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제 1(고전 1:1-17)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향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헬라 전토를 거의 다 포함하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많은 인종들이 섞여 사는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고대 최대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를 일컬어 헬라의 다리라고 불렀고, 학문이 발전하여 철인을 만나지 않고는 고린도 거리를 걸을 수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한편 우상숭배가 성행하고 도덕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인의 생활’, ‘고린도화되었다고 하면 방탕생활의 대명사였습니다. 또한 고린도는 부요와 사치, 술 취함과 방탕과 음행과 동성애, 그리고 간음과 탐욕의 동의어이기도 했습니다(고전 6:9-10).

바울은 제 2차 전도여행 때에 아덴에서 고린도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온갖 훼방을 무릅쓰고 16개월간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고 증언했습니다(18:1-11). 고린도는 세상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또한 이런 영향을 받아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서교회의 모든 문제를 가슴에 안고 눈물로 서신을 썼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마치 고린도와 같습니다. 현대는 과학 문명의 고도로 발달로 알파고가 등장하여 인간의 두뇌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물질주의와 육신주의가 성행하여 각종 병리현상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힘과 영적인 영향력은 저울에 달아도 무게가 나가지 않는다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다원화되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공부하여 바울의 성숙한 내면성을 배워서 성숙한 지성인의 목자가 되어 이 시대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그리스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고전 1:1-2)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고전 1:1) 사도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입니다. 이는 보냄을 받은 자, 파송을 받은 자, 전권대사란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사도라고 칭하였습니다(3:1).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 나라로부터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의 일반적인 개념은 예수님의 12제자로부터 시작됩니다(6:13). 그 후에 예수님의 부활의 목격자와 부활의 증거자를 사도라고 했습니다(1:12,22). 그래서 예수님의 12제자 외에 바울, 바나바, 야고보와 주의 형제, 실누아노에게도 사도라 칭했습니다. 바울은 서신에서 항상 자신이 사도임을 밝혔습니다. 바울은 본래 예수님의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포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도다.”(딤전 1:13).

그는 초대 성도들을 핍박하고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데 앞장을 섰던 복음의 비방자요 박해자요 훼방자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로 사도가 된 자신을 바라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넘치도록 풍성했습니다.

삶에는 두 가지 칼라가 있습니다. 어두운 색깔과 밝은 색깔입니다. 신앙도 마찬 가지로 두 가지로 색깔, 어두운 색깔과 밝은 색깔이 있습니다. 바울은 어둠에서 밝음을 보았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과거를 바라보면 자신은 망할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의 은혜로 사도가 된 자신을 바라보니 흥할 자였습니다.

성도 중에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낮은 자존감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좌절감과 절망감으로 신앙 생활하는 성도가 있는 반면에 저 높은 소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기독교 신앙에는 비관주의와 낙관주의가 공존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면 비관주의자가 됩니다. 반면에 하늘과 하나님을 바라보면 낙관주의자가 됩니다. 비관주의자들은 자신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니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비관적이고 부정적입니다. 반면에 낙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시각 또한 그러합니다. 이사야는 그 시대를 바라볼 때 절망적이었습니다. 금방 이스라엘이 망하고 성전이 사라지고 와해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남은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을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6:13)

엘리야 또한 자기 자신과 주위를 바라보니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겨 놓은 7000명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 19:18). 성경의 흐름은 남은 자(remnant)를 통한 역사입니다. 내가 범한 죄악을 바라보고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는 좌절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내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노 땡큐가 아니라 Say yes!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내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도록 풍성해질 것입니다.

2. 기도와 감사(고전 1:3-9)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3) 바울의 서신을 보면 은혜와 평강이 한 몸처럼 함께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2, 1:3, 살전 1:1). 바울은 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이 있도록 인사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란 호의를 뜻합니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서의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은총을 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무엇에도 의지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세상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노력과 의지로 안 되는 것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긍휼과 은혜가 필요합니다.

은혜(καρίσ)’란 값없는 선물이란 뜻입니다. 이 은혜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믿는 순간에 주어집니다. 그리고 은혜는 구원에 대한 감사와 비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묵상하고 찬양과 기도와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평강(ερνη)’은 모든 것이 원만하여 마음에 걱정이 없는 평화로,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이는 전쟁이나 분쟁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8:9, 삼상 7:14, 왕하 9:17, 대하 14:6)와 가정에서 불화가 없는 행복한 상태, 그리고 가난과 궁핍 등에서 자유로운 상태(147:14) 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궁극적으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9:6)로부터 죄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때 비로소 누릴 수 있습니다(14:27, 5:1). 그래서 바울의 서신을 보면 은혜와 평강의 순서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는 평강은 은혜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평강은 물질의 풍요함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꿈이 성취되었다고 오지 않습니다. 평강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 전에는 참 평화를 알지 못했다.” 평강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셨을 때 안위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23:1-4)

그리고 바울이 말하는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평강입니다. 노예에게 어떻게 평강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는 놀라운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고, 세상 권세를 의지하면 그것들의 노예가 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노예가 되면 그것에 지배받게 됩니다. 그 순간 불안과 염려와 걱정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면 평강과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욕의 노예가 되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죄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진리는 예수님 자신입니다(14:6). 진리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참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비례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4:8-9)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새찬송가 412)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감사하였습니다. 그의 감사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만한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게 주신 그들을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둘째로 바울이 전한 복음이 고린도 교회에 뿌리를 내려 견고하여졌기 때문에 감사하였습니다. 셋째로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인해 감사하였습니다. 넷째로 그 날에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된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끝으로 그는 주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이루는 생활로 인해 감사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축복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서로 분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를 자랑하는 데에 썼습니다.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1-16장에 걸쳐 권면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신 언변과 모든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온전히 드려지기를 기도합니다.

3. 같은 말, 같은 뜻, 같은 마음(고전 1:10-17)

바울은 글로에의 집 편을 통해 고린도 교회 내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11). 바울이 고린도서를 쓰게 된 원인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그들이 같은 말,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했습니다. 향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같은 말은 공동전선을 펴라는 말입니다. 전쟁에서 공동전선을 펴야지 서로 분열하면 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온전히 합하라는 그물을 수선하다, 채운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져 서로 분쟁하였습니다. 그들은 옛날 철학의 창시자들이 이름을 본 따 platon, 피타고라스파 등으로 이름을 지은 것 같이 자기들의 신앙노선에 적합한 인물을 내세워서 분파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분파 중에는 첫 번째가 바울파가 있었습니다. 바울파는 바울이 사역할 때에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말 밖에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보다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볼로가 있었습니다. 아볼로는 당시 지적 활동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성경에 능통하고 언변이 좋았습니다(18:24). 반면에 바울은 말이 어눌했습니다(고후 11:6).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바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도 시원하지 않다고 비방하였습니다(고후 10:10). 그래서 아볼로는 고린도의 지식인층에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은근히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게바파가 있었습니다. 게바는 베드로의 헬라식 이름입니다. 아마 그들은 유대의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는 보수파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제자인 베드로가 더 권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은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 자로, 우리만이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문제는 그들도 자기파를 만들어 분쟁하였다는 것입니다(고전 3:3).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어 온전히 합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분쟁으로 인한 교회의 위험성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한 몸이신 그리스도를 나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비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 1:13) 그리고 교회 내에 분열이 생기면 믿음이 어린 사람들이 실족하고, 불신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어 복음이 비방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대적하는 자들에게 훼방거리를 주게 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상대화시키게 됩니다. 분쟁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나누어, 그리스도의 일부분을 믿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한 조각을 믿는 분파싸움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온전히 한 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파하여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 등 사람을 자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숭배하는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상대화시키는 큰 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하였습니다(고전 1:24,30, 3:11, 21-23).

바울은 이런 그들에게 바울 자신이 그들의 주가 될 수 없고, 인간의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세례도 바울의 이름으로 주지 않았음을 상기시켰습니다. 당시 누구 이름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스데바나 집 사람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를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파를 만들 빌미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보내신 목적은 세례 주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여 복음이 전파되는데 있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는 성골, 진골, 무술이로 나뉘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울의 어떤 교회는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선교단체 시절에 영적 사관생도 출신이냐, 1학년 때부터 나왔느냐, 졸업 하고 나왔는가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결코 교회에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고 복음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파괴하는 범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동역자요 지체입니다. 대학마을교회 나오는 여러분은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지체입니다. 분쟁은 마귀가 가장 좋아합니다. 마귀는 분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단들의 수법 또한 성도를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대학마을교회는 1982년에 인천지역의 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개척예배의 요절은 마가복음 1615절이었습니다. 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우리 모두는 같은 생각,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꿈을 심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5대양 6대주로 뻗어나갔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절망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같은 마음, 같은 생각, 같은 뜻으로 젊은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꿈을 심어 창공을 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애서 자란 우리 자녀들이 믿음으로 자라 꿈을 가진 세계적인 인재들로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5년 전에 신천지사건으로 대학선교가 많이 위축되었지만 우리가 같은 생각,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지고 기도할 때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놓은 자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주는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주가 되시고 왕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같은 신앙의 칼라와 같은 기도 제목과 같은 말과 같은 마음과 같은 뜻을 가지고 온전히 합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대학 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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