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전도서 3:1~22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3:1)

 

동서고금에 시간에 관한 금언이 많습니다. 주자의 권학문에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經)고 했고, 셰익스피어는 시간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속도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에디슨은 변명 중에 가장 어리석은 변명은 시간이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사상가 Carl Hilty오늘 식사는 내일로 미루지 않으면서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많다고 했습니다.

잠언 27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16절에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고민과 시간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내게 하루 주어진 시간은 24시간, 1,440, 86,400초입니다. 이 정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실패와 성공이 판가름 납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영원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다짐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범사에 기한이 있다(3:1~8)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3:1)

여기에서 기한’(καιρς)은 고정되고 한정된 시간을 뜻하고, ‘’(χρόνους)는 어떤 기간의 시작이나 통상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기한과 때란 단어는 사도행전 17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승천하실 때가 이르렀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심각하게 질문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예수님은 이들의 질문에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뜻과 의지로 때와 시기를 조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낳고 죽는 것을 내 의지나 마음과 뜻대로 할 수 있습니까?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과 의지와 손안에 있습니다.

전도서 32~8절을 보면 28번의 때가 나옵니다. 14가지는 긍정적인 사건이고, 14가지는 부정적인 사건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들이 상반되어서 나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 때가 있으면 뽑을 때가 있습니다. 죽을 때가 있으면 치료할 때가 있습니다. 헐 때가 있으면 세울 때가 있습니다. 웃을 때가 있으면 울 때가 있습니다. 슬퍼할 때가 있으면 춤출 때가 있습니다. 돌을 던져버릴 때가 있으면 돌을 거둘 때가 있습니다. 안을 때가 있으면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으면 잃을 때가 있습니다. 지킬 때가 있으면 버릴 때가 있습니다. 찢을 때가 있으면 꿰맬 때가 있습니다. 잠잠할 때가 있으면 말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할 때가 있으면 평화로울 때가 있습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시간은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을 줍니다. 시간은 청춘을 가져다주고, 시간은 성취의 감격을 줍니다. 시간은 춤추는 즐거움, 소유의 기쁨, 창조와 생산의 기쁨, 그리고 사랑의 추억과 평화의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이런 것이 영원히 지속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혼의 단꿈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젊음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은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늙고 병들고 상실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눈물과 패배, 잃음과 슬픔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미움과 절망을 가져다줍니다. 시간은 어제의 평화의 땅에 오늘의 전쟁으로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면서 생을 낙관으로 보기도 하고, 비관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모두가 일리가 있습니다. 생명, 건강, 청춘, 성취에서 오는 기쁨, 춤추는 즐거움, 생산, 소유의 기쁨, 새로움의 발견, 아름다운 추억, 평화의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생을 낙관으로 봐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슬픈 일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얼굴에 생기는 주름살과 검은 머리가 파 뿌리처럼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며 회한에 젖기도 합니다. 죽음, 질병, 패배를 경험하며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이 좋은 것을 빼앗아 가는 웬수라며 비관으로 봅니다.

그러나 삶을 비관과 낙관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슬플 때가 있으면 즐거울 때가 있고, 절망의 때가 있으면 희망의 때가 있고, 위기가 있으면 기회가 있고, 패배가 있으면 성공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국사회가 극명하게 양분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서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갈라진 진영이 손에 손을 잡고 기쁨의 춤을 출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 서울광장에서 김일성 광장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부활의 춤을 출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세계 경제가 어렵습니다. 한국 경제도 비껴갈 수 없습니다. 정부는 위기와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밀려오는 ‘Black Tide’(검은 파도) 시대라고 공식화했습니다. 이것은 전염병과 전쟁 이후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우리가 이 파도를 잘 극복하면 번영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정주영씨의 자서전에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쓰러졌다기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가 있지 않습니까? 오뚝이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중심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축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 중심축이 될 때 백번 쓰러졌다가 101번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일이 잘될 때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 3대 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大馬不死가 아니라 대마도 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1850년에 설립된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은행의 도산사건입니다. 윤석렬 대통령이 권좌에 있을 때 검찰의 검을 함부로 쓰면 안 됩니다. 희망의 때에 절망의 때를 볼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는 매사 할 일이 있습니다. 청년의 때는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게 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생이란 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대에 할 것은 반드시 20대에 해야 합니다. 30대에 할 일은 30대에 속히 해야 하고, 40대에 할 일은 40대에 해야 하고, 50대에 할 일은 50대에 해야 합니다. 공자는 15세에 지학(志學)하고, 20세에 약관(若冠)하고, 30세에 입지(立志)하고, 40세에 불혹(不惑)하고, 50세에 지천명(知天命)하고, 60세에 이순(耳順)하고 70세에 종심(從心)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삶의 황금기인 청년의 때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12:1). 청년의 때에 정욕을 피하고 신앙의 친구들과 함께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딤후 2:22). 다니엘처럼 하나님 안에서 뜻과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1:8). 30대는 마음의 성실함과 그 손의 공교함이 있어야 합니다(78:72). 자기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40대는 돈과 모든 탐욕의 유혹을 이기고 성숙해야 합니다. 50대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님께 소망의 닻을 내려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뜻을 정했으면 때를 놓치지 말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시간의 투자에 비례합니다.

때란 매우 중요합니다. 때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시간을 아무렇게나 헛되이 보내지 않습니다. 스티븐 코비는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에서 사람의 하는 일을 네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구분했습니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긴급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것에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중요하지도 않고 긴급하지도 않은 것에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지난주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습니다. 승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혹시 뉴스와 정보를 얻기 위해 보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의 게임을 하고 웹툰을 보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저와 제 아내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중요하고 시급한 것에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예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시기마다 채울 공간이 있습니다. 그 시기에 공간을 채우지 못하면 노년에 생고생하게 됩니다.

노벨이 값진 삶을 살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노벨의 형이 죽었는데, 신문에는 노벨이 죽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노벨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죽음의 상인, 사망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그 기사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단지 죽음의 다이너마이트를 팔아 부자가 된 정도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내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저 사람은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어 모은 돈을 노벨상을 만들어 모든 재산을 노벨상 지단에 기부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때를 생각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9:4)

우리에게는 일할 수 없는 죽음의 때, 병들 때가 반드시 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젊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복음을 전하여 잠든 영혼, 죽은 영혼을 깨워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때를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불교의 시간관과 변증법인 시간관, 그리고 기독교 시간관입니다. 불교 시간관은 돌고 도는 시간관입니다. 죽음은 다른 생명으로 나타나고, 그 생명은 죽음을 낳고, 죽음은 또 다른 생명을 낳는 일이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관을 갖게 된다면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회가 다시 오기 때문입니다. 개로 태어났다가 돼지로 태어나고, 언젠가는 사람으로 태어나는데 그때 가치 있는 삶을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이런 시간관에 묶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오늘만 시간이냐 내일도 있고 모래도 있는데, 오늘 먹고 놀고 즐기자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절대 가치관을 가지고 살 리가 없습니다.

변증법 시간관은 역사는 계속해서 진보한다는 것입니다. 불교 시간관이 원, 윤회의 시간관이라면 변증법 시간관은 정반합의 시간관입니다. 이 시간관대로 보면 역사는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하고 전진하지 않습니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새로운 창조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시간과 거리를 단축했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창조 역사를 이루었습니까?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있습니다. 2020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서 10만 명당 6.0으로 세계 1위입니다. 일 년에 10만 명당 6명이 교통사고로 죽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 시간관은 시각과 끝이 있는 종말론 시간관입니다. 우리의 삶은 처음이 있고 마지막이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1440, 86,400초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카운트업하여 몇 살 먹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몇 년 남았다. 며칠이 남았다고 카운트다운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80으로 본다면 , 이제 50년 남았구나’. ‘40년 남았구나’. ‘30년 남았구나’. ‘20년 남았구나’. ‘10년 남았구나생각해야 합니다. 대학도 ‘3년 남았구나’. ‘2년 남았구나’. ‘1년 남았구나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는 시간, 오늘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보내야 합니다.

2. 일하는 자의 수고에는 이익이 있다(3:9~15)

일하는 자가 그의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3:9)

우리가 무슨 일을 하면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서 기자는 삶의 대차대조표를 보니 아무 이익이 없었습니다. 일 년을 결산해보니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대학 생활을 결산해보니 남는 것이 없습니다. 30대를 결산하니 얻은 것이 없습니다. 40년을 결산해보니 빚만 있습니다. 50, 60대를 결산해보니 얼굴에 패인 주름살과 흰 머리카락뿐입니다.

내게 청년의 때가 다시 온다면, 내게 내일이 다시 온다면 정말 멋지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런 절망 중에 저자는 하나님께서 노고를 주셔서 애쓰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를 묵상하다가 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0~11)

이 말씀은 전도서 저자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이는 회의와 절망의 늪 속에 핀 아름다운 장미꽃과 백합화와 같습니다. 이 신앙고백에는 네 가지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짜증을 내고 불평하고 화를 내고 신경질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의 고백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1:31)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고통이 감사가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름답고, 하나님 안에서 쉼도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면 인생은 아름답다”, “가정은 아름답다”, “세상은 아름답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절망과 허무 속에서,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간 저 건너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깊은 절망을 느끼지 못한 사람, 자기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설프게 고민을 하면 니체가 되고, 진지하게 고민하면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믿음의 거장이 됩니다. 우리는 자기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다면, 내일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 수 없고 측량할 수 없으므로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러기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러기에 예배를 드리고, 그러기에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 경외하게 됩니다.

넷째, 하나님은 반복된 삶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3:15)

우리의 삶은 반복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을 보고 학교로 가든지 직장으로 가서 공부하고 일하고 집에 옵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그러다 보면 일 년이 잠깐 사이에 지나갑니다.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아서 새로운 것을 다시 해야지 않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반복되는 삶 속에서 역사를 이루고 가십니다. 따라서 하루하루가 소중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심판하신다.

전도서 저자는 재판을 잘한 명 재판관입니다(3:16). 그런데 그는 공의를 행한다고 했는데도 불의한 재판을 했습니다. 이를 볼 때, 법의 잣대가 반드시 공정한 것만은 아닙니다. 재판은 승자 편에 서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의인 줄을 알면서도 권력 앞에 머뭇거립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았고 또 보지 않습니까? 모 대학에서는 수준 미달의 논문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런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3:17)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악인을 심판하고 의인을 구원하십니다. 결국은 악인도 죽고 의인도 죽습니다. 모두가 죽음 앞에 공평합니다(3:18~20).

권력을 소유했던 사람이나 권력에 주눅이 들었던 사람이나 모두 죽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죽습니다. 죽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음의 자리에서 모두 공평합니다. 사람과 짐승도 차별이 없습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사람과 짐승의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3:21)

사람이 죽으면 혼이 위로 올라가고, 짐승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는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따라서 우리가 살아온 삶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잔인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심판이 없는 것이 오히려 잔인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우리가 불의와 불합리한 세상에서 바르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기에 바르고 진리를 위해 끝까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알랴? 그래서 바르고 진리를 위해 살지 못합니다. 선한 삶보다 육신의 쾌락을 좇아 삽니다. 이런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3:22)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즐거워하며 충실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에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도둑맞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도둑을 맞고 잊어버리면 원통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돈보다 더 귀합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도둑맞은 시간은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지나가는 시간을 귀히 여기고 주어진 시간을 아껴 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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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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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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