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사도행전 1:1-5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영국 런던의 케이 미술관에 프레드릭 왓츠라의‘소망’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그 그림을 보면 둥그런 지구 위에 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비파가 하나 있습니다. 그 비파의 줄은 본래 일곱 줄이었는데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앞은 보지 못하고 여섯 줄은 끊어지고 한 줄만 남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던 모든 줄이 끊어진다 할지라도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40일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기다리고 바라는 대망(待望)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대망은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망의 별입니다. 소망의 별 주님을 붙들 때 어떤 환경이 쳐하든지 희망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40일간 하신 사역과,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과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대망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부활과 하나님 나라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행 1:1).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들레헴에서 나시고,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가르치시고, 많은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그리고 승천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누가는 후편인 사도행전에서 복음 역사가 계속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이루어지던 복음 사역이 이제는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지금도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 28장 32절의 역사는 계속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부활신앙을 심으시는 예수님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행 1:3).
‘고난 받으신 후’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고,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후 사흘 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롬 1:3).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광의 주,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이성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처절한 모습만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무력하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들 앞에 계신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혹 유령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자신이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여러 모양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강을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드심으로써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낙향하는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시며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여러 사건으로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의 불신을 불식시키고 부활의 사실을 확실히 심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을 각인시켜 주신 이유는 기독교는 예수님의 부활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사실을 증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의 생애는 비극으로 끝납니다. 또 우리를 절망스럽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슬프게 하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고전 15:3-4).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역사적인 사건이듯이,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도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복음이 완성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활신앙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부활하여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그들에게 부활신앙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의 사역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첫 메시지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과 주제 또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심문받으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상).
4복음서의 전체를 꿰뚫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 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 역사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 건설에 두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벧전 1:3-4).
그런데 제자들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생각은 오월동주(吳越同舟),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라는 하나의 꿈에 집착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한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야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의 바람은 조국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망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주신 마지막 말씀이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전체의 요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님이 품고 계셨던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과 제자들이 꿈꾸고 있던 나라와는 여러 차원에서 달랐습니다. 제자들이 꿈꾸던 나라는 정치적인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만 필요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이면 누구나 그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나라는 전쟁에 의해 확장됩니다. 그리고 약육강식과 한 개인의 축복만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품고 계셨던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인 나라가 아니라 영적인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완성을 향해 확장되어갑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곧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을 포함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회개와 믿음이 없이는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쟁이 아니라 ‘전도’에 의해 땅끝까지 확장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을 약속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 14:17). 여기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시와 찬미와 용서와 부활의 영광이 함께하는 수준 높은 삶이 이루어집니다.
약속의 대망
예수님은 부활 신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행 1:4상).
제자들 대부분의 고향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였습니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자신들의 스승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곳입니다. 이곳은 실패와 좌절과 두려움의 도시입니다. 이곳은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심으로 복음이 완성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예루살렘은 원래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기 위해 택하신 장소입니다(왕상 11:36). 이사야는 일찍이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사 2:3). 이처럼 예루살렘은 복음 역사의 시발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고 복음이 완성된 예루살렘에서부터 복음의 원수들과 싸우고 도전하여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원수들로 둘러싸여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20세기의 학원선교 전문가 중 한 사람인 스테이시 우드는 일찍이 “대학은 그 시대의 예루살렘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시대를 밝히는 영적 각성의 복음의 불꽃이 대학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영국의 옥스퍼드의 웨슬리 형제에 의해 시작된 홀리 클럽(Holy club), 찰스 시몬에 의해 시작된 케임브리지 대학의 복음운동, 그리고 미국의 학생자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모두가 캠퍼스에서 시작되어 영국과 미국의 잠든 영혼들을 깨웠습니다.
요즘 캠퍼스 선교의 현장이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원선교 간사들이 캠퍼스 현장을 떠납니다. 그리고 캠퍼스 선교를 포기하고 지역선교로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캠퍼스 선교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선교의 전진기지인 대학선교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캠퍼스 선교가 위축되면 한국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대학 시절에 예수님을 뜨겁게 만난 이들이 전임 사역자로 결단하고 신학대학으로 가고 선교사로 갑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교회의 감소현상뿐만 아니라 신학대학 지원자도 점점 줄어들고 선교사 파송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는 캠퍼스 선교와 맥을 같이 합니다. 한국 교회가 사는 길은 캠퍼스 선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1970-90년대 한국 교회가 부흥했던 것은 캠퍼스 선교가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캠퍼스가 살면 한국 교회는 다시 살아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캠퍼스 선교를 포기하거나 캠퍼스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대망입니다. 대망이 없는 믿음은 신앙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은 기다림으로 끝납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
하나님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 전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오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일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를 놓고도 몇 초 만에 결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정하기에 앞서 성령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새벽별이 떠오르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할 때까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성령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죽고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과의 온전한 연합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100% 붙들리고 매인 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40일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대망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대망은 다시 오실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부르심의 땅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빈들에 마른 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새찬송가 18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