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로마서 1:2-6
그 이름을 위하여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롬 1:5).
복음은 종교와 다릅니다. 그 차이는 이러합니다. 첫째, 복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 구원의 소식으로,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인간이 만들었다’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이 계신다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반면에 모든 종교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종교의 창시자는 사람입니다. 사이비 종교나 이단의 교주 또한 모두 사람입니다. 인간이 만들었다는 것은 구원의 출발점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창시자는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둘째, 구원의 영원성입니다. 불교는 수행 여하에 따라 구원의 효력이 달라지고, 수행 강도에 따라 환생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이 영원하고, 누구도 그것을 변개할 수 없습니다(롬 8:31-38). 구원받은 우리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보좌에 있으며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종교도 한 번 믿음으로써 이런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복음의 기원과 내용, 그리고 성격과 목적, 범위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복음의 기원
로마서 1장 1절은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2절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153회 나옵니다. 성경 66권 중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로마서에 가장 많이 나옵니다. 로마서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 이유는 복음이 하나님의 심장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묵상이나 환상으로 기록된 것 또한 아닙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심장에서 나온 은혜의 복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감격스러워서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그리고 로마서 마지막 절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7).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한 후 벌을 내리시기 전에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보내고자 계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 말씀은 사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할 것이지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셔서 사탄의 머리통을 깨고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를 가리켜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원시복음을 기초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점점 구체화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며(창 22:17-18), 유다 지파를 통해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 49:8-12). 그리고 다윗의 가문에서 메시아를 보내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렘 23:5; 삼하 7:8-12). 더 나아가 동정녀를 통해 메시아가 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사 7:14). 뿐만 아니라 메시아의 탄생 장소가 베들레헴이며(미 5:2), 메시아가 선지자이시고(신 18:15), 왕이시고(단 9:24),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메시아이시고(사 53장),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2, 49-50장). 이처럼 하나님은 각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탄생 장소, 탄생 방법, 그리고 그 사역을 자세하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두 가지 요소, 즉 ‘계시’와 ‘영감’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계시는 가려져 있던 것을 치워서 그 안에 있는 실체를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이고, 영감은 사실들을 진술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셨기 때문에 권위가 있고 절대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계시와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 삶의 원리요 표준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원리대로 살아야 하고, 설교도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 해석도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이 메시아의 약속의 말씀이라면,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의 성취요 완성입니다.
2. 복음의 내용
로마서 1장 2-3절을 보면 “그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아들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왜 성경 저자들은 메시아의 명칭을 각기 달리했을까요? 이는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 저자들은 헬라 문화 배경의 사람들에게는 메시아를 ‘로고스’(λὀγος)라고 했고(요 1:1), 로마 문화 배경의 사람들에게는 ‘주’(κὐριος)라고 했습니다. 이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한편 히브리 문화 배경의 사람들에게는 ‘아도나이’, 곧 ‘주’(Lord)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아들’(υἱὀς)이었습니다. 아들은 메시아, 곧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시편에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 2:12)고 했는데, 여기에서 그의 아들은 예수님, 곧 메시아를 뜻합니다. 본문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표현했습니다. 로마서를 받아 보는 사람들은 비록 로마에 살고 있었지만 대부분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아들이라고 쓴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인성으로 다윗의 혈통에서 나신 예수님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롬 1:3).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것에는 세 가지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약속된 메시아라는 뜻입니다(사 7:10; 삼하 7:12-17; 사 11:1). 성경은 다윗의 혈통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습니다. 둘째, 메시아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한 왕이시라는 뜻입니다(마 1:1; 눅 1:32). 다윗은 장차 나타날 메시아의 모형이고, 그의 왕국은 메시아 왕국의 모형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인간으로 성육신하신 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빌 2:6-9).
종교의 창시자들을 보면 탄생을 신비롭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탄생 자체가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온전한 인성을 가진 완전한 인간으로, 즉 완전한 인성과 영혼, 이성, 감정, 의지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연약한 인간을 잘 아시고 이해하십니다. 여기에 성육신의 은혜와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과 달리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십니다(히 4:15).
성결의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예수님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성결의 영’이란 거룩한 영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이는 부활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성육신하시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셨고, 태초부터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취하신 모양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오실 때 예수님은 힘없는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만방에 선포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예수님의 참모습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육체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의 신성의 영광이 감추어져 있었고, 능력이 감추어져 있었으며, 은혜와 사랑의 풍성함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로 인해 주님의 영광과 능력이 선포되었고 주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영화로움의 풍성함이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종의 형체만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부활로 인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의 선포입니다.
그리스도요, 주이신 예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하).
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열 번이나 언급했습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고(마 1:21)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는 전능하시고 영존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 왕이라는 뜻입니다. 당시는 성도들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황제가 주(κὐριος)였기 때문입니다. 황제를 주라고 고백하지 않으면 화형을 당했습니다. 특히 네로 황제와 도미티언 황제, 그리고 줄리안 황제 때 황제숭배사상이 온 세계를 뒤덮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했습니다.
속사도 시대에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이 있었습니다. 로마 총독이 그를 화형에 처하기 위해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마지막으로 질문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가이사 황제를 단 한 번만이라도 주라고 시인하고 그를 찬양하라. 그리고 단 한 번 그리스도를 욕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놓아줄 테니 너는 조용히 다른 곳에 가서 여생을 보내라.”
그때 폴리갑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86년 동안 그리스도를 섬겨왔지만 주님은 저를 한 번도 배신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주를 배반할 수가 있겠습니까? 주를 위해 죽는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는 끝까지 황제를 주로 시인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주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불태워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교부 터툴리안에 의하면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는 끝까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며 증거했기 때문에 로마 당국이 그를 놋쇠 가마에 집어넣어 서서히 구워 죽이는 형벌을 가했다고 합니다.
일경(日警)은 주기철 목사로 하여금 신사를 참배하도록 온갖 유혹과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들은 주 목사에게 신앙을 부인하든지, 아니면 못이 박힌 판자 위로 걸어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주 목사는 맨발로 못 위를 걸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믿음의 순결을 지켰고, 순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순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소나무는 꺾여야 푸르고, 향나무는 찍혀야 향이 나고, 그리스도인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 아름답다.”
요즘 한국에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다고 해서 핍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황제숭배사상도 없고, 신사참배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미혹하는 강한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신(맘몬)과 미의 여신(비너스)입니다. 그리고 돈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미의 여신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예부터 돈과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돈신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보다 더 큰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 세대는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돈은 귀신도 부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돈입니다. 돈은 그만큼 파괴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초대교회 때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인 핍박은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하지만 내면의 적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신이 합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접근할 때 돈신더러 주라고 고백하지 않을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그러나 물질은 결코 우리의 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이십니다. 예수님만이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왕이십니다. 모든 충만함과 완전함, 그리고 지식과 부요와 영광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물질은 다만 필요 대상일 뿐입니다.
3. 복음의 성격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롬 1:5).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은혜’란 아무 공로 없이 받은 은총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행위를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가 너무나 커서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은혜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사도의 직분이 있습니다. 사도의 직분이란 각기 받은 사명을 말합니다. 바울에게는 사도(apostle)라는 직분이 있었고, 로마 성도들에게는 사도들(apostles)이 전한 복음을 듣고 전할 사도직분(apostleship)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순종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의 구원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의 순종을 통해 성화에 이릅니다. 이는 믿음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행동은 믿음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순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아담의 불순종의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믿음의 순종입니다(롬 6:17).
그런데 우리는 복음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지 않고 인간 편에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되고, 출세하고, 어떤 어려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을 믿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고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했는데?” 하며 반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지,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경은 문제가 생길 때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지, 문제를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소유에서 오는 복이나 감정적인 어떤 느낌이 아니라 믿음의 순종을 통한 복입니다(신 28장).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요, 왕으로 고백했다면 왕 되신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마땅한 것입니다.
4. 복음의 목적
복음의 목적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이름은 인격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예수님의 영광을 높이는 것이 복음의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목적은 예수님의 이름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겁니다. 돈 몇 푼에 목숨을 겁니다. 그들은 자신의 명예와 스스로를 광내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목적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즉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으면 썩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게 되어 결국 물질과 육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되고 맙니다(롬 1:23-25).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라고 하셨고,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빌 1:20). 또한 칼빈의 생애 2대 목표는 ‘하나님 앞에서’(In the sight of God),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For the glory of God)였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목적, 복음의 목적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입니다.
5. 복음의 범위
복음의 범위는 모든 이방인입니다. ‘모든 이방인’(all nations, KJV)이란 온 백성을 말합니다. 온 백성은 헬라인, 유대인, 지혜 있는 자, 어리석은 자를 모두 포함합니다. 복음은 특정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필요합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주이십니다. 복음의 성격은 믿음의 구원과 믿음의 순종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목적은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