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마가복음 5:21-24, 35-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5:36).

 

공포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공포를 경험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담이 큰 사람이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공포는 전염병과 같아서 한 사람이 공포에 떨면 순식간에 그 공포가 주위로 퍼져나가서 창궐하게 됩니다. 공포와 두려움은 우리의 의지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두려움에 저항하려 하면 할수록 더 두려워집니다.

두려움은 단절과 단절 이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데서 옵니다. 죽음, 군 입대, 이별, 사업 실패 등 단절의 다음에 어떤 것이 올지 모르는 느낌이 공포와 두려움의 실체입니다. 왜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두려워합니까? 이는 사람들이 죽음 후에 어떤 것이 올지, 죽음 후의 정보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타나토노트에서 사후세계를 인지하게 된 이후 인류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지에서 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죽음 이후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믿는 사람들은 영생의 부활로 나타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딸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강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 간곡히 구하는 야이로

 

예수님이 무리들을 돕기 위해 바닷가에 계실 때 무리 중에서 황급히 달려 나온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이었습니다. 당시 유대는 회당을 중심한 사회였습니다. 회당장은 안식일마다 예배를 섬기고 모든 행정업무를 맡아 감당하는 명예로운 직분이었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턱수염도 기르고 품위 있는 긴 예복도 입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시대의 엘리트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열두 살 된 예쁜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그가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딸이 아빠!” 하고 부르며 뛰어나올 때의 그 행복감이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격무에 시달렸던 모든 피로가 싹 가시고 무한한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딸은 그에게 기쁨이요, 소망이었습니다.

그런 딸이 어느 날 갑자기 열이 40도를 오르내리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용하다는 의사를 다 불러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시시각각 어린 딸에게 다가올 때마다 그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소문을 듣자마자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간곡히 구했습니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5:23).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곡히 구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회당장으로서의 위신과 체면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위신과 체면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비판적이고 적대적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공개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온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매장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그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다만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는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모든 어려움을 뛰어넘어 주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게 했습니다.

유대인은 12세가 되면 성년 취급을 합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청소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청순한 젊은이들이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깊은 열등감과 관계성 문제로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인생의 방향을 잡지 못해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육신의 쾌락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어떤 청소년은 희망을 상실해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들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야이로에게 믿음을 심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중에 혈루증 앓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그녀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회당장의 집으로부터 사람들이 와서 절망적인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5:35).

 

사람들은 회당장에게 딸이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제 딸이 죽었으니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장례식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병든 사람은 고치실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살리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었다는 것은 일말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조금의 호흡이라도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제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 온몸에 힘이 쫙 빠져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영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한없는 슬픔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하는 것처럼 큰 슬픔은 없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낼 때 이제 매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며 결혼식장에서 눈물을 훔칩니다. 그러나 매일은 만나지 못하지만 가끔은 만날 수 있기에 눈물을 얼른 닦습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앞이 캄캄했습니다. 죽음은 그의 소망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죽음은 그를 무기력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은 야이로의 마음 가운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5:36).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야이로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마음에 두려움이 자리 잡기 전에 재빨리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갈 때 느끼는 고소공포증, 넓은 곳에 나아갈 때 느끼는 공간공포증, 사람 앞에 나아가면 수줍어서 얼굴이 붉어지는 홍안공포증, 혼자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독거공포증, 조금 아프면 혹시 암이 아닌가 의심하는 통증공포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자녀가 잘 자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두려움이 생기면 매사 소심해지고 확신이 없어집니다. 객관성을 상실해 즐거운 일이 있어도 즐겁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은혜로운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습니다. 심리적으로 불안해 눈이 커지고 신경이 예민해져 신경질을 잘 부립니다. 원망과 불평이 저절로 나옵니다. 무기력해집니다. 두려움에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쥐가 쥐구멍 앞에 있다가도 고양이가 야옹 하면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다가 잡아먹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면 수족이 마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병의 92%가 두려움에서 온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적 또한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인간의 실존을 상실하게 합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가장 큰 원수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지옥행 제1호입니다(21:8). 우리는 두려워할 때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속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담대하라’(courage)라는 말이 365번 나옵니다. 이는 매일 두려움이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이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을 이기는 믿음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십니다(딤후 1:7).

두려움은 염려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고, 염려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염려에 대해 연구했는데 그 결과는 이러합니다. 염려의 40%는 절대로 현실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것이고, 염려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며, 염려의 22%는 사소한 고민이고, 염려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나머지 4%는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일에 대한 염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26대 미국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도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내면의 두려움을 해결해 줍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 많은 죽을 고비를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힘과 의지로는 내면의 두려움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힘 되신 하나님을 만나자 그의 내면에 있는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18:1-2).

 

마르틴 루터는 1527년 비텐베르크에서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고 부패한 로마 가톨릭 세력에 도전했습니다. 이때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이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많은 원수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두려움으로 인해 여러 번 타협하고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어로 번역하던 성경을 여러 번 찢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한 성이 되시고 방패와 병기 되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내적, 외적으로 파고드는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해 종교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새찬송가 58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도와주시고 그분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41:10-13).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상황과 조건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린 자녀들은 엄마 품에 있을 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엄마의 큰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안길 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바울은 많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가 평안했던 것은 주님의 큰 사랑이 약하거나 감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큰 사랑은 그로 하여금 움츠러들지 않게 했고 악에 맞서 싸우게 했습니다(8:32-39). 주님의 사랑은 모든 두려움에서 이기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안겨야 합니다.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새찬송가 405).

 

그러면 믿기만 하라란 무슨 뜻입니까? 야이로는 처음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불신의 소리로 인해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흔들리는 그가 처음 가졌던 믿음을 계속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상황에 따라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끝까지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했으면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받은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6-8).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야이로에게 믿음을 심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에 갔을 때 분위기가 어떠했습니까? 떠들며 울며 통곡하는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 절망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죽은 아이의 어머니를 위로하며 같이 울어주었습니다. 초상집에서는 같이 울어주는 것이 최고의 미덕입니다. 아이의 아버지인 야이로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더욱더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5:39).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는 말씀은 울고 있는 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잠으로 보셨습니다. ‘잔다는 것은 다시 깨어남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다시 깨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틈만 있으면 잠을 잡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곳과 예수님이 계신 곳은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절망과 허무와 슬픔과 체념이 지배하지만 예수님이 계신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잠시 이별하는 슬픔이 있지만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더 좋은 곳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때문에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믿음이 좋은 네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임종을 앞두고 네 자녀에게 인사했습니다. 세 명의 자녀에게는 굿나잇하고 인사했는데 한 자녀에게만 굿바이하고 인사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물었습니다. “어머니, 왜 저에게만 굿바이를 하십니까?” 그때 어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네 형과 동생들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너는 예수님을 안 믿으니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지 않니!” 이때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의 죽음은 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아이가 잔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불신하는 자들을 다 내보내시고 세 제자들과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5:41).

 

달리다굼!” ‘달리다굼이란 아람어로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자, 생명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죽은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었습니다(5:42). 누구든지 말씀을 들으면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5).

 

우리는 평소 주위 사람들로부터 또 내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많은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생명을 죽이는 사탄의 음성인가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음성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 그리고 겸손입니다. 반면에 생명을 죽이는 음성은 불신과 미움과 절망, 그리고 교만입니다. 사탄의 음성은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반면에 주님의 음성은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음성입니다. 주님의 생명의 음성을 단순하게 듣기만 하면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딸을 말씀으로 살리셨습니다.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믿기만 하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수여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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