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5(19:11)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20:15)

 

 

 

 

모든 사상이 형성되는 배후에는 소유 문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소유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사회주의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소유의 평등을 주장하고, 공산주의는 폭력으로 소유를 평등하게 하고자 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한편 자본주의는 능력을 통한 소유를 주장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소유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유 문제에서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소유하느냐, 둘째는 소유한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사람들의 소유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직하게 일을 해서 얻는 소득이고, 다른 하나는 선의의 선물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잘못된 소유입니다. 모든 죄의 원인은 잘못된 소유에서 출발합니다. 살인, 절도, 사기, 직권남용, 거짓말, 정경유착 등도 그 배후에 소유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죄명(罪名)을 보면 거의 절도, 강도, 사기, 살인, 간음일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제6계명부터 제8계명을 어긴 죄입니다. 요즘 뜬다는 영화나 소설, T.V. 드라마의 주제를 보면 거의 이런 것들이 적절하게 배합된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한 것은 자기 것이므로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사치와 방종, 무분별한 낭비가 시작되고, 이러다가 남의 것을 도둑질하고, 도둑질한 돈으로 사치와 방종에 사용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소유에 관한 것보다 소유한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더 깊은 의미를 두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바른 소유와 잘못된 소유, 그리고 바른 소비와 잘못된 소비를 잘 분별하여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바른 소유

첫째, 성경은 재물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넓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좋은 차를 타고 싶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이런 소유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원리로 그런 소유를 추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원리가 없는 욕망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열차가 달리는 것과 같아 언제 어떻게 탈선하여 대형 사고를 낼지 모릅니다. 반면에 소유욕이 없는 원리는 삶을 메마르게 합니다.

성경은 물질을 경시하거나 배금사상을 동시에 배격하여 물질은 죄악이다라고 하지 않고,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딤전 6:10)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6: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보물을 소유하되, 보물을 소유하는 동기와 목적, 그리고 방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인간의 욕망을 성경 말씀의 원리로 제어하여 내일을 위해, 영원을 위해, 창조적인 역사를 위해 물질을 쓰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소유한 보물을 주와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은 주와 복음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청춘을 아낌없이 드립니다. 이런 사람은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친구를 만듭니다(16:9). 이런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을 즐겨합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윤택합니다(11:24~25).

여기에서 보물은 단순히 돈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물은 내가 가장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것을 뜻합니다. 보물이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명예와 지식과 학문과 재능과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땅에는 좀과 동록이 있어서 보물을 해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썩고 쇠하고 부패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좀과 동록은 눈에 보이지 않게 보물을 해칩니다. 세상 곳곳에 애써 쌓아 놓은 보물을 약탈해 가는 약탈자가 있습니다. 도둑은 보물을 탈취해 갑니다. 불과 전쟁과 수재와 지진이나 화산폭발, 질병과 교통사고는 순식간에 보물을 앗아갑니다. 무엇보다도 죽음은 일생 모았던 모든 보물을 한낱 물거품으로 만듭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와 명예와 권세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은 결코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를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성경은 개인의 소유를 인정합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무소유가 아니라 소유를 인정합니다. 성경 말씀은 소유를 인정하지만, 소유에 따라 신분이 결정되는 계층이나 계급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를 말합니다. 성경 말씀은 게을러서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소유는 삶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 빈손으로 떠나도록 하시지 않고 모든 가축과 모든 보물까지도 가지고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소유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될 때 그 자체가 아름답고 큰 복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8계명은 개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타인의 생명을 존중히 여겨 살인하지 말라, 타인의 가정을 존중히 여겨 간음하지 말라는 것과 같이,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남의 재산을 존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국가 제도를 주신 것 중의 하나가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13:4). 만일 국가가 사유재산을 보호해 주지 못하면 국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74문과 75문에서 이 계명이 요구하는 것과 금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물과 산업을 얻고, 이것들을 증진시켜야 한다.”(살후 3:10~12; 12:17; 27:23; 25:35; 13:4; 15:10)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과 이웃의 재물을 부당하게 방해하거나, 또한 방해될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21:6, 28:19; 4:28; 딤전 5:8; 5:4)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는 성경 말씀에 위반되는 그릇딘 사상입니다.

잘못된 소유; 도둑질

우리는 보통 도둑질하면 도둑질한 것보다 도둑 당한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나는 도둑질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둑질(בנַגָ, ἰεροσυλεω)은 성전(聖殿)을 헐다, 훔치다, 몰래 소유하다, 마음을 훔친다는 뜻입니다.

도둑질은 직접 훔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물건을 팔 때 정당한 값 이상을 요구하는 바가지 상행위, 저울을 속이는 행위(25:13), 거짓 광고, 거짓 포장, 부정직한 상행위로 이익을 챙기는 행위(19:35~36), 근로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주지 않는 악덕 기업주, 고리대금업을 하는 행위, 남의 장학금을 훔치는 커닝(cunning), 지적 재산권을 훔치는 행위, 즉 출판물, 작곡, 발명품, 특허권의 도용과 복사, 표절, 인신매매 등도 도둑질입니다.

제국주의 정책은 남의 나라를 침탈하는 도둑 중의 도둑입니다. 19051117일의 을사늑약, 1910829일에 대한제국을 강압하여 침탈한 일본은 도둑 중의 도둑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8계명은 세상 도덕과 윤리에서도 강조하는 경구입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정직하고 양심적인 삶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단순히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는 계명을 도덕과 윤리적인 차원에서 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은 도덕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도둑 중에 가장 큰 도둑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지은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의 피조물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나님의 자리를 도둑질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 루시퍼였습니다(6; 벧후 2:4; 14:12).

루시퍼는 특별한 사역을 위해 창조된 천사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였습니다(28:12~17). 그런 그가 축복을 많이 받자 마음이 교만해져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가 추방당하여 어두움의 세력을 잡은 사탄이 되었습니다. , 사탄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처소를 떠난 범죄한 천사입니다. 아담 또한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 자리를 탐내다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아담이 타락으로 홍수 심판을 겪은 이후, 인간들은 하나님과 같은 높이에 올라 온 땅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켜 바벨탑 건축을 중단시킴으로 교만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습니다(11:1~9).

바빌론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은 자신의 위대한 업적을 자랑하며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그 결과 7년을 소처럼 살았습니다(4:28~37).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쳤습니다(삼하 15:6). ‘훔쳤다는 것은 원래 다른 사람의 소유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훔치다는 상대방을 철저히 속여 강탈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백성의 민심이 다윗 왕에게서 압살롬에게로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이 아닙니다. 압살롬은 간계한 계략으로 민심을 도둑질했습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왕권을 넘보고 백성의 마음을 빼앗습니다. 압살롬의 행위는 사탄과 손잡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 아담의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압살롬의 최후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삼하 18:9~15).

이처럼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고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가로챈 개인이나 민족은 반드시 다 망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땅히 드릴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3:8~9)

하나님은 헌금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지 않고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했다는 것은 당시 제사장들이 각 개인이 드린 십일조와 헌물을 착복한 것을 말하지만, 각 개인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도 포함합니다.

성도가 십일조를 드리고 헌물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생명, 시간, 재능, 자녀, 물질 모두가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이고, 드리지 않는 사람이 도둑입니다.

헌물은 십일조를 드리고 남은 9개를 가지고 드리는 것입니다. 남은 9개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고 살림하고, 감사 헌금, 선교 헌금, 각종 감사 헌금 등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 헌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헌물을 잘 드리는 사람이 헌신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생활비의 십일조나 적금과 은행의 융자금을 떼고 드리는 십일조는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은 성도의 도둑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실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둘째로 일곱째 날 중에 하루를 드리지 않는 것은 주님의 날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예배를 도둑질하는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둑질이다.

교회의 성경, 찬송가, 책을 말없이 가져가고, 교회의 작은 물품을 가져가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특히 책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이 아니라는 일반 관행으로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가져갑니다. 필자가 아는 간호사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 병원의 반창고나 거즈 등을 무심코 집으로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그녀는 후에 제8계명을 어긴 것으로 깨닫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도둑질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않은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17:11)

자고새는 알을 많이 품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다른 새의 알을 훔쳐다가 품는 습성이 있습니다. 자고새는 훔친 다른 새의 알을 정성스럽게 품어 부화했습니다. 부화한 새들은 자기 어미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둥지에서 날아가 버립니다. 이때 자고새의 심정이 어떠할까요?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도둑질한 재물은 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간다고 했습니다(23:5). 재물이 날개가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표현이고, 얼마나 재물에 대한 정확한 표현입니까? 재물, 돈은 후~ 불면 날개가 있어 다 날아갑니다. 돈은 날개가 있어 언젠가 추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 있다가 없어질 돈에 목숨을 거는 것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도둑질에 재미를 붙이면 마약을 끊는 것보다도 더 힘듭니다. 한탕주의, 각종 부정과 불법으로 쉽게 벌 때의 짜릿함,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이를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개인은 물론 가정과 민족과 국가가 망합니다. 부정부패한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천년 제국 로마도 부정부패로 고트족에 멸망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욕심에 빠져 하나님의 물질을 도둑질하다 보면 구원의 감격을 빼앗겨 기쁨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도의 특징은 기쁨과 소망입니다. 초막이라도 기쁨과 소망이 넘치면 천국입니다. 바울(Paul)과 실라(Silas)가 찬미하여 기도했던 빌립보 옥은 그들에게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대광실이라도 두려움과 불안, 죄의식이 있다면 거기는 감옥이요 지옥입니다.

도둑질은 사람의 인격을 망가뜨리고, 양심을 마비시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무엇보다도 도둑질로 죄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고전 6:10).

바른 삶

첫째, 탐욕과 낭비를 삼가라.

탐욕과 낭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탐욕은 할 수 있는 대로 긁어모으는 것이고, 낭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헤프게 쓰는 것을 말합니다. 탐욕은 돈을 좋아하는 것이고, 낭비는 돈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스 베버(Max Weber)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기원을 근대 산업혁명과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아니라 16~17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하였던 칼뱅주의, 감리교, 침례교 등의 개신교가 지니고 있던 윤리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 기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성도가 한 푼 두 푼 저축하여 모은 돈을 투자하면 공장이 돌아가고, 공장이 돌아가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면 수입이 늘고, 수입이 늘면 또 재투자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생활도 넉넉하게 되게 되고, 삶의 질도 향상되게 된다.” 우리는 쉽게 벌려는 한탕주의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낭비하는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검소하고 절제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좋은 습관을 길러라.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바늘을 훔칠 때보다 소를 훔칠 때가 더 재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재미가 있으니까 계속하는 것이고, 더 강도 높은 재미를 추구하게 됩니다. 인류 역사와 문명은 남의 재산을 훔치는데서 오는 재미를 좇아 살아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약한 나라를 빼앗아 식민지로 만든 열강들이 그러합니다. 1910년에 대한을 강탈한 일본도 그 축의 하나입니다.

잠언에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9:17)고 했습니다. 서양에 훔친 과일은 맛이 있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는 자기 집 냉장고에 있는 과일이나 자기 집 마당에 열려 있는 과일보다도 이웃집 울타리에 열려 있는 과일을 몰래 따먹는 게 더 맛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도둑질은 단순히 부족하고 못살아서가 아닙니다. 도둑질은 못살고, 수준이 낮아서도 아닙니다. 인간 마음에 있는 탐심의 죄성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좋은 습관을 갖도록 힘써야 합니다.

투기를 삼가고, 투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투기는 단기간에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벌고자 하는 것이고,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서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투기로 일확천금을 벌려고 하지 말고 투자를 해야 합니다. 요즘 코인에 열광하는 것은 모두 투기 심리, 한탕주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투기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입니다.

 

셋째, 나누는 삶을 살라.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4:28)

바울은 도둑질을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여 번 돈으로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선한 일은 물론 교회에 헌금하는 것을 포함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돕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들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실하게 일하여 번 돈을 자기만을 위하여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여 번 돈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역과 가족과 공익사업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는 인색하고 선한 일에는 부유해야 합니다.

마게도냐에 있던 교회들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연보하였습니다. ‘연보’(ἁπλτητος)란 소박, 단순, 순수함이란 뜻으로, 자기의 재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극심한 가난 중에도 다른 사람을 돕는 풍성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환난과 많은 시련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드렸습니다(고후 8:1~2).

사람이 극심한 가난 중에 있게 되면 자기중심이 되어 마음까지 쪼들려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극심한 가난 중에도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풍요로웠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사랑의 빚, 영적인 빚, 복음의 빚을 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 우선 내 발등의 불부터 꺼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무엇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생 동안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쪼들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누구도 여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면 상대 빈곤에 처합니다. 그러므로 여유가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옆을 돌아보면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가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마음이 넉넉하고 풍요롭게 됩니다. 이처럼 연보는 사람의 마음을 넉넉하게 합니다.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남을 도울 수 있게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고통이 오히려 기쁨의 샘물이 됩니다. 삶을 소박하게 하고 단순하게 합니다.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소망과 구원과 예수님의 은혜의 잔이 넘치도록 합니다.

넷째, 땀을 흘려 일하라.

한국에 불한당(不汗黨)같은 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는 무리를 일컫습니다. 노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천직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중에 일하지 않는 게으른 자들이 있었습니다(살후 3:11). 그들은 맡은 직분을 충성스럽게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런 그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一日不作, 一日不食)(살후 3:10)고 했습니다. 바울은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그들에게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권면했습니다(살후 3:12).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제물포고등학교 길영희 교장 선생은 학생들에게 유한흥국(流汗興國), 땀 흘려 나라를 일으키자는 교육이념으로 노동과 근면을 강조하였습니다.

산업혁명과 지식정보혁명으로 축적된 자본의 여파로 생긴 현상이 불로소득(不勞所得)입니다. 불로소득은 성경의 원리가 아닙니다. 임금은 노동에 따른 결과입니다, 노동하지 않고 소득을 얻고자 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거지 근성입니다. 그리고 국가나 사회로부터 여러 복지 혜택을 받는다면, 받는 그것만큼 국가나 사회에 뭔가를 기여해야 합니다.

토마스 람게는 행복한 기부에서 복지국가로서 실패하고 있는 독일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일인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려는 보모국가에서 국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책임지는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 스스로가 주인으로 서서 새로운 방법, 받는 것이 아니라 기부의 문화를 올바르게 정착시켜야 한다. 큰 것의 기부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1%를 기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누구에게나 1%의 기부할 것은 있다.”

존 케네디(John F. Kennedy)1961120일 미국 35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국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어 보십시오.”(And so,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우리는 바른 소유와 잘못된 소유, 바른 삶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른 소유와 바른 소비,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른 삶은 탐욕과 낭비를 절제합니다. 나누는 삶을 즐거이 합니다. 땀 흘려 일하며 자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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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 주일메시지 2023 09 출애굽기 14장 홍해를 가른 하나님 file 운영자 2023-09-30 191
504 주일메시지 2023 08 출애굽기 13장 광야길로 인도하신 하나님 file 운영자 2023-09-30 195
503 주일메시지 2023 07 출애굽기 11-12장 내가 피를 볼 때 넘어가리라. file 운영자 2023-09-30 186
502 주일메시지 2023 06 출애굽기 5장-10장 내 백성을 보내라. file 운영자 2023-08-23 219
501 주일메시지 2023 05 츨애굽기 4장 세가지 이적을 나타내신 하나님 file 운영자 2023-08-19 194

일용할 양식

예배 안내

  • 주일 오전 예배 - 오전 11:00
  • 주일 오후 예배 - 오후 3:30
  • 어린이 예배 - 오전 11:00

대학마을교회 개척교회

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퍼플,2023)

      요한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퍼플,2022)

        요한계시록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 감성,2021)

          예레미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1)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저서 구입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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