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1-15

범사에 기한이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3:1)

동서고금에 시간에 대한 금언이 많습니다. 주자는 권학문에서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이라고 했고, 셰익스피어는 시간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속도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세월을 아끼라.”(5:16)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받아 20대는 시간이 20Km, 30대는 30Km, 40대는 40Km, 50대는 50Km로 가고, 60대부터는 배로 간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4시간, 1,440분입니다. 이 정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실패와 성공이 판가름이 납니다.

요한 웨슬리는 하루를 5분 간격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1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스위스의 한 노인이 80평생을 돌이켜 보며 자신의 시간을 헤아려 보았더니, 80평생 중에 26년간 잠을 잤고, 21년간 노동했고, 6년간 식사에 허비했고,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다린 시간이 무려 5년이나 허비했고, 5년간을 혼자 낭비했고, 아이들과 노는데 26, 수염을 깎고 세수하고 세면하는데 28, 넥타이를 매는데 18, 담뱃불을 붙이는 데 12일을 허비했습니다. 그가 행복을 누렸던 시간은 단지 46시간에 불과했습니다. .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의 80평생을 스마트폰과 게임과 TV 시청으로 40년을 허비하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교황은 스마트폰 보는 것을 줄이고 성경을 읽으라고 권고했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70으로 보았고, 길면 80이라고 했습니다(90:10). 우리는 하루 24시간, 1,44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영원하고 가치있는 것에 사용해야겠다는 다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다(3:1-8).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3:1)

여기에서 기한(καιρς)’은 고정되고 한정된 시간을 말합니다. ‘(χρνο)’는 어떤 기간의 시작이나 통상적인 시간의 명칭을 뜻합니다. ‘시간과 때란 단어는 사도행전 17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승천하실 때가 이르렀습니다. 이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심각하게 질문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1:7)

우리의 의지로 때와 시기를 조절할 수 없습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낳고 죽는 것을 내 의지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낳고 죽는 것을 조절할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과 의지 속에 있습니다.

전도서 32-8절을 보면 28번의 때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4가지는 긍정적인 사건들이고, 14가지는 부정적인 사건들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들이 서로 상반되어서 나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습니다. 죽일 때가 있으면 치료할 때가 있습니다. 헐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습니다.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습니다. 슬퍼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습니다.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으면 돌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안을 때가 있으면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습니다. 지킬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습니다. 찢을 때가 있으면 꿰맬 때가 있습니다. 잠잠할 때가 있으면 말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할 때가 있으면 평화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시간은 생명을 제공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건강을 줍니다. 시간은 청춘을 가져다주고, 시간은 성취의 감격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춤추는 즐거움, 소유의 기쁨, 창조와 생산의 기쁨, 발견과 사랑의 추억과 평화의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이런 것들로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혼의 단꿈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젊음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은 죽음과 질병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노쇠와 상실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눈물과 패배, 잃음과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허무와 절망과 미움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어제의 평화가 오늘의 전쟁으로 안겨줍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면서 생을 낙관적으로 보기도 하고, 비관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모두가 일리가 있습니다. 생명, 건강, 청춘, 성취에서 오는 감격, 춤추는 즐거움, 생산, 소유의 기쁨, 새로움의 발견, 아름다운 추억, 평화의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생을 낙관적으로 봐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슬픈 일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과 검은머리가 파뿌리처럼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회한에 젖을 때가 있습니다. 죽음, 질병, 패배를 경험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웬수라며 삶을 비관적으로 봅니다.

지난 주 경건이 할머니는 요나단, 안나 선교사님을 공항에서 보는 순간 얘들아 왜 이렇게 늙었냐며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이 대학생 학부모가 되어 귀국했는데 액자 속의 결혼사진만 바라보다가 10년 만에 아들과 며느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삶을 비관과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슬플 때가 있으면 즐거울 때가 있고, 절망의 때가 있으면 희망의 때가 있고, 위기가 있으면 기회가 있고, 패배가 있으면 성공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이 횃불과 태극,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 그리고 사드 유치 반대와 찬성으로 극명하게 양분화 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갈라진 진영이 손에 손을 잡고 기쁨의 춤을 출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서울광장에서 김일성 광장에서 서로 부등켜 앉고 부활의 춤을 출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복음화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 없습니다. 절망이 있으면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경제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시대를 잘 넘겼습니다. 지금은 제 3차 산업혁명에서 제 4차 산업혁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또한 극복하여 다시 한 번 번영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정주영씨의 자서전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절망을 넘어서서 희망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일이 잘 된다고 여겨질 때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 3대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大馬不死가 아니라 대마도 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1850년에 설립된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은행의 도산사건입니다. 그리고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박근혜의 신드롬도 무너져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에서 파면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잘 된다 싶을 때, 희망의 때에 절망의 때를 보며 겸손해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매사 할 일이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게 긴 것이 아닙니다. 20대 만난 김요난단 선교사님이 4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희원이가 엊그제 3살이었는데 이제 어엿한 13살의 소녀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인생이란 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대에 할 것은 반드시 20대에 해야 합니다. 30대에 할 일은 30대에 속히 해야 하고, 40대에 할 일은 40대에 반드시 속히 해야 하고, 50대에 할 일은 50대에 해야 합니다. 공자는 15세에 지학(志學)하고, 20세에 약관(若冠)하고, 30세에 입지(立志)하고, 40세에 불혹(不惑)하고, 50세에 지천명(知天命)하고, 60세에 이순(耳順-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있다)하고, 70세에 종심(從心-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이라고 했습니다.

삶의 황금기인 청년의 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12:1). 청년의 때에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딤후 2:22). 그리고 다니앨처럼 분명한 뜻과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1:8). 30대는 마음의 성실함과 그 손의 공교함이 있어야 합니다(78:72). 자기가 하고 있는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40대는 돈과 모든 탐욕의 자리의 유혹을 이기고 성숙해야 합니다. 그리고 50대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께 소망의 닻을 내려 결심을 맺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뜻을 정했으면 그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시간의 투자에 비례합니다. 그리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때란 매우 중요합니다. 때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아무렇게나 헛되이 보내지 않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는 책에서 사람의 하는 일을 네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구분했습니다. 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에 묶여 있는 것은 긴급하고 중요한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미 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합니다. 스마트폰이나 게임이나 바보상자인 TV, 그리고 포켓몬고에 시간을 투자합니다. 우리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사람은 시기마다 채울 공간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공간을 채우지 못하면 노년에 생고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것에 시간을 써야 합니다.

노벨이 값진 삶을 살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노벨의 형이 죽었는데, 신문에 노벨이 죽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노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죽음의 상인, 사망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그 기사를 읽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또한 단지 돈 많은 사람, 죽음의 다이너마이트를 팔아 부자가 된 정도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겠다고 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모은 돈을 모두 노벨상에 투자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때를 생각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매사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9:4)

우리에게는 일할 수 없는 죽음의 때, 병들 때가 반드시 옵니다. 우리는 젊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잠든 영혼, 죽은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때를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불교의 시간관과 변증법적인 시간관, 그리고 기독교 시간관입니다. 불교 시간관은 윤회시간관입니다. 그들의 시간이란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으로 나타나고, 그 생명은 죽음을 낳고,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계속하여 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관을 갖게 된다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회가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개로 태어났다가 돼지로 태어나고, 언젠가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 때 가치 있는 삶을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간관에 묶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만 시간이냐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는데, 오늘 먹고 놀고 즐기고자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절대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 리가 없습니다.

변증법적인 시간관은 역사는 계속해서 진보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합이 있으면 또 다른 정과 반이 생기고, 그것이 또 다른 합이 생긴다는 것으로, 계속하여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입니다. 윤회시간관이 원(동그라미)의 시간관이라면 변증법적 시간관은 삼각형의 시간관입니다. 이 시간관대로 본다면 역사는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전진하고 발전하지 않습니다. 열역학 제 2법칙을 보면 새로운 창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시간과 거리를 단축시켰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인간창조 역사를 이루었습니까?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서 1위입니다. 일 년에 10만 명 당 16명입니다. 변증법적 시간관은 과학과 사회학은 발전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창조 역사를 이룰 수 없습니다.

반면에 기독교 시간관은 종말론적 시간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삶을 시작하게 하신 순간이 있고, 끝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습니다. 기독교 시간관은 종말을 향해 가는 직선의 시간관입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청년의 때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간이 또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간,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도박할 수 없는, 연습이 없는 이것이 시간의 엄숙함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440분을 귀하에 여겨 하루하루를 주님과 주님역사를 위해 쓰기를 기도합니다.

2. 일에는 이익이 있다(3:9-15).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3:9)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는 삶의 대차대조표를 보니 아무런 이익이 없었습니다. 일 년을 결산해보니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4년 대학생활을 결산해보니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30대를 결산해 보니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40년을 결산해보니 빈주머니였습니다. 50, 60대를 결산해보니 얼굴에 패인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뿐이었습니다.

내게 청년의 때가 다시 온다면 정말 멋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파면한다고 하면 상황 끝입니다. 대통령의 직임을 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절망 중에 저자는 하나님께서 노고를 주셔서 애쓰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묵상하다가 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0-11)

이 말씀은 전도서 저자의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는 회의와 절망의 늪 속에 핀 아름다운 장미꽃과 백합화와 같습니다. 이 위대한 신앙고백에는 네 가지 사실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마음에 차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게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짜증을 내고 불평하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나서 고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특히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고통이 도리어 감사함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아름답고, 하나님 안에서 쉼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하는 모든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시각에서 나를 보고 가정을 보고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우리는 허무한 삶 속에서 영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우리가 절망과 허무 속에서, 아 그렇다면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간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깊은 허무와 절망을 느끼지 못한 사람, 자기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설프게 고민을 하면 니체가 되고, 진지하게 고민하면 어거스틴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거장이 됩니다. 우리는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인 봄에 자기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위대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 수 있다면, 내일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고,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그러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 속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넷째, 하나님은 반복된 삶 속에서 역사하신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3:15)

우리의 삶은 반복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보고 학교로 가든지 직장으로 갑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그러다 보면 일 년이 지나갑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과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 해야 하지 않는가, 새로운 것을 다시 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하나님은 우리의 반복되는 삶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에 삽니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아껴 써야 합니다. 시간을 도둑맞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도둑을 맞고 잊어버리면 원통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돈보다 더 귀합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도둑맞은 시간은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지나가는 시간을 귀히 여기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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