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마가복음 2:23-28, 3:1-6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8).

 

안식일에 대한 재미있는 풍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십계명을 가지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 계명을 받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남녀 관계가 복잡해서 그 7계명 때문에 받을 수가 없습니다하며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이 독일 사람들에게 이 계명을 받으라하셨더니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법이 있어서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일을 많이 해야 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쉬라고 하시니 그것 못 받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랍 사람들에게 이 계명을 받으라고 하셨더니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보따리를 털어 살아가는데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 때문에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대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받겠느냐?” 하고 물으셨더니 그들은 그것 얼마입니까?” 하고 물었고, 공짜라고 하시니 그러면 받겠다며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여기시고 안식하셨습니다(2:1-3). 안식일은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로, 축복의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에 따라 지키는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안식일은 구약시대의 안식일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이 아니라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은 주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안식일의 완성입니다. 안식이 쉼이라면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쉼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안식일의 대용품이 아닙니다. 주일은 어쩔 수 없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축제의 날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기쁨으로 드리는 축제와 같이 부활의 기쁨과 소망으로 넘치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을 변호하시는 예수님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습니다. 이날은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와서 따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2:24).

 

보시오란 딱 걸렸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실수하시기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이제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하여란 이제 따지겠다는 것입니다.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란 마땅히 정죄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39234항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조항 중에는 추수, 타작, 키질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조항들을 만든 의도는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빈 껍질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른 것을 추수, 손으로 비빈 것을 타작으로, 입으로 훅 분 것을 키질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하나님 역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제자들을 책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의 예를 들어 제자들을 변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2:25-26).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놋 땅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이때 그는 너무 배가 고파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었습니다. 진설병은 성소 안에 있는 금상 위에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따라 12개의 떡을 두 줄로 차려놓은 것으로, 매 금요일이면 새 떡으로 바꿔놓고 거둔 것은 제사장이 먹었습니다(24:9). 다윗은 분명히 법을 어겼습니다. 다윗은 율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유대인들도 다윗이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다윗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고의로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먹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에는 정상참작이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형편을 이해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이해하셨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용납하지 않고 율법의 잣대로 정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2:25).

 

읽지 못하였느냐는 말은 새롭게 다시 배우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성경의 참뜻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전통에 고착되어 그 내용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12:7).

 

예수님은 형식적인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6:8).

 

미가 68절은 미가 66절에 대한 답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6:6).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나가려고 하십니까? 자랑스러운 학위입니까? 뛰어난 언어 실력입니까? 남다른 학벌입니까? 아름다운 외모입니까? 아니면 선한 행실입니까? 예언자도 이렇게 고민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6:7).

 

하나님은 이런 그에게 외형보다 정의(justly)를 행하며 인자(mercy)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정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인자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주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27).

 

율법은 문자 자체보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람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잣대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살리는 율법을 이용해 사람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은 어떤 날입니까?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2:16-17).

 

안식일은 구약의 월삭이나 절기와 같이 몸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이제 그림자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모델하우스가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이 폐지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안식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아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파트를 놔두고 가건물에 사는 것과 똑같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8).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의 입맛대로 지켜서는 안 됩니다.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지켜야 합니다. 자기중심,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세운 잣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식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세우신 법대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법도대로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의 생신 상에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으면 되겠습니까? 평소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해드리는 것이 옳은 자세입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시면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여 대접해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인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중심으로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법도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일을 어떻게 보내기 원하시는지 알고, 그대로 보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64절은 쉐마 이스라엘”(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5).

 

여기에서 마음은 심장을 뜻합니다. 이는 감성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곧 모든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은 영혼을 뜻합니다. 영혼의 핵심 기능은 의지입니다. 그리고 은 생각의 힘을 뜻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지정의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습관화, 인격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을 몸에 밸 때까지 반복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형식이 아닌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을 다한 사람들입니다. 채플린이 무명 시절 철공소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바쁜 일 때문에 사장이 그에게 빵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어 그가 사온 봉투를 열어 보니 그 안에 빵과 함께 와인 한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사장은 채플린을 불러 와인을 사온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채플린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장님, 일이 끝나면 와인을 드시는데 오늘 보니 와인이 떨어진 것 같아 제가 둘 다 사왔습니다.” 그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를 하더라도 마음을 다하는 정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요, 산정현교회의 장로였던 고당 조만식 선생은 평북 정주 출신인데, 똑똑하지만 가난해 남의 집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열심히 주인집 일을 했습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매일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아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지극 정성을 다하여 요강을 닦았습니다. 이를 지켜본 주인이 학자금을 대주며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켰고 일본 유학까지 보냈습니다. 그는 항상 제자들이 성공 비결을 물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지극 정성을 다해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지극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사랑은 교회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복음을 담고 복음을 전파하는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12:31). 이웃의 고통을 나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나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고 보듬으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기쁨을 나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지 말고 나 자신처럼 관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몸을 얼마나 아낍니까? 그런데 지금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이웃에 대해 무관심하지는 않습니까?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않습니까? 이웃은 경쟁, 또는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 교제의 대상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3:10).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벧전 4:8). 그러면 우리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켜주신 예수님

 

예수님이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른 손은 오른쪽이었습니다(6:6). 교부 제롬에 의하면 그는 석수장이였다고 합니다. 석수는 손으로 먹고사는 직업입니다. 석수가 손을 못 쓰게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두 손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악수를 청할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왼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는 원수들과 악수할 때 왼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습니다.

만일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혼인 잔치에 갔을 때 신랑, 신부가 하얀 장갑을 끼고 예물을 교환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두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할 때 한쪽 손만 내밀고 기도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연히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한쪽 손이 마름으로 마음과 생각과 생활까지도 말라버렸습니다. 그의 내면은 깊은 열등감과 자의식으로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나음을 입고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회당에 들어와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돕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회당 안에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회당 안에는 기도의 향기, 말씀의 향기보다 독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그들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며 그를 도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3:3-4).

 

예수님은 그들에게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대답해야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잠잠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것을 시인하면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과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하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과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낡은 가죽 부대가 되어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도 양심에 가책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불쌍한 한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 사람보다 더 불쌍한 이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전통에 매여, 성경의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 그를 이용해 주님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는 탄식하시고 노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3:5).

 

완악함이란 자신의 죄를 알면서도 값싼 자존심과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고의로 회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고 온유하시기 때문에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함을 보시고 노하셨습니다. 이는 고의적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이 말씀은 그에게 임한 구원의 음성이요, 사랑의 음성이요, 목자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 앞에서 그의 병든 손을 내미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을 바라보면 도저히 손을 내밀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게서 목자의 심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한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믿음으로 수치심을 버리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손은 믿음의 손, 순종의 손, 기도의 손이었습니다. 이때 마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검은 장갑을 벗었습니다.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어두움과 부정적인 생각, 운명과 슬픔, 자의식이 사라지고 그의 심령에 생명과 빛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오신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병들어 쓸모없는 자들의 영혼을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을 회복시켜 건강하게 하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상처 난 사람을 회복시켜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운명적인 사람을 밝고 활기찬 사람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회복의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랑의 법의 결정체입니다. 안식일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을 제정하신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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