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마가복음 2:13-17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2:17).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 보면 우리의 내면이 여러 질병에 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신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나병환자처럼 추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신 말씀을 보면 중풍병자처럼 의존적이고 무기력하고 감사가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세리 레위를 통해 탐욕과 이기심으로 병든 내 내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병이 들면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병중에 간경화는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역시 없습니다. 만일 간경화의 증상이 나타났다면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심경화입니다. 마음이 굳어버리면 양심이 마비되어 잘못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죄를 짓고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경화에 걸려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 치료자, 여호와 라파를 만나 병든 몸, 병든 마음, 병든 영혼이 치료되어 건강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치신 후에 바닷가로 나가셨습니다. 그러자 무리들도 바닷가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바닷가로 나왔기 때문에 가버나움 거리는 텅 비었습니다. 그런데 거리 한복판에 있는 가버나움 세관에 혼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알패오의 아들 세리 레위였습니다. ‘레위의 이름 뜻은 연합하다입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라고 레위라고 이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름과 정반대로 세상과 철저하게 야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밖에 모르는 물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등졌고, 돈 때문에 민족을 배반했고, 돈 때문에 친구를 버렸습니다.

당시 로마의 식민지 세금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인두세와 같이 누구나 다 내야 하는 세금은 로마 관리가 직접 징수했고, 민원의 소지가 많은 통행세와 관세 같은 것은 이스라엘 현지인을 고용해 징수하도록 했습니다. 현지인을 고용할 때는 공개 채용하기도 하고 시험을 쳐서 선발하기도 했습니다. 세리가 된 사람은 로마 정부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세리가 되면 본전을 뽑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마차를 타고 가면 주행세, 길에 다니면 통행세, 길에 서서 쉬거나 사람을 기다리면 주정차세, 소나 양이 새끼를 낳으면 소득세, 술 취한 사람에게는 취득세(醉得稅) 등 각종 세금명세서를 만들어 세금을 거둬들였습니다. 거둬들인 세금 중에 계약한 금액만 로마에 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졌습니다.

세금도 세금이지만 여기저기서 갖다주는 떡값과 떡고물만 해도 상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세리가 되면 단시일 내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가버나움은 국경 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세관 수입이 짭짤했습니다. 레위도 이곳에서 세리 생활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되어 갈릴리 바다 근처에 별장을 짓고, 로마제인 사륜마차를 타고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또한 돈만 주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예루살렘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해 인맥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여우 같은 아내와 결혼해 토끼 같은 자식들도 두었습니다. 그는 돈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그는 돈맛을 알았습니다.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레위는 세상에서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돈으로 좋은 저택을 살 수 있었지만 행복은 살 수 없었습니다. 돈으로 좋은 침대를 살 수 있었지만 단잠을 살 수 없었습니다. 순간의 쾌락은 살 수 있었지만 영원한 기쁨은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돈이 많았지만 사람들로부터 공인된 죄인으로 손가락질을 받고 침 뱉음을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리는 창녀들이 낳은 사생아보다도 더 천한 계층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리는 회당에서 출교되었고,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었습니다. 사람이 왕따를 당하게 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예수님의 손길이 다가왔습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2:14).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멸시의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깊은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그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돈밖에 모르는 세리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혼의 고독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소망이 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병든 내면만 치료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소망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부르심

예수님은 레위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음성은 세리 레위에게 임한 구원의 음성이었습니다. 그가 과거 어떤 삶을 살았든지 문제 삼지 않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바로잡아주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레위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중풍병자는 육신이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세리 레위는 육신이 건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심한 중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된 것은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재능과 은사를 자기 유익만을 위해 썼습니다. 그가 불행하게 된 것도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더 이상 자기만을 위해 살지 말고 주님을 위해 살도록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죄 사함의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방향과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매력적인 삶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행복한 삶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레위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받고 그를 제자로 삼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또 지금은 괜찮지만 나중에 레위 게이트라도 있게 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개의하지 않으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병든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변화되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리라는 소망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그가 꼼꼼하게 세금 장부를 정리하듯이 장차 마태복음을 기록할 성경학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재 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미래에 변화될 모습을 보고 부르셨습니다.

 

둘째, 순종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두말하지 않고 즉시 일어나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배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즉시 일어나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난날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때 이때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떡값만 해도 수억 원이 넘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자 할 때의 아쉬움은 물론, 장래에 대한 염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계산하지 않고 다만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그는 결정적일 때 결단하는 믿음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 결단으로 인해 그는 가장 귀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 양심을 찾았습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희망대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요, 마태복음을 기록한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그의 행복론은 이러했습니다. 돈 많은 자는 복이 있나니 세상이 다 저희 것임이요. …… 백 있는 자는 복이 있나니 세금을 적게 낼 것임이요.” 그러나 예수님을 따른 후 그의 행복론이 바뀌었고,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1-6).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따라야만 진정한 행복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행복의 척도를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계산합니다. 그러나 한겨레신문과 행복경제연구소에서 우리나라 소득계층과 행복지수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행복은 소득과 동일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달 소득이 1,000만 원 이상인 집단의 행복지수는 3.37, 300만 원대의 행복지수인 3.25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행복지수는 돈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눔과 기부의 참여, 그리고 자원봉사의 참여에 비례한다고 합니다.

레위는 삶의 목적과 방향을 바르게 설정하지 못해 하나님을 등지고, 동족을 배반하고, 친구들을 이용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이제 그는 돈을 따르던 삶에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과 야합하는 삶이 아닌 주님과 연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육신의 안목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가던 삶이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삶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레위’, 즉 세상과 짝한 삶에서 마태’, 즉 야훼의 선물로 바꿔주셨습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레위가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을 때 그의 내면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일어나 예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회복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내면에는 행복과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레위의 변화된 모습에 은혜를 받고 나온 세리와 죄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 은혜로운 천국 잔치를 벌였습니다. 당시 엄격한 율법 사회에서 예수님이 세리 같은 공인된 죄인들과 식사하신다는 것은 파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심으로 고독한 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 마음이 봄눈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돈독이 올라 있던 세리들의 눈에서 회개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아름다운 천국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불청객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격렬하게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하고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율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과 열망은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들의 의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죄를 짓는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나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긍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가, 더 나아가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2:17).

 

예수님은 죄인을 병든 자로, 의인을 건강한 자로, 그리고 자신을 의사로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하나의 병으로 보셨습니다. 죄는 질병과 유사합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면 힘을 쓸 수 없고 일할 수 없습니다. 인상이 써집니다. 그리고 병은 전염됩니다. 병을 치료받지 못하면 죽음에 이릅니다. 병든 자는 의사를 필요로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죄를 지으면 내적인 힘이 상실됩니다. 얼굴이 어둡고 심각해집니다. 기쁨이 사라집니다. 죄가 하나의 문화로 형성되면 그 파급 속도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죽음에 이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사망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에게는 구주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구주요, 영적인 의사로 오셨습니다. 의사가 병과 환자를 분리해서 보듯이 예수님도 죄와 죄인을 분리해서 보십니다.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십니다. 의사가 병든 자를 이해하듯이 예수님은 죄인들을 이해하십니다. 의사가 중환자에게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듯이 예수님도 큰 죄에 빠진 사람들을 더 세심하게 돌보십니다.

그러나 의사가 병을 고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습니다. 치료하다가 한계에 부딪쳐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다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명의라 할지라도 고칠 수 없는 질병이 허다합니다. 특히 영적인 질병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로 인해 병든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15:26). 예수님은 모든 질병을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든 몸, 병든 생각, 병든 마음, 병든 영혼을 치료해 삶 전체를 건강하게 해주십니다.

레위는 세상 의사가 진단해 볼 때 아무 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그는 중증환자였습니다. 그는 이기심, 탐욕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천민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돈밖에 모르는 물욕에 병든 자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파괴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겉은 멀쩡하지만 내면이 병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마음이 병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화목하지 못한 가정 문제로 인해 내면이 병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와 패배감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성 문제로 내면이 병들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욕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영혼이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치료자 예수님께 나아가면 건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들어 있는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그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치료를 받았을 때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치료자, ‘여호와 라파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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