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9:1-2
성경을 사랑한 다니엘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요즘의 시대를 일컬어 스펙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력을 다해 더 가미하고, 더 꾸미고, 더 포장하고, 더 칠하고, 더 바르고, 더 손대고, 더 뜯어고칩니다. 이로 인해 요즘은 오리지널한 생 얼이 없고, 미인도 타고난 미인은 없는 윤색된 미인, 뜯어고친 미인만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 영향을 받아 복음에다가도 뭔가를 덧칠하고, 뭔가를 가미하고, 뭔가로 포장하고, 그럴듯한 사상들로 조미료를 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혀끝을 달콤하기는 한데 참 맛이 없습니다. 진짜 맛은 덧칠한 것이나 모방한 것이나 카피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가 진짜 맛이 납니다. 과일을 예로 들면 가공한 과일이 맛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연 그대로가 맛이 더 납니까? 가공한 것은 혀끝을 자극할지는 몰라도 진짜 맛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공한 것에 길들여지게 되면 자연보다 가공한 것이 더 좋은 줄로 알고 선호합니다. 아이들이 백우유보다 첨가물을 섞은 딸기 우유나 바나나 우유 등을 더 좋아하는데 그것 좋지 않습니다. 여기에 각종 피부병, 아토피 질환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연 그대로가 좋습니다. 무엇이든지 첨가하고 가공한 것은 사람들에게 유익하지 않습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윤색되지 않은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 죄와 죽음을 이긴 부활의 복음이 힘이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순수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민족을 변화시키고 세계 인류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시대 풍조를 좇아 살지 말고 순수 복음,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붙드십시오. 세상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야로 묵상하십시오. 시편 1편 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이들에게 만사형통이 있습니다. 지구촌 시대가 끝나고 은하계 시대가 온다 할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때는 메대 사람 다리오 왕의 통치 원년, 곧 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바사(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하던 때였습니다(단 9:1). 강력한 바벨론 제국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해방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징조였습니다. 언제나 역사적 전환기에는 어느 사회든 혼란스럽습니다. 붉은 띠를 두르고 정권에 대항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됩니다. 아니면 향락에 빠지게 됩니다. 다니엘은 이런 어려운 역사적인 전환기에 무엇을 했습니까?
다니엘은 성경 말씀을 읽었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그는 현재 바벨론 제국의 총리였습니다. 총리로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는 업무를 적당히 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국사를 충성스럽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묵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며 성경을 대수롭게 여기고, 자기가 말하는 예언만이 최고라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런 사람들의 곁에도 가지 마십시오. 성경+α, 성경보다 사람들의 경험인 꿈, 신유, 예언, 기적을 우선하는 사람들, 성경보다 자기 생각을 더 우선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가장한 굿판의 무당이고, 무당 신앙입니다. 성경을 윤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가짜 신자들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는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곧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는 출근하여 점심시간에는 틈을 내어 여호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퇴근하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인터넷 게임이나 TV드라마 등으로 풀지 않고 여호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하루는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다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두신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칠십 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게 되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통해서 캄캄한 절벽과 같은 민족의 장래를 절망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민족의 슬픔에서 기쁨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통해 자기 동족에게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비전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있는 곳에 비전이 있습니다. 반면에 말씀이 없으면 비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무엘상 3장 1절을 보면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비전)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시대 사람들은 말씀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듣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먹고 마시고 느끼고 흔들고 하루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의 특징은 현세적이고, 감각적이며, 육신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지자 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언 기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잠 29:18).
사람에게 비전이 없게 되면 삶의 의욕이 없어집니다. 자신의 분명한 기도제목이 없게 됩니다. 방자해져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살게 됩니다. 죽은 물고기가 하얀 배를 내밀고 강물을 떠내려가는 것처럼 시대의 조류에 휩쓸려가게 됩니다. 삶의 의미와 가치관, 희망, 사명, 목적, 방향을 찾지 못해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고 영화관을 전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의 눈동자는 동태눈처럼 풀려 있고, 어깨는 문어다리처럼 흐느적거리고 패기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전이 있는 사람들은 삶의 의욕이 있습니다. 그들의 눈동자는 백호의 눈처럼 빛이 납니다. 그들의 기상은 독수리처럼 창공을 나는 것처럼 힘찹니다. 하루하루가 희망이 있습니다. 시대를 본받지 않고 오히려 시대의 유행과 풍조를 거슬려 살아갑니다. 바로 비전이 있는 사람은 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입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려 나르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려 유유히 힘차게 올라갑니다. 반면에 참새는 큰 바람이 치면 처마로 숨어버립니다.
마르틴 루터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성경을 모든 사람들의 손에 들도록 한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전에는 라틴어로 된 성경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사제 외에는 그 누구도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 성경이 들려지기 위해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화형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12년간에 걸쳐 독일어로 비텐베르크 성경을 완역했습니다. 12년간 성경을 완역할 때에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습니까? 핍박과 환난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작시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가 되시지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찬 585장)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는 어떠합니까? 비전이 있습니까? 청년의 기백이 있습니까?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교회도 많고, 신학교도 많고, 선교 단체도 많고, 부흥사도 많고, 각종 기독교 서적도 많고, 설교 테이프도 많습니다. 인터넷과 기독교 티브이에 들어가면 유명한 목사들의 각종 설교를 골라 다운받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는 말씀이 풍족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사회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갑니까? 왜 교회는 하향곡선을 그립니까? 말씀이 있다면 어린이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왜 이토록 곤고하고 피곤합니까? 말씀이 있다면 왜 이 시대가 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습니까? 왜 N포 세대가 등장합니까? 이는 말씀이 없다는 징조입니다. 성경에 뭔가를 자꾸 윤색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많은 것 같은데 실은 순수한 복음, 피 묻은 십자가 복음, 회개의 복음이 사라지고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만 외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우리는 스펙이 아니라 순수복음,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경 말씀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데 목숨을 걸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성경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까?
첫째, 성경은 구원의 능력(power)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라.”(롬 1:16)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도덕이 아닙니다. 복음은 상식이 아닙니다. 복음은 철학이 아닙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삶 속에서 믿음으로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δύναμις), 다이너마이트가 터질 때의 그 힘을 말합니다. 다이너마이트의 힘은 무서운 파괴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두 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것을 죽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죽입니다. 교만을 죽입니다. 위선을 죽입니다. 거짓을 죽이고, 세속적인 삶을 죽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영접하는 순간 신기하게 이런 죄의 속성이 사랍니다. 십자가는 죄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십자가는 모든 죄악과 죄악의 속성을 죽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은 긍정적으로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삶의 존재가치가 살아납니다. 존재의미가 살아납니다. 은혜가 살아납니다. 생의 보람이 살아납니다. 각종 질병이 치유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대신 기도하게 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합니다. 낮은 자존감이 높은 자존감으로 바꾸어집니다. 연약함이 극복됩니다. 절망이 극복됩니다. 새로운 희망의 역사가 창조됩니다. 사람의 좋지 못한 생각과 사상과 습관, 가치관이 바뀝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은 인간이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에 목숨을 걸아야 합니다.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를 드리세요. 서로 사랑하세요. 서로 사랑하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말씀을 들으세요. 말씀을 들으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말씀 들으세요.♬
둘째, 성경은 우리의 유일한 권위(authority)이기 때문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17)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들의 이성이나 감정으로 쓰인 작품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쓰신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기록자들의 마음에 하나님 자신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단지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책 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호흡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지 뮬러를 기도로 15만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린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사람이기에 앞서 성경을 200번을 읽을 만큼 성경을 사랑하였고 읽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뮬러 목사님,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사역의 힘은 성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나의 영적 생활의 활력은 날마다 성경을 읽느냐 안 읽느냐 하는 문제와 정비례합니다. 나는 이것을 66년간 삶의 경험을 통해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3년 동안은 성경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나의 삶은 기쁨도 사명도 없는 죽은 사람과 같았고 내 생애에서 ‘잃어버린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매일같이 묵상하게 된 이후 마음에는 기쁨이 넘쳤고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성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말씀을 통해 위로와 격려, 훈계와 책망과 교훈, 그리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구했습니다. 그 때 그의 기도는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통해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받은 말씀은 시편 68편 5절이었습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그리고 그가 고아원을 세우는데 기초가 되었던 말씀은 시편 81편 10절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주님께 건물 한 채와 천 파운드의 돈, 그리고 아이들을 돌볼 적절한 사람들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브리스톨 애슐리 타운에 세계에서 가장 큰 고아원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성경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비전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유일한 권위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목숨을 걸고 읽고 묵상하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 성경은 지혜와 의의 영원한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물질만능주의 시대입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처럼,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습니다. 전에는 돈이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들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돈만 있으면 성 전환도 할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과거에 대학생들은 명분을 귀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명분도 신의도 우정도 돈 앞에는 다 소용없습니다. 점점 세상은 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영혼은 점점 메마르고 사회는 점점 타락하여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사회를 말기 현상, 또는 위기의 시대 등으로 진단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탄합니다. 어제 김레베카 선교사님을 병문안 갔다 왔는데 이 세대를 보고 몹시 슬퍼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이 시대는 지혜와 의가 없고 긍휼이 없고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혜의 원천, 의의 원천, 사랑의 원천, 은혜의 원천입니다.
미국의 많은 대통령 중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일컫는 링컨 대통령도 성경을 사랑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링컨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링컨은 성경 한 권으로 그의 생애를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생애로 만든 사람이고, 성경과 함께 걸어간 사람이다.” 링컨의 학교 교육은 겨우 1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에 소유했던 것은 오직 성경 한 권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열 살 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부터 유언과 함께 가보로 물려받은 성경이었습니다. “내 아들아, 이 성경책은 나의 부모님께 받은 것이다. 내가 여러 번 읽어 많이 낡았지만 우리 집의 값진 보배란다. 엄마는 네게 100에이커(12만평)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권의 성경책을 물려주는 것을 더 기쁘게 생각한다. 너는 성경의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하나님 사랑, 이웃을 사랑하라. 이게 나의 마지막 부탁이다.”
링컨은 하루를 성경을 읽고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노예들이 해방의 기쁨에 감격하여 580 달러의 거액의 돈을 모아 가죽 성경에 금을 입히고 성경의 겉표지에 흑인 노예들의 족쇄를 풀어주는 링컨의 모습을 금으로 새겨 선물했습니다. 그 당시 580달라는 오늘날 집 한 채 값과 비슷한 어마어마한 액수였습니다.
링컨은 그들의 값진 선물에 감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사랑의 선물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는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남북 전쟁으로 나라의 어려움이 계속되는 동안 욥기를 수없이 읽으며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지 묵상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23장 10절을 통해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는 말씀이 저를 낙심과 좌절에서 일으켜 새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말씀은 시편 34편 6절이었습니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링컨은 성경 말씀에서 지혜를 찾아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고,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추석 연휴를 맞아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비전과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비전과 능력은 우리를 기도하게 합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줍니다. 성경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로부터 하늘의 영광과 지혜로 가득 차게 합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읽고 순종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