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24:1-23, 25:1-8
만민을 위해 연회를 베푸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 25:6)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세우신 목적은 교만하고 우상 숭배하고 음란한 북이스라엘의 징계를 위한 도구로 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위치를 이탈하여 이웃나라를 침탈하고 넘어뜨리고 착취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세우신 목적은 남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또한 교만하여 하나님과 동등되고자 했습니다(사 14:14).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주변 나라뿐만 아니라 열방에 대해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사 24-27장)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시는 원인과 목적, 심판의 보편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에 참석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사 24:1-5)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무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사 24:1). 하나님은 보라(Behold)!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을 보여주고 수 있습니다. ‘땅’과 ‘지면’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사야는 이 세상을 더러운 것으로 채워진 그릇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릇에 각종 오물이 들어 있으면 그 오물을 쏟아버리고 뒤집어엎어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 가득한 이 땅을 심판하여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창 1:31).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이 즐비했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습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촉촉하게 적셨습니다. 정금과 진주와 호마노가 즐비했습니다. 엉겅퀴와 가시덤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운 동산을 만드시고 인간을 그곳에 거하게 하시고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또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는 절대적인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름다운 가정까지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은 아무 부족함이 없는 기쁨의 동산, 행복의 동산, paradise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땅이 온전히 공허하게 되고 온전히 황무하게 되리라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셨느니라 땅이 슬퍼하고 쇠잔하며 세계가 쇠약하고 쇠잔하며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약하며”(사 24:3-4). 땅이 온전히 공허했습니다. 땅이 온전히 황무했습니다. 땅이 슬퍼하고 쇠잔했습니다. 세계가 쇠잔하였습니다. 세상 백성 중에 높은 자가 쇠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땅이 왜 이렇게 공허하고, 황무하고, 슬퍼하고 쇠잔하게 되었습니까? 땅이 왜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큼 더럽게 되었습니까?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사 24:5). 이는 사람들이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고, 율례를 어기고,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언약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에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죄가 장성하고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이런 이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 후에 무지개 언약을 약속하시고 거룩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유희를 일삼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탐심과 탐욕의 원초적인 본능이 가득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뜻과 원리대로 자연을 다스리지 않고 인간의 욕망을 따라 다스렸습니다. 이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어 지구가 오염되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법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쏟아버리시고 공허하게 하시고 뒤엎어버리시고 그 주민을 흩으셨습니다.
“백성과 제사장이 같을 것이며 종과 상전이 같을 것이며 여종과 여주인이 같을 것이며 사는 자와 파는 자가 같을 것이며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가 같을 것이며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가 같을 것이라”(사 24:2). 인간사회는 정치, 종교, 신분, 경제, 사회, 모든 면에 있어서 평등하지 못합니다. 칼 맑스는 공산주의를 통해 평등사회가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그 자체에도 계급이 존재했습니다. 소련에 계급이 없습니까? 중국에 계급이 없습니까? 북한에 계급이 없습니까? 1992년에 소련을 갔을 때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에 빈부의 차가 아주 심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북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은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예외 없이 심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2절에서 같을 것이라는 단어가 여섯 번 이나 반복됩니다. 백성과 제사장, 종과 상전, 여종과 여주인, 사는 자와 파는 자, 빌려주는 자와 빌리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 요즘 말하는 갑을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될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타납니다(요 5:29).
“땅의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이르렀나니 두려운 소리로 말미암아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사 24:17-18). 사람들의 앞에는 함정과 올무가 있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했습니다. 올무와 함정은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짐승이 두려움에서 피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사냥꾼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 짐승이 발버둥을 쳐서 함정에서 빠져나온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앞에는 올무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덫에 걸린 짐승이 온갖 씨름을 하여 덫에서 겨우 빠져 나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땅이 진동하고 갈라져 싱크홀이 생기고 흔들리고 떨어져서 다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사 24:19-20). 이처럼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에서 피할 수 있습니까?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영원한 언약과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는 어떤 죄인도 정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정결함을 받으십시오.
2.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사 24:6-20)
이사야서 24장 6-13절을 보면 기쁨과 즐거움이란 단어와 포도주가 없다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성경에서 포도주란 기쁨의 원천입니다. 기쁨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소고 치는 기쁨이 그치고 즐거워하는 자의 소리가 끊어지고 수금 타는 기쁨이 그쳤으며 노래하면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고 독주는 그 마시는 자에게 쓰게 될 것이라”(사 24:8-9).
포도주는 노래하며 즐겁게 마실 때 맛이 납니다. 기쁠 때의 술맛은 입에 짝짝 붙을 만큼 달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울 때의 술맛은 씁니다. 이사야가 언제 술이 달고, 언제 술이 쓴지 아는 것을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더러운 세상을 바라보면서 술을 좀 마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사람들은 기쁨이 없었습니다. 성읍은 약탈당하고 집마다 닫히게 되고 들어가는 자가 없었습니다(사 24:10). 성읍은 황무하고 성문은 파괴되었습니다(사 24:12).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은 기쁨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최대의 불행입니다. 사람들은 기쁨이 없기 때문에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강이 없으면 살맛이 없습니다. 살맛이 없기 때문에 재미거리를 찾아 세상을 기웃거립니다.
기쁨과 재미는 본질이 다릅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재미는 세상이 주는 것입니다. 기쁨은 영원합니다. 재미는 순간입니다. 기쁨은 신령합니다. 재미는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합니다. 기쁨은 누가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재미는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기쁨은 행복을 줍니다. 재미는 인간을 허무하게 합니다. 기쁨은 축적됩니다. 그러나 재미는 소진됩니다.
사람들은 기쁨이 없기 때문에 기쁨을 대신할 재미를 찾습니다. 그래서 “오늘 재미있는 거 없어?” 말합니다. 사람들은 동문회, 향우회, 종친회 등을 통해 재미를 찾습니다. 물론 동아리 활동도 해야 하고, 향우회 활동도 해야 되고, 동문회 활동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폭넓은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또 이런 것들은 순간의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재미 뒤에는 허무와 공허와 후회와 돌이킬 수 없는 죄와 고통이 따릅니다.
이번 주 대학들이 축제의 열기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들은 술잔을 돌리며 ‘위하여’ 하며 외칠 때에는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뼈가 쇠하는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순간의 쾌락과 재미는 일생을 망칩니다. 쾌락과 재미를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이적을 베푸신 곳이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 집이었습니다.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는 썰렁하여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썰렁한 혼인 잔치 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켜 기쁨과 환희와 행복의 잔치 집으로 새롭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을 보면 성령의 열매 중에 두 번째가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희락과 기쁨은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들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기쁨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최고의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기쁨의 원천이신 예수님께 나오면 한량없는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사 24:13).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지라도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남은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수를 통해 역사하지 않고 소수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minority의 역사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회사나 캠퍼스에서 믿는 자들의 위치는 불신자들에 비해 미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미한 믿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어가시고, 이 시대와 민족의 심장부인 캠퍼스 문화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연회(사 24:21-23, 25:1-8)
이사야서 24:21-23절에는 심판 후에 어떠한 일이 나타나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사 24:23).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최종 목적은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며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시온 산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탄과 땅의 악한 무리를 다 멸하신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이 나라는 창조 때에 만든 에덴 동산과는 전혀 다릅니다. 에덴 동산은 죄악이 틈탈 수 있었지만 심판 후에 이루실 새 하늘 새 땅은 죄와 사탄이 틈탈 수 없습니다.
그 때에는 해와 달조차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빛을 잃게 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계 21:23).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의 하나님의 심판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이사야서 25장 1-5절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이사야는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과 찬양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경험한 뒤에 나오는 고백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절에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건을 경험하고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높일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역을 볼 때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일 수 있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보면 두 도성에 대해 말씀하였습니다. 한 도성은 세상나라로 심판과 멸망의 나라요, 한 도성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온 산에서 하나님의 연회가 배설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첫째, 기쁨과 생명으로 가득함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 25:6). 하나님이 베푸시는 연회는 골수가 가득한 사골탕과 오래되고 맑은 천국산 포도주로 가득했습니다. 이 나라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나라가 아니라 서로 함께 기쁨을 나누는 나라입니다.
그 잔치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나라는 신랑 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된 성도의 혼인잔치입니다. 여기에는 나 자신의 기쁨뿐만 아니라 성도들과의 즐거운 교제가 있습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나라이면서 사랑으로 하나 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나라입니다. 또 장차 재림하셔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둘째, 민족의 장벽이 헐림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사 25:7). 지금 한국의 문제는 갈등입니다. 남북과 동서의 갈등, 빈부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은 이런 모든 갈등이 무너집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지역의 갈등, 남북의 갈등, 계층 간의 갈등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참된 교제를 갖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어떤 누구와도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남북이 화해해야 합니다.
셋째, 사망이 영원히 멸함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사 25:8전). 하나님 나라는 사망이 없습니다. 애곡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사망이 더 이상 왕 노릇 할 수 없습니다.
넷째,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김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사 25:8중). 세상에 살다 보면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많은 슬픔이 있습니다. 많은 아픔이 있습니다. 많은 질고가 있습니다. 많은 상함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 살다 보면 남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다섯째, 수치가 제하게 됨(사 25:8후)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후). ‘수치’ 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소거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다 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또 미쳤다느니, 정신 나갔다느니 별별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더 이상 수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새 역사에 대한 출발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 나라는 새 하늘 새 땅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로 기쁨과 생명이 충만하고 사망과 슬픔과 수치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임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사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