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사도행전 8:1-25
빌립의 사마리아 지역 전도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행 8:5).
본문에는 집사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게 된 배경과 복음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시작되자 사도들 외에 제자들이 모두 흩어졌습니다.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유다는 사마리아와 상종조차 하지 않을 만큼 골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빌립이 핍박을 피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2). 우리는 본문에서 첫 선교사는 사도가 아니라 집사 빌립인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전도 중에 나타난 시몬을 통해 은사란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인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핍박을 통한 사마리아 전도
사울이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행 8:1상). 그리고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행 8:3). ‘잔멸’이란 멧돼지가 포도원을 짓밟는다는 뜻입니다. 멧돼지가 닥치는 대로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것처럼 사울은 닥치는 대로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교인을 잡아들이고, 닥치는 대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도들 외에 제자들은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파송 받아 유대와 사마리아로 간 것이 아닙니다. 빌립이 자원해서 사마리아로 간 것 또한 아닙니다. 그는 핍박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들이 지독히 싫어한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북쪽의 갈릴리, 중앙의 사마리아, 남쪽의 유대입니다. 사마리아는 위치적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의 사이에 있습니다. 이들의 적대감은 1천 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주전 10세기경 솔로몬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10개 지파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북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 후에 북 왕국과 남 왕국은 늘 치고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722년에 북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되었습니다. 북 왕국을 점령한 앗수르는 이주 정책과 혼혈 정책을 써서 북 왕국의 백성들을 혼혈족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100년 후에 남 왕국 유대가 바벨론에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은 앗수르와 달리 혼혈 정책을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포로로 데려다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70년 후, 주전 6세기에 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도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참여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했습니다. 그 후 사마리아인들은 주전 4세기경 알렉산더대왕 시대에 그리심 산에 성전을 별도로 세우고 모세오경을 제외한 모든 구약성경을 거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잡종, 이교도라고 멸시했으며 상종조차 하지 않았습니다(요 4:9하).
유대인들은 북방 갈릴리를 갈 때에 직선거리인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예루살렘 우측의 요단 강을 건너 요단 강 줄기를 타고 올라가다가 다시 요단 강을 건너 갈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뿌리 깊은 적대 감정이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핍박과 환난이라는 극약 처방을 사용하여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 사마리아로 흩어졌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사용하여 세계선교의 기폭제로 삼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 지방에 복음이 전해졌고, 주님의 명령인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하)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한국에 평신도 선교사의 문이 열린 것은 1969년 독일로 떠난 간호사들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한국은 가난했습니다. 1950년대 국민소득 67달러로,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1, 2위를 차지했고, 1960년대에는 연 국민 소득이 169달러로, 하루 세 끼를 먹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공장도 없고 기술도 없었습니다. 겨우 소량의 지하자원을 수출했습니다.
그런 중에 서독에서 광부와 간호사를 뽑게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외화를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모집 광고가 나자 대거 지원했습니다. 그들은 수십 대의 경쟁률을 뚫고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났습니다. 그들의 떠남은 운명의 떠남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대전 간호전문학교 출신으로 대전 CMI의 서인경, 이화자, 설동란 간호사들이 있었습니다. 대전 CMI(당시 서덕근 목자)에서는 1969년 7월 16일에 그들을 운명의 떠남이 아니라 보냄의 간호사 선교사들로 임명하여 파송했습니다. 이것이 한국 평신도 선교사의 효시가 됩니다. 그들은 병원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역경을 들어 신비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행 8:12).
인류 역사상 첫 선교사는 사도가 아니라 집사, 평신도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전도할 때에 “예수님을 믿고 복 받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복음 사역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첫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막 1:15).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40일간 가르치신 내용도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메시지도 하나님 나라입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하자 그들이 믿고 남녀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한국인들의 믿음의 형태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입니다. 그러나 ‘나라’란 헬라어로 ‘바실레이아’(βασίλεία), 다스림, 통치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왕이 되셔서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포함한 전 존재, 자연환경과 국가와 사회, 온 인류 역사, 하늘의 천군 천사와 땅, 곧 만유를 다스림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공의와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는 공의가 실현되고 사랑이 넘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하여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회개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란 방향 전환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죄를 애통히 여기고 뉘우치고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개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그 사실을 동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의를 넘어서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전쟁으로 뺏는 것이 아니라 전도라는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전도는 웅변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과 스데반을 보면 모두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성령과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빌립이 성령과 지혜로 복음을 전할 때 능력 또한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행 8:6-8).
빌립의 전도와 시몬
사마리아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행 8:9). 그는 마술을 행해서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는, 자칭 큰 자였습니다. 마술(magic)은 귀신의 능력, 혹은 초능력의 힘을 빌려 행하는 이적으로서, 눈속임입니다. 마술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여 자기를 우러러보게 하고, 마지막에는 자기를 숭배하도록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시몬의 마술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시몬이 행하는 능력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었습니다(행 8:10). 사마리아 사람들은 오랫동안 시몬의 마술에 놀라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시몬을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 빌립의 능력을 보고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빌립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2). 시몬도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놀라서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8:13).
시몬은 자기가 하는 것이 거짓된 것인 반면에 빌립이 하는 것은 진짜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빌립의 표적을 보고 열심히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례를 받았지만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님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요즘도 세례는 받았지만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었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가서 저희를 위해 성령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행 8:14-15).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았습니다(행 8:16-17).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세례만으로 안 되고 안수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 한 가지는 베드로와 요한이 전해야만 되고 집사는 안 되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표적을 보았다는 말이 강조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의 표적에 매료되었습니다. 시몬 또한 빌립의 표적에 놀랐고 그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따르는 동기가 예수님이 아니라 표적이었습니다.
시몬은 빌립으로부터 한 수 배우기 위해 세례를 받고 그를 따랐습니다. 시몬은 이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서라면 빌립이 무엇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능력만 받을 수 있다면, 철야 아니라 금식, 아니 세례를 100번이라도 받으라면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술사 시몬을 따르던 그런 마음으로 빌립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외양상 예수님을 믿었지만 마음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겉보기에 믿음이 있는 것 같았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았지만 표적을 좇는 표적 신앙이었습니다.
세례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공적인 표시입니다. 세례를 받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있어서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우선 세례를 받고 후에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한 번 받아 볼까 하여 받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믿음의 간증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보면 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하).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하)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고백했습니다. 반면에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의미는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해가 안 가다가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 말씀이 믿어지고 마음에 부딪쳤습니다.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와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자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두 사도가 저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임하는 것을 본 시몬은 돈뭉치를 갖다놓고 그 능력을 사겠다고 했습니다(행 8:18-19). 그러나 베드로는 그를 책망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하나님의 은사는 돈으로 사고 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몬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사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으로, 어떤 사람은 철야 기도로, 어떤 사람은 산 기도로, 어떤 사람은 고행으로, 어떤 사람은 봉사로, 어떤 사람은 어느 부흥집회에 가서 능력을 받고자 합니다. 이 모두가 인위적인 노력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돈으로 사려고 했던 시몬만이 인위적인 노력을 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인위적으로 은사를 사려고 하는 자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예고했습니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하).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생활의 방편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행 8:21).
그 후 두 사도는 사마리아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8:25). 이로 인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핍박을 통해 복음의 불씨가 사마리아에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의 역사입니다.
빌립은 예루살렘의 핍박을 피하여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를 통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복음은 핍박을 통해 전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사는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믿기만 하면 각양 좋은 은사를 주십니다.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키고 사회와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너 시온아 이 소식 전파하라 영광의 주 참 빛이 되신다 만백성을 이 밝은 빛에 모아 영원한 구원 주려 하신다 이 기쁜 소식 곧 전하라 구원의 소식을 널리 전하라”(새찬송가 50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