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제6과 (5:1-13, 6:9-20)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6:19-20)
작년에 메르스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하여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처럼 요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침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메르스나 에볼라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온 인류를 감염시키는 태초 이래 가장 오래된 감염원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죽게 만드는 음행바이러스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겉은 멀쩡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유달리 많은 교회였습니다. 헬라 지식인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에 음행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명령하였습니다. “신자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다. 성령의 전이다. 따라서 음행을 피하고 거룩하게 하라. 그리하여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본문을 통해 음란하고 패역한 시대에 순전하고 진실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기도합니다.
1.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전 5:1-13).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 5:1) 고린도 교회 내에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음행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아내란 후처이거나 계모를 뜻합니다. 이런 일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구약에는 이런 자를 저주하고 반드시 죽이라고 했습니다(신 27:20; 레 20:11).
그러나 고린도 성도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고전 5:2) 그들은 마땅히 형제의 범죄로 인해 애통하며 회개해야 옳습니다. 그들은 범죄한 형제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함께 공동 책임을 지고 통회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새 삶을 살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그가 회개치 않으면 출교를 시켜 교제나 친교를 끊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랑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고전 5:6). 왜 그들이 음행을 자랑했을까요? 이는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성령을 소유했습니다(고전 2:12). 그들은 많은 신령한 은사를 소유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고전 1:15). 또 그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고전 2:5). 그러나 실상 그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든 것 없이 스스로 모든 것을 소유한 양 영적으로 심히 교만했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배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사람이 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면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됩니다. 즉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영적 나병환자가 되어 세상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자를 용납하게 됩니다. 이것을 관용이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관용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고전 13:6).
그들이 교만하게 된 것은 시대적인 영향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도시에는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 천 명이 넘는 여사제가 있었습니다. 그 여사제들이 바로 창녀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전에 가서 우상에게 절한 후에 창녀들과 혼음하며 극한 방탕을 즐겼습니다. 방탕한 생활에 있어서 고린도를 따라갈 도시가 없었습니다.
또 이곳은 영지주의(Gnosticism)와 쾌락주의(Epicureanism)가 성행했습니다. 영지주의는 인간은 육과 영으로 되어 있는데, 육은 악하고 더럽고 영만이 선하다는 사상입니다. 그들은 육이란 영을 속박하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다보니 쾌락주의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영지주의와 쾌락주의는 음행을 방조하고 가속화시켰습니다. 이처럼 고린도의 성적 방종은 역사적으로 보나 사상적으로 보나 보편적이고 상식적이 되었습니다. 이런 죄악이 고린도교회 내에도 침투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 창녀와 합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고전 6:15-16).
오늘의 시대도 음란을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간통죄까지 폐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을 통하여 음행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예술에는 저속하고 음란한 예술이 있는 반면에 고상한 예술이 있습니다. 고상한 예술은 사람의 인격과 삶의 가치관과 마음을 정화시킵니다. 반면에 저속한 예술인 음악과 미술과 소설, 그리고 영화는 우리의 마음을 세속화 시키고 음탕하게 만듭니다. 특히 인터넷에 파고드는 광고나 내용은 사람들의 마음과 혼을 혼탁하게 만듭니다. 범죄자들을 보면 폭력 영화나 만화 등을 보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에로틱한 영화나 음악이나 미술이나 소설 등을 멀리하고 고상한 음악과 소설과 조각과 미술과 영화를 듣고 보고 읽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번연의 천로역정, 존 밀튼의 실낙원,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의 그림이나 삐아제 조각, 헨델의 메시야, 어거스틴의 참회록, 벤허 등과 같은 작품을 보면 심성이 맑고 밝고 깨끗하게 됩니다. 시대가 변하고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교회가 세속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순결과 거룩함은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 끝까지 순결과 거룩성을 지켜야 합니다.
바울은 이런 일을 행한 자를 어떻게 판단했습니까?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 5:3-5)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교회에서 쫓아내어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출교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범죄자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도록 함입니다. 바울의 징계 목적은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을 받도록 함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을 행한 자를 내버려 둘 경우에 어떻게 됩니까?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적은 누룩을 내버려두면 온 덩어리에 퍼지게 됩니다. 여기에서 누룩은 특히 음란을 뜻합니다. 아무리 적은 누룩이라 할지라도 내버려두면 하루 밤사이에 온 반죽을 부풀게 합니다. 누룩은 바이러스입니다.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악영향을 끼치는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온 공동체를 순식간에 부패시키고 온 교회를 부패시킵니다. 지난 해 삼성병원에서 한 사람의 메르스 감염자를 잘 관리하지 못해 삼성병원을 통해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 5장 12-21절을 보면 바울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말씀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땅에 죄가 들어와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은혜와 생명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나 한 사람쯤이야 어떠랴?’ 하며 허랑방탕한 삶을 살게 되면 가정이 깨지고, 교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파괴되고, 민족과 국가가 파멸에 이르고, 더 나아가 인류가 공멸됩니다. 반면에 나 한 사람이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 때에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캠퍼스와 민족과 인류가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 5:7)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음행과 음란, 그리고 교만의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피로 인함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19) 따라서 우리가 다시 옛날의 죄악된 습관을 쫓아 사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헛되이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옛날의 죄악을 즐기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삶으로 족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안 해 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벧전4:3)?
우리는 과거에 게으름, 교만, 원망, 무책임, 불평, 미움, 시기심, 거짓, 술 취함과 방탕했습니다. 방탕했습니다. 술집에 갔습니다. 저질 영화나 음란물을 보았습니다. 정욕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묵은 누룩, 바이러스를 내버려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고전 5:9)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써 보내기 전에 이미 음행하는 자를 사귀지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세상에 음행하는 자들이 천지인데 그들과 사귀지 말라면 어떻게 살란 말인가 하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에게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형제라 일컫는 자, 곧 신자라고 하는 자들에게 대한 말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 5:11) 신자들은 음행하고, 탐람하고, 우상 숭배하고 모욕하고 속이고 술 취하는 자들과는 아예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밖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교회 내에서의 죄를 짓는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 했습니다(고전 5:13).
왜 그리해야 합니까? 이는 교회를 거룩하게 보전하고자 함입니다. 교회 내에 이런 것을 묵인할 때 교회는 세속화 되게 됩니다. 교회마저 세속회가 되면 세상은 끝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죄와 타협하지 않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함입니다(고후 2:1-11). 우리는 교회 내에 영적인 환경을 흐리게 하는 일절 누룩을 제거하고 오직 겸손과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는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아멘.
2. 음행을 피하라(6:9-2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성을 육체적인 향락의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란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상습적으로 간음하였습니다. 호모들이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했습니다. 간음과 변태, 탐욕과 모욕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습니다(롬 1:21,28).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과거에 고린도 성도들은 이와 같이 지저분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이름 권세를 믿음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 거룩함과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시의 문화와 사회의 영향을 받아 영혼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요즈음 구원파는 구원을 받았으면 죄를 지어도 된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죄 짓고 하나님께 자백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며 죄를 가볍게 여기고 죄악 된 본성대로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망각하고 본능대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자유를 죄 짓는 데 쓰면 다시 죄의 종이 됩니다. 결국 죄의 종이 되어 자유를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를 자유인답게 쓸 수 있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는 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까?
첫째, 우리 몸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식물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 5:13-14) 식물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식물을 위하여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은 주를 위하여 있습니다. 주는 우리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우리 몸은 음란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처럼 우리 몸을 다시 살리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소중한 몸입니다. 우리 몸은 영원히 다시 살게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 몸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러므로 우리 몸을 음란을 위해 일절 내주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둘째,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5:15-17) 이제 우리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한 영입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이방 신전의 매춘굴에 출입하였습니다. 바울은 창세기 말씀을 근거로 그 죄악의 심각성을 말씀하셨습니다(창 2:24). 한 남자가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그와 인격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기와 몸을 섞는 것은 인격과 영혼이 창기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지체를 더러운 창기의 지체로 만드는 큰 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엄히 명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고전 5:18)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음행은 인간이 자기 몸에 대해 지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여러분, 성은 신체의 일부분이 아닙니다. 성은 인격 그자체입니다.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의 접촉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격과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여기에서 과거에 죄인지 모르고 이루어진 사건, 그리고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사건 등은 회개하고 치료받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죄인 줄을 알면서도 죄를 범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결혼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아내가 한 몸을 이루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은 성인된 남자와 여자가 축복된 결혼의식으로 부부가 되어 인격적인 사랑의 결합으로 사용돼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만이 행복의 샘이 됩니다. 그러나 성을 함부로 사용할 때에는 불행과 저주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음행을 일절 피해야 합니다. 음행은 자기로 끝나지 않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파괴시킵니다.
셋째, 우리 몸은 하나님의 전입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5:19)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전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려면 내 몸을 일절 순결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거룩한 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요,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따라서 일절 음행을 피하고 거룩하고 진실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몸을 음행의 더러운 바이러스와 이전의 모든 더러운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깨끗하고 거룩한 누룩으로 드려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