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학 1학년이었던 1970년 봄, 하나님은 제게 요한복음 3장 16절로 찾아오셨습니다. 이 후 주위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졸업 후에는 캠퍼스 전임 사역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캠퍼스를 떠나지 않고 대학복음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40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어 대학생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 삶이 변화되고, 제자들로 자라났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이 일을 맡겨주시고, 젊은이들에게 복음과 꿈을 심는 목자의 길을 걸어오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제가 체험한 1970년대의 캠퍼스에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전공 서적을 들고 ‘성서한국’ ‘성서 통일 한국’ ‘세계 선교’의 꿈을 안고 캠퍼스를 종횡무진하는 젊은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늦도록 성경을 일대일로 가르쳐 예수님의 제자들로 세우기 위해 열정을 쏟는 캠퍼스 목자들도 많았습니다. 이것이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때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이 자라 한국 교회가 괄목하게 성장하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1960-80년대 한국 학생복음운동이 한국교회 100년 역사의 꽃으로 평가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캠퍼스에서 만난 이들이 한국교회와 세계 선교역사 속에 그 영향을 크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사들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세계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CMI(국제대학선교협의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라 파송된 선교사들이 동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캠퍼스에서 복음의 씨를 뿌렸고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고, 그 뜻대로 쓰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인하대학교는 인천 내리교회 성도들이 대부분이었던 하와이 1세대 교민들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여 받은 눈물어린 헌금이 씨앗이 되어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또한 저는 한국 초기 성도들이 사도행전의 성도들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사랑하고 기도에 힘쓰고, 전도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한 역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그리고 저는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초대 교회의 감동어린 신앙을 보며 회개를 많이 했습니다.
2000년대부터 한국교회에 성장 둔화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를 여러 원인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통해 볼 때 근본 원인은 복음신앙의 상실과 복음 전파의 열정이 식어진 진데 있다고 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행 2:32). 그리고 초대 교회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에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로 돌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만 일어났던 방언과 신유, 예언 등의 은사를 구합니다. 이로 인해 물신주의, 신비주의, 은사주의와 신사도운동 등이 교회에 침투하여 복음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은사주의와 신사도운동이 성령을 왜곡시켜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이단과 사이비들이 도처에서 발흥하여 교회와 캠퍼스를 영적인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들은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으로 매도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의 방언은 들리는 언어였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 말씀 충만은 성령 충만, 성령 충만은 복음의 증언으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말해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 복음 증인의 삶이 있었으며, 삶의 변화와 윤리의 실천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를 일컫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을 받는 교회,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가 있는 교회, 기도하는 교회, 성찬과 애찬이 있는 교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교회,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교회, 예배를 사랑하는 교회, 전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무명의 전도자들로 세워진 교회, 말씀을 사랑하는 교회, 말씀을 듣고 행하는 교회,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였습니다.
2002년에 UBF 개혁 동역자들과 함께 유명한 기도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개혁의 과정에서 영적으로 탈진되어 있었습니다. 기도원에 가니 기도의 열기가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저마다 성령을 간구하고 성령 충만을 구했습니다. 저도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성령 충만을 구하는가? 내가 왜 신유와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받고자 하는가? 그간의 주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은 성령 충만이 아니었는가? 말씀 역사와 세계선교에 대한 비전은 성령 충만이 아니었는가?’ 저는 이런 질문 앞에 제 내면 깊은 곳에 힘들게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하고, 힘들게 전도하고, 힘들게 제자 양성을 하기보다 한 번에 신유, 방언, 예언 등으로 좀 더 쉽게 사역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쉽게 사역하고자 하고, 단번에 무언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캠퍼스 선교, 일대일 성경 공부, 제자 양성, 세계 선교의 고난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고 내려왔습니다. 그 후 저는 사도행전을 통해 성령 충만은 은사주의나 신사도운동이 말하는 방언이나 신유나 예언의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말미는 매우 특이합니다. 그것은 미완의 결말입니다(행 28:31). 이것은 교회의 복음의 증언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 전파는 시간적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재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의 범위는 땅끝까지입니다(행 1:8). 당시 땅끝은 로마였지만, 로마는 땅끝이 아닙니다. 이제 나머지는 우리의 몫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인종과 문화와 언어의 모든 장벽을 뚫고 끊임없이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들고 세계로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 말씀 충만은 성령 충만으로, 성령 충만은 비전 충만으로, 비전 충만은 전도 충만으로, 그리고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로 돌아가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가르침 받는 것에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복음신앙과 복음 전파의 열정이 회복되어 한 손에는 성경, 다른 한 손에는 전공을 들고 가정, 캠퍼스, 지역, 직장, 세계를 향해 전진하고 또 전진하여 사도행전 28장 32절을 써나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