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도행전 7:37-50

 

광야 교회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7:49-50).

 

 

성경에 나오는 교회들의 이름은 지역의 이름을 따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유일하게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름을 가진 교회가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은 본문에 나오는 광야 교회(7:38)입니다. 광야 교회는 본문에 한번 나옵니다. 광야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광야 안에 있는 교회,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칭합니다. 그리고 광야 교회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기 직전까지 40년간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광야는 황무합니다. 광야는 물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광야는 사나운 짐승들이 들끓습니다. 광야는 과학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한번 들어갔다가는 잘못하면 돌아올 수 없습니다. 광야는 한마디로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광야가 고통스러운 곳이라 할지라도 애굽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고역으로 인한 부르짖음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보셨습니다(2:23-24, 3:9).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어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모세를 수없이 배척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세와 광야 교회를 열거하면서, 광야 교회에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던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고도 모자라서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거슬렀고, 말씀과 계시를 거슬렀고, 하나님의 역사를 거슬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였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고 책망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광야 교회에 있습니다. 광야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광야 교회에서 그들의 죄를 보면서 우리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절보다 복종

 

모세는 하나님이 보내시고자 약속하신 그 선지자입니다(7:37). 그는 광야 교회에서 생명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7:38). 그런데 그들은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7:39).

 

그들은 모세에게 복종하지 않고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애굽은 그들이 노예생활을 했던 곳으로 자유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마음은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성경에서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고, 가나안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광야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여정을 뜻합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넌 사건을 세례로 표현합니다(고전 10:1-2). 세례란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는 율법으로 죽고 은혜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세례는 과거와의 단절을 뜻합니다. 그리고 요단 강은 광야와 가나안의 중간으로, 하늘나라로 가는 또 하나의 과정을 뜻합니다.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옮겨지는 것은 일차적인 구원입니다. 이 구원은 세상으로부터의 구원, 과거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넌다는 것은 종말론적 구원입니다. ‘구원을 받았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이고, ‘구원을 얻으리라는 요단을 건너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구원을 위해 힘쓰라는 것은 현시점에서 시험에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홍해를 건넌 것은 과거의 구원, 광야 교회에서의 여정은 현재의 구원, 요단을 건너는 것은 미래의 구원입니다.

그들이 홍해를 건넌 이상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논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몸은 애굽에서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있었습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저기에 있었습니다. 몸은 구원받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노예근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습관화되고 행동화되면 그것이 인격이 됩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쉽게 바꿔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한 나라의 문화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문화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한 문화가 바꾸어지기까지는 40년 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이는 35년간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심어준 신민지 사관이 쉽게 바꿔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려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은 광야 교회에 있었지만 마음은 애굽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 이것이 광야 교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은 극적입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을 때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세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고, 모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론을 통해 말씀하지 않고, 오직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틈만 있으면 모세를 대적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꼭 모세만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 꼭 모세의 말만 들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이 상대적인 생각을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7:40).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40일간 시내 산 수양회를 가지셨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40일간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반면에 백성들에게 있어서 40일간은 너무나 길고 지루했습니다. 모세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 총회를 열었습니다. 비상 총회의 의결 사항은 우리를 인도할 신(gods)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 마네킹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32:4).

 

이튿날 그들은 송아지 마네킹에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고 뛰놀았습니다(32:6). 그들은 애굽에서 백성들이 각종 우상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흉내를 냈습니다. 여기에서 뛰놀았다란 옷을 벗고 난잡한 성적 행위를 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음란한 행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배척하고 말씀에 불순종한 그들을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7:42).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피조물을 섬기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중에 가장 무서운 심판은 내버려두는 것입니다(1:24-28).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70년간 바벨론으로 옮기셨습니다(7:43). 사람이 불안하면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사람이 불안하면 물질 마네킹, 남자 마네킹, 여자 마네킹의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됩니다. 그러나 마네킹을 섬기면 섬길수록 더욱더 불안하게 되고 장래가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성적인 쾌락을 탐닉하게 됩니다. 인간은 결국 자기 손으로 만든 조직과 제도와 부, 그리고 쾌락을 섬기다가 결국 자기 손으로 만든 것으로 망하게 됩니다.

뉴욕의 월 1가에 가면 자본주의의 상징인 황소 마네킹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황소 마네킹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뉴욕의 월가가 영원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1776년에 도덕감정론을 기술하고 자본주의 원전인 국부론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91년 후인 1867년에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기술함으로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최고의 가치인 줄로 알고 무조건 따라왔습니다. 결국 공산주의는 1989119일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지 122년 만에 공산주의가 해체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 또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기 전에 윤리학 도덕감정론을 썼는데 윤리가 없는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가 됩니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경제 윤리의 상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가진 자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쓴 지 222, 공산주의 해체의 수순을 밟은 지 20년 후, 2008년에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금융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큽니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사상이나 이론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만든 마네킹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만든 마네킹은 언젠가는 사라집니다. 결코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물질을 의지하고 살아온 물질의 노예였다.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의지하며 살겠다.”

 

원망보다 감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40일 만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접경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요단 강 하나만 건너면 사모하고 사모하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12두령을 뽑아 가나안을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정탐한 12두령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은 탐지한 땅을 악평했습니다. 도저히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곧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들은 다른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14:2-4).

하나님은 이러한 백성을 보시고 진노하사 그들을 광야로 후퇴시켰습니다. 이로써 광야 훈련 4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20세 이상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은 40년간 광야 훈련으로 노예근성과 거지근성을 청소하고자 하셨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노예의 특징 중 하나는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하나님은 원망을 가장 미워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요,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전염병과 같아서 순식간에 공동체를 전염시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면 나도 죽고 너도 죽고 우리 모두가 죽고 공동체가 파멸합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은 습관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어둠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님의 종들을 원망하고 불평하도록 합니다. 요즘 이단의 포섭 대상 제1호가 교회와 목회자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멸망의 함정입니다.

반면에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원망하고 불평은 지상의 언어요, 감사와 칭찬은 하늘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언어인 감사의 언어를 써야 합니다. 감사는 빛입니다. 감사하면 할수록 길이 보입니다. 사탄은 욥에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도록 했습니다. 욥은 소 떼와 양 떼를 다 잃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주식이 깡통 되고 아파트는 반 토막이 났습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2).

 

하나님은 이런 욥에게 이전보다 더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42:10-17). 행복의 원리 중에 하루에 다섯 가지 이상 감사 일기를 쓸 때 행복지수가 높아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런데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도 감사하고, 내일도 감사하고, 앞날을 기대하며 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발상을 전환하기만 하면 모두가 감사하게 됩니다. 장미꽃의 가시만 본다면 몹쓸 나무지만, 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향기를 맡으면 꽃 중의 꽃임을 깨닫게 됩니다.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 가시도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복음성가).

 

몸을 거룩하게

 

스데반은 또한 성전에 대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성전의 기원은 성막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죄인과 만나는 곳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곳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죄인과 함께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곳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용서하시는 곳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죄인에게서 예배를 받으시는 곳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이동할 수 있게 만든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했을 때 성전을 지어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만들었습니다. 성막은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의 모형이요 천국 모형입니다. 성막은 시간을 초월한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나타낸 구원의 계획과 구원의 길의 예표입니다.

성막은 크게 성소(the Holy Place)와 지성소(the Most Holy Place)로 나뉩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었고, 그 안에 십계명의 증언판과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와 만나의 항아리가 있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속죄소가 있는데 속죄소는 언약궤의 뚜껑입니다. 속죄소 위에는 천사 모양의 두 그룹을 만들어 날개를 펴고 있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차례씩 속죄소에 피를 뿌리면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속죄소의 피를 보고 죄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룹 사이에서 죄인과 만나시고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법궤가 하나님의 공의라면 속죄소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성소에는 진설병과 등대, 향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에는 성막 뜰이 있고, 성막 뜰에는 물두멍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자 고정된 성전의 필요성에 의해 솔로몬 시대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에 거하시지 않으십니다. 스데반은 그 증언으로 이사야서의 한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7:49-50).

 

스데반의 메시지는 성전을 거룩한 곳으로 여기고 있던 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성전은 예수님이 성전 되심에 대한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할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습니다(4:23).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15:38).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살 길이 되셨습니다(10:20).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지 예수님의 피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10:19-20).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죄사함이 있고,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고, 소망이 있고, 화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고전 6:19). 따라서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광야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 여정 중에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광야의 여정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살아있는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가 광야의 여정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거룩한 주님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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