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요한복음 13:1~17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어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요한복음 13장에서 21장까지, 9장이나 되는, 요한복음의 3분의 1이 유월절 전날에 있었던 사건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이로 보아 복음서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은 13장에서 1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체포되기 전날에 있었던 사건으로, 요한복음 13장에서 16장은 다락방 메시지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교훈과 경계, 미래에 대한 약속과 보장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는 마치 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 18장은 예수님의 체포, 19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 20장은 예수님의 부활, 21장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체포되어 심문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사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사건입니다. 이는 당시에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이 사건 속에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하여 사랑과 섬김의 주도권을 가지고 사랑하고 섬기는 본을 보이는 형제애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13:1~2)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나누고 계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내일이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던 제자들과 헤어져야 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반역과 베드로의 배반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 자리다툼을 하는 것도 아셨습니다. 조금 후면 체포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절박한 상황에서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자기 사람들이란 열두 제자를 말합니다. 그들은 조금 후면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갈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배반은 그만두고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를 정죄하며 함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보답이 있고 상대방이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반할 것을 아시고도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거짓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본성으로는 사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변치 않는 완전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약점과 허물을 받아주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사랑입니다(13:8).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습니다(13:2). 마귀는 가룟 유다의 마음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리라라고 했습니다(16:32).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까? 자기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영을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가치관과 방향과 목적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편에서 이해하고, 예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성경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매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틈탈 수 있었던 것은 영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물질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마리아가 옥합을 깨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을 때 쓸데없는 데 허비한다고 책망한 사건입니다.

유다는 겉으로 보면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물질을 더 사랑했습니다. 유다는 겉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 자기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겉으로 믿음으로 사는 것 같았지만 세상을 더 사랑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그 사람의 약점을 틈타 접근합니다. 이는 병균이 우리 몸의 약한 부분을 틈타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물질에 약한 사람은 물질로, 안일에 약한 사람은 안일로, 불의에 잘 빠지는 사람은 불의로, 불평과 원망을 잘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에서 떠나도록 합니다.

가룟 유다는 물질에 약했습니다. 그는 물질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님을 통해 지상 메시아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야심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약점을 알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13:3~5)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13:3)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맡기신 것과 마귀의 뜻과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죽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신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발 앞에 허리를 굽히고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손으로 한 명, 한 명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과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어주셨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발의 물기를 닦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만유의 주요,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엎드려 죄인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다니므로 발에 먼지가 많이 묻어 외출하면 발을 씻었습니다. 이스라엘 풍습은 자기가 자기 발을 스스로 씻지 않았습니다. 종이 주인의 발을, 제자가 스승의 발을, 종이 없으면 서로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발을 씻어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발조차 씻어드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은 당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고, 전날 백성으로부터 환영을 받으시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의 어머니를 통해 예수님께 우의정, 좌의정 자리를 청탁할 정도였습니다. 이를 안 제자들은 분을 냈습니다.

그들은 권력(hegemony)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권력의 주도권 싸움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서로 긴장 관계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해야 할 것을 행하지 못하고, 서로 섬길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은 먼저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낮아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네가 먼저 내 발을 씻어주기를 바랐습니다. 베드로는 야고보가, 야고보는 베드로가, 요한은 안드레에게, 안드레는 요한에게 서로 네가 먼저 내 발을 씻어주면 내가 네 발을 씻어주겠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리는 것까지 잊어버렸습니다.

제자들의 이 모습은 옥합을 깨어 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어 드린 마리아와 대조됩니다. 그들은 더러운 발로 식탁에 앉았습니다. 발 냄새는 좁은 다락방에 양고기 냄새와 더불어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이 또한 마리아가 옥합을 깨어서 향유를 부어드렸을 때, 향유 냄새가 온 방이 가득한 것과 너무 대조됩니다. 그들은 발 냄새를 참아가며 열심히 양고기를 뜯어 먹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보신 예수님은 훈계와 책망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장 발을 씻어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친히 그들의 종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이 모습은 개구쟁이 발을 씻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의 발을 먼저 씻기셨겠습니까?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가룟 유다의 발을 먼저 씻어주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창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사랑하심으로 사랑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13:6)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예수님은 발을 내밀지 않는 베드로에게 어서 발을 내밀라고 강권하실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래, 싫으면 그만둬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후에는 알 수 있을 것이다라며 끝까지 소망을 두셨습니다.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한다고 거절했습니다(13:8). 그가 가만히 있다가 자기 차례가 되어 거절한 것을 볼 때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다른 대우를 받고 싶은 속내가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수제자인 자기가 예수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으면 자기도 그렇게 해야 되기에 거절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13:8)

상관이 없다란 분깃이 없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상관없다고 말씀하시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배와 그물을 버리고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좇았는데 상급이 없다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그는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 씻어 달라고 청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존재로서 특별한 사랑을 받고,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목욕한 자는 발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목욕한다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듭난 사람을 말합니다(6:5). ‘발을 씻는다란 날마다 회개하는 삶, 즉 성화에 이르는 삶입니다. 목욕한 사람도 땅을 밟고 살기에 먼지가 묻습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지라도 세상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나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들고 나아가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파는 한 번 구원을 받으면 더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성화가 없습니다. 이 점에서 구원파는 이단입니다.

우리는 더러운 발을 주님께 매일 내어놓고자 할 때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염치불구하고 죄를 주님께 들고 나가면 언제든지 크신 사랑으로 영접해 주시고 정결케 하여 주십니다(요일 1:8~9). 우리에게 있는 욕망과 탐욕, 이기심, 시기심, 미움, 안일, 의존심, 불의, 불신, 원망의 발을 주님께 내어놓으면 주님은 우리를 정결하게 해 주십니다.

유다는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중요한 직책도 맡고 예수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으나 회심이 없어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가 없었습니다. 신자의 모양만 있는 허수아비 신자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어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받지 못하는 저주의 자식이 되었습니다.

3. 본을 보이신 예수님(13:12~17)

예수님은 제자들이 권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구주와 죄인과의 관계요,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입니다. 마땅히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려야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본을 받도록 함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3:15)

여기에서 ’(example)이란 예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는 예를 남기셨습니다. 낮아져서 섬기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베드로는 후에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 5:5)고 했습니다. 교육은 말이 아니라 본을 보일 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본을 보이려면 주도권(initiative)을 가져야 합니다. 뒤따라가는 사람은 평생 본을 보이지 못합니다. 한 예로 앞서가는 모범 운전자가 정확하게 신호등을 지키고 거리주행 속도를 지킬 때, 그렇지 못한 운전자는 뒤따라가며 왜 이리 천천히 가, 황색 신호등이면 순간 가야지, 왜 바쁜 사람을 세워놓는가 등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리더는 섬김으로 조용히 본을 보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뒤에서 교회가 왜 이리 지저분해.” “왜 사랑이 없어.” “왜 친절하지 못해.” ? ? 하고 수군거리기만 합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을 남의 밑에서 불평하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깡통을 들고 친절과 사랑과 섬김을 구걸하기 위해 이곳저곳 교회를 기웃거리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권력(hegemony)의 주도권을 쥐고자 하는 정치적인 사람 또한 존경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사랑의 주도권, 섬김의 주도권, 헌신의 주도권을 가지고 사랑하고 섬기며 본을 보이는 사람은 어디 가서도 환영받고 좋은 leader가 됩니다.

우리가 섬기지 못하는 이유는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권력(hegemony)을 갖고자 하는 마음 특권의식과 위계질서, 자존심 때문입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 “내 나이가 몇인데, 나는 그런 일을 할 군번이 아니야.” “내가 아직도 그런 일을 해.” “내가 언제까지 남의 뒤치다꺼리 해?”라고 생각하는 특권의식과 자존심을 깨고 섬겨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면 할수록 섬겨야 합니다.

섬김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나이 어린 사람이나 모두 섬겨야 할 사람입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모두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요 선생이신 예수님께서 낮아져 우리를 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와 선생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분, 나이, 직업, 신앙 연륜을 불문하고 모두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섬김을 받고 싶으면 비싼 돈을 내고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을 섬기면 복을 받습니다. 섬김에서 오는 복이 무엇입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13:16~17).

우리가 남을 잘 섬기면 사업이 잘되고, 직장에서 인정받아 승진도 하고, 돕는 양이 제자로 자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발 앞에 무릎을 꿇으면 겸손과 사랑과 희생의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다 보면 예수님의 섬김을 받고도 배신한 유다처럼 배신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결과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릎을 꿇고 섬기는 곳에서 언제나 주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주요 선생이지만 낮아져 섬기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내가 섬김의 주도권을 가지고 사랑과 헌신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낮아져 섬기고 사랑할 때,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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