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장
창세기 29:1-35, 30:1-43, 31:1-55
하나님의 훈련 : 야곱, 밧단아람에서 20년을 지내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창 31:3).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 12:5-6).
징계란 훈련(discipline)이란 뜻입니다. 훈련을 받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훈련이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징계는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후에 그로 말미암아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습니다.
히브리 격언에 “하나님은 부서진 것을 사용하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서진 흙에서 곡식이 나고, 부서진 곡식이 빵이 되고, 부서진 빵이 에너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을 갖추려면 고난의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한계를 알게 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무릇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들은 다 고난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편 119편 71절에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벧엘 서원대로 복을 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20년의 세월 동안 훈련만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하나님은 야곱의 서원을 따라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을 훈련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1. 라헬을 사랑한 야곱(창 29:1-30)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가벼운 발걸음으로 밧단아람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외삼촌의 딸인 라헬이 양에게 물을 먹이러 나왔습니다(창 29:1-10). 그는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여독을 풀고 한 달간 열심히 일했습니다. 이때 라반이 야곱에게 제안했습니다.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창 29:15).
라반은 열심히 일하는 야곱을 보고 정식으로 노동계약을 맺고자 했습니다. 이에 야곱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보통 사람들은 물질을 요구합니다. 물질이 있어야 결혼도 하고 출세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물질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창 29:18).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작은딸인 라헬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라헬을 얻고자 7년간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여자가 라헬만 있는 것도 아닌데 야곱은 7년간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돈보다 사랑을, 사랑보다는 명분을 귀히 여겼습니다. 이 명분은 세상의 명예가 아니라 영적인 명예였습니다. 명예 다음 사랑, 그 다음에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야곱의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명분보다 물질을 최고로 생각합니다. 명분보다 사랑이 최고인 줄로 압니다. 이것은 에서의 가치관입니다.
야곱은 라헬과의 결혼을 꿈꾸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라헬을 사랑하다 보니 7년이 수일같이 지나갔습니다. 야곱은 부모님의 뜻대로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가정을 이룬다고 하여 로맨스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로맨스는 세상 사람들이 좇아 할 수 없는 기품과 멋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순수하고 진실했습니다. 만일 야곱이 육적인 사랑을 했다면 일 년도 채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기한이 차자 야곱은 라반에게 라헬과의 혼인을 청했습니다.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창 29:21)라는 야곱의 원대로 라반은 혼인 잔치를 베풀었지만 그날 밤 라헬 대신에 레아를 야곱에게 들여보냈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은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전깃불이 없어서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든지, 아니면 그날 밤에 포도주를 많이 마셔 정신이 혼미하여 알아보지 못했든지, 어쨌든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지난 7년 동안 이날을 위해 그 많은 날을 수고하며 기다렸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야곱은 당장 라반을 찾아가 따졌습니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창 29:25).
이에 라반의 변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창 29:26-27).
라반은 그 지방의 관습법을 말했지만 실상은 야곱을 7년 더 부려먹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7일을 채운 후에 라헬을 아내로 주면서 7년을 더 봉사하도록 했습니다. 세상에 돈을 벌기 위해 두 딸을 한 남자에게 주는 아버지가 어디 있으며, 사위이자 조카의 약점을 이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입니까? 야곱도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형의 배고픈 약점을 이용해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샀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 축복을 쟁취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이에 비해 더 지독하고 한술 더 뜨는 사람이었습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은 야곱과 라반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야곱은 분함을 참으며 삼촌을 위해 7년을 더 봉사했습니다(창 29:30). 그는 한 여자에 대한 집념 때문에 14년 동안 무임금으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라헬을 향한 야곱의 사랑은 진실하고 순수했습니다.
2. 열두 아들을 얻은 야곱(창 29:31-35, 30:1-24)
14년간 라헬을 위하여 무보수로 일한 것은 결코 헛되고 무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야곱은 네 아내들을 얻었고 열두 아들들을 얻었습니다. 창세기 29장 31-34절을 보면 이삭은 레아로부터 르우벤(보라 아들이라), 시므온(들으심), 레위(연합함)를 얻었습니다. 레아는 아들들의 이름을 모두 남편의 사랑 없음을 한탄하는 식으로 지었고, 네 번째 아들인 유다(찬송함)를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 29:35) 하면서 그 이름을 찬송함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처럼 레아는 네 명의 아들들을 낳고 난 후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헬은 아들을 낳아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창 30:1)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이 말을 듣고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창 30:2) 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라헬은 몸종 빌하를 통해 아들을 낳아달라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라헬은 시녀 빌하를 통해 두 아들들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을 단(억울함을 푸심)이라 하고 둘째 아들 이름을 납달리(경쟁함)라고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레아는 자기가 더 이상 아기 낳지 못함을 보고 역시 몸종 실바를 통해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실바가 아들을 낳자 레아는 이름을 갓(복됨)이라 했고, 또다시 아들을 낳자 이름을 아셀(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합환채를 들에서 얻었습니다. 합환채는 모양이 사람 모습을 닮았고 의약제로 사용되며 모양과 자극적인 향 때문에 다산의식이나 최음제로 사용되는 다년생 뿌리채소류의 일종입니다. 그는 이것을 어머니 레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레아는 이것을 라헬에게 팔고 대신 자기가 오늘 야곱과 동침하겠다고 했습니다. 라헬은 이에 동의했습니다. 이로 인해 레아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잇사갈(값)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레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스불론(거함)이라고 했고, 딸을 낳았는데 이름을 디나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라헬도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요셉(더함)이라 했고, 후에 베냐민(오른손의 아들)을 얻었습니다(창 35:16-18).
라헬은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반면에 아들을 낳지 못했고, 레아는 아들을 잘 낳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던 중에 열두 아들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들들의 이름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면 모두 아내들이 사랑싸움에 울고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낳고도 그 이름을 지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라반과 두 아내들을 통해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훈련은 무모해 보이지만 야곱이 반드시 받아야 할 훈련이었습니다. 야곱은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훈련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그를 훈련하셨습니다(삼하 7:14).
하나님은 열두 명의 아들들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벧엘에서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허다한 자손이 생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몸에서 메시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 유다를 통해서 약속된 메시아가 탄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훈련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훈련의 뜻을 잘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 인류 구속의 역사를 이루고 계셨습니다. 시계의 톱니바퀴는 각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모든 톱니바퀴는 일정한 시간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와 나의 길이 어긋나게 전개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훈련받을 때, 고난을 당할 때 슬퍼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분의 뜻대로 역사하시며 위대한 섭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3. 물질을 구하는 야곱(창 30:25-43, 31:1-2)
야곱이 14년을 채운 후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라반은 그에게 보수를 정해 주며 그를 붙들어두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야곱은 라반에게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창 30:30) 하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이제 물질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라반과 야곱은 2차 노동계약을 맺었습니다. 그 계약은 이러합니다. 야곱은 삼촌의 양 중에서 아롱지고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는 다 가려내고 흰 양만 있게 한 후 아롱지고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는 자기의 소유로 삼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라반은 흰 양들에게서 아롱지고 점 있는 자가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양들을 다 가려내어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였습니다. 야곱은 아주 불리한 여건 속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사실 흰 양이 얼룩한 양을 낳지는 않습니다. 그가 이런 계약을 맺은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또 이렇게 해야 변덕이 심한 라반과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 재산을 확실히 챙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노동계약을 맺자 재물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야곱은 양들이 아롱지고 점 있는 새끼를 낳도록 도전했습니다. 우선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그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벗긴 나뭇가지를 양들이 개천에서 먹는 물구유 앞에 세웠습니다. 이는 양들이 이 얼룩한 것을 보고 얼룩한 새끼를 낳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기발한 아이디어지만 그런다고 흰 양들에게서 얼룩얼룩한 새끼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야곱의 경우 그것이 통했습니다. 흰 양들이 정말 얼룩얼룩하고 아롱진 새끼 양들을 낳았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비실거리는 양들은 내버려두고 몸이 튼튼한 양들 앞에만 이 나무를 두어 그 가지 곁에서 튼튼하고 실한 얼룩이, 아롱이를 낳도록 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도우셔서 그를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창 30:37-43, 31:8-12).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 30:43).
야곱은 양들이 새끼를 잘 낳자 이것으로 장사하여 노비와 낙타, 나귀를 많이 사들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같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손발을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자들에게는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도전하고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와 함께하십니다. 믿고 도전하는 자에게 놀라운 능력을 행하십니다.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도전하면 과학과 상식을 넘어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찌하든지 해보고자 기도하고 구하고 찾을 때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
야곱은 라반 밑에서 사랑을 얻기 위하여 14년, 물질을 얻기 위하여 6년, 모두 20년을 봉사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라반을 어떤 자세로 섬겼습니까? 야곱은 비록 머슴살이를 했지만 적당히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했습니다(창 31:6, 38-42).
야곱이 거부가 되자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에 대하여 불평하기 시작했고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창 31:1-2). 이때 하나님은 라반에게서 떠나도록 야곱에게 방향을 주셨습니다.
4. 밧단아람을 떠나는 야곱(창 31:3-55)
벧엘의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3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 31:13).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의 서원을 기억나게 하시고 이제 그를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에 야곱은 레아와 라헬 두 아내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동안 자신을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가를 말했습니다. 그러자 레아와 라헬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팔고 자신들의 돈을 다 먹었다며 그동안 쌓인 불만을 터뜨렸습니다(창 31:14-15).
이에 야곱은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을 때 아내와 자녀들과 재산과 가축, 노비를 이끌고 고향으로 야반도주했습니다. 뒤늦게 이를 안 라반이 야곱을 쫓아가 그를 해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야곱을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고 야곱은 안전하게 떠날 수 있었습니다(창 31:24).
라헬은 고향을 떠날 때 드라빔을 가지고 나왔습니다(창 31:25-42).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으로, 당시 가문의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라반은 드라빔이 없어진 것을 알고 야곱 일행을 추격하여 수색작전을 폈습니다. 그러나 그는 드라빔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라헬이 낙타 안장 아래에 드라빔을 놓고 그 위에 앉아 경수가 마침 나서 일어나 아버지를 영접할 수 없다고 시치미를 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라반이 드라빔을 찾지 못하자 야곱은 이를 기회로 라반을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라반과 평화협정을 맺었습니다(창 31:43-55).
하나님은 밧단아람에서 벧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벧엘 서원을 기억하시고 밧단아람에서 그의 삶에 개입하시고, 훈련하시고, 축복하시며, 그의 서원대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빈손으로 왔지만 밧단아람을 떠날 때에는 네 아내들과 열한 명의 아들들과 딸 한 명, 그리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은 신실하지 않아 약속을 지키지 않지만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