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20, 에베소서 6:1-3, 출애굽기 20:12
자녀들아 부모에게 순종하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저는 가정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이 늘 떠오릅니다. 제가 여러 번 인용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나를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로 바꾸어 읽었으면 합니다.
“주여! 나를 이런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저에게 허락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 자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고,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알며,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날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제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어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느 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맥아더 장군은 군인으로 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하여 큰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해보니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할 수 없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녀 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큰일을 많이 해도 자녀를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지 못하면 그것은 모두가 헛되게 산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모시는 자녀이자 자녀를 키우는 부모입니다. 또한 장차 부모가 될 예비 부모들입니다. 이 시간에 기도합니다. “주여, 자녀를 잘 양육하여 헛된 삶을 살지 않게 하소서!” 아멘.
1. 부모님에게 순종하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라.” 그리고 “부모님을 잘 공경하라.”입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은 만고의 진리요 하나님의 첫째 되는 명령입니다. 어느 가문이나 민족이나 더 나아가 인류가 영원히 잘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기본이 되는 이 두 가지를 꼭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월이 변하고, 세상의 환경이 변한다고 변하지 않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불변합니다.
요즈음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하고 타락해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법을 꼭 지켜야 합니다.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힘들게 일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가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결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의 첫 번째 계명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순종입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 3:20)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휘파쿠우에테(ύπακούετε)’인데 이는 ‘아래에서 듣다.’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다.’ ‘경청하다.’ ‘복종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여호와니라.”(레위기 19:3)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도 부모님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성경에 자녀가 부모님을 멸시하고 순종하지 않을 때의 비극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힐 것이다.”(잠언 30:17) 그러면 왜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까?
첫째,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의 목적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리일 뿐만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아름다운 미덕중의 미덕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최고의 덕목입니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덕목을 넘어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세상은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입니다.
둘째,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여러 면에서 자녀에게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합니다. 부모님은 하나님 대신에 낳고, 부양하고, 양육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듯이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여기서 옳다는 말은 의롭다는 뜻으로, 올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부모와 자녀간의 올바른 관계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순종할 때 바른 관계가 됩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부모님만큼 그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9-10). 어떤 부모님이든 진실로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말에 잘 순종하면 해될 것이 없습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바다를 정복할 꿈을 꾸면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그는 큰 선박회사에 취직해 먼 나라로 향해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배에 자신의 짐을 모두 실은 후에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돈을 많이 벌고 바다를 정복하는 것도 좋지만 네가 항상 부모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평소에 바다를 정복하고자 하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할 기회가 왔지만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꿈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순종을 보고 그를 위해 매일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때 그는 위대한 지도자로 성장하여 미국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자식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오늘도 부모님은 눈을 뜨자마자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 존경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말씀을 따라 살게 하소서. 험한 세상에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소서. 힘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일생에 좋은 믿음의 친구, 믿음의 스승,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하소서. 주님, 지혜와 총명과 건강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잘 새겨 순종하는 것이 매사에 유익하며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넷째, 부모는 먼저 인생을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중에는 자녀보다 못 배운 경우도 있고, 때로 어리석어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식에 있어서 뒤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님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경륜입니다. 경륜이란 학교나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지혜입니다. 지혜란 지식을 바르게 사용하는 힘입니다. 젊은이들의 특징은 지식은 있으나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더구나 부모님은 나보다 인생을 더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까지도 예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생각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의 책으로 알려진 잠언을 보면 부모님의 교훈에 주의하고 순종하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물론 육신의 부모님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로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된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이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뜻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맞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전도하다 보면 어떤 며느리들은 시부모님이 반대하시니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믿겠다는 사람이 혹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올바른 길은 비록 당장에는 반대하더라도 며느리가 먼저 믿고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믿어 구원받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거역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도 안 믿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님이 반대하시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일만큼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나와 부모님이 사는 길입니다. 핍박이 좀 있더라도 끝까지 믿다보면 결국에는 부모님이 믿어 구원받게 됩니다. 반대한다고 주일도 안 지키고 타협하면 모두가 망하는 길입니다. 주안에서 순종하여 범사에 복을 받는 삶을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2. 부모님을 공경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2-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신 5:16상) 여기서 ‘공경하라’는 것은 존경하여 잘 받들어 섬기라는 뜻으로, 동양적인 개념으로는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부모님께 대한 태도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잘 받들어 모시고 섬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효를 다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독교를 효도하지 않는 종교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해입니다. 사실 성경이야말로 얼마나 우리들에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를 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명심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경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티마’(τίμα)로, ‘높이 평가하다.’ ‘가치를 두다.’ ‘존경하다.’라는 뜻입니다.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서 공경이란 뜻은 히브리어로 ‘카베드’인데, 이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잠 3:9; 사 43:23; 말 1:6). 즉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삼가 섬김을 다하고 무겁게 대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물질로도 봉양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된 계명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의 복은 부모님의 말씀을 복종하고 공경하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장수하다’는 것은 육체의 생명의 연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천국을 말합니다. 부모님에게 순종하고 공경할 때 창대한 복을 누리고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 약속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포함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입니다. 공자와 그의 제자인 증자와의 대화로 엮은 ‘효경’이 있습니다. 효경의 1장에 보면 “夫孝德之本也敎之所繇生也; 부효덕지본야 교지소요생야.”라고 했습니다. 효란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에게 대한 보은으로, 교육과 덕의 근원이요, 모든 일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는 동물과 날짐승의 세계에도 있습니다. 어린 양이 어미 양의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고 젖을 먹습니다. 그리고 어미양이 늙고 병들면 새끼 양이 어미 양에게 젖으로 봉양합니다. 이처럼 동물의 세계에도 부모를 공경합니다. 그리고 “반표지효(反哺之孝)”란 고사성어가 있는데, 이는 새끼 까마귀가 병든 어미 까마귀에게 봉양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님이 병들었을 때 봉양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님의 봉양은 그만두고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판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도 돈으로 계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숭실대학교 교수였던 정재기 교수는 한국에서는 부모 소득이 1% 높아질 때마다 자녀가 일주일에 한번 이상 부모와 만날 가능성이 2.07배 커지는 반면에 영국, 미국, 일본 등은 부모의 경제소득이 낮을수록 부모와 자녀가 더 만난다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자녀의 방문수가 줄어드는 것은 조사 대상 중인 경제협력기구 15개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천민자본주의로 인해 부모가 가난하면 경계의 대상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혈육의 정도 돈으로 환산하여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고 하고 끊어지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인자살이 세계 1위입니다. 이는 부모님께 무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믿는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서 부모님이 나를 섬겼듯이 이제 내가 나이가 들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명심보감의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幼兒尿糞穢 君心無厭忌 老親涕唾零 反有憎嫌意-유아요분예 군심무염기 노친체타영 반유증혐의 六尺軀來何處 父精母血成汝體 勸君敬待老來人 壯時爲爾筋骨敝- 육척구래하처 부정모혈성여체 권군경대노래인 장시위이근골폐” 어린아이의 오줌과 똥의 더러움은 그대 마음에 싫어하거나 꺼림이 없네. 그런데 늙은 어버이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는 것은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여섯 자의 몸이 어디서 왔는가.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로 그대의 몸이 이루어졌네. 그대에게 권하노니 늙어가는 사람을 공경하여 대접하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하여 살과 뼈가 닳으셨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친구를 사귈 때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인지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사람의 도리의 첫걸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각은 그의 외모를 향해 있고, 우리는 청각은 그의 목소리를 향해 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마음에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인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가 부모님과 직접 대면하는 걸 보지 않아도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부모님을 공경하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며느리나 사위를 구할 때 외모를 보지 말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며느리와 사위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며느리를 보는 순간에 부모님을 존경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한 예로 믿지 않는 부모님을 전도하여 믿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효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을 대화 속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경이 여기는 사람은 아무리 훌륭해도 삼가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았을 때 저주 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노아의 아들 함입니다. 함은 술 취한 아버지 노아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자 아버지의 수치스러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떠벌이고 다녔습니다. 반면에 야벳과 셈은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수치를 가렸습니다. 그들은 약점이 있는 아버지를 공경했습니다. 이로 인해 함은 저주를 받았고, 셈과 야벳은 창대함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설령 부모님이 약점이 있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마땅히 학교나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도 섬길 사람을 섬깁니다.
성경에 3가지를 잘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안식을 잘 지켜라.”(출 20:10-11).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말 3:10).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라.”입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첫 걸음이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감사함이요. 부모님 공경하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첫 번째 계명입니다.
우리가 가정의 달을 맞아 일생동안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잘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