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사도행전 13:24-52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거늘 -비시디아 안디옥 선교(2)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행 13:26).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가 꿈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는데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너는 일평생 항상 진실하게 살았느냐?”그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면 깨끗하게 살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그렇게 깨끗하게 살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면 정직하게 살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정직하게 살지도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그는 천국 가기는 틀렸고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며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광채가 홀연히 비취더니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진실하지도 못하고 깨끗하지도 못하고 정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믿었다. 그는 내가 그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었고 부활하심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내가 이를 확증하노라.” 그러자 하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가 하늘나라에 입성하는 순간 깜짝 놀라 일어나니 꿈이었습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행위로 구원받고자 하는 모두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말씀을 오랫동안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구원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말씀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무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이스라엘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고, 신약성경은 그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언에는 성취가 있어야 하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 속에서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출애굽 사건, 어린 양의 피, 반석에서 물이 솟는 사건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과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본체가 있습니다. 본체가 없는 그림자는 존재할 수 없고, 본체가 없는 그림자는 의미가 없으며, 그것은 허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본체가 나타나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3:24-25). 그 엘리야가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먼저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를 영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삶을 돌이키는 회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시점에서는 대중적인 기대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군중들에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기 뒤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청중들에게 믿음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행 13:26).
형제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을 포함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 유대교로 입교할 예정인 이방인들이 함께 참석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을 안디옥 회중들에게 전하도록 자신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에서 ‘말씀’은 헬라어 원문에 로고스(λογος)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요 1:1). 이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요 1:14). 육체를 입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육체를 입기 전의 예수님이 바로 말씀, 로고스입니다. 헬라 철학에서 로고스는 피조물 중에 가장 높은 이성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로고스는 피조가 아닌 창조주 로고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로고스입니다. 이 로고스가 히브리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왜 로고스라고 했을까요? 이는 헬라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헬라인들은 로고스라는 단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근본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오셨고, 오시되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행 13:27).
바울은 유대인들이 선지자의 말을 알지 못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존귀하신 예수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오셨는데 저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죄를 지은 것은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무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모든 문제는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이런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상).
사람이 알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사람이 알면 유연해지고 겸손합니다.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으면 이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면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에 몰두하다가 학점이 미사일을 맞고(F) 시들푸들(CDFD)하게 됩니다. 사람이 공부하지 않은 것을 언제 실감하게 되느냐 하면 늙어서 돋보기안경을 쓸 때입니다. 다시 말해 미네르바 부엉이가 석양에 나를 때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상).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 것은 지식이 없어서입니다. 그들은 매주 안식일마다 말씀을 읽고 암송했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성경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무서운 사건 속에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음을 알고도 빌라도의 공권력을 빌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행 13:28). 이로써 신명기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23).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행 13:29-37). 다윗은 죽어 무덤에 있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죄 사함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지 않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지의 소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죽으면 삽니다. 죽으면 부활의 영광에 이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9).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것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주제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법이고 다른 하나는 제사법입니다. 도덕법의 죄 값은 사망입니다. 이 법은 우리를 살리는 법이 아니라 죽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법을 주셔서 죄를 짓는 자마다 제사를 지내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율법의 행위’란 구원받기 위해 애쓰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포함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하는 것, 도덕주의자들이 양심대로 살아 의에 이르고자 하는 것, 그리고 선행이나 업적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이에 해당됩니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에 이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는 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인간은 노력하면 할수록 의에 이를 수 없어 깊은 절망에 빠집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행위나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일생동안 살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의롭다 함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은 의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덮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싸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입니다. ‘은혜’란 기쁨, 기쁨을 일으키는 것, 기쁨을 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값없다’는 것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실을 믿고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강도는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에 임하실 때 기억해달라고 염치없는 부탁을 했습니다(눅 23:42). 그러자 예수님은 있는 모습 그대로 그를 받아주시고 즉시 낙원을 약속하셨습니다(눅 23:43). 하나님은 우리가 반복해서 죄를 지을지라도 보혈의 은혜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언제나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 죄를 지었을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미쁘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요일 1:9).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최후의 초청을 거절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행 13:40).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행 13:41).
그들은 결국 복음을 영접하지 않아 주 후 72년에 예루살렘 성이 초토화되었고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방황해야 했습니다.
이방의 빛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와 구약의 말씀을 기초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사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철학자요, 사상가이지만 순수하게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했습니다(행 13:43).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말씀을 듣고자 모일 만큼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행 13:44). 그들이 몰려 온 동기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마음에 시기심이 생겨 바울의 말을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이들의 비방에 말려들지 않고 이방인 전도의 새로운 방향을 찾았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행 13:47).
이 말씀은 이사야 말씀을 기초합니다(사 49:6). 바울은 그들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자 선교의 방향을 이방인에게로 돌렸습니다. 이로 인해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말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의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명령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의 섭리 안에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은 다 믿었습니다(행 13:48). 이방인들의 개종으로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습니다(행 13:49). 복음은 핍박을 통해 이방으로 전해졌으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전해졌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 전해집니다. 이것이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경건한 귀부인과 그 도시 유력한 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그 지역에서 쫓아버렸습니다(행 13:50). 그러자 두 사도는 그들을 향해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행 13:51). 남은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행 13:52). 그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여 마음을 다해 전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가는 곳마다 열매를 맺었습니다.
인간 모두가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구원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무지하여 구원의 말씀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무지를 회개하고 구원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