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사도행전 15:1-11

 

은혜의 복음 -예루살렘 총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15:11).

 

 

1974년에 존 스토트와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스위스 로잔에서 복음주의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로잔언약을 발표했습니다. 로잔대회의 언약은 투명성과 정직이었습니다. 2차 대회는 1989년 마닐라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를 선포하고 온 교회가 온 세상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에 기초한 12개 조항이었습니다. 3차 대회는 2010년에 케이프타운에서 인간은 잃어버린 존재이며, 복음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사상이며, 아울러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우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의 내부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우상은 GPS[탐욕(Greed), 권력(Power), 성공(Success)]를 전제하면서 이를 타파할 개념으로 HIS[겸손(Humility),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을 강조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제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 그 사이의 내용입니다. 1차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유대 크리스천들은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 총회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회의로, 이 총회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종교의 자유 헌장이 선포되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의 선포입니다.

 

복음 진리를 수호하는 바울과 바나바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15:1).

 

어떤 사람들이란 유대 크리스천으로서, 안디옥에 일어나고 있는 복음 역사의 소문을 듣고 스스로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이야기를 안디옥 성도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복음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안 되고 모세의 법대로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할례란 하나님 편으로 구별해 놓았다, 옛 생활을 베어버린다,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사랑의 증거로 손가락에 가락지를 낍니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결혼반지가 아주 가느다랗습니다. 결혼반지는 값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징표입니다. 징표는 잊지 말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몸에 징표를 하여, 선민임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할례는 유대인의 종교 문화입니다.

그런데 유대 크리스천들은 이것을 복음의 본질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할례 받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자기들과 똑같이 할례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유대사람들의 종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세계 종교가 될 것이냐의 기로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유대인들의 풍속과 문화 속에 매이게 되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민족 종교가 됩니다. 만일 기독교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면 세계선교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고 나와야 기독교가 세계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대로 복음을 영접하고도 할례를 받으면 율법의 종이 됩니다.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안 되고 믿음+할례가 있어야 된다면 이것은 복음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 됩니다. 요즘도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안 되고 믿음+행위를 강조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사를 강조하는 은사주의, 신사도운동이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으로만 안 되고 방언이나 예언의 은사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방언과 구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제 안디옥 교회는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확신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이제 할례를 받지 않으면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니 신앙의 뿌리까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은 복음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할례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징표였습니다. 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이 명하신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17:27; 12:48).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와 율법에 대해 죽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율법의 매임에서 벗어나게 되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문제를 가지고 그들과 다툼과 변론을 했습니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15:2).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sharp dispute and debate)은 날카롭고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앞장서서 율법주의자들과 강하게 싸웠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렇게 싸우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답지 못해 보입니다. 은혜가 안 되고 덕스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그들과 강렬하게 싸웠습니다. 복음 진리는 선택하거나 비교할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복음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완전하고 온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어떤 +α를 덧붙일 수 없습니다. 만약 복음에 무엇을 덧붙이면 그것은 완전하고 온전한 복음을 상대화시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 진리와 복음의 절대성을 굳게 붙들고 조금도 그들과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들과 타협하여 할례를 묵인하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로 전락하게 됩니다. 복음 진리는 유대교의 율법과 형식 속에 사장되어 버립니다.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복음 진리만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했습니다(1:9).

안디옥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많은 불신이 심어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불신이 심어지기는 쉬워도 한번 심어진 불신을 뽑아내기란 어렵습니다. 또 할례파 유대인들도 물러서지 않고 여러 가지 이론과 말로 도전했습니다. 이 문제는 바울과 바나바가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졌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은 결국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하고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고자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교회의 전송을 받으며 안디옥을 떠나 중간 경유지인 베니게와 사마리아에 들려 선교보고회를 가졌습니다(15:3). 그곳의 형제들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 크게 기뻐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곳을 떠나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의 뜨거운 영접을 받았습니다(15:4). 그리고 그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셔서 행하신 모든 역사를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순간 바리새파 중에서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자기들의 주장을 폈습니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15:5).

 

그들도 이방인 중에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도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마땅히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율법의 역할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3:24).

 

초등교사란 가정교사를 말합니다. 입시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가정교사는 필요 없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율법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됩니다. 율법의 역할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음으로 복음을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붙들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오랫동안 좋은 것으로 여겨왔던 율법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율법과 복음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유대교에서 할례와 율법을 제거하면 유대교는 뿌리부터 무너지게 됩니다. 반면에 기독교가 할례와 율법을 받아들이면 복음은 형식화됩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복음은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

 

사도와 장로들은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총회를 소집했습니다(15:6). 그들은 모여서 오랫동안 같은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했습니다(15:7). 그들은 많은 토론과 변론을 했습니다. 그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바울이 말할 때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열변을 토하면 바울은 이를 반박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 말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자기주장이 정통이고 바른 신앙이고 바른 신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 생각에 목숨과 명예를 걸고 한 치의 양보 없이 논쟁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가 일어나 저들 앞에서 사도의 권위로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는 어느 쪽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옳다고 하면 남이 틀렸다는 말이 되고, 내가 안다고 하면 남은 모른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변론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 경험에 기초해서 내가 보았고, 내가 경험했고, 내가 확실하게 체험한 사실을 말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옳고 그름을 말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구원을 베푸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미 할례 안 받은 사람들도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성령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소리들을 하느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누가 가로막을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서 이미 역사하셨는데 무슨 이론이 필요하고, 무슨 설명이 필요하고, 무슨 변론이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15:7).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먼저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학문이 없는 갈릴리 어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베드로를 택하여 그의 입을 통해 일찍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삼천 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 사마리아와 고넬료의 집에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야고보에게 맡기시고, 베드로로 하여금 십 년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웃 나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율법과 관계없이 구원 역사를 이루시고, 할례와 관계없이 구원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는 할례, 율법, 문화,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이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15:8-9).

 

또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처럼 그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거나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결론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15:10-11).

 

베드로는 구원받는 데 어떤 조건도 필요 없음을 선언했습니다. 할례를 받은 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나 동일하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바울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

 

누구를 막론하고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할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요체요 핵심입니다.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를 선교 현장에서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왜 이의를 제기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왜 반기를 드느냐? 그리고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는 멍에(율법)로 이방인을 속박하려고 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5:10).

 

베드로는 율법을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누구도 멜 수 없는 무거운 멍에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바르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렵습니다. 세상에 십계명을 모두 지킨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성경의 한 젊은 청년도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십계명의 핵심인 이웃을 사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19:16-22). 누구도 십계명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율법으로 구원받고자 하면 할수록 두 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내가 남보다 조금 낫다는 교만과, 다른 하나는 남보다 못하다는 절망입니다.

구원은 율법의 행위와 할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는 신앙의 결과이지, 구원의 전제 조건이 아닙니다. 율법과 할례는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아무리 잘 지켜도 그것 때문에 구원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습니다.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아무 대가 없이,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은 감격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옛 언약은 율법을 행해야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종교의 자유 헌장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총회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진리가 선포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하나님 백성이 됩니다. 율법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기쁨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는 어떤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아멘.

 

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 영생 허락 받았으니 의심 아주 없도다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새찬송가 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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