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7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 1:27)
요즘 신문지상에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어느 섬에서의 학부모가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40도의 독한 술을 마시게 한 후 못쓸 짓을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에 서울 시청 광장에서 동성애 퀴어 축제를 하였습니다.
오늘 바른 성윤리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행복한 가정, 물댄 동산과 같은 가정이 되려면 두 가지를 잘 지키면 됩니다. 첫째는 투명한 물질관리, 둘째는 성적 순결입니다. 지금 동성애는 한국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동성애의 문제점과 이와 더불어 바른 성윤리의식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1. 남자와 여자로 각기 창조하신 하나님
기독교의 성에 대한 입장은 첫째, 인간은 성을 가진 존재로 봅니다. 성은 하나님이 섭리하고 정한 창조의 일부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각기 남자와 여자로 동등하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창 1:27) 그리고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혼인예식을 통해서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의 원리요 가정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성(sex)이란 용어의 뜻도 나눈다, 분리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집니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다시 말해 선천적으로 동성애자로 태어났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입니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는 4-5세 때를 성적 정체성을 갖는 시기로 보고, 에릭슨은 13-18세, 사춘기 때에 성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고 봅니다. 이를 볼 때에 동성애는 후천적이기 때문에 변화될 수 있습니다.
둘째, 다른 성을 지배하거나 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성을 지배하고 통제하게 되면 상호 평등한 관계가 왜곡되고 분열되게 됩니다.
셋째, 성은 본질적으로 선합니다. 성의 범죄 행위는 성자체가 악하기보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영지주의에서는 “육체는 악의 근원이며 죄악의 통로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모든 물질세계를 선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창 1:10, 12, 18, 25, 31).
넷째, 성은 출산과 즐거움을 포함합니다. 전통적으로 성은 출산을 강조하지만 성경에는 성의 즐거움을 긍정하고 있습니다(잠 30:18-19).
다섯째, 성은 선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 동시에 악으로도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성왕으로 일컫는 다윗은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했습니다. 이것은 성 자체가 악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인 결함 때문입니다.
여섯째, 성적인 범죄에도 용서가 가능합니다. 다윗은 나단의 책망을 듣고 침상을 적시기까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용서받기까지는 뼈가 쇠하는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범죄에는 반드시 죄악의 씨가 생깁니다.
2. 성경에 나타난 동성애
동성애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성애는 창세기 19장에 소돔과 고모라에서 이미 나타났습니다. 두 천사는 저녁때가 되어 소돔 성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롯은 성문에서 손님들을 만났고 그들을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천사들이 자리에 눕자 성 안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소돔 백성들이 무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천사인 손님을 끌어내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 19:5) 여기에서 ‘상관하다(have sex with them)’는 그들과 성관계를 맺겠다는 말합니다. 그래서 남색을 영어로 ‘sodomy’라고 하는데, 이는 소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하고 강포했습니다.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혼한 두 딸을 폭도들에게 내어주겠다고 타협했습니다. 소돔성은 성을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을 보면 바울이 살던 그 시대에도 동성애가 성행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특징은 욕망이 지배합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는 두 가지 욕망이 있는데, 음행하고자 하는 욕망과 부에 대한 욕망입니다. 음행의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비너스를 만들어 음행을 즐기고, 부에 대한 욕망 때문에 바알을 만들어 부를 즐깁니다. 이 욕망에 빠지게 되면 회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은 본질상 영원히 충족될 수 없습니다. 이 욕망은 현상이 아니라 환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정상적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변태를 통해 만족을 누리고자 합니다. 동성애는 변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인들이 순리를 바꾸어 역리로 쓰고, 남자가 여인 쓰기를 거절하고 서로를 향해 음욕이 불 일듯 일어난다고 했습니다(롬 1:26-27).
윤리의 타락의 극치는 성윤리의 타락입니다. 성윤리의 타락의 극치는 동성연애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동성애를 가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레 18:22). 그리고 가증한 일을 행했으므로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이만큼 성경은 동성애를 큰 죄로 보고 무섭게 다루십니다.
3. 역사적으로 나타난 동성애
고대 서양에서의 동성애는 플라톤의 향연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최초의 동성애자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묘정입니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공민왕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세종실록에 세자빈 봉씨가 후궁들과 동성애를 즐기다가 궁에서 쫓겨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화랑과 문학작품 중에는 고려시대의 한림별곡이 있습니다.
미국의 동성애가 본격화 된 것은 1969년 6월 27일 이후입니다. 1969년 6월 27일에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의 스톤 월인(Stone Wall Inn)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여 동성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뉴욕 경찰이 그곳을 급습하여 소탕작전을 벌였습니다. 당시 동성애자들은 우리나라의 보안사범과 같이 일급 범죄자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때 동성애자들이 경찰과 대거 충돌했습니다. 다음날 그들은 뉴욕거리로 나서서 행진을 벌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부터 6월 27일에 동성애자들이 모여 퍼레이드를 벌이며 커밍아웃을 독려하는 집회로 정착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6월에 퀴어 문화축제를 여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미국연방대법원이 2015년 6월 26일에 동성결혼 합법을 판결한 것 또한 이런 맥락에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동성애자들이 1981년을 맞아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그것은 1980년대에 에이즈의 출현입니다. 1980년대에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로 사망하였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들은 에이즈와 동성애의 분리를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성애자들도 에이즈에 거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에이즈는 대부분 동성애자들에게 나타납니다.
미국에서 발생한 25,000명의 에이즈환자 중 65%가 동성연애를 하는 남자들이고, 17%는 동성애자이면서 마약사용자, 8%는 동성 또는 이성애자들이면서 마약 사용자들, 7%는 에이즈 보균자들과 성접촉, 2%는 에이즈의 감염된 수혈을 통한 발병입니다.
우리나라도 에이즈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질병관리본부(2014)의 보고에 의하면 2013년에 내국인은 1013명, 외국인은 101명입니다. 하루에 평균 3명의 내국인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내국인 감염자 수는 1995년에 108명(전체 114명)으로 처음 100명을 넘어선 후, 2011년에 888명(전체 959명)이 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1000명을 넘어섰습니다.
무엇보다도 청소년 에이즈 감염자의 급증입니다. 질병관리본부의 ‘2014년 에이즈 신고 현황’에 따르면 내국인 15∼19세의 남성인 경우 에이즈 감염자 수는 2000년에 2명, 2005년은 15명, 2008년에 20명, 2010년은 26명, 2013년에 52명, 2014년은 36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2000년 이전에는 청소년 에이즈 감염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이후에 18∼26배로 증가하였습니다. 에이즈로 숨지는 내국인 사망자도 2011년에 148명, 2012년은 110명, 2013년에는 139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동성애는 1995년 10월 연세대학교에서 성정치라는 용어로 등장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 동성애를 다루는 웹 사이트는 약 50여개가 있는데 그곳에 올라온 동성애 관련 질문은 총 10,000여 개가 넘으며, 동성애를 다룬 서적과 전문 자료는 4,500권을 웃돌고 있습니다. 이태원, 종로에는 동성애자들의 공간도 약 100여 곳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제 극기야 서울 한복판에서 어제 1만 여명의 동성애자들이 모여 퀴어 축제를 열기까지 하였습니다.
문제는 점차 젊은이들이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성의 한 표현이다’라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 영화를 벗어나서 드라마로 가정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SBS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본 어린이들이 남아끼리 포옹하고 뽀뽀하며 성장하여 남아끼리 결혼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15년 2월 25일에 JTBC 종편 방송에서는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여고생들이 키스하는 장면이 나와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경고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처럼 동성애는 이제 한 편의 드라마를 이끄는 하나의 소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이런 현실에 놓여 있습니다.
4. 동성애의 원인과 생활양식
동성애의 원인은 첫째는 생물학적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유전설인데, 동성애가 강한 유전적 경향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뇌 구조설이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의 뇌의 구조가 이성애자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심리분석 이론이 있습니다. 넷째는 비정상적 가정환경에서 온다는 견해입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의 지나친 보호와 사랑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은 동성애에 빠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는 의식적 선택결과가 아니라 환경과 심리적인 콤플렉스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부모나 가족환경, 그리고 심리적인 영향에서 오는 후천성으로 봅니다.
동성애자의 생활양식을 보면 상대방의 눈을 오랫동안 응시합니다. 이것은 남성끼리의 성적관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일부 남성 동성애자는 하나의 귀고리만을 착용하여 동성애자임을 밝히는데, 오른쪽에 착용하면 자신이 수동적임을 나타내고, 왼쪽에 착용하면 공격적임을 나타냅니다. 손수건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 안면 표정이나 행동변화를 더 정확히 감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의 질병통제 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의 보고에 의하면 에이즈에 감염된 남성 동성애자 5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성적으로 접촉한 대상의 수는 평균 1,100명이며, 그중 몇 명은 2만 명까지 상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성 중독입니다. 반면에 여성 동성애자의 경우, 남자들과 달리 71%는 단지 1-2명과의 상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5. 동성애의 문제점
첫째, 동성애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성경의 거룩한 사명인 ‘생육하고 번성하라.’(창 1:28)는 말씀에 위배됩니다.
둘째, 가정의 위기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두 가지 기관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교회보다 가정이 먼저 세워졌습니다. 가정은 생명이 창조되고, 행복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가정은 인간이 만나는 최초의 사회공동체이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결혼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가정은 생의 보금자리이고, 사회 근간입니다.
그런데 동성애의 결혼이 증대할 때 가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정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원의 터를 잃게 됩니다. 성경은 기초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시편 11:3) 터가 되는 가정이 무너지면 인류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셋째, 성경은 동성애를 금합니다. 성경은 동성애를 금하고 있습니다(레 20:13). 그리고 순리를 역리로 바꾸어 쓸 때 하나님의 심판과 그 심판은 그들 스스로 상당한 보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롬 1:26-27).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생명은 성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곧 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권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인권존중은 그 기초가 허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윤리는 생명윤리보다 우선합니다. 그리고 성을 단순한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결코 안됩니다. 성은 성(聖)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사용할 때 복됩니다.
6.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
성경에 하나님께서 한 도시를 택하여 멸망한 사건은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 성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동성애를 무섭게 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인공적으로 조작하고 이상한 짓을 할 때는 반드시 멸하신다는 예증입니다. 그리고 A.D. 79년 8월 24일 정오의 베수비오의 화산 폭발로 인한 폼페이의 멸망과 1987년의 LA 지진을 들 수 있습니다. 발굴된 폼페이를 보면 동성애자들의 성행위 장면이 그대로 화석으로 나타나있습니다. 지진으로 파괴된 LA의 도시는 바로 동성애와 포르노 제작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불의와 경건치 않음에 반드시 진노를 쏟으십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롬 1:18) 그리고 성경은 동성애자들을 내버려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롬 1:26상),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내버려 두다(gave up)’는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포기는 증오 중의 증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음을 그들 자신이 받았다고 했습니다(롬 1:27). 상당한 보응은 에이즈로 인한 고통과 죽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또한 모든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구원과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성애자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그들은 성적 소수 장애자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들을 보듬고 이해하고 사랑하여 새롭게 출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럴 때 그들도 주님의 날개 아래 모일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다시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새찬송가 25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