,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습니다. 상하고 터진 곳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상처를 치료받지 못하게 되면 부패하게 됩니다. 결국 패역하여 하나님의 매를 맞아 땅이 황폐해졌습니다(1:6-7).

하나님은 시온을 얼마나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은 시온, 예루살렘을 딸처럼 사랑했습니다. 딸은 아들보다 더 귀하고 화려하고 좀 튀게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화려하고 영광스럽게 단장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금으로 치장하게 하셨습니다. 그 영광과 광채가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던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이스라엘은 저주를 당하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 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아 있었습니다(1:7-8). 포도원의 망대, 참외 밭의 원두막, 적에게 에워 싸인 성읍은 언제 넘어갈지 위태위태합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예루살렘이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경홀히 여기고 패역하게 되면 그 마지막은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됩니다(1:9).

이사야서 110-17절을 볼 때 참 신자와 거짓 신자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신자는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1:10). 성도는 예배당에 오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엉뚱한 생각을 하고, 찬송을 부를 때 딴전 피우고, 기도할 때 핸드폰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무늬만 신자일 수 있습니다. 육신의 귀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영의 귀로는 세상에 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을 중하게, 하나님의 책망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권면은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 신자는 하나님의 교훈을 가볍게, 책망을 코웃음 칩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와서 소돔의 관원들처럼 음란한 생각을 하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출세할까, 어떻게 하면 탐욕을 채울까 궁리하는 사람은 거짓 신자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는 말씀이 나오면 귀를 세우고 듣습니다. 그러나 참 신자는 회개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거짓 신자는 내용은 없고 형식만 있습니다(1:11-13). 거짓 신자는 형식은 잘 갖추어져 있어서 매너가 아주 좋습니다. 찬양도 경건한 모양으로 부르고, 기도도 유창하게 하고, 말도 감동적으로 잘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진실함이 없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기도를 하지만 중언부언합니다. 헌금을 하지만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고 하지만 열매가 없습니다. 악을 행하고, 학대하는 사람을 돕지 않고, 고아를 신원하지 않고, 과부를 돕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돕자고 하면 좌파나 종북으로 몰아세웁니다. 우리는 혹시 무늬만 신자는 아닙니까?

요즘 경제가 IMF보다 어렵다고 하지만 IMF보다 어렵다는 말이 거짓처럼 들립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얼마나 미려하고 화려합니까? 그런데 내면을 살펴보면 한국에 온전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가 탐욕과 정욕에 미쳐 있고, 유행에 미쳐 있습니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동성애를 합법화하려고 하는 음란의 도가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폼페이가 왜 망했고, 소돔과 고모라가 왜 지구상에 흔적이 없이 사라진 유일한 도시가 되었습니까? 폼페이는 겉으로 볼 때 화려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동성애와 매음굴과 남창이 즐비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의 동산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의인 10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폼페이를 화산으로,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으로 순식간에 심판하셨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이 음성은 우리를 향한 마지막 주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탄식을 소리입니다. 우리는 지금 맛을 잃은 소금은 아닌지요?, 무늬만 신자가 아닌지요? 우리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는 주님의 책망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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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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