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성탄 누가복음 1:67-80
강한 힘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2:69)
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를 보면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힘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힘이 없으면 강대국으로부터 무시당합니다. 힘이 있어야 주권국가로서 당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가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시편 저자는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시 18:1). 이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건지신 날에 지은 시입니다. 저도 이 말씀을 애송한 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이십니다. 예수님은 돋는 해이십니다. 사가랴는 성령 충만하여 구원의 뿔로 오신 강한 주님, 돋는 해로 오신 희망의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가 찬양한 주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돌아보셨습니다(눅 1:68상).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눅 1:68상)
‘돌아보사(has come)’는 심방하셨다는 뜻입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많은 민족 중에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여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방신을 섬기고 죄를 지으며 하나님의 백성에서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북이 분단되고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지배아래 갖은 수모를 다 겪어야 했습니다. 로마는 그들에게 황제 가이샤를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를 신구약 중간사라고 하여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하나님 말씀이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비전이 없었습니다. 비전이 없으니 삶의 희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절망 중에 이스라엘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장 절망의 시기인 애굽서 종살이할 때에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자기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듣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을 기억하여 돌보셨습니다(출 2:23-25).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고 다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때가 되자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쓸모가 있는 사람을 찾고 안부 전화합니다. 사람들은 처절할 만큼 이기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와 마귀에게 포로 되고 눌려 아무 쓸모없는 자들을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사람들은 세상이 외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격리 수용된 나병환자, 중풍병자, 귀신들린 자, 사회에서 소외된 창녀와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찾아오셔서 치료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소망을 심어주시고 구원하시고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살게 하셨습니다. 자유를 주시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하시고, 귀 먹은 자들에게 듣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건강하고 부요하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오지 않으시고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자들을 찾아오셔서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찾아가서 돌아보신 주님의 마음을 담아 북한 동포를 돕는 성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북한은 엄동설한에 차가운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해 미국을 비롯해 모든 나라로부터 버림받고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손길이 다 끊겼습니다.
이번 남북나눔에서 겨울내복 보내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고통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핵과 미사일 개발이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같은 동포로 그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헐벗고 굶주린 그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궁핍한 이웃을 성탄예배에 초청하여 성탄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그 백성을 속량하셨습니다(눅 1:68하).
하나님은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고 사탄에게 눌린 자들을 찾아오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속량하셨습니다. ‘속량’은 노예상태에 있는 자를 일정한 몸값을 지불하고 해방시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사가랴가 속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때에 인간은 죄의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선언하였습니다(롬 3:24). 누구든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일정한 죄 값을 치러야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의 보배로운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자유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죄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19세기 영국의 설교자인 존 헨리 조웨트는 “죄는 파괴적인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몸과 인격과 마음과 양심, 그리고 영혼을 파괴합니다. 죄는 인간관계, 사회생활, 심지어 우리의 의식의 세계와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파괴합니다. 죄는 시각을 파괴시켜 분별력을 상실하게 합니다. 죄는 청각을 파괴시켜 귀머거리로 만들어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합니다. 죄는 촉각을 파괴시켜 감각적인 느낌만을 추구하게 합니다.
죄는 사람을 흉하게 만듭니다. 은혜롭고 참신하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찌그러지게 하고 흉하고 표독스럽게 만듭니다. 죄는 사람을 어둡고 음침한 곳으로 이끕니다. 죄는 어두운 음악과 어두운 생각으로 유도합니다. 죄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앗아갑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보기를 꺼려하게 하고, 찬송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발견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처음에는 심한 죄의식으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계속 짓다보면 죄의식도 사라집니다. 죄는 자랍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죄가 문화가 되면 죄 짓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죄를 자랑하고 조장합니다. 거룩 순결이란 단어를 이상하게 여깁니다.
죄는 무엇보다도 지독하여 생명, 피를 요구합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입니다. 죄는 생명인 피를 요구합니다.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짐승의 피를 흘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불완전하여 일시적으로 정결하게 할 뿐, 사람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깨끗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계속 짐승을 잡아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보내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보배로운 피를 나를 위해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죄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심을 믿는 순간 우리는 모든 죄의 사슬에서 풀려 마귀의 지배를 받던 삶에서 거룩한 성령의 지배를 받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아멘.
셋째, 하나님은 구원의 뿔로 원수를 파하셨습니다(눅 1:69-78상).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눅 1:69)
하나님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후손 중에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습니다(삼하 7:13, 행 13:22-23). 구원의 뿔은 사탄의 뿔에 대칭됩니다. 인간에게는 한 개의 뿔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일곱 머리와 열 개의 뿔을 가졌습니다(계 12:3, 13:1).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합니다. 사탄은 열 개의 뿔을 가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여 찌릅니다. 한 번에 하나만 찌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한 번에 여러 개의 뿔로 찌릅니다. 사탄의 뿔에 찔리게 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습니다.
사탄은 정욕의 뿔로 정욕에 약한 젊은이들을 공격합니다. 정욕의 뿔에 찔리면 천하장사라도 무기력하게 되고 못쓰게 됩니다. 가능성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음란한 영상 매체와 정욕의 뿔에 찔려 정신세계가 황폐하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탄은 허무주의 뿔로 사람을 공격합니다. 허무주의의 뿔에 찔리면 회의에 빠지어 결국 자살하게 됩니다. 돈뿔에 찔리면 돈돈하다가 돌아버립니다. 절망과 좌절의 뿔에 찔리면 현실을 도피하여 은둔하게 됩니다. 부부가 미움의 뿔에 찔리면 서로 미워하다가 끝내 이혼하게 됩니다. 공주병과 왕자병의 뿔에 찔리면 자아도취에 빠져 타인에 대해 냉소적이고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합니다. 교만의 뿔에 찔리면 위아래를 분간하지 못합니다. 배반의 뿔에 찔리면 은혜를 모르는 배신자가 됩니다.
일곱 머리를 가졌다는 것은 지혜도 출중하다는 것입니다. 머리 하나에 IQ가 두 자리, 90이라도 일곱 머리이므로 IQ가 630이 됩니다. 머리가 하나 뿐인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사단의 지략과 권모술수를 당해낼 수 없습니다.
사탄의 뿔에 찔리지 않으려면 사탄의 뿔보다 더 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습니다. 뿔은 힘을 상징합니다(신 33:17). 그 힘은 원수를 능히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밀림의 왕자인 사자라도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코뿔소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일반소는 600kg인데 반해 코뿔소는 3000kg입니다. 투우들의 그 날카롭고 단단한 뿔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합니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더 강한 구원의 뿔로 오셨습니다. 사단의 뿔이 염소의 뿔이라면 예수님의 뿔은 코뿔소의 뿔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능히 강한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구원의 뿔이 되신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훨씬 지혜가 뛰어나십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 지식의 신으로 충만하십니다(사 11:2).
또한 예수님은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귀신의 세력과 질병과 죄와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는 힘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씀의 권세가 있습니다. 귀신의 세력을 물리치시는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광풍도 잠잠케 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어떤 질병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죄의 사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죄 사함의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최대 원수인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부활하신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주이십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해 승리에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들은 귀신을 내쫒고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죽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합니다(고후 10:4-5).
복음은 어떤 사상과 어떤 세력의 진을 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합니다(히 4:12).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나가면 원수 마귀가 떨고 지옥권세가 흔들립니다.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할 때 승리하게 됩니다.
주님은 강하십니다. 출애굽기를 바로의 세력은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세력보다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이십니다(출 6:1). 강한 손으로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장자를 죽이는 피의 재앙을 통해 바로의 세력을 꺾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출 12:13).
피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아무리 추한 죄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피는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롬 3:25).
예수님의 피가 우리 마음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이 피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역사하여서 죄로 병든 마음, 삐뚤어진 마음,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하여 주시며 소생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하여 주시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구원의 피, 생명의 피, 은총의 피, 능력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의 피가 심장에서 박동할 때 죄 사함의 은혜가 넘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피의 은혜가 있을 때 세상의 죄의 파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상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생명을 드리기까지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부흥의 역사,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피는 강한 죄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구원의 뿔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강한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은 두려움이 없이 일생동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함에 있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입니다(눅 1:71-78상).
넷째, 하나님은 돋는 해이십니다(눅 1:78하-79).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8하-79).
사람들은 죄로 인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망을 없어 자포자기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둡고 우울했습니다.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부정적이고 의욕이 없고 무기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돋는 해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치료하는 광선입니다(말 4:2). 예수님은 강한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줍니다. 예수님은 다툼과 갈등에서 평화의 길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예수님은 개개인과 민족과 인류의 희망이십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입니다. 예수님은 강한 손입니다. 예수님은 희망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맞아 힘과 희망이 없는 우리와 우리 민족에게 능력과 희망이 되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찬양하고 노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