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창세기 22:1-24, 23:1-20

 

여호와 이레 :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복으로 부르셨습니다. 15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17장에서는 그의 내면성을 변화시켜주셨습니다. 18장에서는 동역자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21장에서는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 장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이 무엇이며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자세는 어떠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담의 불순종으로 깨어진 창조질서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 위에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장을 통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 하나님(22:1-2)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2:1-2).

 

그 일이란 창세기 21장의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21장에서 아브라함은 내적으로 가정 문제를 해결하고 이삭을 좋은 여건 속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외적으로는 두렵게 하던 아비멜렉과 화평을 맺음으로 안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남은 것은 이삭을 잘 키우는 일뿐이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끝나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가장 깨어 있어야 할 때였습니다. 이는 그가 축복 자체에 매이기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로, 제물 전체를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는 온전한 희생과 헌신을 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런 시험을 하셨을까요?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test)과 사탄으로부터 오는 시험(temptation)이 있습니다. 사탄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인간을 범죄케 하는 사탄의 궤계입니다.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회의와 불신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더 견고케 하기 위하여 주시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우리를 성숙한 믿음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이 시험에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당할 만한 시험만 주시며, 또한 피할 길도 주십니다(고전 10:13).

이런 시험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유일한 독자입니다. 이삭은 25년간 천신만고 끝에 얻은 둘도 없는 외아들입니다. 17년간 애지중지하며 키운 이스마엘을 내쫓을 만큼 소중한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씨입니다. 이삭은 인간적으로 보나 신앙적으로 보나 도저히 번제로 드릴 수 없는 귀한 자녀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얼마든지 하나님께 항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부르시고 훈련하실 때마다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시험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22:3-12)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22:3).

 

아브라함은 밤새워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했습니다. 그는 밤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번제 드릴 나무를 쪼개어 실었습니다. 그리고 이삭과 두 사환과 함께 모리아 산을 향하여 출발했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까지는 48km의 거리입니다. 드디어 그는 삼 일 걸려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사환들을 산 밑에 기다리게 하고 이삭과 함께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사환들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은 그들이 방해할 것 같아 미리 영적인 환경을 예비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어쩔 수 없어서 순종한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질서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고,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부활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22:5).

 

NIV 성경을 보면 이 말씀은 “We will come back to you”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We), 즉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사환에게 반드시 이삭과 함께 경배하고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그는 이삭으로 말미암아 창대케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삭을 죽이더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11:17-19).

이제 아브라함이 묵묵히 산 위를 올라가자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나무는 있는데 양이 왜 없어요? 지난번 번제를 드릴 때는 양이 있었잖아요. 참 이상해요!” 아브라함은 조금도 동요치 않고 이삭에게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22:28).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불신의 세력, 인간적인 생각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드디어 번제를 드릴 장소에 이르러 이삭을 결박하고 나뭇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때 만일 이삭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브라함에게 반항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청년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노인이었습니다. 이삭은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털 깎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예수님의 모형으로 봅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높이 쳐들고 아들을 향하여 내려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1-12).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줄을 아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그분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마음의 첫자리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가를 알아보고자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어떤 말씀이라도 순종하는가를 알아보셨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이 불합리할지라도 절대적으로 말씀을 앞세우는가를 알아보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냐? 이스마엘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약속의 자녀 이삭을 택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삭이냐? 하나님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은 절대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자 축복입니다. 이 축복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눈이 감기게 된다면 이는 슬픈 일입니다. 사람들이 축복을 받고 타락하여 비참하게 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축복 자체에 매이지 말고 축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붙들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축복 자체보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감동되어 A+학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시험에 통과한 아브라함(22:13-24)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신앙을 체험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을 들어 보니 숫양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22:13). 아브라함은 숫양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헌신할 때 그분께서 친히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신다는 놀라운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라고 했습니다(22:14). ‘여호와 이레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정금과 같은 귀한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귀한 것이 많다고 하지만 가장 귀한 것은 믿음의 체험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의 형편을 미리 아시고, 친히 예비하시고, 준비해 주십니다. 우리는 때로 장래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합니다. 결혼 문제, 노후 문제, 자녀 문제, 물질 문제, 진로 문제 등으로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러나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고, 넉넉히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 놓고 주님께 헌신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탄생합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7-18).

 

하나님은 해변의 모래알과 같고 하늘의 뭇별과 같은 많은 자식을 주실 뿐만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를 통해 주실 승리와 구원의 축복까지 약속하셨습니다. ‘네 씨란 단수로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태어나실 메시아를 가리킵니다(3:16). 하나님은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 가운데 메시아를 허락해 주셨습니다(1:1).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사 죄와 사망의 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저주와 심판에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땅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면, 아브라함 한 사람의 순종으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이삭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이삭은 때로 사랑하는 부모님이 될 수 있고, 시간과 물질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꿈이 될 수 있고, 학문이 될 수 있고, 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만나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장 사랑하는 것, 귀한 것을 마음 놓고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귀한 것 드려 네 몸과 네 마음도 주 위해 모든 것 바쳐 힘 다해 섬기어라 독생자 보내신 성부 은혜를 베푸시니 너희는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기어라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구원의 갑주를 입고 끝까지 싸워라”(찬송가 575).

 

요한복음 2115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영어로 ‘these’,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좇을 때 배와 그물을 미련없이 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지상 메시아 왕국의 꿈을 통한 국무총리 자리만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꿈을 가지고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내면을 아시고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어 있지 않은, 진실하고 순수하며 절대적인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순수해야 됩니다. ‘플러스 알파’(+α)가 개입될 때 이는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차선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사랑, 최상급의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최고의 사랑을 해야 최고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4. 막벨라 굴을 산 아브라함(23:1-20)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시험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라와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슬픈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사라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라는 127세에 가나안 땅, 헤브론에서 죽었습니다(23:1-2). 사라의 나이 127세는 신앙으로 출발한 지 62년이 지난 해였습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하고 감사의 단을 쌓은 곳입니다(13:18). 아브라함은 사라의 죽음으로 슬퍼하고 애통했습니다. 자기 아내가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의 슬픔은 보통 남편들의 슬픔과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서 믿음으로 살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때로는 먹을 것이 없어 애굽에 가야 했고,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기도 했고, 신변의 위협이 있어 아내를 자기 누이라고 속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사라가 옆에서 아브라함을 위로하고 힘을 주어 사명을 감당하도록 도왔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자 동역자요, 친구요, 위로자였습니다.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통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어나 사라가 묻혀야 할 땅을 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이 62년 동안 가나안에 살았지만 한 평의 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62년간 장막생활을 했음을 알려줍니다.

이때 헷 족속은 아브라함이 땅 한 평 없는 것을 알고 아브라함이 원하는 좋은 묘실을 택하여 사라의 장사를 지내도록 호의를 베풀었습니다(23:3-6). 그러나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일정한 값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사겠다고 했습니다(23:8-9). 이 말을 들은 막벨라 주인은 모든 사람이 듣는 가운데서 그 땅 뿐 아니라 그 속의 굴도 주겠으니 아무 걱정 말고 장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23:10-11). 이 정도의 호의면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땅 주인에게 은 400세겔(1세겔은 4일 품삯에 해당합니다), 우리 돈으로 약 16,000만 원을 주고 가나안 법원에 등기 이전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왜 이토록 호의를 거절하고 거금을 주며 막벨라 굴을 샀습니까?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현재는 헷 족속이 자기를 동정하고 호의를 베푸는 것 같지만 언제, 어디서 마음이 변할지 몰랐습니다. 특히 아브라함이 죽고 그를 모르는 세대가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또한 공짜로 받으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구입했던 것입니다. 그는 불신 세계에 살면서 불신 세계를 잘 이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공짜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불신자들에게 동정을 구걸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는 공짜를 좋아하고 남을 의지하는 노예근성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13:8)고 권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자세입니다.

 

가나안에 뼈를 묻고자 함이었습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는 죽을 때 자기가 살던 언덕 쪽으로 머리를 향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동물에게는 본래 서식처나 둥지로 되돌아오는 성질이 있는데 그것을 귀소성, 회귀성,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타향에서 살다가 죽으면 고향에 묻히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 묻히지 않고 가나안 땅에 묻히고자 했습니다. 이는 가나안 땅이 약속의 땅임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뿐만 아니라 후손까지도 그곳에 뼈를 묻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후손들을 위하여 많은 땅을 사서 유산으로 남겨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막벨라 굴을 하나님이 주신 거점의 구체적인 증거로 삼아 이 매장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사라, 그리고 이삭, 야곱, 요셉이 묻히게 되었으며 이 땅을 기초로 가나안 땅이 정복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사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로 끝나지 않고 자자손손 이곳에 묻히는 소망을 보았습니다.

양화진에 가면 많은 선교사들의 순교비가 있습니다. 그중 헐버트의 비문에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의 땅에 묻히고 싶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다는 것은 영미인들에게 큰 영광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영광보다 사명의 땅, 한국에 묻히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도 사명의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사명의 땅에 묻히고자 하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까지도 사명의 땅에 뼈를 묻고자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바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시고 그 후손을 통해 구체적으로 메시아를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마음의 첫자리에 주님을 모시고 이전보다 더욱더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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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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