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이사야서 2:1-22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본문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사야가 받은 시온과 예루살렘에 관한 비전입니다. 그 시기는 웃시야가 유다를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는 남북이 200여 년간 분열되어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다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여 없어지고, 그나마 남은 유다마저 무서운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아 언제 어떻게 망할지 모르고, 남쪽에서 애굽은 애굽대로 유다를 넘보고 있어 마치 유다는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국내적으로 보면 현재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와 같이 겨우 남아 있었습니다. 원두막의 망대는 초라하고, 언제 어떻게 비바람에 넘어갈지 모릅니다. 원두막의 망대는 보잘 것 없고 비천하고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 원두막입니다. 아름답던 시온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신실하던 성읍은 창기가 되었습니다. 창기란 본 남편을 버리고 음행을 하는 여인을 말합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정의와 공의가 충만했던 도시가 살인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유다는 현실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국내외 관계로 보나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장차 말일에 시온과 예루살렘에 나타날 영광을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본문을 통해 우리는 시온과 예루살렘에 두신 하나님의 비전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런 영광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 각자 각자에게 시온의 영광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시온의 영광(사 2:1-3)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사 2:1)
이사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전의 산이 굳게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말일은 메시아의 초림으로부터 시작하여 재림까지를 말합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에 위치한 작은 동산입니다. 다윗은 이곳을 수도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실로에서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이곳으로 옮겨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이곳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의 언약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말일에 여호와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게 되고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산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토는 70%가 산입니다. 그 중에 높고 낮은 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가까이는 인천의 문학산과 청량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쪽에는 1950m의 한라산이 있고, 북쪽에는 2774m의 백두산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백두산을 오르고 싶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높기 때문일 것이고 한민족의 역사가 담긴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보다 더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많습니다. 유럽에는 알프스가 있고, 아프리카에는 킬리만자로가 있고, 아시아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8848m의 에베레스트 산이 있습니다. 산악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알프스와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싶어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물질과 젊음과 모든 것을 투자하여 알프스를 오르고 에베레스트를 오르고자 합니까? 이 산이 어떤 산보다 높고 장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구나 정상을 오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저마다 자기가 제일 높다고 자랑하는 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정상을 오르고 싶어 합니다. 세상에는 학문의 산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명예의 산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권력의 산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부의 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즘과 쾌락의 산이 있습니다. 각기 이런 산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이 제일 아름답고 높다고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의 산에 열심히 오릅니다. 열심히 학문의 산을 오릅니다. 열심히 고시의 산을 오릅니다. 열심히 쾌락의 산을 오릅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산이 가장 높은 줄로 알고 열심히 오릅니다. 특히 사람들은 권력의 정상에 오르면 뭐가 있을 것 같아 너도 나도 대통령이 되고자 합니다. 사실 대통령은 그만 두고 대통령의 형이나 동생이나 아들만 되어도 그 세도가 막강합니다. 그래서 부통령, 삼홍, 봉화대군, 만사형통, 십상시 등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아들은 그만 두고 동장만 되어도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리고 돈산, 물질의 산은 그 세력이 가히 가공할 만합니다. 쾌락의 산 또한 사람을 유혹하는 산중의 산입니다.
그러나 이런 산은 여호와의 산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동산에 불과합니다. 이런 산은 아무리 정상을 오른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산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벧전 1:24). 우리가 번 돈, 우리가 쟁취한 명예와 권력, 쌓은 지식과 학문, 그리고 달콤한 쾌락, 환상의 이즘 등은 언젠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권불십년, 일장춘몽이란 말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굳게 서다, 뛰어나다’란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높다는 것이 아니라 이는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과 절대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은 말씀과 기도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철학과 사상과 이즘,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장 뛰어나고 높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의 말씀만이 세세토록 있다고 했습니다(벧전 1:25). 그런데 사람들은 우둔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말일에 사람들은 말씀만이 굳게 서고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만큼 곤고한 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3포에서 5포세대란 단어가 생겼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포기입니다. 그리고 청년들이 새장에 갇혀 있는 새처럼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청년의 특징은 드높은 기상과 기개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아모스 선지자는 이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기갈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디모데후서 3:1-5을 보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사랑하기보다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전 3:11). 그래서 말일에는 말씀만이 절대적인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함을 알게 됩니다(시 19:7).
요한복음 3장을 보면 디고데모가 나옵니다. 그는 명예와 부와 권력의 정상에 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의 72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출신입니다. 그리고 그는 랍비였습니다. 랍비란 유대인들이 최고로 바라는 바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돈도 많았습니다(요 19:39). 그는 세상 사람들이 오르고 싶은 모든 정상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녁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빛이 없는 삶, 생명이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에게는 생명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빛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했습니다. 사람이 산의 정상을 오른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의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나라를 소유해야 합니다.
이억섭 교수님은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박사 학위만 받으면 행복의 여신이 그를 맞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박사 학위를 받는 순간 입에서 ‘이게, 아닌데!’ 절규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수로 있는 동안에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이제는 은퇴하고 오지인 에디오피아 선교사로 가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고 가장 높고 절대적입니다.
둘째, 말씀이 시온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3).
하나님은 일찍이 시온에 큰 뜻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씨에서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예루살렘과 시온이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찾고 순례합니다.
사실 예루살렘을 가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아닙니다. 그러면 뭣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그 많은 여비를 들여가며 예루살렘을 찾아갈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흔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은 어느 곳이나 많은 사람들을 모여 들게 하고 영광스럽게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습니다(창 12:2, 18:18-19).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출 19:6).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헛된 우월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이즘, 즉 시온이즘에 빠져 하나님께 쓸모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실패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패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새 이스라엘, 새 시온, 새 예루살렘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를 볼 때 시온이나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새 시온, 새 예루살렘, 새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지역이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때 평양이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말씀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평양에는 한국 최초의 평양신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대학인 숭실학교와 크리스천 고등학교인 오산학교와 대성학교가 세워졌습니다. 1907년에는 100만구령운동을 벌인 곳도 평양이었습니다. 그리고 남강 이승훈 선생을 비롯한 독립을 위한 인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평양이 공산화된 이후에는 평양의 무수한 교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터 위에 인민대학습당, 평양수년궁전 등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니 북한이 잘 될 리 있겠습니까?
한 때 영국은 시온이었습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나오고 수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였습니다. 대표적으로 허드슨 테일러, 요한 웨슬레이, 스펄전, 로이드 존스목사님들입니다. 그리고 영국 성서공회를 통해 많은 성경을 보급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서적과 신앙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 세계 곳곳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이 대학들을 통해 지도자들이 키워졌습니다. 옥스퍼드는 홀리 클럽이 있었고 케임브리지 세븐이 있었습니다. 홀리 클럽은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가 배출되었고, 케임브리지 세븐은 그들이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공부했는지 성경 벌레들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영국 선교사들의 모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의 혁명을 부르지도 않고 근대화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18세기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받은 복음정신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껍데기만 남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미국으로 시온을 옮기셨습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배우고 신학을 배우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의 명문 대학들인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브라운 대학 등은 모두 크리스천들이 세운 대학들입니다. 많은 신학자와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SVM(대학생선교자원운동, Student Volunteer Movement) 이 일어나 10만 명의 학생선교자원자를 배출하고 2만5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미국 선교사들 중에 201명이 SVM 출신들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자유주의신학으로 인해 복음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철수했습니다. 제 2차 대전을 승리한 후에는 패권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성경을 사랑하는 한국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한국 성도들만큼 성경을 사랑한 민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초기 선교사들이 미국 선교부에 보고할 때 한국 성도들을 일컬어 Bible Lover, Bible Christian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팔러 다니는 권서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가가호호 방문하여 성경을 팔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성경을 사랑하는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하기보다는 신사도운동과 은사운동, 그리고 프로그램에 치우치다보니 성장이 멈췄고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성경공부를 즐거워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기를 기도합니다. 금년에 마가복음을 전 성도들이 공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미국의 D.L.무디는 국민 학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사랑했을 때 미국을 변화시켰고,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루마니아의 김다윗 선교사는 한국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합니다. 그는 대학에 들어와 대학생활이 재미가 없어 그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스포츠신문을 보며 당시 처음 생긴 프로야구를 보고 해태를 응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깊이 영접하고 성경 말씀을 사랑했을 때 루마니아 대학생들이 찾아와 그의 메시지를 듣고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모범적인 선교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나 서구 유럽 사람들과 비교할 때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키도 작고 코고 납작하고 얼굴은 빈대떡처럼 넓적하고 피부 색깔은 검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닌 검으티티합니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민족끼리 분열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슬픈 민족입니다. 지도자들은 비굴하게 강대국의 눈치나 살핍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눈으로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한국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백성이 되면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학들은 모두 유명한 대학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 사랑하면 누구나 시온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2. 세상에 임할 평화(사 2:4-22)
말일에는 이 땅에 평화가 임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됩니다(사 2:4). 이제 서로 전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세계 인류 역사를 볼 때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수 없는 평화 협정을 맺지만 뒤로 돌아서서는 칼을 만들고 총을 만들고 대포를 만들고 미사일을 만들고 핵을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지구상에 분쟁이 사라질 수 있습니까? 사랑과 평화의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전쟁은 더 비참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전쟁은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5-22절은 예수님이 오실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죄목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온으로 삼고자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통해 세계 각 곳에 말씀이 흘러넘치기를 원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비전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사랑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사랑하여 시온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