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고린도후서 5:1-21

화목하게 하는 직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트리나 폴리스가 지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이 동화는 두 마리의 애벌레가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로, 줄무늬 애벌레와 노란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의 중요한 내용은 두 마리의 애벌레가 어두움과 고통의 과정을 거친 후에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오직 화목하게 하는 직분, 하나님의 사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거듭난 성도로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하나님의 사신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1.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고후 5:1-10)

바울이 주목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땅에 있는 장막 집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었습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장막 집에 소망을 두지 않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소망하였습니다. 왜 그리했습니까? 이는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바울은 인간의 육체를 장막 집에 비유하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인간의 초라한 생을 장막으로 비유하였습니다(4:20). 장막 집은 유목민이 장막을 쳤다가 다시 걷어가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집을 말합니다. 장막 집은 임시성, 이동성, 쇠약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2.2세이고, 건강수명은 남자 78, 여자는 85세입니다. 이런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시편 기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90:10)

인간은 늙어서 무너질 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무너지기도 하고 불의의 사고로 무너지기도 합니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와 권력과 명예를 소유하고 부족함이 없이 산다 할지라도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져 있고,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9:27; 6:23). 육신의 장막 집은 아무리 견고하게 짓는다 할지라도 결국에는 썩고 부패하고 낡아집니다. 요즘 권불십년이란 말이 실감이 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납니까? 바울은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예비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초로 지은 집입니다. 이 집은 가장 안전하고 견고하고 아름답고 영원합니다. 이 집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습니다(벧전 1:3-4). 또한 이 집에는 눈물과 고통과 사망이 없습니다. 생명과 평화와 사랑이 넘쳐흐릅니다(21:4).

그래서 바울은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바울은 영화로운 부활의 몸을 덧입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살 수 있도록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셔서 이를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고후 5:5).

바울은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절망적인 상황 중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담대히 살았습니다(고후 5:6). 그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인생목적과 삶의 방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명한 목적과 방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자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힘쓰다(φιλοτιμούμεθα)’는 말은 명예를 사랑하다, 대망을 품고 분투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여기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어떤 가치와 뜻을 가지고 살 때 이를 이루기 위해서 전력투구합니다. 그리고 어떤 시련과 역경이라도 뚫고 나갑니다. 최고의 가치와 목적은 어떤 고통과 역경도 감내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자기 명예를 걸고 분투했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자기를 철저히 부인했습니다. 그는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예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찾았습니다. 환난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어떤 불행한 일을 만나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써야 합니까?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인류 최후의 심판대로서 일차적으로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을 구분하는 자리입니다(살후 1:6-10). 그 후에 구원 받은 성도들이 받을 상의 크고 작음을 가리키는 보상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 심판은 성도가 그동안 주님을 위해 얼마나 일했는가에 대한 평가입니다(14:12; 살전 1:3).

그리스도의 심판은 예외가 없습니다. 이 심판은 도매금으로 하지 않고 각각 개별적으로 그 행위의 열매를 따라 심판합니다. 이러한 심판이 있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소망과 기쁨인 동시에 살아있는 동안 깨어서 열매를 맺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믿음의 용사들이 나옵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옮기어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이는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11:5).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만 바랍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이제 구원 받은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하고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전도의 열매를 맺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로서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하고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바울(고후 5:11-17)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고후 5:13)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미쳐있었습니다. 그는 양들을 위해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미쳤다는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황홀상태에 빠지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 예수님께 미쳤다고 말합니다. 실상 크리스천이라는 말은 안디옥 교인들이 열심히 예수님을 믿자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뜻으로 조롱 섞인 별명입니다. 크리스천은 그리스도께 미친 사람입니다.

요즘은 뭔가에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주식과 땅 투기에 미쳐있습니다. 그러다가 상투를 붙들어 패가망신합니다. 사람들은 도박에 미쳐 있고 카지노에 미쳐있습니다. 사람들은 술에 미쳐 있습니다. 사람들은 컴퓨터에 게임과 T.V.에 미쳐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과 권력과 쾌락과 정욕에 미쳐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에 미치고 예술에 미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마지막은 좌절과 절망과 심판과 죽음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미칠 때 가치 있고 의미 있고,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14:6). 바울이 베스도 총독 앞에서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간증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 이에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26:25) 그리고 자신의 결박된 것 외에는 모든 사람이 다 자기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그토록 하나님과 양들을 위하여 충성할 수 있도록 한 그 원동력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흔히 돈이 그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는 동인이 됩니다. 돼지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은 간단합니다. 삶은 콩을 뿌리며 앞서 가면 죽는 줄도 모르고 콩 먹는 재미에 빠져서 제 발로 따라 옵니다. 콩은 돼지를 움직이는 동인이 됩니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은 사람의 행동을 움직이는 동인이 됩니다. 그런데 그곳은 불나방입니다. 권력, 명예, 지식은 삶의 이끄는 동인이 됩니다.

그러나 바울을 움직인 동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강권하다제어하다’, ‘마부가 말을 몰듯이 하다란 뜻입니다. 그리고 둘러싸고 밀어내고 붙들다란 뜻이 있습니다. 바울이 주님과 양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불가항력적으로 사로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의 마음을 사로잡아 하나님과 양들을 섬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을 둘러싸고 밀어내어 적당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에, 그의 심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솟구쳐 올라오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 심령에서 한없는 은혜와 감사가 솟아올랐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바울에게서 세상으로 향하는 마음을 제어하고 하나님과 양들에게로 몰아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사탄과 죄의 홍수에 떠밀려가는 양들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본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나의 죄를 위하여,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죄와 죽음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4-25)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에 감동된 사람은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삶의 목적이 자기를 중심으로 한 데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뀝니다(고후 5:1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바울은 과거 세상의 것들을 가장 귀히 여겼습니다(고후 5:15). 그러나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영접했을 때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였기 때문입니다(3:6).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면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자신을 왕 같은 제사장이요, 새 언약의 일군으로 보게 됩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로 여깁니다. 그리스도의 향기요 편지로 여깁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편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면 가치관이 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 변화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새로운 존재로의 변화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될 때에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덧입은 고귀한 존재가 됩니다.

3. 화목하게 하는 직분(고후 5:18-21)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높은 이상과 꿈,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직이나 힘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고, 힘과 조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화목(reconciliation)’이란 서로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가까이 하게 해서 화친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벽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과 화목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시고 피 흘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피가 죄로 인해 생긴 장벽을 허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짐승을 잡아 속죄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피는 일시적이고 불완전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9:12). 이 피는 인간의 죄를 온전히 정결하게 하십니다(3:25-26; 9:22).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싸움꾼만 있지 조정자, 화해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 5:19). 이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십자가의 복음을 말합니다. 화목케 하는 직분이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인간들을 화목하게 하는 복음의 일군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누구나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신입니다(고후 5:20). ‘사신이란 당시 로마 황제의 특사를 말합니다.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서의 그의 메시지는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도 인간 문제로 갈등합니다. 사람들과 관계성을 맺지 못해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불안하고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사랑을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사회는 각계각층의 반목, 분쟁, 미움, 남북 갈등, 동서의 갈등, 여야의 갈등, 직장에서 상사와의 갈등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그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은 모든 분쟁과 갈등의 해결의 키입니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삼으심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하고자 함입니다(고후 5:21).

 

우리가 앞에는 영원한 하늘의 집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들이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신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하나님의 사신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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