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마가복음 3:7-19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3:13).

 

사제동행이란 말이 있습니다. 동행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뽑아 날마다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동행하신 그들은 똑똑하고 세련되고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엘리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학벌이 없는 어부 출신들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던 세리 등 세상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했을 때 예수님의 제자요, 목자들이 되었습니다.

인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인사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용어입니다. 그런데 그는 인사만사가 아니라 인사망사가 되어 IMF를 만났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쓴다고 해서 중용인사”, 고 노무현 대통령은 코드가 맞는 사람을 쓴다고 해서 코드인사”, 그리고 전 이명박 대통령은 고대와 소망교회, 그리고 영남인사를 쓴다고 해서 고소영인사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사는 국가에서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기업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인사관리 업무입니다. 인사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보면 누구를 장로와 집사, 그리고 권사로 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사람을 뽑으시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하는 사람들,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뽑으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과 늘 동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원하는 사람들을 부르신 예수님

 

갈릴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대와 예루살렘, 그리고 이방 지역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을 고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지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보시고 그들을 도와줄 목자가 절실히 필요함을 아셨습니다(3:7-12). 이에 예수님은 사도를 양성하고자 방향을 잡으셨습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3:13).

 

예수님이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권

예수님의 제자는 내가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조건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고 재능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는 자기 자신의 의지나 뜻이 조금도 개입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

사람의 속성은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합니다. 자기 계획에 맞추고, 자기 생각에 맞추고, 자기 스타일에 맞추고, 자기 가치관에 맞추고, 자기 인생관과 자기 세계관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사람,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보다 예수님을 자기가 필요로 하는 분으로, 자기가 원하는 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이 필요로 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14:36).

 

그러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낙향해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시몬 베드로에게 찾아가셔서 조반을 먹이신 후에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21:15).

 

예수님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these)은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남편이나 아내가 될 수도 있고, 애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이나 명예, 이상, , 자기 생각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제자들 중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26:33). 그는 주님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13:37). 그런 그는 얼마 못 가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부인한 것이 아니라 저주하며 맹세하면서까지 부인했습니다(14:71). 이는 그의 사랑이 진리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자기 확신과 감정에 기초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예수님보다 자신의 꿈과 이상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처음 뵈었을 때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이 간직한 자신의 꿈만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의 꿈은 지상 메시아 왕국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인간적인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런 내면을 아시고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그 어떤 것도 끼지 않은 진실되고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사랑은 순수해야 하고, 사랑은 진실해야 하고, 사랑은 절대적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차선이 아니라 최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면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열린 마음입니다. 그리고 열린 마음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양을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21:15).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21: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21:17).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시며 베드로에게 부탁하실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양들을 돌보고 먹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나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피로 사신 예수님의 양 떼, 예수님이 목숨보다 더 사랑하신 양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서 전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어린 양을 말씀의 꼴로 먹이고 양육해야 합니다.

미국 댈러스신학교의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을 보면, 그는 편모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여덟 살 때 함께 놀아주는 친구들이 없어서 혼자 놀곤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혼자 놀고 있는 하워드와 한나절을 함께 놀아주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월터였습니다. 월터는 편모슬하에서 자라던 하워드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월터는 유년 시절과 사춘기, 그리고 청년 시절까지 하워드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하워드가 월터의 이력을 알고 보니까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월터는 주님을 사랑했고, 그는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를 했으며, 하워드를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월터는 11명의 목사를 세웠습니다. 특히 하워드를 통해 무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배출되었습니다. 그중에 찰스 스윈돌 목사가 있습니다. 월터를 통해 하워드로, 하워드를 통해 스윈돌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를 하고 제자를 양육해야 합니다.

 

열둘을 세우신 예수님

 

예수님이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자 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3:13). ‘나아왔다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결단을 뜻합니다. 이 결단은 위대한 결단이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의 예수님께 대한 감정은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빛도 이름도 없는 무명의 전도자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비전과 믿음, 그리고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는 역사의 주역으로 키우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믿음과 비전과 사랑을 보았을 때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비전과 믿음, 사랑이 그들의 심장을 뛰게 했습니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비전과 소망과 믿음은 그들을 블랙홀과 같이 예수님께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비전은 자력과 같고, 비행기의 흡입구(intake)와 같이 강력하게 끄는 힘이 있습니다. 비전은 어떤 역경과 어려움도 극복하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믿음과 비전, 사랑을 보았을 때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3:14).

 

그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오자 예수님은 열둘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열둘은 너무 적은 숫자 같습니다. 온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려면 120명이나 1,200명 정도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뜻이 있습니다. 열둘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소수 몇 사람을 키우고자 하시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는 많은 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창조적 소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믿음의 종들을 부르셔서 역사의 위기를 극복하고 역사를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미국 역사를 볼 때, 미국 이민 초기에는 윈슬롭을 통해 미국의 위기를 극복했고 이어서 디모데 드와이트, 휘트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등이 미국을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이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 역사의 공통점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도 문명사를 연구하던 중에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의 문명이 외적, 내적 도전에 응전하며 계속 성장하게 하는 힘은 창조적 소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열둘을 뽑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님과 동행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3:14).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의 전 생애와 전인격을 배워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그들의 병든 내면이 치료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의 인격과 삶을 배워서 예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년 반 동안 자신의 은혜, 섬김, 순종, 사랑, 온유, 믿음, 십자가, 가치관, 비전, 목자의 심정 등 전인교육을 했습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받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17:8).

 

그들은 예수님과 날마다 동행하며 예수님이 멈추시면 멈췄고, 예수님이 가시면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면 기도했고, 예수님이 전도하시면 전도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삶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전인격과 사역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동행했을 때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그들은 주님을 위해 순교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동행은 인격과 인격이 부딪혀 배우는 산 교육입니다. 세상에 사제동행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날마다 동행할 때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복음 증거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3:14).

 

보내사라는 말에는 사도’(apostle)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사도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ἀπστολος),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도로 키워서 세상으로 내보셨습니다.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이요,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일에는 관심이 많으나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상에 제자들을 보내사 그들의 영적인 무지를 깨우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셔서 사죄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전해 생명의 빛, 희망의 빛이 세상에 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훈련시키셔서 가정과 캠퍼스, 그리고 직장, 더 나아가 세계로 내보내십니다.

 

셋째, 영적 능력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3:15).

 

사람을 근본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시대 문제나 물질 문제, 인간 문제가 아닙니다. 아담 이후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악령의 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원수는 사람이나 체제나 제도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교묘히 괴롭힙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고 불신과 의심과 회의를 심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초조하게 합니다. 사탄은 정욕, 욕심,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 우리를 미치게 합니다. 사탄은 각종 질병과 악령에 시달리게 합니다.

이 세상은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급변한다 할지라도 변하지 않는 죄의 세 축이 있는데, 그것은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입니다(요일 2:16).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이 세 축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이런 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영적 권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귀에 눌리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고, 시대의 죄악과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사도 공동체를 만드신 예수님

 

예수님은 열두 명의 사도들을 세우셔서 사도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3:16-19).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헌신과 사랑과 이해가 요구됩니다. 옆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격이 다르고 출신 성분이 다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사도 공동체를 이루어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훈련을 받았을 때 역사를 바꾸어놓는 역사의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사도 공동체의 일원 중에 제일 먼저 베드로가 나옵니다. 베드로는 무식하고 용감했습니다. 그는 나서기를 좋아하고 뒷감당을 하지 못하면서도 큰소리를 잘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순수한 열정과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는 장차 반석이 될 만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은 모래알 같지만 그를 베드로’, ‘반석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나중에 요한은 세상 만민을 향한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기록했고, 야고보는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매국노 세리 출신이요, 시몬은 운동권 출신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계산적인 사람이요,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대오, 야고보는 역사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요, 바돌로매는 눈물을 잘 흘리는 순정파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할 자였습니다.

사도 공동체를 이룬 개개인을 살펴보면 학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문벌이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어부들이었고, 손가락질을 받은 세리도 있었으며, 로마를 전복하려던 열심당원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초가 없고 형식도 없고 내용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인 배경도 없고 학연도 없고 가문도 변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내놓을 만한 명함 한 장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큰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현재는 굴러다니는 광석 같지만 잘 다듬기만 하면 위대한 예술품이 될 것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소망과 비전을 가지고 3년 반 동안 인내와 겸손과 사랑으로 키우셨습니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의 비전과 소원대로 위대한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제자들을 세우셔서 사도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이는 그들과 동행하며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세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과 3년 반 동안 사제동행하시며 그들을 사도로 키우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원대로 위대한 사도들이 되어 복음의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배우면 시대를 움직이는 믿음의 거목들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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