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3:1-12

우리의 죄악을 담당시키신 하나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후 타락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3:15). 하나님은 이 놀라운 계획을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구약 성경에 계시하셨습니다. 이사야서를 가리켜 구약의 복음서라고 말합니다.

특히 본문은 복음의 진수라고 불립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과 고난의 의미, 그리고 고난 받으실 때의 자세와 고난의 결과를 보면서 메시아를 통한 승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고난(53:1-3)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계획을 깨달은 이사야는 외쳤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53:1). 우리의 전한 것은 이사야를 비롯한 하나님의 종들이 전한 메시아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고난의 종으로 보내신 사건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 이성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살신성인의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 작년 416일에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어린 학생들을 구조하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선생님의 살신성인의 모습 앞에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리 삭막한 시대라 할지라도 이런 아름다운 소식이 가끔씩 듣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원수를 위해 자기 외아들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아니 형제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양자로 주었다는 말도 믿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배반하고 거역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고난의 종으로 내어주실 수 있습니까? 이 사실을 안 이사야는 감격하여 외쳤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53:1).

성경은 이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7-8).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53:2). 이는 메시아의 외모와 인간조건이 어떠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2:6). 예수님은 만백성들로부터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멸시받는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로부터도 인정과 환영과 존귀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인정은 그만 두고 도리어 멸시를 받고 배척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연한 순 같이 연약하고, 마른 땅에 나온 뿌리 같아서 볼품이 없었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되셨습니까? 이는 인간을 동정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우리 속담에 과부는 과부가 그 속사정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 받는 인간들의 아픔과 슬픔과 이해하고 그 아픔과 슬픔을 친히 공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 복음서를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시고 빵을 주실 때에는 구름떼같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이 기다려온 정치적인 메시아, 경제적인 메시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여기에서 버림 받았다는 것은 나병 환자를 성 밖으로 쫓겨나듯이 쫓겨난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중풍병자나 소경들에게는 일말의 동정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나병 환자는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보면 돌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철저하게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소속감의 욕구가 있습니다. 요즘 초중고등학교에서 왕따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버린바 되어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처절하게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또한 간고를 많이 겪었다는 것은 슬픔을 많이 겪어 슬픔의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질고를 안다는 것은 고난에 친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시는 동안 많은 고난을 받으셔서 고난과 슬픔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가장 큰 고난은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십자가형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끔찍한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사형판결을 받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이 씌워졌습니다. 군병들에게 조롱과 침 뱉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70Kg이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셔서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목과 발목에는 굵은 대못이 박혔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몸은 뒤틀리고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물과 피가 쏟아지면서 극심한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갔습니다. 시편 기자는 예수님의 고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납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22:14-15).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모두가 비웃었습니다. ‘저런 사람이 무슨 메시아야! 자기도 구원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구원하겠다고 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철저히 사람들로부터 버린바 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에게까지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 받는 고통으로 이렇게 절규하셨습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15:34).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약속하신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에 예언된 참된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는 고난의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통해 많은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고난이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고난이 없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기 혼자 세상을 엔조이하며 사는 여자들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아기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들이 행복할까요? 아기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들이 훨씬 행복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다보면 가슴에 많은 상흔이 생깁니다. 상흔이 많은 부모일수록 자녀를 아름답게 키우는 것이고 또 이를 통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남모르게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예수님의 고난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6:17). 우리가 예수님의 흔적, 자녀들과 양들로 인한 많은 상흔들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2. 그리스도의 고난 받으심의 의미(53:4-6)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3:4). 질고란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히 경쟁사회에 오는 각종 스트레스로 오는 질병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학기 스트레스, 직장인 스트레스, 인간관계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정신적인 질병에 시달립니다. 미움과 시기, 정욕과 열등감 등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교만과 불신, 죄의식과 죄책감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영혼의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가 질병으로 아파하게 되면 마음에 슬픔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깊은 이해와 따뜻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과연 누가 우리의 병든 몸과 슬픈 마음을 치료해 줄 수 있습니까? 누구도 나의 슬픔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내면 깊은 슬픔과 아픔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친구도 부모님도 해결해줄 수 없습니다. 해결은 그만두고 이해도 못해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든 나를 이해하시고 나의 병을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질고를 지고 나의 슬픔을 지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만이 나의 질병을 치료해 주십니다. 예수님만이 슬픈 마음을 이해하시고 치료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난은 나를 대신한 대속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나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5-6). 그가 누구입니까?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찔림은 나의 허물 때문이요, 예수님의 상함은 나의 죄악 때문입니다.

허물(transgressions)’은 하나님께 대한 죄를 의미합니다. ‘죄악(iniquities)’이란 하나님이 없이 사는 인간들이 짓는 부정과 불법을 가리킵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졌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섬길 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어리석은 우상숭배자가 되어 정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1:21-25).

그런데도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생각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나만 그런가. 다 그렇지하며 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의 심각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심은 그만큼 죄가 심각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죄는 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그리고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21:8).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예수님께 모두 담당시키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하나님은 내가 받아야 할 모든 허물과 죄악의 대가를 예수님께 전가시키셨습니다.

이를 볼 때 십자가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의 심각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모두 다 해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우리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믿을 때 나의 모든 허물과 죄악으로부터 용서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용서를 받았으면 이제는 더 이상 죄책감과 죄의식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5:1).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평의 십자가요 용서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으면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은 용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용서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롭다는 헬라어로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시간적인 의미인 네오스가 있고 질적으로 새로운 카이노스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새롭다는 바로 카이노스, 질적으로 새롭게 변화된 새로운 피조물을 뜻합니다.

그리고 나음을 입었다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받은 상처로 인해 남모르는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상처는 시간이 간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무의식과 의식세계에 남아 괴롭게 하고 미치게 합니다. 그러나 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에 찔리시고, 십자가에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었으면 더 이상 혼자서 슬퍼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닙니다. 무거운 짐을 더 이상 혼자 지고 슬퍼하지 말고 다 예수님께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슬퍼하지 말고 외양간을 나온 송아지와 같이 올무에서 벗어난 독수리와 같이 자유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자세(7-9)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실 때의 자세가 어떠하십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평소 말이 없고 겸손하한 사람도 억울하게 고난을 당한다 싶으면 거칠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억울하게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조차도 그의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무죄함을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반항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침 뱉음과 조롱을 당할 때에도 순한 양 같이 잠잠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이해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셨습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53:8).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 받기보다는 오해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슬퍼하고 노여워하기보다는 예수님과 같이 잠잠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됩니다. 성경은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벧전 2:1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53:9). 예수님은 죄가 없으십니다(벧전 2:22, 고후 5:21, 요일 3:5). 그런데 예수님은 악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셔야 했습니다. 그 무덤은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의 새 무덤이었습니다(27:57-60).

4.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결과(10-12)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53:10-11).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속건제물이란 죄 값을 만족시켜 죄인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목적으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씨를 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죽은 자를 살려 그 수가 계속하여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여호와의 뜻이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을 보시고 만족하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신 후 부활과 영광을 받으셨습니다(2:7-11).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광의 주요, 승리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입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53:12).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세계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9:28).

인간은 죄로 인해여 심판받고 영원한 유황불에 타는 못에 참예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화평을 누리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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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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