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6:1-6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의 기쁨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시편 126:5-6)

 

히브리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거기에는 전 세계에서 끌려온 수많은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노예들은 바벨론성을 쌓고 궁궐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으로 끌려온 지 70년이 지난 어느 날, 고레스 왕이 히브리 노예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뜻밖의 해방명령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수많은 노예들 중에 오직 히브리인들만이 자유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그들의 기쁨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꿈꾸는 것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였고, 혀에는 찬양이 저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붙들려온 노예들은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때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에는 아직도 히브리 노예들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나아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새로운 생활을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내게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고, 눈물로 복음의 씨를 뿌려 내 옆의 빈자리를 채워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를 기도합니다.

1.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편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편 126:1)

노예가 해방되려면 일정한 몸값을 지불해야만 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 노예들은 아무도 몸값을 지불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평생 동안 아니 후손들까지도 노예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무슨 꿈과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노예들의 영가만 부르며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바벨론제국이 무너지면서 새로 등장한 바사제국의 고레스 왕이 히브리 노예들에게만 해방을 선언했습니다. 그것도 전혀 몸값을 받지 않고 해방을 선언하여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노예들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셨다고 노래하였습니다. 겉으로는 고레스 왕이 한 일인 것 같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레스가 왜 히브리 노예들을 아무 몸값을 받지 않고 해방시켰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고레스가 그들을 돌려보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일찍이 이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알게 하리라.”(45:1-3)

하나님은 바벨론의 지하창고에 보관된 엄청난 보화와 재물을 이미 고레스에게 히브리 노예들의 몸값으로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본래 죄 중에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던 죄의 노예였습니다. 우리는 죄에게 순종하며 죄의 소욕을 좇아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죄를 섬겼기 때문에 온 몸에 죄의 습성(근성)이 배어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아시고 친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그의 보혈로 우리의 몸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나를 죄에서 건져내기 위해 예수님과 사상 최대의 big deal을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또 다른 어떤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 고행이나 참 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모든 죄 값을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고 고백하는 순간 모든 죄가 사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만이 아니라 미래의 모든 죄까지도 모두 다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일부분만을 위한 구원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완전한 구원, 영원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남긴 마지막 한 마디는 다 이루었다”(19:30)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열패감으로 괴로워하였습니다. 에고그람의 성격검사를 해보면 거의가 I am not OK, You are OK. 유형입니다. 이는 열등감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사랑스럽고,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슬픔이 변하여 기쁨으로, 미움이 변하여 사랑으로,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패배가 변하여 승리로, 심판이 변하여 구원으로, 정죄가 변하여 용서로, 운명이 변하여 천명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은 십자가의 보혈로 온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다 용서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식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도록 도와주시고,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죄의 노예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유와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죄 사함 받은 은혜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죄로부터 해방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큰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미래까지도 구원받았으니 죄를 지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1-2)

죄가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의식이 없습니다. 죽으면 인간관계도 끝나고, 법적인 관계도 중단됩니다. 빚쟁이도 죽은 사람에 대해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검사나 판사도 죽은 사람에게 형을 선고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책임과 지배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한편 우리의 육신은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살아있는 우리의 육신의 지체로 미혹합니다. 그래서 육신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죄의 미혹을 받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육신의 지체를 틈타 미혹하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날마다 매순간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을 회개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성화는 나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 매순간 육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생활입니다. 이때 우리는 성화에 이르게 됩니다.

2.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시편 126:2-4)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옵니다. 히브리 노예들이 그러했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126:2)

그들이 얼마나 좋았던지 돌아 오면서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그들의 입에서는 찬양이 흘러넘쳤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기뻐했습니까? 왜 그렇게 입이 다물 줄 모르며 찬양이 흘러넘쳤습니까? 노예들에게 자유를 얻는 것보다도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다른 이방인 노예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126:2)

그들은 전에는 히브리 노예들이나 자기들이나 다 똑같은 노예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외형적으로 보면 히브리 노예들이나 그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독 히브리 노예들만 해방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고레스를 부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자신들도 혹시 자유인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 또한 하나님을 믿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어 해방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놀라운 비밀을 배우게 됩니다. 성도는 불신자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면 성도나 불신자나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성도와 불신자는 차원이 다릅니다. 한 마디로 종자가 다릅니다. 한 예로 성도나 불신자나 모두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할 수 있습니다. 성도라고 아프지 말라는 법 없습니다. 이 때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다 똑같은 환자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환자이지만 성도는 차원이 다른 환자입니다. 성도는 병원에 입원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연단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통을 벗기시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반면에 불신자는 그저 병이 들어 병실에 누워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연단도 아니고 축복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환자로 보면 안 됩니다. 성도는 영광의 환자이고, 불신자는 그냥 병들어 누워있는 환자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126:3)

히브리 노예들은 고레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큰 일(great things)로 보았습니다. 노예가 해방된다는 것은 큰 일 중의 큰 일입니다. 우리 또한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은 우리의 삶 중에 가장 큰 일 중의 큰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큰 일들이 많지만 이보다 더 큰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과거에 죄의 노예가 되어 죄가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마음으로는 이렇게 살면 안된다하면서 몸은 정욕에 이끌려 쾌락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벗어나야지 하지만 스스로 벗어날 힘이 없었습니다. 물질의 종이 되어 눈을 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머리에는 어떻게 하면 물질을 모을까 하는 생각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미워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미움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죄의 노예는 기쁨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죄의 노예로 살 때 나의 삶에 무슨 열매를 맺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6:21) 오직 부끄러운 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죄의 노예로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내게 이런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자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제 그들은 아직도 바벨론에 남아 있는 동족을 위해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시편 126:4)

남방 시내는 평소에는 물이 없어 말라 있다가 비가 내리면 금방 물바다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남은 포로들이 남방의 시내들같이 돌려 보내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고레스 왕이 돌려보낸 히브리 포로들은 선발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해방되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에스겔은 얼마 있지 않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성령이 이 땅에 임하여 인종과 피부색을 떠나서 구름같이 하나님께로 몰려올 비전을 보았습니다(47:1-12).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졸졸 작은 생수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발목까지 찰 정도로 물이 많아졌습니다. 다시 재보니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측량해보니 물이 허리에까지 차고, 다음에는 강이 되어서 수영할 정도로 물이 가득 찼습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을 통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우리에게 성서한국은 쉬운 일이요 이방의 빛으로 삼아 만백성에게 복음을 전할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49:6)

우리는 자신의 죄와 욕심에 매어 남을 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겨우 먹고 살아가기에 바빴습니다. 나 자신의 문제해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나를 향해서 가지신 비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죄의 노예로 살고 있는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요 나아가 이방의 빛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방은 내 주위에 믿지 않는 가족들 이웃들 친구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삼아 땅 끝까지 이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내가 할 수 있습니까?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렇게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비전을 주시고 꿈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룰 능력을 주십니다.

3.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126:5-6)

그러면 우리가 비전만 붙들고 꿈만 꾸면 됩니까?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은 이제 다시 돌아왔으니 이제 고향 땅에서 두 다리 뻗고 지냈습니까?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경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황무지에 씨를 뿌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미국의 1세대 개척자들은 50세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버려진 땅을 개간하고 개척하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버려진 땅에 씨를 뿌린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렸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릴 때에 반드시 기쁨으로 추수하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행운을 믿지 않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행운과 행복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행운은 수고 없이 우연히 거저 얻어지는 것이고, 행복은 애쓰고 수고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고 한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4:9).

성경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했습니다(6:7). 우리 속담에 콩 심은 곳에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고 했습니다. 참된 행복은 그 씨를 심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불행의 씨를 심어 불행을 거두고, 행복의 씨를 심어 행복의 결실을 거둡니다. 과거의 모든 행동이 지금의 열매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6:8)고 말씀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심는 자는 반드시 정욕의 열매를 맺습니다. 원망과 미움, 불평하는 사람들은 원망과 미움과 불평의 열매를 거두고 또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런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감사를 심고, 축복을 심고, 기도를 심고, 사랑과 칭찬을 심으면 감사의 열매, 축복의 열매, 기도의 열매, 사랑과 칭찬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처럼 무엇으로 심든지 반드시 과거에 심은 것은 오늘 거두게 되고, 오늘 심는 것은 내일 거두게 되고, 이생에 심는 것은 내세에서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종자를 심어야 합니다. 종자가 나쁘면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조심할 것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6:9-10). 우리가 낙심하지 않고 선을 행할 때에 언젠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논어에 덕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37:25)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최순실 게이트로 멘붕 상태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 혼자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까? 우리는 눈물로 황무지에다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황무지에다가 복음의 씨를 뿌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제가 34년 전에 인하대학을 비롯하여 캠퍼스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어떤 형제는 인천은 수도권이기 때문에 대전과 다르다며 일찍 대전으로 짐 싸들고 내려가라고 점잖게 충고까지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도 저희 부부는 매일 캠퍼스에 나아가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두 살 먹은 다윗을 업고 안고 도서관에 가서 울면서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저희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믿음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복음의 씨를 뿌렸을 때에 많은 주님의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황무지와 같은 캠퍼스와 직장과 가정에 울면서 씨를 뿌릴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 빈자리가 너무 많습니다. 교회 지층부터 3층까지 비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릴 때에 반드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어 빈자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울면서 복음의 씨를 뿌려 이번 교회설립 34주년 및 추수감사예배에 빈자리를 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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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ananmen Square protests, China Democracy,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热比娅·卡德尔, 熱比婭·卡德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