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이사야서 9:1-21, 10:1-4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사람이 살다 보면 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삼가고 조용히 기도합니다. 오히려 위기의 때에 임마누엘 하나님께 징조를 구합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에게 큰 빛이 되셨습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기묘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모사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본문을 통해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우리 내면에 흑암이 물러가고 생명의 빛,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 어둠을 헤치고 독수리와 같이 창공을 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9:1-5)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9:1). 전에 고통을 받던 자들은 북이스라엘을 말하고,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은 강대국인 앗수르와 접경인 변방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B.C. 734년에 앗수르 왕이 침략하여 스불론과 납달리 온 땅을 초토화시키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고 갔습니다(왕하 15:29). 그리고 그곳에 앗수르를 강제 이민시켜 혼혈정책을 썼으며 종교도 혼합화했습니다. 그러다가 B.C. 722년에 이스라엘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그곳 사람들을 이방의 갈릴리라고 멸시하고 철저하게 외면했으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7:52).

그러면 갈릴리가 왜 이처럼 멸시를 당하게 되었습니까? 이는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의 길을 가지 않고 여로보암의 길을 갔습니다(왕하 15:28).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입니다.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아 남과 북으로 나눴습니다.

그 후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 큰 죄를 범했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한 것입니다. 둘째는 산당을 만든 것입니다. ‘산당’(high place)은 산 위에 푸른 나무 아래 세워졌습니다. 가나안 원주민은 이 산당에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22:41, 왕상 12:31, 14:23). 그들의 종교의식은 여사제들과 관능적인 행위를 하는 매우 부도덕했습니다(16:16).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과 함께 우상의 신전들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33:52). 그런데 이스라엘은 원주민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의 영향을 받아 산당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했지만 원주민의 종교의식을 따라 부도덕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북이스라엘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강대국인 앗수르를 통해 징계하시고 멸시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멸시를 당하게 한다’(humbled)는 겸손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겸손의 반대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과시하며 자기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만은 최고의 범죄 행위입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29:23).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라”(18:27). 겸손은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자기를 낮추면 낮추는 만큼 높아집니다. 반대로 자신을 높이면 높인 만큼 낮아집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이 하나님과 되고자 하는 교만으로 인해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3).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세운 제국의 위용을 과시하다가 정신병에 걸려 풀을 뜯어먹는 짐승이 되었습니다(4:30-33).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앗수르로 하여금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이 때 오히려 그들은 더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은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기보다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를 찾았습니다(8:19).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완악하여 벽돌이 무너졌으면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면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겠다고 했습니다(9:9-10). 그들은 하나님께서 징계하고 심판하려면 해보라는 식으로 교만이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이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헤매고 곤고하며 굶주리며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뿐이었습니다(8:21-22).

이사야는 이런 절망적인 중에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영화롭게 한다’(honor)는 멸시와 천대를 받던 백성이 명예가 회복되어 존경과 사랑을 받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이 영화롭게 됩니까?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2). 임마누엘 하나님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을 비치심으로 그들이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흑암에 행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빛이 없으면 삶의 의미와 가치와 방향 감각을 알 수 없습니다. 희망과 비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삶의 의욕이 없습니다. 그러나 큰 빛이 비취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사라집니다. 삶의 방향과 의미를 찾게 됩니다. 기쁨과 삶의 의욕이 생깁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은 흑암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로마 식민지하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꺼져가는 심지와 같고 상한 갈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백성에게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돋는 해로 오신 예수님은 어두움을 순식간에 걷어치웠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멸시와 천대를 받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를 중심으로 복음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 곳도 갈릴리 해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곳도 갈릴리 가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룟 유다를 제외한 모두가 갈릴리 출신들입니다. 이로 인해 멸시받던 스불론과 납달리 땅이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은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영화롭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과 가난과 질병으로 울밑에 선 봉선화같이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던 슬픈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한국에 들어온 후 한이 서린 민족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시 받고 천대받던 백성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위대하게 만드셨습니다.

오산 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 선생은 별무한 가정에서 태어나 점원 노릇을 했습니다. 그런 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위대한 교육자요 민족의 선각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은 IMF 때보다 더 어려운 시기입니다. 201522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구직 단념자는 492천명으로 작년에 비해 255천명이나 폭증했습니다. 구직단념자의 급증의 주요인은 청년실업난 악화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정부여당에서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주문만 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결혼 적령기인 30대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통계가 절반에 달했습니다. 이는 저출산과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더 심각합니다. 청년들은 직장포기와 결혼포기라는 직결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너무나 가혹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니 너나 할 것 없이 절망하고 또 정부를 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련이 주는 영적인 의미를 찾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IMF의 교훈을 쉽게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기보다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의미나 가치보다 소유와 미에 너무나 집착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소유와 미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죽는 줄 모르고 돈을 향해 불나방같이 달려들었습니다. 자신의 미모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몸에 칼을 대는 것을 예사롭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어느 시대보다도 하나님보다 맘몬과 비너스의 신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민족을 겸손하게 하셔서 내일의 주역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교만을 낮추고 겸손하게 하셔서 장차 통일 제사장 나라가 되도록 하십니다. 마음이 부요해진 젊은이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가난하게 하셔서 영적인 제사장 나라로 삼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당하는 시련과 연단, 아픔과 멸시 천대는 내일의 영광으로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교만함과 세상의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고 섬겼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장차 영화롭게 하실 희망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시련 속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감사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에델바이스의 노래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에델바이스는 스위스 고산지대에서 자라나는 작은 꽃입니다. 그 꽃은 이른 봄, 아직 눈이 덮여 있는 추위 속에서 꽃봉오리를 맺습니다. 고귀한 꽃일수록 역경을 온상으로 삼습니다. 우리에게 시련이 있다면 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고 꿈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잘나가는 목재소 직원이었던 케몬스 윌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마흔에 해고되었습니다. 그는 실직을 당하자 이 시련에 무슨 뜻이 있는가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그는 기도 중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금 여관들이 불륜의 장소로 전락했다. 너는 나그네들이 묵고 쉬어갈 수 있는 숙박업을 시작해 보라.”그래서 그는 실직하고 작은 여관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여관에 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50개국에 1,759개의 체인망을 거느린 호텔 사업체가 되도록 복 주셨습니다. 이 호텔이 홀리데이 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향한 더 큰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를 직장에서 해고당하게 하시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청년들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민족은 여기에서 침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의 시련의 뜻을 찾고 하나님께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비상하는 민족으로 크게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번성하게 하셔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 즐거움은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습니다. 이는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임합니다(9:3-5). 이런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2.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6-7)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멸시를 당하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할 때마다 그들은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는 강력한 힘을 가진 다윗과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아기를 보내셨습니다. 아기의 특징은 한 마디로 연약함입니다. 연약한 아기가 어떻게 메시아가 될 수 있습니까?

이는 이 아기의 그 어깨에는 정사가 메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사’(government)란 하나님의 통치를 뜻합니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권세는 사탄의 머리통을 깨고 활하신 부활의 권세입니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의 별칭이 109가지나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별칭 중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큰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다섯 가지의 별칭이 나옵니다. 한 아기의 이름을 통해 예수님의 인격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기묘자이신 예수님

기묘자’(wonderful)는 놀라운 분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예수님은 기묘하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그분의 행하신 기적들은 기묘합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고 완전한 하나님이신 기묘하신 분이십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은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신 기묘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공의와 사랑은 일치가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사랑을 따르자니 돈이 울고, 돈을 따르자니 사랑이 운다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순애보처럼 공의를 따르자면 사랑을 포기해야 하고, 사랑을 따르자면 공의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동시에 만족되는 기묘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기묘 자체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기묘하신 역사 중의 하나입니다.

둘째, 모사이신 예수님

모사’(counselor)는 상담자란 뜻입니다. 우리는 상담자가 필요합니다. 물질문명, 컴퓨터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은 상담자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이를 보면 모두가 예쁘고 똑똑합니다. 그런데 고민이 참 많습니다. 취업, 결혼, 가정문제, 갑자기 닥친 어려움 등으로 인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문제를 풀어줄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상담자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지혜가 필요한 자에게 지혜를,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는 위로를, 힘이 필요한 자에게는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14:16-17). 내주하신 성령께서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찾고 구하면 나의 장래와 민족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좋은 상담자이십니다.

셋째, 전능하신 하나님

예수님은 한 아기로 오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최대 원수인 죄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에게 무한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힘의 원천이십니다. 바울은 이 예수님을 믿었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예수님을 믿으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불가능한 장벽을 넘어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넷째, 영존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는 자녀들을 보호하고 사랑으로 양육합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의지의 대상이요,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는 가정은 울타리가 없는 집처럼 슬프고 외롭습니다. 좀 능력이 없는 아버지라도 계셔야 든든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버지는 유한하여 언젠가 우리의 곁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능력의 한계가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능력의 한계로 인해 자녀들을 잘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존하시는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변함없이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다섯째, 평강의 왕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나 권력자들처럼 공권력으로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리되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평강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전쟁으로 두려워하는 이 땅에 평화를 주십니다.

그러면 메시아의 통치권과 평화는 날이 갈수록 어떻게 됩니까?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9:7). 세상의 권력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아기의 통치권은 가면 갈수록 굳게 세워지고. 그 권세는 영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공의로 보존되기 때문에 부정과 불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의 공약은 폐기되고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이 나라는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으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사야가 본 메시아에 대한 희망은 신실하고 확실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증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3. 이스라엘의 심판(9:8-10:4)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심판의 기준은 교만이었습니다(9:8-12). 그들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하나님의 심판으로 파괴된 것을 그들의 힘과 의지로 복구하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도 돌이키지 않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머리로 시작하여 백성에게 이르기까지 심판하셨습니다(9:13-17). 하나님의 진노는 회개할 때까지 계속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는 더해져서 이스라엘을 불로 소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9:18-21).

그리고 하나님은 불의한 지도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고, 가난한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고,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살았던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아모스는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고,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다고 했습니다(2:6-8, 5:11-12). 요즈음 한 판사가 명동의 사채업자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판검사들이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자들로 인해 결국 민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잡혀가는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10:3-4).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흑암에 행하던 백성에게 큰 빛이 되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기묘하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상담자이십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교만한 자를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여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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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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