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사도행전 14:8-18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보고 -루스드라 선교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14:9).

 

 

예수님과 제자들이 높은 산에 오르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 밑에서 돌을 들고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의아해했습니다. 베드로는 의아해하는 제자들에게 가지고 가라면 가는 것이지 왜 그리 말이 많아?” 하며 큼직한 돌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도마는 할 수 없이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올라갔습니다. 빌립은 산꼭대기에도 돌이 많을 텐데 여기서부터 힘들게 가지고 갈 필요가 있나? 돌이 필요하면 거기서 주우면 되지하고 빈손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에 오르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무거운 돌을 들고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 많았다. 땀도 흘리고 배도 고플 텐데 어서들 앉아라.”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들 손에 들려 있는 돌이 변해 떡 덩이가 되게 하소서!”

이때 누구의 떡 덩이가 제일 컸을까요? 당연히 베드로의 떡 덩이가 컸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본문을 보면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말씀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우리도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의 핍박을 피해 루스드라에 도착했습니다.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30km에 위치한 도시로, ‘양의 무리란 뜻입니다. 루스드라는 당시 로마로 연결되는 군사도로가 있었던 군사 도시입니다. 루스드라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루스드라 선교는 외적으로도 큰 역사를 이루었지만 이보다 더 큰 역사는 디모데가 루스드라 출신이라는 점입니다(16:1). 디모데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어 신실한 주님의 제자, 바울의 제자가 되어 초대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말씀을 전할 때였습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14:8).

 

회중 중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일어나 걸을 것이라고 기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본인 자신도 일어나 걸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말씀을 듣기 위해 무리 중에 앉아 있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14:9).

그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을 텐데 성경은 유독 그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듣는다는 말은 누구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일반적인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관심 있게 집중하여 듣는다, 마음으로 듣는다, 순종하는 자세로 경청한다, 지속적으로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순종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그는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여 계속해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를 주목했습니다. ‘주목하다는 것은 관심을 갖고 보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이 사람을 주목한 것은 말씀을 열심히 집중해서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을 전하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눈에 띕니다. 어떤 사람은 메시지 제목을 말하자마자 조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 시간에 계속 딴 짓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립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말씀에 다 집중할 수는 없습니다. 교육학자 가네의 완전 학습이론에도 85% 정도 집중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을 전할 때 딴 짓하는 사람을 쳐다보면 맥이 빠집니다. 그래서 저는 몇 사람이라도 말씀에 집중하는 사람을 보고 말씀을 전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함께 읽고, 찬양할 때 함께 찬양하는, 진지하게 집중하여 듣는 사람을 보고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역사하십니다.

바울은 말씀을 듣는 그 사람을 향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눈과 말씀을 듣는 그 사람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는 말씀을 듣는 정도가 아니라 말씀을 받아먹었습니다. 이는 마치 제비 새끼가 어미가 잡아온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 그런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이 정도로 말씀을 받아먹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안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보면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에 그들은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들이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을 때 8일 만에 데살로니가 도시가 복음으로 뒤집어졌습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그들보다 말씀 받는 자세가 더 좋았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17:11-12).

 

그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받았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의 영적인 눈이 열리고 보배로운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적지 않게 믿었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말씀을 들으면 영혼이 맑아지고, 생각이 건강해지고, 감정이 부드러워지며 온유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이 구원받고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육신의 질병까지 치료됩니다. 바울이 그를 주목하며 말씀을 전했을 때 바울의 마음에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14:9).

 

구원받을 만한 믿음(faith to be healed)이란, 구원이 말씀을 들음에서 온다는 것입니다(10:17).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나의 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린 마음과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고 인내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얻습니다(8:15).

그는 말씀을 듣고, 받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는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구원받을 만한 그의 믿음을 보고 그를 향해 큰 소리로 일어서라고 선포했습니다.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14:10).

 

바울이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듣는 사람이 그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이는 그가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성경의 수많은 이적과 기사들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혈루증이 나았습니다(5:29). 여리고의 맹인 거지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고 소원을 아뢰었을 때 그의 눈이 떠졌습니다(18:41-43). 여리고의 세리장인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에까지 올라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주님은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19:9).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려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에서 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그가 일어나 걷는 것을 본 루스드라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들의 방언인 루가오니아로 소리 질렀습니다.

 

무리가 바울의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14:11).

 

당시의 공용어는 헬라어였습니다. 바울도 헬라어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서 자신들도 모르게 자신들의 방언으로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바나바를 제우스,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부르면서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들이 소와 꽃다발을 들고 와서 제사하려고 했습니다. 제우스는 헬라의 주신입니다. 로마에서는 주피터라고 합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신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본성이 종교적입니다. 인간이 산 흔적이 있는 곳에는 제사를 드린 제단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뭔가 좀 이상하게 보이면 그 앞에 절합니다. 바위가 이상하게 생겼으면 저 바위는 보통 바위가 아니다며 절하고, 나무도 이상하게 생겼으면 저 나무는 몇 천 년 되었으니까 특별한 영험이 있을 것이다고 절합니다. 그밖에도 불을 섬기고, 해를 섬기고,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오르면 아들을 낳게 해줄 것이라며 그것을 향해 빕니다. 사람들은 신비하다고 생각되면 모두 다 섬깁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사람의 머리와 독수리의 날개, 그리고 사자의 발을 합성하여 섬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무신론자라고 말하지만 사실 무신론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루이스는 무신론은 언어로는 가능하지만 그 주장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언어의 유희라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자 벌고프는 인간은 치료 불가능한 종교적 존재라고 했습니다. 평소 큰 소리를 잘 치는 사람도 막상 무슨 일이 생기면 의지할 것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직업적인 점쟁이나 무당을 제외하고도 사주팔자나 궁합 등을 봐주며 먹고 사는 사람이 1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처녀보살, 아기보살 등이 불황을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림으로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우준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으로 바꾸었습니다(1:22-23).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두려

람이 두렵게 되면 이성과 합리성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우상을 찾게 됩니.

 

이루지 못하는 소원

사람이 소원은 멀리 있고, 또한 사람의 힘으로는 이 소원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 싶을 때에 어떤 것이라도 붙들고 빌어서 소원을 이루려 합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쾌락

쾌락은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죄를 정당화하려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도덕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우상을 섬깁니다. 이는 무당이 정신없이 춤추는 것을 바라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욥은 어떤 고난 중에도 우상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 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31:26-28).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 뒤에서 그것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처음에 그들이 루가오니아(Lycaonian)의 현지 언어로 말했기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사도는 옷을 찢고 무리 속으로 뛰어 들어가 그들에게 창세기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4:15).

 

바울은 사람들이 자기를 경배하면서 신으로 섬기겠다는 것을 절대로 못 하게 했습니다. 사람은 두 가지 경우에 자기 위치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하나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을 때에 분하고 괴로워서 제정신을 잃고 자기 위치를 상실하기 쉽습니다. 다른 하나는 칭찬을 들을 때입니다. 사람이 지나친 존경과 칭찬을 들을 때 침묵을 지키는 것은 죄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잘났다고 한다고 해서 내가 잘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발을 쓰지 못한 사람을 일으킨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입니다. 당신들도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이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이를 일으켰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그 사람을 낫게 했다고 했습니다(3:12). 또한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도 고넬료와 그의 친척들이 자기를 보고 엎드려 절할 때에 그들을 일으키면서 나도 사람이라(10:26)고 했습니다. 이처럼 존경을 받더라도 자기 위치만은 꼭 지켜야 합니다. 교만과 허세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14:16-17).

 

하나님은 자연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이 계심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1:20).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새찬송가 79).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자연 계시를 오히려 우상으로 전락시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예수님의 피로 깨끗해진 사람만이 자연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경고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주목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보고 말씀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주님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에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받을 때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생깁니다. 이때 하나님의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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