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로마서 2:1-16

 

도덕주의자들의 죄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2:9-10).

 

 

사람은 자극을 받으면 반응을 보입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은 수용과 거부로 나타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두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거부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반응을 나타냅니까? 말씀을 받아들입니까, 아니면 거부합니까? 리처드 칼슨의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책에 의하면,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대화를 할 때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수용하면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함께하십니다.

본문인 로마서 21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이는 로마서 118-32절에 대한 결론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마땅히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바울에게 반증했습니다. 그는 자기 의로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그의 반증에 대한 바울의 변증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 의를 버리고 영생과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1. 남을 비판하는 자는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2:1-2).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지만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바울 당시 세네카라는 철학자는 날마다 엄격한 자기 성찰을 했고, 속된 우상을 비웃었으며, 도덕적인 안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된다고 한다면 아마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요라고 한다면 심기가 편치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운전 중에 누군가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면 나도 교통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괜찮겠지하고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메시지를 들으면 자기에게 적용시키지 않고 남에게 적용시킨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향한 말씀,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그래, 맞아. 바리새인들이 회개하고, 로마 사람들이 회개하고, 여우 같은 헤롯과 그 일당이 회개하고, 개똥이 아버지가 회개해야 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적용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마음이 찔려 가슴을 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했습니다(2:37).

반면에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은근히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남을 비판하는 경향이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의 장점보다 남의 허물 보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결점을 숨긴 채 남의 단점만을 크게 부각시킵니다.

한 자매가 어느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집회는 온통 허물뿐이었습니다. 목사는 희극 배우 같아서 싫고, 반주자는 눈 화장을 짙게 해서 싫고, 찬양 인도자는 밤무대에 섰던 사람 같아서 싫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래서 싫고, 앞에 앉은 사람은 저래서 싫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집회 도중에 나와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처럼 다른 사람을 비판할까요? 이는 남을 비판함으로 자기 의를 은근히 내세워 자기의 우월감을 드러내고자 함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바리새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8:11).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세리나 창기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좀 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고, 헤아리는 사람은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7:2). 남을 비판하는 사람, 남을 정죄하는 사람, 은근히 자기 의를 자랑하는 사람, 자기 자신의 추함과 악을 숨기는 사람은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손가락질하며 남을 비판할 때 두 손가락은 상대방을 향하지만 나머지 세 손가락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기란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을 흉보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은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남을 칭찬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몇 분 이야기하다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을 흉보고 정죄하기보다 남을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비판적인 시각을 버리고 칭찬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행복학’(happiology)의 원리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칭찬하면 행복 지수가 지금보다 높아질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가 성도를 칭찬하고 성도가 목사를 칭찬하고, 가정에서는 부부가 서로 칭찬하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칭찬하고, 친구들끼리 서로 칭찬하고, 직장에서는 동료들끼리 칭찬하고, 상사와 부하가 서로 칭찬하면 그 가정과 사회와 직장과 교회는 행복이 넘치는 물댄 동산이 됩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해 둔감합니다. 똑같은 죄를 범하고도 자기 죄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이는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강아지가 겨 묻은 강아지를 보고 나무란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가랑잎이 솔잎 보고 바스락거린다고 한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가랑잎과 솔잎 중에 어느 쪽이 더 요란합니까? 자기 허물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의 허물을 탓합니다. 이는 남의 허물을 말함으로 자기의 허물을 덮으려는 심리적인 동기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죄에 대해 엄격하고, 남의 죄에 대해서는 관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의 허물이 자꾸 내 귀에 들리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파리가 왜 꾑니까? 더러운 곳에 파리가 꾑니다. 내가 깨끗하면 결단코 남의 허물이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남을 비판하고, 또 비판하는 소리를 듣는 것은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2:3).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죄에 대한 경중(輕重)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한복음 8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돌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돌로 치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은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양심에 찔려 돌을 놓고는 모두 슬금슬금 뒷걸음질하여 빠져나갔습니다(8:9). 이는 자기 자신의 거울에 비춰 보면 의인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의 거울인 말씀으로 자신을 비춰 보면 나도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여인과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 의인인 양 생각하지만 사실은 동일범입니다. 하나님의 판단 앞에서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은 오류가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공의롭습니다.

 

2. 남을 비판하는 것은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2:4).

 

세상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서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받았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 신세를 졌지만 그는 건강해서 병원에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녀들이 아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의 자녀들은 별로 병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잘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길이 참으심은 죄를 즉시 보복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풍성하다는 것은 보화가 가득 묻혀 있어서 아무리 파내도 줄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선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인자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가 남보다 선해서 그런 줄로 착각했습니다. 세상에 착각하는 사람이 그 사람 하나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착각하고 있는 사람에게 엄히 경고하십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2:5-6).

 

사람이 고집을 부리며 회개하지 않는 삶이 길면 길수록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더 쌓는 것입니다. 이중, 삼중으로 계속 하나님의 심판을 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과 버림받은 사람은 어떻게 구분될까요? 택한 백성은 매를 맞으면 돌이켜 회개합니다. 반면에 버림받은 사람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맞으면 맞을수록 더욱 강퍅해집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애굽의 바로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무서운 재앙을 경험하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진노를 쏟아부으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가 나옵니다(23:39-43). 한 강도는 회개했습니다. 반면에 또 한 명의 강도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이처럼 버림받은 자는 죽어가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완악한 백성을 일컬어 목이 뻣뻣한 백성”(32:9)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진노를 쏟아 부으시고, 회개하는 겸손한 사람과는 함께 하시고 귀히 여기시며 소중하게 쓰십니다.

 

2. 남을 비판하는 사람에게는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2:7).

 

이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곧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십니다. 반면에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십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2:8).

 

당을 짓다는 말은 악한 자의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 반기를 듭니다. 당을 짓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나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정당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니면서 상대방을 비방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의 불의를 의로 바꾸고자 전자우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 등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진노와 분노로 함께하십니다. 진노와 분노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분노는 불입니다. 몸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스스로 불을 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타죽게 됩니다. 사람이 분을 품어 화를 내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불심판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2:9).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습니다. ‘환난이란 어떤 불행한 일로 인해 타격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환난은 믿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다릅니다. 믿는 자들의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5:1-4). 반면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환난 이후에 곤고가 따릅니다. ‘곤고란 심령의 고통을 말합니다. 사람이 곤고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고 즐겁지 않습니다.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불면증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입니다. 곤고는 바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따릅니다.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2:10).

 

악을 행하는 사람과 선을 행하는 삶이 얼마나 대조됩니까?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당을 짓고 악을 행하여 환난과 곤고가 있는 삶을 살겠습니까, 아니면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평강의 삶을 살겠습니까? 우리 모두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평강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3. 남을 비판하는 그날에는

 

율법이 있는 자는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율법이 없는 자는 스스로 진노를 받습니다(2:12-15). 바울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습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2:16).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 복음 앞에서는 은밀한 것이 다 드러납니다. 율법이나 양심으로 우리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분적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 은혜의 복음을 통해서만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믿을 때만 구원을 받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평강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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