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58:1-62:1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60:1)

이사야서 58-59장은 이스라엘의 죄악이 나옵니다. 그들은 거짓된 금식을 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금식을 했지만 신령과 진정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식이 회개와 성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외적인 축복을 받는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철저히 이용하는 가증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향하여 바른 금식에 대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고 바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을 잘 지킬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사업을 중단하고 육신의 즐거움을 좇는 오락을 금해야 합니다. 육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시온을 향한 말씀입니다. 현재 그들은 바벨론에서 노예 생활하는 희망이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승리와 영광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비록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서 비참한 삶을 살지만 머지않아 갇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장차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이방 사람들이 시온으로 모여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의 섬김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절망과 좌절 앞에 누워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덧입고 절망과 좌절과 염려와 근심을 박차고 일어나 영광의 빛, 희망의 빛, 구원의 빛을 발하는 힘찬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일어나라(60:1)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먼저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을 통해 볼 때 현재 그들은 누워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언제 눕습니까? 병이 들면 눕습니다. 희망을 상실할 때 눕습니다. 죽으면 눕습니다. 하나님은 드러누운 그들을 향해 이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세 종류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라는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죽은 자를 향해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하여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7:14)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외동딸을 향해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들이 특징은 모두가 청녀들입니다.

청년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청년은 열정이 넘쳐야 합니다. 청년은 꿈과 비전이 넘쳐야 합니다. 청년은 모험하고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어서 누워있었습니다. 거선의 기관과 같이 박동치던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습니다. 독수리와 같이 빛나던 그의 눈동자는 풀려 다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송아지와 같이 대지를 박차고 달리던 그의 다리는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누워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소녀야, 일어나라!” “나사로야 나오라!” 그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모두 일어났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죽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과 육적인 죽음입니다. 비록 육신은 죽었으나 영적으로 산 사람, 육신은 살았으나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죽은 육신도 살릴 수 있고, 영적으로 죽은 자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요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 생명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꽃병에 꽂혀 있는 꽃과 같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이런 자을 향하여 외칩니다. 에스겔서 3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해골 골짜기에 대해 이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에스겔이 보니 큰 골짜기에 해골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해골들이 얼마나 말랐는지 하얗게 말라 있었습니다. 핏기는 그만 두고 물기 하나 없었습니다. 살아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여 이 해골들을 향해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 마른 뼈들이 서로 연결되어 힘줄이 생기고 피부가 생기고 이목구비가 생기고 생명이 되어서 일어났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모여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해골과 같이 죽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우리들 중에 지금 죽은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생기가 발랄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죽어 있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현실 문제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죄의식으로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꿈과 비전이 없어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패기와 웅지가 없어 죽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시궁창 미꾸라지라도 좋으니 인생을 즐기며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안일주의로 죽어 있습니다.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그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취업난에 시달리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리는 청년들을 ‘88만원 세대로 불렸습니다. 이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해서 ‘3포 세대라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 세대’, 여기에 꿈과 희망마저 포기하는 ‘7포 세대가 등장했습니다. 이제 7포를 넘어 n포 세대라고 합니다. 몇 가지가 됐든 포기할 수 밖에 없다는 세대라는 것입니다.

지금 젊은 청년들은 희망을 상실한 마른 뼈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족의 심장부, 민족의 상아탑인 캠퍼스는 마른 뼈들인 해골로 가득 메워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과거 우리의 부모님들은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가르쳤기 때문에 부끄럽기는 하지만 상아탑이 우골탑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에는 대학이 마른 뼈들고 가득 찬 해골탑은 아니었습니다. 내일의 꿈을 안고 살아갔습니다. 사실 그 때의 사회 환경은 이보다 더 열악했습니다. 실업자가 극심했습니다. 서울대학교를 나와도 면사무소 임시 서기도 들어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선배들은 그런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꿈을 가지고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릴케의 시를 암송하고 하이네의 시를 암송하며 고전을 탐독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젊음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청녀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청년들은 미래의 꿈을 상실한 채 눈이 풀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학교정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어나라고 외쳐야 합니다. 희망을 상실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향해 말씀으로 일어나라고 외쳐야 합니다. 다음 주부터 마가복음을 마을별로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일어나서 마른 뼈와 같은 그들을 해야 외쳐 마른 뼈들이 일어나 거대한 군대가 되는 놀라운 모습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병든 자들을 향하여 일어서라고 외치셨습니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에 전혀 희망이 없는 38년 오래 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생존경쟁에 패배하여 희망을 상실한 채 누워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었으나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보아도 희망이 없었고, 자신의 실력을 보아도 희망이 없었고, 자신의 장래를 보아도 희망이 없었고, 자신의 건강을 보아도 희망이 없었고, 가정환경을 보아도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n포 세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심방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음 받아야 할 병들이 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나음 받아야 할 병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식민지 사관의 교육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거지근성과 노예근성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노예철학은 내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시켜야 하지 시키지 않고, 주인이 안보이면 안합니다. 노예철학은 어떻게 하면 편히 쉴 것인가에 관심을 갖지 자발적으로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노예는 순간의 쾌락만을 찾습니다. 거지는 주는 것보다 받기만을 좋아합니다. 일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허황된 과시욕이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를 너무 비하합니다. 한 때 우리는 울밑에 선 봉선화같이 처량한 민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구부러져 아무 소망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할미꽃과 같은 민족이라고 비하했습니다. 깊은 패배주의가 있습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합니다. 이는 무서운 패배주의를 심는 말입니다. 이 패배주의는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한국 사람이 어떻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하며 자신을 자학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김레베카 선교사님은 가난한 가정으로 인해 운명에 슬피 울던 분이었습니다. 그는 학창 시절에 등산과 취지생활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등산에도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취미생활을 통해서도 참 만족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가 그는 요한복음 4장의 내가 그니라 하시는 말씀을 통해 그가 그토록 찾고 찾던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발견하고 일어나 대학복음화를 위해 신나게 누비다가 헝가리를 거쳐 루마니아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그는 루마니아에서 유산을 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은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 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김다윗 선교사를 잘 동역하며 루마니아 역사를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운명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어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능이 있습니다.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운명이 바꾸어져 아름답고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병든 영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생명이 죽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심령에 병이 들어 있습니다. 탐욕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교만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시기심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비방과 낙심과 원망의 독한 병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좋지 못한 습관의 병이 있습니다. 혈기가 있습니다. 허영심이 있습니다. 미움이 있습니다. 이런 병이 있으면 일할 수 없고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우리가 영혼의 병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자는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사명을 어기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배에 승선했습니다. 그는 배 밑에 가서 예라 모르겠다!’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바다에 큰 풍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선장이 잠을 자고 있는 그를 향하여 물었습니다.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방울이 땀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병든 것도 아닌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으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육신의 안일에 빠져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외치셨습니다. “자는 자여, 일어나라!” 우리가 언제까지 자기 문제로 누워서 잠을 자야 합니까? 우리가 언제까지 똥오줌을 싸며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무관심하며 자야 합니까?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로마서 1311절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2. 빛을 발하라(60:1)

하나님이 그들을 일어나게 하신 것은 빛을 발하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범죄하고 타락하여 빛을 잃었습니다. 빛을 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받은 그 빛을 반사해야 합니다. 달은 본래 빛이 없습니다. 발광체가 아닙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합니다. 태양 빛을 많이 받으면 정월 대보름이 되고, 적게 받으면 섣달그믐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빛이 없습니다. 빛을 발하고 싶어도 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우리도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12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46절을 보면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새 하늘, 새 땅, 하나님이 계신 곳은 광명한 낮뿐입니다. 밤이 없고 어두움의 그림자가 없는 빛의 세계입니다(21:23-27).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항해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4)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본래 빛이 없었으나 그리스도께 받은 빛이 있습니다. 진리의 빛을 받았습니다. 소망의 빛을 받았습니다.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지식의 빛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빛을 받았습니다. 이 빛을 발해야 합니다. 별이 고요하고 잠잠하게 영원한 빛을 발하듯이 우리도 별처럼 하나님의 영롱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장미와 백합화가 은은한 향기를 내듯이 무언중에 빛을 내야 합니다. 빛을 내되 적극적으로 내야 합니다. 불교는 은둔의 종교이지만 복음은 적극적으로 산 위로 올라가 빛을 발해야 합니다. 빛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첫째, 빛은 어두움을 밝게 합니다.

어두움을 밝게 하기 때문에 바른 삶, 바른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라 했습니다.(119:97-105) 그리고 물리학에서 광학은 가장 오래된 학문입니다. 왜냐하면 빛은 인간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공기나 물질 속에 파고드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어두움이 견디어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빛을 가로막는 구름이 있듯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가로 막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이 죄가 세상을 흑암으로 뒤덮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죄가 만연해도 하나님의 빛이 비췰 때 그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절을 보면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이기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큰 빛, 구원의 빛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어두움이 물러가고 사망 권세가 물러갔습니다. 절망과 무기력이 물러갔습니다. 희망과 능력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빛은 반어두움을 이깁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인생문제를 바라보고 절망합니다. 시대를 바라보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어두움의 세력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 되신 예수님을 증거할 때에 언젠가는 그들의 내면이 변화됩니다. 복음의 빛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어두운 세상을 태양처럼 비추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영광의 빛, 생명의 빛이 우상과 정욕과 어두움의 세력이 가득한 어거스틴의 심령에 비춰졌을 때 그는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았을 때 위대한 하나님의 복음의 빛을 증거하는 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둘째, 빛은 잠든 자를 깨웁니다.

죄는 낮보다 밤에 이루어집니다. 죄는 곧 밤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밤에 잠을 잡니다. 그런데 성경은 밤에 깨어 있으라 하였습니다. 성경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의 예를 들어 밤에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빛은 죄악의 미련의 잠에서 깨어 있도록 합니다. 롯의 아내는 물질에 대한 미련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뒤를 처다 보지 말고 가라고 했는데 그만 물질과 세상의 미련의 잠속에서 깨어나지 못해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모든 병사가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있는데 깨어 있지 않고 늦게까지 자다가 그만 우리야의 아내를 간음하고 뼈가 쇠하는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삼손은 드릴라의 기생 무릎에서 자다가 그만 머리가 깎기고 두 눈이 뽑혔습니다.

셋째, 빛은 열을 냅니다.

열은 따뜻하게 합니다. 열은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습니다. 열은 사람을 열 내게 합니다. 사람이 열나면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병든 서리병아리처럼 살던 사람들이 빛을 받아 열을 내게 되면 독수리가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듯 힘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기력하게 살던 사람들이 능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열이 기관차를 움직이고 보일러를 움직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으면 열을 내게 되고, 열이 나면 세계를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빛은 만물을 소생시킵니다. 성장하고 결실을 맺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받았습니다. 소망의 빛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빛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된 생명이 무엇인가를 압니다. 참된 가치관을 압니다. 참된 세계관을 압니다.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진리의 빛, 생명의 빛, 소망의 빛을 발하여야 합니다. 빛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발하여야 합니다. 비가 온 후 빛이 비치면 영롱하고 신비한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구름 속에 있는 물방울의 작은 결정체가 햇빛을 받아 빛을 분석해 주는 것이 바로 무지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빛을 받아 예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나타내야 합니다.

어떻게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습니까?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니라.”(60:1-2) 세상은 어두움으로 뒤덮여 있지만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기 때문에 일어나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빛은 어두운 밤하늘일수록 더욱더 찬란하고 영롱하기 때문입니다.

3. 열방이 네 빛으로 나아오리라(60:3-22).

일어나 빛을 발하자 세계 곳곳, 원방과 열왕이 몰려옵니다. 일직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2:3) 마치 집을 떠난 새가 그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오듯이 원근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귀향하게 됩니다. 이는 B.C. 538년에 고레스에 의해 실현되었습니다. 딸들은 업고 옵니다(60:4). 열방의 재물이 몰려옵니다. 이방의 섬김을 받게 됩니다. 내적으로 든든하게 됩니다. 61:1-11절은 메시야의 사역, 62:1-12절은 이스라엘의 영광과 사역자의 의무가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의 빛, 구원의 빛,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을 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적극적으로 구원의 빛을 발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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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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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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