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36:1-39:8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하나님
“대저 내가 나를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사 37:35).
하나님은 일찍이 시온과 예루살렘을 통한 만민 구원역사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뜻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루살렘을 강대국을 통해 징계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함이었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것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자 하심입니다. 본문을 통해 히스기야의 기도와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을 침략한 앗수르(사 36:1-22)
36장 1절을 보겠습니다. 히스기야 왕 십 사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취했습니다. 앗수르는 팔레스타인 지방을 세 번 침략했습니다. 첫 번째는 베니게를 침략하여 시돈 왕을 축출했습니다. 두 번째는 유다로 진격하여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고 금 30달란트와 은 800달란트를 받아 갔습니다(왕하 18:14).
본문은 세 번째 침략으로 산헤립 통치 제 4년, B.C. 701 년이었습니다. 산헤립은 앗수르의 왕들 중에 가장 영웅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는 B.C. 705년 7월 12일 부왕 사르곤을 암살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을 점령한 후에 랍사게와 더불어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침략했습니다. 역대하 32장 3절을 보면 당시 유다는 모든 성이 함락되고 겨우 예루살렘만 남았습니다. 이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앗수르에게 먹힐 위기에 놓여 있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지휘관인 랍사게는 세탁업자의 터의 대로 윗못 수도 곁 세탁자의 밭 큰 길에 섰습니다. 이때 왕궁을 맡은 대신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그에게 나갔습니다. 그러자 랍사게는 애굽이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앗수르 왕 산헤립을 의지하도록 유혹했습니다. 당시 앗수르가 침략하자 유다는 애굽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를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안 랍사게는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지 않겠다고 그들을 조롱했습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산당과 제단을 모두 헐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역대 어떤 왕도 하지 못했던 산당을 제거하고 우상을 파한 성왕이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은 신이 많고 제단이 많아야 그 신들이 나라를 보위하고 백성들과 함께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종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유일하십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각종 우상을 제해야 합니다. 우상은 하나님 이외의 것을 의지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상은 물질, 맘몬입니다. 그리고 때론 명예와 권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능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거짓말을 참인 것처럼 확신 있게 말하여 유다 백성을 유혹했습니다. 이사야서 36장 1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제 올라와서 이 땅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없음이겠느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올라가 그 땅을 쳐서 멸하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루살렘을 멸하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며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쳐서 멸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랍사게는 수법은 거짓의 아비인 사탄과 똑같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정체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은 거짓의 아비였습니다. 사탄은 첫 사람 아담을 확신 있게 거짓말하여 타락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담에게 확신 있게 거짓을 심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창 3:3-4). 아담은 사탄의 꾐에 빠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타락하여 에덴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후로부터 사탄은 재미가 붙어 계속하여 거짓을 확신 있게 심어 인류를 그의 손아귀에 넣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서 36장 11-22절을 보면 히스기야의 대신들은 랍사게가 유대어로 하지 말고 아람어로 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아람어는 당시 외교적인 용어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그는 유대 방언으로 더 크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랍사게가 이르되 내 주께서 이 일을 네 주와 네게만 말하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냐 너희와 함께 자기의 대변을 먹으며 자기의 소변을 마실 성 위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니냐 하더라”(사 36:12). 그가 이처럼 유대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볼 때 반역한 유대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로 하나님께 반역한 자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번역자는 가장 믿었던 가까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역대하 32장 7-8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쳐들어 왔을 때 백성에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심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마암아 안심하니라.”
백성들은 앗수르가 침략했을 때 심히 두려웠습니다. 히스기야는 그런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확신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히 싸우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이 안심했습니다. 그러자 랍사게는 사마리아를 멸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고 예루살렘을 멸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며 백성들을 미혹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친히 싸우시리라는 믿음을 심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위기의 때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여기에서 지도자 한 사람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에 따라 국운이 달라지고 명운이 달라집니다. 지금 한국이 대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의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안보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청을 안들을 수 없습니다. 대내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반복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리스로 인해 공포의 도가니에 있습니다. 메리스는 백신도 없습니다. 취사율이 15.7%나 됩니다. 노약자들은 무척 힘든 와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각자 건강관리를 잘 하고 또한 내적인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그 길에 이외는 없습니다. 메리스는 외적인 데서 오지만 두려움은 내적인 데 있습니다. 질병은 염려와 두려움에 있는 사람에게 전염되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 건강에 힘쓰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위기의 때에 백성들에게 믿음을 심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대신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을 경멸하는 랍사게의 말을 듣고도 한마디 할 수 없는 연약한 현실과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내면에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옷을 찢고 히스기야 왕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했습니까?
2.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하나님(사 37:1-38)
첫째, 그는 겸손했습니다(사 37:1).
이사야서 37장 1절을 보겠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고”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랍사게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자신을 경멸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의 통절한 회개의 표현입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모습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히스기야는 어려운 환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는 환난과 고난과 역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어려운 역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를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사울이 겸손했을 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지만 교만했을 때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환난과 역경과 고난과 위험에 처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겸손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를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리더의 덕목은 겸손입니다. 겸손의 표현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입니다. 시련과 환난과 역경이 있을 때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사 37:8-20).
앗수르의 산헤립은 랍사게를 소환하고 편지를 써서 사신을 히스기야에게 보냈습니다. 사람이 말로 하는 것보다 내용증명 편지를 띄우면 더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이 심리를 이용하여 대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낸다고 하는데 그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무엇을 했습니까?
지도자는 국가에 어떤 위기를 만나게 되면 기도보다는 참모들을 모아 놓고 인간적인 계략을 짜기 쉽습니다. 외교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쉽습니다.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쉽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쉽습니다. 강대국에 사신을 보내어 난국을 타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나가자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들도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는 앗스르의 편지를 들고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그 글을 펴놓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 사자들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사 37:14-15). 그는 감정적으로 편지를 찢어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임을 알고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 37:16).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만유를 통치하시는 통치자이십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사 37:17). 그는 절망 중에 절망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구하게 되고 찾게 되고 열리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하니라”(사 37:19-20). 그는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천하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불자들의 예전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그들은 1000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기원합니다.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기원합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선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믿는 자들은 죽든지 살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을 보면 바울의 가치관이 나옵니다. 그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기도합시다.
셋째, 그는 중보 기도를 요청했습니다(사 37:2-3).
이사야서 37장 2-3절을 보면 그는 이사야에게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을 이사야에게 보내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선지자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함이 큽니다. 그러므로 혼자 끙끙대지 말고 주의 종들에게 기도를 요청해야 합니다. 이것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이사야서 37장 21-29절을 보면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보시고 그의 기도 내용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십니다(신 32:10). 성도가 은밀한 골방에서 고요하게 기도할지라도 다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의 왕 산헤립을 갈고리로 코를 꿰며 입에 재갈을 물려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사 37:29). 하나님은 교만으로 가득한 산헤립을 철저하게 심판하셨습니다. 결룩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 신전에서 그의 아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습니다(사 37:38).
3. 예루살렘을 구원하신 하나님(사 37:30-35)
이사야서 37장 30-32절을 보면 하나님의 징조가 나옵니다. 징조란 그 자체보다도 이루어진 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출 3:12,18). 하나님의 징조는 이러했습니다. 전쟁의 참화로 인해 금년과 제 2년에는 정상적인 파종과 수확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 3년에는 자신이 뿌린 씨앗으로 수확하여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은 전쟁으로 다 훼파되어 소망이 없어 보이지만 이제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될 날이 곧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번성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사야서 37장 33-35절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이사야서 37장 35절을 보겠습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첫째로 앗스르 왕 산헤립에 의해 모욕되고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보존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둘째로 그 영광을 천하만국에 드러내고자 함이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약속한 언약을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윗과 맺은 약속의 핵심은 다윗의 나라와 그 위가 그의 자손들로 더불어 견고하게 되며 영원히 보존된다는 것입니다(삼하 7:12-13,16). 이 약속은 다윗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넷째로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사 2:1-4). 하나님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구주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반드시 영광의 구주로 오실 것입니다.
4. 히스기야를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사 38,39장)
38장 1-8절을 보면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네 집에 대해 유언하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면벽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15년을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징조로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9-20절은 히스기야의 감사와 하나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이사야서 38장 21-22절은 히스기야의 치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의 신앙적인 결심이 나옵니다.
이사야서 39장은 히스기야의 교만과 그 결과에 대한 말씀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함을 받고 15년간 생명이 연장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바벨론의 사자 앞에서 의기양양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모든 군사력과 재물을 공개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첫째는 바벨론 왕의 아첨하는 말에 현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잠 26:28). 둘째는 예물에 눈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교만입니다. 그는 바벨론왕에게 자기를 과시하고자 하는 과시욕이 있었습니다. 그는 창고에 있는 보물이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얻어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죄가 가장 큽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입니다.
이로 인해 그가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서 39장 6-8절을 보면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열조로부터 쌓아 놓은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져 남을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네게서 날 자식들 중 몇 명이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게 됩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한 말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은혜라고 합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은혜를 감당하는 것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받은바 은혜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은 위기의 때에 기도하는 히스기야의 기도와 믿음을 받으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위기의 때에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