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장(창 25:1-26, 26:1-35, 27:1-46, 28:1-5) 신자의 영향력: 이 땅에서의 번성
창세기 조회 수 2297 추천 수 0 2014.11.25 10:50:04제18장
창세기 25:1-26, 26:1-35, 27:1-46, 28:1-5
신자의 영향력 : 이 땅에서 번성하게 하리라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3-4).
이 장은 믿음의 3대 조상 중 하나인 이삭의 믿음과 그의 배후에서 복을 주신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삭은 3대 조상 중 가장 평화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처럼 동서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밟지도 않았고, 야곱처럼 분투적인 인생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브엘세바를 중심으로 사색하며, 맛있는 고기를 먹으며, 아내를 사랑하며 여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겉으로 볼 때는 그다지 위대한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며 이를 야곱에게 잘 계승했습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우리는 이 장에서 불신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삭의 믿음과 그를 복주시는 이삭의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창 25:1-26)
아브라함은 오래오래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다가 17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을 막벨라 굴에 장사지냈습니다(창 25:7-10).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죽자 이삭을 복주셨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40세에 결혼하여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했습니다(창 25:20). 그런데 그의 아내 리브가는 시어머니인 사라처럼 자식을 낳지 못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열두 명이나 낳았는데 이삭은 결혼한 지 20년이 넘어도 자식 하나 없었습니다. 1년, 2년, 5년, 10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삭은 독자였고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계승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이삭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당시 풍습대로 첩을 얻어 소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리브가를 구박할 수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운명주의에 빠져 ‘내가 무슨 천만인의 아버지야!’ 하며 자학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삭이 그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창 25:21상).
그는 자신의 인생 문제를 놓고 20년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들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계승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한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20년 동안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20년간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년까지는 자식의 문제를 하나님의 역사 방법대로 얻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85세 때에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20년간 기도했습니다.
이삭은 20년 동안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았을 때 사탄이 주는 회의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하나님 믿는다고 유난스럽게 결혼하더니 그렇게 되었군. 믿어도 별수 없어!” 하는 조소와 조롱을 받을 때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이런 내적, 외적인 시련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때가 되면 반드시 자식을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감사함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되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란 내면의 회의, 불신, 의심과의 싸움입니다. 그가 내적, 외적 시련과 싸우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식을 주셨습니다(창 25:21하). 자식을 주시되 한 번에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그는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주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낙망치 아니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과부가 그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원통함을 재판관에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러 번 그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간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비유는 낙망치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조지 뮬러는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뮬러는 1805년 9월 27일 프러시아(현 독일) 출생으로 1835년 할레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선교사로 건너가 브리스톨 애슐리 다운에 고아원을 세워 2,000명이 넘는 고아들을 기도로 돌보았습니다. 그는 15만 명의 고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까지 ‘고아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그는 특별한 기도의 응답을 5만 번 이상이나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는 것은 곧 생명줄을 놓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기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복을 받을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고 복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가정에는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잉태했는데 아이들이 뱃속에서 씨름할 때마다 배가 아팠습니다. 그녀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창 25:22) 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산부인과를 찾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리브가는 평소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아기를 낳자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 이름을 ‘에서’라 했고, 후에 나온 자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고 하여 ‘야곱’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행위나 능력 이전에 그를 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불만을 갖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왜 에서에게 전혀 기회를 주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야곱을 택하셨는가? 이는 불공평하지 않나?’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와 능력만 보고 택하신다면 누구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에 바울은 로마서 9장 11-12절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의 택하심은 인간의 행위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의지나 선행, 전통, 관습이 전혀 개입될 수 없습니다. 만일 인간의 뜻과 의지가 개입된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구원 또한 언제든지 인간의 의지나 뜻에 의해 파기됩니다. 따라서 행위 이전에 하나님의 선택은 공평하고 은혜로운 방법입니다.
2. 그랄에 거하도록 명하신 하나님(창 26:1-15)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는데, 이삭 때에 와서 그 땅에 또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창 26:1). 이삭은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그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랄로 갔다가 일자리가 많은 애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이삭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 26: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창 12:1), 이삭에게는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아픔도 크지만 떠나지 않는 아픔도 또한 큽니다. 흉년이 들어 처자식이 굶고 있는데 양식이 풍부한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이 물질을 따라 사명의 땅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명의 땅이요, 축복의 땅에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먹이를 찾아다니는 철새와 같은 신앙생활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철새와 같은 신앙생활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 왜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까? 이는 순종을 통해서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아름다운 에덴을 주셨습니다. 단 한 가지, 인간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바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불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고자 할 때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순종할 때 믿음의 비밀을 체험하고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순종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순종은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도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 5:8). 그때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순종만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순종 뒤에는 하나님의 복이 임합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3-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삭을 축복하고자 하심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창 26:5). 이와 같이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살면 당대는 물론 후손까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삭은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이삭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창세기 26장 6절에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라는 말씀대로 그는 굶어 죽을 각오를 하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를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삭은 그랄에 거하면서 그 땅의 강포가 두려워 부전자전으로 아내를 누이라 속였습니다(창 26:6-7). 그런데 어느 날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아비멜렉이 보았습니다. 리브가가 이삭의 누이가 아니라 아내임이 드러났습니다. 이삭은 불신자인 아비멜렉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이삭의 가정을 친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모든 위험과 재난과 강포로부터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여 그랄에 거주했을 때 이삭을 축복하시되 흉년 중에도 백 배의 결실을 얻게 하셨습니다(창 26:12). 그는 마침내 창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소와 양이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아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고자 하시면 흉년 중에도 풍년을 이루게 되고 불황 중에도 호황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이성과 생각을 초월합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광야에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풍을 일으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에서 고기 냄새가 나도록 메추라기를 먹이셨습니다.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자 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 사명의 땅에 살았을 때 여러모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을 때 하나님의 한량없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명의 땅을 떠나지 않고 살고자 할 때 남모르는 십자가와 아픔이 있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드려야 하고, 자기 이상과 꿈을 깨야 합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핍박을 받고 애매히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승진이 남들보다 늦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이것이 힘이 들고 손해 보기 싫다고 욕심과 물질을 따라 세상으로 떠나게 되면 잠시는 편할지 모르지만 후에는 환난과 곤고함이 있게 됩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살면 당장 손해 볼 것 같지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큰 복을 받고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사명의 땅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좀 힘이 들더라도 사명의 땅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복을 받는 지름길이자 복의 샘이 됩니다.
3. 장소를 넓혀주신 하나님(창 26:16-36)
우물 파는 이삭
이삭이 거부가 되자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우물을 흙으로 메웠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은 공개적으로 이삭에게 이곳을 떠날 것을 요구했습니다(창 26:16하). 이삭은 이들과 싸우지 않고 떠나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그는 그와 싸우지 않고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우물이라고 생트집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곳 이름을 ‘에섹’, 즉 다툼이라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이삭은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그들이 자기 것이라고 하여 다시 옮겼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싯나’, 즉 대적함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다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이제는 그들이 더 이상 다투지 않아 그 이름을 ‘르호봇’, 즉 넓은 우물이라 지었습니다.
당시 우물은 생존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물이 있어야 양을 칠 수 있고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한 번도 싸워보지 않고 양보만 했습니다. 이런 이삭을 보면 좀 남자다운 기백도 없고, 용사다운 모습도 없어 보입니다. 이삭은 치열한 생존경쟁 사회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 26:22하).
이삭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축복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흉년과 불황 중에도 풍년과 호황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삭은 복의 근원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100배의 복을 주셨습니다(창26:24-25).
우리는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는 법과 주님이 주신 복을 잘 누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도 사람이기 때문에 우물을 뺏길 때 감정이 일어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때 감정대로 싸우기는 쉬워도 감정을 억제하며 다른 우물을 파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그의 내면은 우물처럼 깊고 신선했으며, 대양처럼 넓고 양처럼 온유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우리는 보통 생각하면 땅을 얻으려면 히틀러처럼 포악하고 권모술수가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총과 칼로 쟁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온유’란 노여움과 폭력과 잔인의 반대로 외적인 것보다 내적인 것을 말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사랑이 많은 인자하신 어머니와 같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비단결처럼 부드럽습니다. 마음이 넓고 이해심이 깊어 어떤 사람도 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때에도 쉽게 노하거나 보복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쓴 뿌리를 품지 않습니다.
그런데 체질적으로 온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두 잔인합니다. 돌도 안 지난 애들도 자기보다 어린 애를 보면 얼굴을 할킵니다. 그러나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헬라어로 ‘온유함’이란 길들여진 말이란 뜻입니다. 쓸모없는 야생마가 훈련을 받으면 온순해져 유용한 말이 되듯이 훈련만 받으면 누구든지 인격이 다듬어져서 온유해집니다.
모세는 혈기가 많고 감정적이고 성격이 격했습니다. 한 번은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애굽 사람을 죽여 모래밭에 묻어 버렸습니다. 또한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40년간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는 광야 훈련을 통해 온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그를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민12:3).
마태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유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렇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12:19-20).
베드로는 거칠고 혈기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온유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23-24).
토인비는 “무력을 쓴 나라는 망하고 온유의 법칙을 쓴 나라는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전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세인트 헤레나 섬에서 “나는 칼로 전 유럽을 정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전 인류를 정복했다”고 했습니다. 광풍은 행인의 외투를 벗길 수 없지만, 따뜻한 햇살은 행인의 외투를 벗깁니다. 옳은 말만 하고 가시 같고 계모 같은 분들은 사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온유한 이만이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오늘날은 물질문명과 과학이 발달하여 그 어느 시대보다도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 어느 시대보다도 영적인 기근이 심한 시대입니다.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우리 영혼의 생명을 채워줄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 8:11-13).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세상 사람들은 말씀을 외면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쾌락과 정욕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삶의 여백이 없습니다. 삶의 여백이 없다보니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영혼이 메말라 마른 낙엽처럼 바삭바삭 소리가 납니다. 심령이 늘 피곤하고 무기력합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의 우물을 파서 그들이 성령의 생수를 마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일용할 양식으로 하루를 출발해야 합니다. 이때 그들은 물찬 제비처럼 청년다운 기백을 가지고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고 우리 영혼에 참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말씀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고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화친을 맺으러 온 아비멜렉
창세기 26장 26-33절을 보면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 보좌관인 아훗삿을 대동하고 화친을 맺으러 왔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삭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았습니다. 이삭은 삶으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그는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향기를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불신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말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습니다.
오늘날 불신자들이 신자들을 보고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만 잘하지 실생활에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향력은 힘의 행사가 아니라 소금처럼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삶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런 향기가 내면에서 피어오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써 가정, 학교, 직장과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의사 부부인 이원장, 민원장은 의과대학을 나와 서울에서 개원을 하였습니다. 큰 키에 미인인 민원장은 학생시절부터 인기가 높은 여학생이었습니다. 이 자매는 힘들었든 이턴 레지던트 시절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 조건이 좋은 청년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조용하고 믿음있는 현재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 남편은 이삭과 같이 조용하고 내면성이 있는 분입니다. 이들은 성경의 이삭과 리브가와 같이 환상적인 배필이 되었습니다. 민원장은 자신이 믿음있는 배우잘르 만나서 결혼하게 된 것을 늘 감사히 여깁니다. 이들은 병원을 개원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던 대로 마음을 같이하여 병원기도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골방에서 기도하다가 지금은 골방에서 나와 병원로비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 8시 20분에 병원예배를 드립니다. 이 예베에는 병원직원과 입원환자들까지 참석합니다. 직원으로 구성된 바나바 찬양대를 만들어 특송을 은혜롭게 부릅니다. 환자 중에 자원하여 찬양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환자였던 자매가 은혜를 받고 퇴원 후에도 매주 와서 플롯으로 예배를 섬기고 있습니다. 처음에 믿음이 없던 간호사들과 직원들도 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의 싹이 나고 인근 교회에 나가기도 합니다. 이 병원은 몸의 병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상담도 하여 마음까지도 치료해 주고자 애씁니다. 또한 오고 가는 선교사들을 사랑으로 섬깁니다. 매년 여름에는 전 가족이 아프리카 등 오지에 가서 의료봉사와 선교지를 심방하여 선교사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병원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믿는 한 가정이 나타내는 조용한 믿음의 영향이 얼마나 크로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삭은 그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평안히 보냈습니다. 그날에 이삭은 또 우물을 파서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파서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풍성하게 했습니다.
4. 계승의 하나님(창 27:1-46, 28:1-5)
이삭은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지자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맏아들인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먹고 그를 마음껏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지자 분별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그 시대의 전통과 관습을 좇아 에서를 축복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했습니다. 리브가의 지혜로 하나님의 축복이 하나님의 뜻대로 야곱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창세기 27장 27-29절에는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나옵니다. 야곱은 영육 간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야곱을 외가에 보내면서 믿음의 결혼을 할 것을 당부하며 새롭게 그를 축복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 28:3-4).
야곱은 에서로부터 미움을 사 외가인 밧단아람으로 쫓겨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창 27:41-45, 28:1-5). 반면에 이삭은 에서에게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창 27:39-40)고 했습니다.
이삭의 생애는 아브라함에게 받은 축복을 잘 누리다가 이를 야곱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다시 말해 이삭의 생애는 야곱을 축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신앙을 한마디로 요약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히 11:20).
이삭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분명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땅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전권대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축복기도를 하면 축복을 받고 저주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계승하는 축복의 통로, 물줄기라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자녀를 축복하면 자녀들이 축복을 받는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4-27).
세상 역사는 단절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계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기도와 영적인 분별력, 그리고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조상들의 위대한 믿음의 유산을 지켜갈 수 없고 계승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척 못지않게 계승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성경의 연인’(Bible Lover)이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1900년대 미국 선교사들은 파송선교기관에 보내는 편지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을 ‘성경의 연인’, ‘성경 기독교’(Bible Christianity)라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성경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배들의 이 고귀한 신앙을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삭은 단순한 생각, 단순한 마음, 단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면 연약해 보입니다. 그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같이 보입니다. 이런 사람이 불신 사회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킨다는 것은 심히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여러모로 축복하시고 그 인생길을 순탄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충성스러운 아브라함의 종과 믿음의 여인인 리브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잘 누리다가 야곱에게 그 축복을 계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는 인간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연약한 사람은 연약한 대로,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대로 쓰셔서 역사의 주역으로 세우십니다. 또한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도록 우리를 돌보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쉼을 주시고 순풍에 돛 단 배와 같이 순탄한 인생길을 가게 하십니다. 잔잔한 강 같은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불신자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찬송가 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