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로마서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로마서는 동서고금에 걸쳐 수많은 학자들이 그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중에 대영박물관 관장이었던 필립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세계를 다 준다고 해도 대영박물관과 맞바꾸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만일 바울이 친필로 쓴 로마서 한 페이지만이라도 가져온다면 그것과는 이 대영박물관을 서슴없이 맞바꾸겠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성경은 주후 300년대의 사본을 수집해서 편집한 것입니다. 필립스는 복사본이 아니라 바울이 파피루스에 친필로 쓴 원본을 가져오면 대영박물관과 맞바꾸겠다고 한 것입니다.

슈페너는 성경을 하나의 반지로 비유한다면 로마서는 그 반지의 보석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는 신약성경의 중심부요, 순수 복음이다라고 했고, 칼빈은 로마서를 공부하지 않으면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학자는 천재지변으로 온 세계의 성경책이 없어진다고 해도 로마서만 있으면 충분히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로마서가 다 남겨지지 않는다고 해도 로마서 8장 한 장만 있으면 그것만 보고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학자들이 로마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 어느 서신에서보다도 훨씬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 내용은 모두 세 가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헬라 식의 편지 쓰는 관습은 우리와 좀 다릅니다. 보통 우리는 사랑하는 누구에게등 받는 사람의 이름부터 씁니다. 그리고 내용을 쓰고, 마지막에 누구로부터등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밝힙니다. 반면에 헬라 식의 편지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먼저 쓴 뒤 내용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발신자를 먼저 밝히고 7절에 가서야 수신자를 썼습니다. 이는 바울이 복음에 심취되었기 때문입니다(1:1). 복음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긴 바울은 서식의 형식을 잊어버린 채 복음을 길게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가슴은 복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은 복음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만 하면 열변을 토하곤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된 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강권하다란 마부가 말을 몰듯이 한다는 뜻과 둘러싸고 밀어낸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솟구쳐오르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바울은 스스로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1:1).

 

은 헬라어로 둘로스(δολος), 즉 노예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노예제도가 없기 때문에 노예가 얼마나 천한 신분인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인구(120만 명)25-35%40만 명 이상이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오늘날 공장의 기계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다. 다만 노예는 말을 할 줄 알고, 당나귀는 말을 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예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노예시장에 가면 반나체로 단상 위에 전시되어 있는 노예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노예가 있으면 그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집에 데리고 와 뚫려 있는 귀에 자기 이름을 새긴 귀걸이를 달았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부터 노예는 새로운 주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런 노예에게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자기 생각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의지나 꿈이나 계획을 갖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종은 주인에게 예속되어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이 보내는 곳으로 어디든 가야 했고, 무슨 일이든 순종하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당대의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라는 양대 산맥을 섭렵한 대석학이었고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자랑스럽게 로마 성도들에게 밝힌 것입니다.

본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그의 가슴에는 예수님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9:15)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은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고, 반항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구약성경 한 권을 들고 아라비아 광야로 가서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묵상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에서 만난 바로 그 예수님이 구약에 계시된 메시아이심을 확신했습니다(1:17).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은 예수님을 추종하는 이들을 핍박하고 다 붙잡아 죽이고자 하던 삶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주님의 종으로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9:16), 예수님의 종으로 살고자 결단했고,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만 종이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종이 아니라 신자로 살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1:6).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도 자신과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belong to Jesus)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님의 소유, 노예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6).

우리는 본래 죄 중에 태어난 죄의 종이었습니다. 종의 본질은 순종과 섬김입니다. 우리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의 소욕을 따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죄의 소욕을 따라 살아온 우리의 몸에는 죄의 습성(근성)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예속에서 벗어나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 대한 주인 됨을 버리지 않으면 주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종은 자기 것이 없고, 자기를 위하여 살거나 자기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14:7-8).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바울과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겉으로 보면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삶을 통해 구별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종으로 삽니다. 반면에 비신자들은 내가 주인으로 삽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삶이요 형태입니다. 내가 주인으로 사는 사람과 내가 주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사람과 내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삶의 모습에서, 삶의 자세에서, 삶의 질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아담의 죄성을 따라 죄의 욕망에 이끌려 살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여기고,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예수님의 소유된 자로서 전적인 보호와 사랑 속에서 살게 됩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고 칭찬을 듣게 됩니다. 죄의 멍에를 메고 살던 삶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임받게 됩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새찬송가 549).

 

2. 사도, 바울

 

사도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ἀπστολος), 기독교에서만 쓰는 독특한 용어인데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직접 열두 제자를 뽑아 사도라 칭하셨습니다(6:12-13). 성경은 12명의 사도 외에 바울, 바나바, 주의 형제 야고보를 사도라고 칭합니다(14:4; 고전 15:7; 1:19).

바울은 예수님의 열두 사도가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사도라고 불렀습니다(1:1).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고, 하나님이 친히 그를 부르시고 위임하시고 권위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도록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부여받은 칭호로서 공적인 특권과 존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종은 개인적이고 겸손함을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바울은 종이었고,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세상에 대해서는 사도였습니다.

종이 일반적인 것이라면 사도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됩니다. 사도에게는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사도이기 때문에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성도들은 사도의 직분을 가졌지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들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었습니다(1:7). 교회사를 보면, 사도 이후에 사도직을 계승한 사람들을 가리켜 속사도라고 일컬었고, 그다음을 교부라고 칭했습니다. 사도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가 아니고 사도의 직분(apostleship)을 계승하여(1:5)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3. 택정함을 받은 바울

 

택정함이라는 단어는 바리새’(ἀφωρισμγος)의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바리새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율법을 위해 택함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택정함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레미야 선지자(1:5)와 대비하여 하나님이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정하시고[set apart(NIV); separate(KJV)]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르셨다고 했습니다(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15-16).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과 만난 것은 단순한 회심 정도가 아니라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율법주의와 영지주의가 교회를 혼탁하게 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시기 위해 그를 택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누구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명 안에 특별한 사명(the mission)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할 특별한 사명(the mission)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사명은 각기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제 경우는 대학 선교라는 특별한 사명(the mission)을 부여받았습니다. 저는 이를 위해 36년간 대학선교를 위해 사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명 안에 특별한 사명을 감당할 때 삶이 역동적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부르심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택하여 부르심은 복음전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오늘날 복음에 대한 편견이 많습니다. 복음을 복주머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신학이 복음을 상대화시키고 신비주의, 자유주의, 근본주의, 신정통주의, 신사도 운동 등이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시킵니다. 이단들이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은 복음을 바르게 증언하고 전하게 하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정체성과 종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은 사도의 직분을 계승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자세입니다.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고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주소서”(새찬송가 320).

02. 로마서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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