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마가복음 1:12-13

 

성령이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1:13).

 

예수님은 성령께 이끌리시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사탄은 타락한 천사 루시퍼입니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루시퍼는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고자 하나님께 대항하다가 쫓겨난 천사입니다. 사탄은 세상과 공중에 살면서 아래로는 인간을 유혹하고, 위로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도전했습니다. 성경에서 사탄은 고소자, 파괴자, 시험하는 자, 악한 자, 바알세불, 더러운 존재, 벨리알, 귀신의 왕, 세상 임금, 공중 권세 잡은 자,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 용 혹은 옛 뱀 등으로 묘사되어 나옵니다.

시험하다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혹’(temptation)이고, 또 하나는 시험’(test)입니다. 유혹은 사탄이 쓰는 단어요, 시험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이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받는 훈련이라면, 사탄의 유혹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인간을 파멸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사탄의 유혹을 이기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

 

아담은 사탄의 유혹을 받고 넘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에 죄와 사망이 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영원한 생명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아담은 아무 부족함이 없는 에덴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담과 달리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을 탓합니다. 환경이 이러하고,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고 승리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성공과 실패는 환경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을 바꿉니다. 오히려 역경은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사자성어 중에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환경이 사람을 타락시킬 수는 있어도 역경이 타락시키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시련과 고통의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고통과 시련이 하나님께 드려질 때 오히려 큰 복이 됩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메시아로 출발하실 바로 그때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은혜의 때, 새롭게 출발하고자 할 때 반드시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광 뒤에 고난이 있고, 승리 뒤에 시련이 있고, 은혜 뒤에 시험이 있습니다. 높음이 있으면 낮음이 있고, 영광의 탈출 후에 패배의 역경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때, 복을 받을 때, 새롭게 출발할 때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했습니다.

인간은 욕심에 끌려 시험을 받습니다(1:13-14).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어려울 때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 충만할 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할 것도 없이 늘 깨어서 성령 충만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떡으로 유혹받으신 예수님

 

사탄은 인간의 원초적인 먹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굶주리셨습니다. 광야는 기온차가 심해 낮에는 덥고 저녁에는 춥습니다. 사람이 가장 슬플 때는 춥고 배고플 때입니다. 사람은 한 끼를 굶으면 힘이 없어지고, 두 끼를 굶으면 슬픈 생각이 들고, 세 끼를 굶으면 눈이 노래지고, 네 끼를 굶으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됩니다. 40일간 굶으신 예수님은 아마 주위의 돌들이 모두 떡으로 보이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시험하는 자가 조용히 다가와서 달콤한 음성으로 속삭였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4:3).

 

만일이라는 말은 시험하는 자의 유혹 수법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이를 이용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고 아주 기가 막히게 유혹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유혹할 때도 사탄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고 유혹했습니다. 시험하는 자는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고생하느냐?”, “네가 만일 하나님이 아들이라면 그 꼴이 뭐냐?”, “메시아로서의 사명도 좋지만 먼저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이 부족해 굶고 있느냐?” 하며 유혹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약하고, 물질에 약하고, 육체에 약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현실 문제 앞에서는 넘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고픈 문제는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성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사탄이 당위성을 가지고 유혹할 때 그래, 네 말이 맞아하고 맞장구를 치면 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시험하는 자는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의 능력을 가지고 자기 앞에 닥친 현실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즉 시험하는 자는 공명심을 자극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도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15:30-31)라고 하며 조롱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구원한다면서 정작 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하며 내려오셔서 사람들을 불로 심판하시고 다시 십자가에 올라가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끝나는 것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공명심을 자극해 유혹할 때 예수님은 이를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4).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즉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모든 말씀에는 선포되는 말씀뿐만 아니라 문자로 기록된 말씀도 포함됩니다. 말씀은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사탄의 시험을 이기는 원동력입니다. 말씀은 사탄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말씀은 영적인 분별력을 주어 사탄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말씀은 사탄의 궤계를 이기는 성령의 검입니다(6:17). 우리가 사탄의 궤계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4:4)라는 말씀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떡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금식하는 기간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아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차게 거두셨습니다(6:41-44).

그러나 예수님은 떡을 위해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예수님이 그분의 능력을 떡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시도록 유혹했습니다. 즉 사탄은 영적인 메시아이기 전에 먼저 떡 문제를 해결하는 물질의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떡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떡 문제는 물질 문제, 즉 먹고사는 문제, 현실 문제, 고상한 표현으로 경제 문제, 장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철학을 논하고, 예술을 하고, 학문을 하고, 사명을 감당하더라도 먼저 배가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하다가도 떡 문제가 불확실하다 싶으면 이를 포기합니다. 반면에 떡 문제만 확실하게 보장해 준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합니다. 사탄은 첫 사람 아담을 먹는 문제로 유혹해 넘어뜨린 후부터재미가 붙어서 먹는 문제로 사람들을 미혹해 자신의 종으로 만들곤 했습니다.

사람이 물질, 즉 돈의 맛을 알게 되면 돌아버립니다. 사회주의 신봉자였던 등소평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식인들도 돈 때문에 양심을 팝니다. 공산주의 사상도 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붙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육의 양식보다 영의 양식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경제제일주의를 부르짖으며 영의 양식보다 육의 양식을 더 귀하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윤리와 도덕이 타락하고 부정부패가 심화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명인과 생활인의 차이점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물질을 붙드느냐, 아니면 말씀을 의지하느냐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주님을 붙들어야 하고,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죽으면 잘 먹고 죽은 사람이나 잘 못 먹고 죽은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그리고 잘산다고 밥 네 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1-12).

 

세상 사람들은 수량을 기초로 성공 유무를 평가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작아집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대기업에 취직하고자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바쁘게 살아갑니다. 대학은 진리의 전당이나 상아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빵 공장 알선업소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 행복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란 한자어로 인간이 제대(祭臺)에 제물을 드릴 때 주어지는 상형문자입니다. 그러니까 복은 내적인 복과 외적인 복의 합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전부를 물질에 투자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우리의 삶을 물질에 전부 투자한다면 이는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거룩하고 영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명의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먼저 앞세우고, 말씀을 먼저 붙들고 사명을 위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때 환경을 초월해 궁궐이나 초막이나 모두가 하나님 나라가 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새찬송가 4383).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4).

 

이 말씀은 신명기 83절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와 목적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후 40년간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게 되자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광야에서 무려 40년간 매일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3).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를 먹여주십니다. 부모님과 회사 사장이 먹여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우리를 입혀주시고 먹여주십니다. 먹는 문제뿐 아니라 생명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은 교장 사령장을 받기 전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분은 심성이 착하시고 자기개발과 학생들의 폭넓은 학습지도를 위해 힘든 석, 박사 과정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교장 사령장도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물질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가졌던 돈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명예도 권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살리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배가 부르실 때가 아니라 배가 고프실 때 말씀을 붙드셨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소유의 유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따라 살 때 행복합니다.

 

말씀으로 유혹받으신 예수님

 

시험하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여지없이 패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수님을 거룩한 산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4:6)고 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시편 9111-12절을 인용해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사 지키시고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4:6).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자와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교묘하게 이용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당시에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에게 챔피언 벨트를 주는 시합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멋진 폼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실 때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이를 쳐다볼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바닥에 거의 닿으실 지경에 천사들이 나타나 사뿐히 예수님을 받아 땅에 내려줍니다. 이때 예수님이 손을 흔들어 답례하시며 무개차를 타고 행진하시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한 번 뛰어내리심으로 단번에 메시아로 인정받으시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은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모든 인생을 맡겼다가 그 말씀대로 안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사명을 시작하기 전에 말씀이 과연 그대로 이루어지는가, 아닌가를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시험해 보고 그 말씀이 확실하다는 것을 경험해 본 후에 하나님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셔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해 뛰어내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 불신이 생기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예수님께 맡기실 수 없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을 의심해 뛰어내리신다면 땅에 떨어져 죽게 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뛰어내리신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받쳐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죽이는 데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4:7).

 

예수님은 신명기 616절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은 시험받으실 대상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이시며 사랑하고 순종하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고 감사해야 할 분이십니다. 이처럼 사탄이 노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을 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목적 중에 하나는 불신을 뽑고 믿음을 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불신입니다. 반면에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11:22).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11:6). 믿음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힘과 소망을 줍니다. 반면에 불신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슬픔, 그리고 무기력과 불행을 가져다줍니다. 사탄은 시시각각으로 불신을 심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사람 사이에도 불신을 심으려고 여러 모양으로 미혹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가까운 친구 사이에 불신을 심습니다. 사람이 사탄의 미혹을 받아 불신이 심기면 그때부터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은 불신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신뢰해야 할 믿음의 대상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했으면 이미 이루신 줄로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신뢰해야 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셨습니다.

 

세상 권세와 영광으로 유혹받으신 예수님

 

사탄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여지없이 패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탄이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만국 중에는 로마 황제의 보좌도 포함됩니다. 천하만국은 참으로 보암직했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9).

 

세상에서 세상 권세와 영광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세상 권세와 영광을 얻기 위해 피땀을 흘립니다. 그런데 사탄은 엎드려 자신을 경배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예수님도 천하만국의 영광을 얻기 위해 오셨는데, 이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서운 독소와 계략이 숨어 있습니다.

경배하라’(worship)라는 것은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헌신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경배하느냐에 따라 그의 종이 됩니다(6:16). 예수님이 마귀에게 경배하시게 되면 예수님은 사탄의 종이 되십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경배하도록 함에 있습니다. 사탄을 경배하는 순간 파멸입니다. 이처럼 사탄은 우리에게 행복을 줄 것처럼 속삭입니다. 세상 권세와 영광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처럼 유혹합니다.

그러나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벧전 1:24). 모든 영광을 얻었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 고 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행복과 자유를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은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죄와 사망의 노예로 전락시키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사람들은 물질을 경배하고, 사람을 경배하고, 자기 자신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경배합니다. 그러나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세상을 창조하신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의 모든 것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다른 것도 섞어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섞이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혼합주의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세상을 섬기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신앙에는 중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짝하는 것은 영적 간음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죄인들을 위해 내주신 하나님만이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사탄은 쉬운 방법으로 예수님께 영광을 얻으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 두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통스럽고 외롭습니다. 이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렇게 힘들게 얻을 것이 아니라 쉽게 성취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쉽게 살고 싶어합니다. 누구나 쉽게 돈 벌고, 쉽게 학점 따고, 쉽게 출세하고 싶어합니다. 사탄은 이런 인간의 본성을 이용해 십자가 없이 쉽게 살도록 유혹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단계 판매와 부동산 투기, 주식 투기를 하다가 빈털터리가 됩니다. 사탄은 언제나 쉽게 살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접근합니다. 이처럼쉽게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은 모두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이단들의 특징도 고난이 없는 영광으로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무엇을 하고자 하는 데는 무서운 덫이 놓여 있습니다. 성경의 원리는 고난을 통한 영광(No cross, No crown)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의 영광은 결코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완전히 패하자 얼마 동안 떠나갔습니다(4:13). 따라서 사탄은 틈만 있으면 찾아와 유혹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유혹을 이기시자 천사가 수종을 들었습니다.

 

사탄은 물질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말씀을 이용해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세상 권세와 영광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은 사탄의 궤계를 이기는 성령의 검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의 대상이 아니라 믿고 순종하고 경배해야 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영적인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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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제 3강 성령이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운영자 2020-12-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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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식 목사님의 저서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20)

      이사야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9)

        대학선교와 세계선교를 향한 권서행전
        (지식과감성,2019)

          야고보서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7)

            옥중서신에서 만난 복음
            (지식과감성,2016)

              행복과 긍정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성심리
                (시그마 프레스,2015)

                  마가복음에서 만난 예수님
                  (킹덤북스,2014)

                    사도행전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3)

                      로마서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2)

                        창세기에서 만난 복음
                        (생명의말씀사,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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