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18

내가 그니라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18:5)

 

 

예수님은 다락방 강화를 마치시고 대제사장 기도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전, 9시간을 남겨 놓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공관복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이는 요한복음이 마지막으로 기록된 복음서로 공관복음에 없는 내용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을 찾는 그들에게 너희가 찾는 내가 그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반면에 베드로가 나는 너희가 말하는 내가 아니다’”라고 대조되어 나옵니다. ‘내가 그다나는 아니다는 정체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정체성(identity)은 어떤 위치에서도,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는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신분, 나 자신입니다. 사람이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혼돈과 어둠으로 방황하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언제 어느 때, 어떤 환경에서도 확실하게 나의 정체성,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거듭난 신자(born again Christian)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1. 내가 그니라(18:1~11).

첫째,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성전에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에 있는 동산으로 가셨습니다(18:1~3). 이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을 뜻합니다. ‘겟세마네란 기름을 짠다는 뜻입니다. 이곳은 예수님이 자주 오셔서 기도하시던 곳으로 제자들도 아는 장소였고, 가룟 유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후면 가룟 유다의 배반이 있을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후면 로마의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올 것도 아셨습니다. 이럴 경우, 보통 사람들은 본능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이곳에 오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불빛에 칼날이 번뜩였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사람들은 위축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들에게 나가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18:4)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들이 찾은 내가 그라(I am He)”(18:5)라고 신분과 정체성을 밝히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의 영적 권세 앞에 모두 엎드러졌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첫째는 참된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식할 때에 용기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 용기는 만용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될 모든 일을 다 아시고도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평소대로 기도하셨습니다. 용기는 다 알고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관복음에서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기도하신 후, 십자가를 지고자 결단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자 결단하셨을 때, 어떤 것도 두렵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용기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헌신과 희생에서 옵니다.

둘째는 예수님은 세상 권세 앞에 조금도 비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돈과 명예와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비굴하게 사는 군상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람 앞에서 겸손하되 사람들과 물질과 권력 앞에 비굴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약할 수는 있지만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비굴하게 살지 말고 거듭난 크리스천으로서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예수님은 스스로 자원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10:17~18)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고 무능해서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셨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선택해서 자원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봄이 되면 지리산의 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이 나옵니다. 이 수액은 사람이 어떤 압력을 가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기도하고 전도하고 복음을 전했으면 합니다. 직장에서도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하지 말고 자기가 맡은 일을 찾아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신 것처럼 Christian identity를 지켜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약할 수는 있으나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하게 살지 맙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스스로 자원해서 하고 용기와 기백을 가지고 살아 갑시다.

둘째, 제자들을 생각하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18:8)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보다 제자들을 염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우는 여인들을 돌이켜 보시며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8)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이란 내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먼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죽어서라도 상대방이 이롭게 된다면 기꺼이 죽는 것이 사랑입니다. 구심점이 나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런 사람은 셀만의 사회인지 수준이 4입니다(셀만의 사회인지 수준이 0에서 4수준, 5단계가 있습니다. 0수준은 오직 나밖에 모르는 자기 중심성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므로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에서 자녀에게로 향합니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아버지가 더 많이 삽니까? 아니면 어머니가 더 많이 삽니까? 어머니가 더 많이 산다고 합니다. 이는 내가 살아야 우리 자녀를 키울 수 있다라는 강한 모성애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위기의 순간에도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을 사랑하셨기에 스스로 어둠의 자식이 된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한 사람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실로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시라고 하시는 예수님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18:10)

누가복음 2236절을 보면 예수님은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진의는 앞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닥칠 것이니 마음을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검 둘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내리친 것입니다.

아마 베드로는 그의 목을 치려다가 겁이 나서 귀만 내리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베드로의 의리와 용기는 대단합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본 군병들은 칼을 빼고 지휘관의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베드로는 죽을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시고 치료하여 주시며 베드로에게 이것까지 참으라”(22:5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8:11)고 말씀하셨고,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칼을 꽂고 하나님이 주신 잔을 마셔야 합니다. 칼은 혈기와 감정으로 인간의 방법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주신 잔은 십자가의 잔, 고난의 잔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잔은 하나님의 역사 방법으로 승리의 잔입니다. 반면에 칼은 인간의 방법으로 실패의 원인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칼로 세계를 제패하려고 했던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고 무인고도 세인트 헬레나(Saint Helena) 섬에 유배되어 생을 마감할 때 마지막 남긴 말은 나는 수많은 대군으로 세계 정복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입니다.

칼보다 예수님이 주신 잔이 승리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적용됩니다. 자녀를 교육할 때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목양도 그렇습니다. 매사 인간관계가 다 그렇습니다. 젊었을 때는 물욕과 이성에 대한 욕망이 있고, 나이가 들면 명예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칼을 꼽고 섬김과 기도의 잔, 인내와 온유의 잔, 희생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은 좋은 일이든, 마음에 들지 않든, 부조리하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조리한 것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만큼 부조리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는 진리와 정의가 무너지는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사건 앞에서는 내 뜻과 비슷할 때만 아멘 하고, 틀리면 억지 해석하여 주님의 뜻을 내 뜻으로 돌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잔이 내게 불이익이 따를지라도 아멘으로 일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주신 잔은 십자가의 잔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희생과 헌신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내 뜻을 포기하고 주님이 주시는 잔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나는 아니라(18:12~18, 25-27).

요한복음 1812~13절을 보면 군대와 천부장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님을 결박하여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안나스는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입니다. 본래 대제사장은 종신직인데 유대를 원활히 통치하기 위해 로마 황제는 일년제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전임 대제사장이 임명토록 했습니다. 안나스는 교활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또 다른 제자는 요한 자신을 일컫습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관계이므로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요한이 어떻게 대제사장을 아는가입니다. 주경 학자들은 요한의 아버지가 갈릴리에서 가장 큰 어장을 가지고 있어서 대제사장 집에 생선을 전문으로 보급하는 관계로 알게 되지 않았나 말합니다.

어쨌든 베드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이를 안 요한은 문 지키는 여자에게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때 문 지키는 여자가 베드로에게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18:17)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I am not.)”(18:17)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조금 전까지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13:37). 그런 그가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부인하고 군중 속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는 밤이 깊어지자 추워 아랫사람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로 다가가 눈치를 살피며 불을 쬐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하여 봅시다. 예수님이 승리자의 모습이라면, 베드로의 모습은 패배자의 모습, 비굴한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조마조마하며 불을 쬐고 있을 때, 사람들이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18:25)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또 나는 아니다고 단호하게 부인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베드로가 귀를 잘랐던 말고의 친척이 하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다그쳤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또 부인했습니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습니다(18:27).

마가복음 1471절에 베드로는 맹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이때 닭이 울었습니다. 누가복음 2261절에 보면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보시는 예수님의 눈길은 미움과 원망의 눈길이 아니었습니다. 이 눈길은 사랑의 눈길, 용서와 이해의 눈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눈길을 바라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는 밖으로 뛰쳐나가 온몸을 쥐어짜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러면 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까?

첫째, 그가 자신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은 연약하나 하나님은 강하심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을 더 신뢰하고 의지했습니다. 그는 육체의 팔을 의지했습니다. 그리했을 때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고 하셨지만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시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신 후에 예수님은 원수들 앞에서 내가 그니라고 분명히 신분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잔을 기쁨으로 마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성실을 의지할 때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11:4, 고전 10:12).

둘째, 그가 엉거주춤한 상태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제자의 요건 중 하나는 가까이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선을 긋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탄은 항상 어정쩡한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사탄은 확신 있게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감히 접근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길은 중간이 없습니다. 의의 종 아니면 불의의 종, 순종의 종 아니면 불순종의 종이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습니다. 신앙은 희면 희고, 검으면 검지, 회색 지대는 없습니다. 가짜면 가짜고 진짜는 진짜이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선까지만 순종하고 헌신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셋째, 그가 고난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이 고난받는 것을 보자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하셨습니다(8:38).

그는 예수님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십자가는 능력과 지혜의 십자가(고전 1:23), 영광과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분명한 크리스천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잔,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기도의 잔, 전도의 잔을 마셔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귀히 쓰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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