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41~71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뉘게로 가오리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7:68~69)

 

 

독일의 대표적인 신학자 중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그가 옥에 있는 동안에 나를 따르라(Nachfolge)라는 유명한 제자의 도를 저술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값싼 은혜(cheap grace)’를 언급했습니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값싼 은혜란 싸구려 노점상의 물건들처럼 아무 데서나 마구 남용되는 은혜를 말한다. 값싼 은혜는 사도 정신이 없는 은혜요. 십자가가 없는 은혜요.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이다. 은혜란 밭에 숨겨진 보물과도 같은 것이다. 구원의 은혜를 값비싸게 여길 때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은혜를 값지게 여깁니까? 아니면 값싸게 여깁니까? 단순히 복을 받고자 하는 싸구려 신자입니까? 아니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값비싼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본문은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나타난 반응입니다. 첫 번째 반응은 말씀을 듣고 어렵다며 떠나는 무리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목적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빵과 물질의 복을 기대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런 복이 없어지자 더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응답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어떤 희생과 헌신이 따르더라도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 반응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가룟 유다의 배반입니다. 우리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값지게 여기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이 이끄셔야 예수님께 올 수 있다(6:41~51)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자 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 믿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첫째,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을 알고자 할 때 대체적인 기준은 그의 출생, 부모, 환경, 학력, 나이, 직업 등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을 알려면 하나님 관점에서 그의 영성을 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요셉의 아들이고 우리가 그 부모를 다 아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는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적인 눈은 합리성을 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합리성을 넘어서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결혼 대상이나 직원을 뽑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외형, 스펙만을 보지 말고 그 뒤에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영성을 봐야 합니다.

둘째, 그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신앙은 나와 사람들과의 관계, 즉 나와 너와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직선적인 관계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수군거리며(grumbling) 원망과 불평을 하면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임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이 지나치게 토론에 집중하다 보면 자기 의견을 고집하게 되고 자기 의견을 고집하다 보면 본질은 사라지고 변론과 토론만 남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난다고 했습니다(딤후 2:23).

 

 

셋째, 그들은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보고 믿는 표적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 뒤에 있는 깊은 뜻을 생각하지도 않았고 말씀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순종을 포함합니다. 신앙이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고 믿고자 하는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하셨습니다(20:29).

들으려면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겸손한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과 지식, 편견을 고집하지 않고 버릴 줄 압니다. 기존의 것을 버릴 때 새로움을 찾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시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신앙경력은 귀합니다. 그러나 신앙경력은 오히려 신앙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과거가 아니라 말씀을 지금 내게 주시는 레마(ῥῆμα)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수군거리는 무리를 책망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로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6:44)

이끌다(draw)’는 어부가 그물을 잡아당긴다는 뜻입니다. 이를 볼 때 믿음은 나의 의지나 뜻과 선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이끄시고 성령의 감동 감화로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겸손하게 해 주셔야 말씀이 들리고, 하나님께서 이끄셔야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습니다(6:47).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이들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모세가 준 떡과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의 차이를 말씀하셨습니다.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놓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합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9:27; 21:8).

그러나 예수님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으로 믿고, 이 떡을 먹는 이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은 생명을 위한 살입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오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2.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는다(6:52~59)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내가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자기들을 식인종으로 아는가?’ 하며 서로 다투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인자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6:53~59).

살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심으로 나의 죄가 사하여졌음을 믿는 것입니다.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의 죄가 깨끗하게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대속의 피입니다(1:17). 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의 피입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대비됩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행해야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율법을 행하여 구원받을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아시고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31:31).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에서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6~28)

예수님은 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셨습니다.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몸이 찢기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고백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순간에 내면의 모든 죄, 정욕과 미움, 시기, 원망, 불평,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는 한 번 믿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물을 마셔야 하듯이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만찬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기념하라(remember)’는 것은 십자가의 깊은 뜻을 묵상하고 늘 상기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나의 고난이요,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로 날마다 새롭게 날마다 기억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때 현실의 만족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매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살을 참된 양식, 내 피를 참된 음료라고 하셨습니다(6:55). 참되다는 것은 다른 것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과 음료는 늘 먹고 마셔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한 줌의 재만 남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 예수님의 피와 살은 영원합니다.

임종을 앞둔 부모가 자녀에게 무슨 유언을 남길까요? ‘출세하라.’ ‘돈 많이 벌라.’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자녀에게 무슨 유훈을 남기겠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어라.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기도 많이 하거라.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기간에 화목하고 어려운 이웃을 섬겨라.” 우리는 영원한 것에 가치를 두고 명분을 귀히 여겨야 도합니다.

이상에서 사람들이 먹는 문제, 곧 현실문제에 얼마나 많이 집착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안드레의 오병이어로 떡을 얻어먹은 무리는 초지일관하게 떡을 요구했습니다. 사람이 현실문제에 매이면 예수님의 신령한 복에 관심이 없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얽매여 있는 현실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현실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묵상하여 영생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3. 너희도 가려느냐(6:60~71)

많은 무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예수님께 실망하고 떠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떡을 먹은 은혜를 배신하고 예수님을 비방하고 떠났습니다. “제가 무슨 생명의 떡이라고”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무리뿐만 아니라 제자 중에도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자 어렵다.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하며 물러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워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영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그들은 줄기차게 먹을 것만 구하는 생각이 천박하고 유치했기 때문입니다. 유치한 사람은 먹을 것만 좋아하지 고귀한 말씀과 그 의미를 모릅니다. 의미를 모르니 대화가 통할리 없습니다. 영적인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 말씀을 주는 것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고 떠난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난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과 신뢰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떠날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넘기는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배신자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그의 최후는 비참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에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18).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을 형벌의 정도에 따라 아홉 단계로 나눴습니다. 지옥의 왕 루시퍼가 지옥 문을 지키고, 지옥은 아홉 단계가 있는데 맨 밑에 있는 지옥이 배신 지옥입니다. 거기에는 배신의 아이콘인 가룟 유다와 자신을 아들처럼 아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있습니다. 단테는 배신지옥에서 차가운 얼음 속에 영원히 처박혀 신음하고 있는 유다와 브루투스를 그렸습니다. 우리는 꿈에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배신자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런 중에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떠나가는 많은 제자를 보시며 남은 열두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7:68~69)

베드로의 대답에서 우리는 하나님 역사에 끝까지 남는 자의 비밀을 발견합니다. 남는 자(remnant)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고,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닙니다. 그러다가 떠돌이로 생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생의 말씀을 발견하면 어떤 희생과 시련이 있어도 끝까지 남는 자가 됩니다. 그것은 영생의 말씀보다 세상에 더 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7:69)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란 그리스도(Christ)를 뜻합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도 그리스도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먹는 문제, 곧 썩을 양식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또 제자 중에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세상 욕심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열두 제자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기초 중의 기초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 기초 위에 건축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1절은 신앙의 초석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기본은 예수님은 나의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이 신앙고백은 신자의 기초요, 기본이요, 본질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한 그 기초 위에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열심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 바른 신앙은 구원과 심판, 영생과 영벌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느냐는 물음보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물음이 훨씬 중요합니다. 모든 종교는 교리와 교훈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예수님이 더 중요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7:69)

베드로의 대답은 짧지만 정확했습니다. ‘그리스도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를 세울 때 기름을 머리에 부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님을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라고 믿고 고백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요, 왕의 역할은 통치자요,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고백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10)

우리가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죄로부터 구원받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또 이 고백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은 거룩하고 영화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려면 우리 자신이 순결하고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죄로 더럽고 추합니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라메네(Lamennais)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유혹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거칠고 강렬한 육체적인 욕망, 둘째는 스스로 높이고자 하는 교만, 셋째는 격렬하고 불순한 이기심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요일 2:16)라고 했습니다. 나란 존재는 정욕과 교만과 이기심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란 존재는 거룩이라는 단어와 먼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마음으로 믿고 고백하는 순간,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격이 안 되고 수준이 미달이어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의리나 정이나 직분이나 수제자로서의 지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생의 말씀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아는 개인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쉽게 떠나거나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 결코 서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믿고 알고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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