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로마서 15:22-33
바울의 선교비전과 전략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롬 15:28).
요즘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다닐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웰빙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얼짱과 몸짱이 되어 뽐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에 골몰합니다. 그러나 이런 젊은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복음에 매료되면 그 순간 영성, 인성, 지성, 야성(기상)이 균형 잡힌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들고 젊음과 생명을 쏟아부어서 생명을 살리는 보배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일찍이 요엘 선지자는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말했습니다(욜 2:28). 또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후 로마 선교 비전을 보았습니다(행 19:21). 그는 로마에 가고자 했지만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로마에 가려고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이제 드디어 그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들렀다가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모든 일은 하나님이 주신 환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패배자는 과거를 말하고, 평범한 사람은 현실을 말하고, 위대한 사람은 미래를 말한다.”
우리는 과거에 매이고 현실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에 붙들림을 받은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미래에 이루실 꿈을 꾸고, 미래에 이루어질 꿈을 말하고, 미래에 이루실 꿈을 이루고자 하는 야성(기상),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은 바울의 비전과 선교전략, 그리고 기도제목입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이를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선교전략
대도시 중심의 선교전략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세계 선교의 지상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바울은 이 말씀을 붙들고 아시아와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이 지방에는 바울이 일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롬 15:23상). 여기에는 바울의 선교전략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첫째는 대도시 중심사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인구가 900만 명이었고, 에베소 인구가 20만 명이었습니다. 바울이 큰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도시에는 많은 사람들과 중요한 인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도시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습니다. 이런 곳에 교회를 세우면 복음이 인근으로 쉽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통해 골로새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에도 이런 선교전략이 담겨져 있습니다.
한국 초대 선교사들이 평양을 선교 거점으로 삼았던 이유도 중국과 문물 교환이 잦았던,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울과 인천, 그리고 수도권에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금융, 사회, 교육, 인재 등 80% 이상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 그리고 수도권이 성시화 될 때 그 파급효과는 놀라울 것입니다. 따라서 서울과 인천이 성시화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개척, 또 개척
바울의 두 번째 선교전략은 개척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세운 후에 디도, 디모데와 같은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나갔습니다. 그는 선교의 열매를 먹으며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개척자로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늘 씨를 뿌리는 자로 묘사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고전 3:6상).
바울은 계속 심기만 했습니다. 물 주고 가꾸고 추수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로마 선교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롬 15:23하).
로마에는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이 세워놓은 터 위에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롬 15:20). 그의 최종 선교 목적지는 로마가 아니라 넓은 이베리아반도 서바나였습니다. 당시 서바나는 땅 끝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위해 온 생애를 드렸습니다.
선교 후원자를 통한 개척
바울의 세 번째 선교 전략은 동역자를 얻어 개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롬 15:24).
‘보내준다’(assist)란 선교사들이 떠나도록 돕는 전문적인 용어로, 적극적으로 선교 사역의 후원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받았고(행 13:1-3), 안디옥 교회로부터 기도 지원과 선교비 지원, 그리고 선교 동역자를 지원받았습니다. 이제 바울은 로마에 들려 로마 성도들과 얼마간 사귐을 갖고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한 후에 서바나에 가고자 했습니다. 서바나 선교는 로마로부터 기도 지원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에서 이제 로마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되어 로마의 전폭적인 기도 지원을 받아 서바나를 개척하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에서 서바나까지는 가까우니 나를 파송하라. 또 나를 위해 기도해라. 지금까지는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선교사로 일했는데, 이제는 로마 교회의 파송을 받아 서바나에 가서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싶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가 세계 선교 역사의 전초기지로 쓰임받은 것처럼 로마 교회도 세계 선교 사역에 참여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로마 교회가 세계 선교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로서 세계 선교 역사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그는 로마 교회가 땅 끝 선교에 참여하여 그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예물을 드리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풍성한 대로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빌 4:19).
대학마을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제자를 양성하여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고 복을 주셔서 12명의 목회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54명의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하게 하셨고, 그들이 각국에서 열심히 복음 사역을 감당하여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러시아와 헝가리와 루마니아에 첫 선교사를 파송하도록 하셨습니다. 루마니아의 선교사들은 모범적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006년에는 루마니아에서 CMI 유럽 여름수양회를 가졌는데 복음을 듣고 변화된 루마니아 제자들이 주체가 되어 수양회를 섬겼습니다. 또한 러시아 첫 선교사였던 황돈연 선교사를 2005년 10월에 블라디보스토크로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미국 선교를 이루고 계십니다.
저는 2005년에 김다니엘 선교사 가정과 함께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2시간을 자동차로 다니며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을 심방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자동차를 16시간 탄 적도 있었습니다. 그토록 기도했던 보스턴, 하버드 대학과 MIT 대학, 그리고 예일 대학도 심방했습니다. 하버드 동상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대학마을교회의 2, 3세들이 이 대학에 입학하여 미국 지성계를 이끌고 가는 인재들로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통해 중국의 13억을 선교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중국은 선교의 황금어장입니다. 이 어장을 우리나라 여권을 가지고 선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선교한다면 많은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인턴쉽 과정으로 중국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면 선교 사역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two-stop” 선교전략입니다. 미국을 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아 중국 선교, 제3세계와 평양에 선교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물질로 은혜에 보답하라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에 한 가지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롬 15:25-26).
교회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케리그마(κήρυγμα),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 그리고 디아코니아(διακονια)입니다. 케리그마는 말씀 선포와 전도를 말하고, 코이노니아는 친교를 말하며, 디아코니아는 섬김과 봉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봉사는 선교의 수단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설립하고 그들로 하여금 헌금을 하여 교회를 봉사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대교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몇 차례 기근으로 가난한 성도들이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을 다니며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헌금하기를 권면했습니다.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정으로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려울 때 돕지 않으면 이는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물질로 표현됩니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도 있습니다(마 6:21).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이방 지역 교회들은 바울로부터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기쁨으로 헌금했습니다. 그들이 넉넉해서 헌금한 것은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는 개척 당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행 16:20).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당했고 동족으로부터 고난을 받았습니다(살전 1:6, 2:14). 마게도냐 교회는 많은 환난의 시련과 극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넘치는 기쁨으로 힘에 지나도록 헌금했습니다(고후 8:2). 이는 아름다운 사랑의 열매였습니다.
바울은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 직접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기도 지원을 받아 로마로 가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 명의 이방 교회 대표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고후 8:18-19, 22). 이는 예루살렘 성도들이 이방 지역에 세워진 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영접하여 이방인 신자들과 유대인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사귐을 갖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의 성도들로부터 신령한 복음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바울도 유대 그리스도인입니다. 베드로도 유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빚을 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 교회가 유대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신령한 복음을 받았으면 어려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신령한 것으로 빚을 졌으면 물질적인 것으로 은혜를 보답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하면 안 됩니다. 마땅히 물질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갈 6:6). 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롬 15:28-29).
바울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 전달한 다음 로마 교회에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럽과 아시아에 있는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를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기도 지원을 받아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또 로마 교회의 지원을 받아 땅 끝, 서바나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혼자 독불장군처럼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역의 특징은 팀 사역이었습니다.
바울의 기도 부탁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롬 15:30).
‘권하다’란 간곡히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부탁한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나로 구원을 받도록 기도하라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롬 15:31상).
‘건짐’(rescue)이란 유대인들의 핍박과 무서운 고난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뜻합니다. 예루살렘에는 많은 위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행 21:20-21).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유대교인들 중에는 바울을 죽이려고 벼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 땅에 흩어져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배반할 것을 가르친다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40명의 결사대가 조직되어 바울을 죽이지 않고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행 23:12-13).
바울은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습니다(행 20:22). 만나는 사람마다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며 만류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든지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자기 동족으로부터 맞아 죽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신변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이 헌금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하라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롬 15:31하).
예루살렘 성도들 중에는 율법에 매여 이방인들에게 선교하는 바울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제헌금 받기를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헌금을 받으면 바울의 이방인 선교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기쁜 선물이 되도록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이 기도가 이루어져야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로마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라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롬 15:32).
로마를 거쳐 서바나까지 가는 것이 바울의 꿈이었습니다. 이는 바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의 장래가 달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입니다(약 5:16).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역입니다. 특히 말씀을 전하는 종들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스펄전 목사는 폭포수와 같은 설교를 쏟아낸 설교자로 유명합니다. 한 목사가 “당신의 설교 능력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금 교회의 지하에 내려가 보십시오. 저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의 기도는 제 사역의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사탄의 첫째 공격 목표는 말씀을 선포하는 목자입니다. 목자를 쳐서 넘어지게 하면 양들은 저절로 흩어지기 때문입니다(슥 13:7). 따라서 교회는 목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로마 성도들과 함께하시기를 간구했습니다(롬 15:33).
우리는 사람을 키워서 땅 끝 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세계 각국으로 파송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을 보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물질과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의 심장 가지고 우리 이제 일어나 주 따르게 하소서 세상 모든 육체가 주의 영광 보도록 우릴 부르시는 하나님 주의 손과 발 되어 세상을 치유하며 주 섬기게 하소서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보리라 그날에 주의 영광 가득한 세상 우리는 듣게 되리 온 세상 가득한 승리의 함성”(복음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