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22~25, 4:1
주안에서의 직장생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5월 1일은 노동절, 근로자의 날입니다. 노동절이 지났지만, 성도가 직장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직장에서의 성공은 실력이 15%, 인간관계가 85%라고 했습니다. 컬럼비아대학 MBA에서는 실력이 5%, 인간관계를 95%까지도 봅니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그래서 한남대학교 김형태 교수님은 인간관계는 대머리에다가 핀을 꽂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인간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형제자매를 만나고 또래를 만나고 배우자를 만납니다. 직장에서 동료와 부하와 상사를 만납니다. 만남은 관계입니다. 만남에서 오는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고, 삶의 폭이 달라지고, 삶의 깊이가 달라지고, 삶의 여백이 달라집니다.
인생을 90년으로 본다면 2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까지 40년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그리고 하루의 1/3인 8시간 이상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각양각색의 선, 후배, 그리고 상사와 아랫사람을 만납니다. 따라서 직장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라집니다.
본문은 직장에서 크리스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직장생활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묵상하면서 직장생활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직장생활의 승리는 곧 인생의 승리입니다.
1. 종들아, 상전들에게 순종하라(골 3:22~24)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바울은 먼저 종들의 태도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
바울은 종이 주인에 대한 자세는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까다로운 주인에게조차도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 2:18)
‘까다롭다(harsh)’란 성품이 좋지 않아 하인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가 사도들의 말씀을 피상적으로 보면 가진 자, 기득권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말씀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더 말씀을 묵상하면 종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세속적인 관점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왜 종들이 주인들에게 순종하라고 했을까요? 까다로운 상전에게까지도 순종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자기를 지배하는 상전을 기쁘게 하도록 함이 아닙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함도 아닙니다. 윗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월급이 깎이고, 더 나아가 해고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여야 좋은 보직과 승진을 빨리할 수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을 보면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언뜻 생각하면 직장의 주인은 나를 고용한 사장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직장에 근무하는 것은 사장이 뽑아주어서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직장의 주인이 뽑아줘서 근무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직장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다윗 집사는 한라공조 회사로부터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일련의 과정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라공조 병역 특례로 입사할 때 면접을 보고 와서 한 말은 한라공조에 입사하면 하나님이 합격시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장으로 보내주셨다, 이것이 소명의식입니다. 청년의 태도에서 말씀을 전한 것처럼 직업이란 독일어로 베루프(Beruf)입니다. 이는 소명이란 뜻으로, 구원의 완성을 위해 이 세상에서 최고를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독일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더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심정으로 만드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소명, Calling》에서 직업이란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말로 표현하면 설렁설렁 설렁탕이 되지 말고 진국이 흐르는 진국탕이 되라는 말입니다.
‘눈가림’이란 ‘눈으로만 일한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없으면 속칭 ‘땡땡이를 치는 것’은 눈가림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주인이나, 감독이 나타나면 일하는 척했다가 주인이 사라지면 바람같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군대에서 ‘대강 철저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상관 앞에서는 철저히 하는 척하다가 안 보면 대충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눈가림으로 하지 말라.’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로마 인구의 1/3인 약 250만 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노예의 특징은 주인에게 미운 물건이 되지 않기 위해 주인의 눈치를 보며 삽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책임감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은 습관으로 끝나지 않고 인격이 됩니다. 노예에게 노예근성은 습관의 반복에서 형성됩니다. 그래서 톰 모너헌은 《다르게 생각하라》에서 생각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당신의 운명이 바뀐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그런데 습관을 바꾸기에 앞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습관이 형성되려면 60여 일 동안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60일간 감사일기를 쓰면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입에서 튀어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학에서 감사일기를 쓰기를 권합니다.
우리는 노예를 생각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몸으로 때우는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로마제국의 노예들은 다양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닥치는 대로 노예로 잡아 왔습니다.
그들 중에는 머리가 좋은 노예도 있었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도 있었습니다. 교사도 있었습니다. 최고 학문기관에서 학문을 가르치는 박사들도 있었습니다. 한 나라를 통치한 왕도 있었습니다. 로마 사회는 이런 노예들로 유지되었습니다.
이런 노예들 위에 무식한 상전들이 있었습니다. 싸움밖에 모르고, 자랑할 것이라고는 힘과 돈밖에 모르는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주인을 섬긴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짜증이 나고 희망을 상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절망을 넘어 무망(無望)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럴지라도 믿음의 사람드은 모든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우리가 일하는 동기가 눈에 보이는 주인을 기쁘시게 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직장에서 주인이 되어라.
요즘 직장인들이 직장생활에 보람과 살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의식, 무의식 속에서 업무를 게을리하게 됩니다. 또 직장에서 대인관계에 잘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적어도 8시간, 그리고 출퇴근하는 시간까지 합쳐 보면 하루의 반을 직장에서 보냅니다. 우리가 이런 직장에서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직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주인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주인의식이 있으면 신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이 무엇입니까?
“이곳은 하나님이 보내신 나의 직장이다. 내 회사이다. 주인의 직장이 아니고 남의 직장이 아니라 내 직장이고 내 회사이다.” “이 학교는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다.” “이 학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온 남의 학교가 아니고 내 학교이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서 보낸 내 교회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주인의식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학교생활과 회사생활, 교회 생활이 달라집니다.
중국 당나라의 임제록(臨濟錄)에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디서든 주인이 되라)란 말이 있습니다. 주인의식이란 자기 자신을 조직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인식하고, 책임감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위해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주인의식의 반대는 머슴의식입니다. 머슴의식은 주인의식이 없고, 그러다 보니 책임의식이 없습니다. 겨우 맡긴 일을 마지못해서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기 권리를 요구할 때는 모두가 게거품을 물고 일어나 주인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책임질 일이 있으면 모두 머슴이 됩니다.
우리가 ‘나는 머슴’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가 속해 있는 직장과 부서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직장생활을 한다면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보람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성공합니다.
B.C. 6세기경 그리스의 노예 중에 이솝(Aesop)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솝 우화》의 저자입니다. 하루는 주인이 “목욕탕에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이솝은 돌아와서 주인에게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이솝의 말을 듣고 목욕탕에 갔는데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인은 이솝에게 거짓말을 했다며 목욕을 하고 돌아와서 그를 책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솝은 태연하게 “주인님. 제가 확실히 보았습니다. 목욕탕에는 한 사람만 들어갔습니다.”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이솝이 목욕탕에 가다가 목욕탕 앞길에 돌 하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욕탕에 가는 사람들이 이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돌을 치우지 않고 불평만 하며 지나갔습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는 팔을 걷고 땀을 흘리며 돌을 치우 후에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볼 때, 사람다운 사람은 한 사람만 목욕탕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땀을 흘려 문제의 근원을 찾아 희생하며 해결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주인은 이솝의 설명을 들은 후 오히려 이솝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떠합니까? 무슨 문제가 있으면 불평합니까? 아니면 땀 흘려 희생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책임성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기 권리를 주장할 때는 주인이고, 책임져야 할 때는 머슴의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서나 땀을 흘리는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진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주님의 상급을 기대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우리는 주의 일을 생각하면 교회에서 하는 일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외의 것은 주의 일로 생각하지 않는 2분법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직장에서 하는 모든 일은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 일을 주께 하듯이 해야 합니다. 그 일이 우리를 죄짓게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죄짓게 하는 직업이 아닌 이상 다 주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하는 동기, 일하는 목표가 주님을 위한 거룩함에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뭐 당신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한다고 누가 알아줘, 월급이 올라가기를 하나, 승진을 시켜주기나 하나.”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몰라줘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4)
우리의 성실한 태도에 대해 누가 상을 주십니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상을 기대합니까? 우리는 직장에서 내 수고를 몰라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내게 직장을 주셨고, 직장에 나를 보내주셨으니 주님이 내게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는 날, 내 생애를 끝내고 천국에 가는 날, 주님이 나를 아시고 보상하실 것입니다.
넷째, 전공에서 탁월하라.
다윗은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어떤 점에서 유능했습니까? 그는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이 있었습니다.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 78:71~72)
하나님은 목동 다윗을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이스라엘을 지도했습니다.
‘마음의 완전함(integrity of heart)’이란 부지런함, 그리고 우직하다 뜻입니다. ‘손의 능숙함(skillful hands)’이란 실력을 말합니다. 지도자는 무엇을 맡기든지 충직하고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는 그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춰야 합니다.
《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는 책을 보면 외국회사에 근무하려면 외국 관련 전공을 100,000페이지 이상 읽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은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직간접으로 외국과 상대하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그렇다면 100,000페이지, 400페이지의 책을 250권 이상을 읽어야 합니다. 250권은 그만두고 25권은 숙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맡긴 일이므로 그 분야에서 탁월하여 탑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습니다.
다섯째, 정직하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골 3:25)
우리는 직장에서 뇌물이나 검은돈은 아예 근처에도 가지 말고 정직해야 합니다. 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 이것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덕목 중의 덕목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불만스러운 요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근무 환경으로 보면, 바울 당시 노예들이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불만스러운 요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그들에게 주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맡은 일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종하며 주님 앞에서 일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언젠가 주께서 상급을 주십니다.
2.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베풀라(골 4:1)
이제 바울은 상전들이 고용인인 대한 태도에 대해 말씀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 4:1)
상전들이 왜 종들에게 의와 공평함을 베풀어야 합니까? 이는 상전들에게 상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최고 책임자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 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내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위에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바울은 상전들이 맡겨 준 사람들을 향한 기본적 태도를 두 가지 단어로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의와 공평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고 사사롭게 대할 것이 아니라 의와 공평으로 대해야 합니다. 의와 공평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속성이고, 공평은 부가적 속성입니다. 하나님이 의를 행사하시면 하나님은 반드시 공평하게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 의롭게, 공평하게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쓰는 자리에 있다면 업무도 공평해야 합니다. 승진도 공정해야 합니다. 보직도 공정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모든 것이 공평해야 합니다. 공평의 반대는 차별입니다. 지도자는 학연, 지연, 혈연을 가지고 차별하면 안 됩니다. 의와 공평의 자세를 사람을 대할 때, 사원들은 새로운 의욕과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일이 지나면 우리에게 어김없이 월요일이 찾아옵니다. 내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출근하겠습니까? 우리의 직장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그리스도가 주인 되심을 고백할 때 직장에서 머슴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직장에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직장생활과 내 삶을 지배하고 내 삶에 영향을 끼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