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가복음 3:20-35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5).

 

가족이 함께하는 처소인 가정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가정은 삶의 기쁨을 증폭시킵니다. 가정은 외로움과 아픔과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가정은 삭막한 사막 같은 인생길에서 오아시스 같은 곳이기도 하고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정은 예배당이 없던 1세기 초에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리던 예배처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2:2, 2:42-47. 16:5, 4:15). 그들은 가정에서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떡을 떼었습니다. 그들은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고 상대방을 부를 때 가족의 호칭인 형제자매로 불렀습니다. 가정교회는 30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때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고 흥왕한 시기였습니다.

본문에는 두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는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준엄한 경고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가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예수님의 한 가족이 됩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부르신 후 산에서 내려오셔서 가버나움의 한 집에 계셨습니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슴에 품고 그들의 병든 상처를 싸매주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섬기시느라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먹고 마시고 쉬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합니다. 삶의 철학이 우선 먹고 쉬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먹는 문제보다 사명을 우선시하셨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3:21). ‘미쳤다는 것은 정신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있다는 뜻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비정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결정됩니다. 세상 가치로 볼 때는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미친 짓으로 보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세상의 지혜나 가치관으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광인과 연인과 시인은 다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정말 사랑하게 되면 미친 사람과 같이 되고 시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식사도 안 하시며 열심히 일하시면 수입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장남으로서 가족도 돌보시지 않았습니다. 데리고 다니는 제자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 또한 혁신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앞서 가면 튄다며 견제합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모두 미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미쳐 있고, 권력에 미쳐 있고, 정욕에 미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에 미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과 게임에 미쳐 있습니다. 마약에 미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 준비를 위해 캠퍼스 선교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북방 선교에 미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미치기는 미쳤는데 옳게 미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쇠사슬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 로마 총독인 베스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베스도는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26:24)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26:25).

 

바울은 더 나아가 아그립바 왕에게 내가 결박된 것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했습니다(26:29).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에게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 예수님께 더 미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더러 미쳤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영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알면서도 예수님의 역사를 곡해하고 왜곡해 흑색선전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붉게 색칠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한다.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어쫓는다라고 하며 비난했습니다(12:24). ‘바알세불은 사탄의 별명이요, 귀신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루신 역사는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의 원천이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비난하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3:23-27).

 

이 비유에서 강한 자는 사탄을 말하고 세간은 사탄에게 고통받는 인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강한 자를 결박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볼 때 인간은 연약하고 사탄은 강하지만 예수님이 사탄보다 더 강하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연약한 인간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 마음대로 지배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즉시, 죄의 세력이 물러갑니다. 십자가는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의 근원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악의에 차서 비난하는 서기관들에게 무서운 경고를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3:28-29).

 

죄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수없이 죄를 짓습니다. 인간은 죄 중에 태어나서 죄 중에 살다가 죄로 인해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식하고 진실되게 죄를 고백하면 예수님은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성령의 역사를 고의적으로 부정하고, 고의로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진리를 왜곡하는 자입니다. 성경은 이런 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6:4-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deliberately)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10:26-27).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무늬만 신자이지 실제로 믿지 않는 자입니다. 고의로 성령을 모독할 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족관

 

예수님이 성령을 모독하는 자에 대해 무서운 경고를 하실 때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데려가고자 함이었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께 가족들이 밖에서 찾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당연히 모든 것을 제쳐두고 가족들을 맞이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가족관은 혈연 중심이었습니다. 혈연 중심은 피의 원리가 지배합니다. 피는 이데올로기보다 진합니다. 피는 돈보다 더 강합니다. 피가 이끄는 힘은 추석이나 구정 때 그 지옥 같은 교통 불편을 마다하고 귀향하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족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3-35).

 

어머니가 찾아오셨는데 그런 말을 하신 것은 혈연 중심의 사회에서 볼 때 불효 중의 불효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가정제도를 부인하시기 위해, 또 불효자로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친족들이 온 것은 미쳤다고 하는 예수님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친족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지금 육신의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새 가족에 대해, 그리고 가정으로서의 교회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가정으로서의 교회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신앙 중심

인간관계는 가정에서 출발해서 밖으로 확대해 나갑니다. 가족에게 잘하지 못하면서 밖에 나가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편 가족이기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족이 소중하고 부모님의 사랑이 아무리 클지라도 거기에 이기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고 남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지상 최고의 관계인 가족조차 사실 완벽한 공동체는 못 됩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 나라 가치에 앞설 수 없습니다.

또 자녀가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 피로 맺어진 가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도 가족이고, 소위 웬수도 가족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는 밖에 있고 웬수는 가정 안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지상의 가족 공동체는 너무나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물론 지상의 교회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가정에서 보는 악이 교회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교회는 완벽합니다. 따라서 가정으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신앙 중심이어야 합니다.

 

둘째, 교회는 예수님 중심

예수님은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원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은 원 밖에 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은 원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원이 새 가족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목사를 포함해 모두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이지 않으면 결국 흩어집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모였던 서구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교주 중심으로 모인 이단 무리는 교주가 없어지면 사라집니다. 당을 지어 모이는 무리 또한 다 흩어집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가정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가정으로서의 교회만이 영원합니다.

 

셋째, 교회는 말씀 중심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예수님 주위로 모여들었습니다. 정당이나 친교 단체를 포함한 공동체는 대개 이익 중심으로 모여들고 뭉치고 흩어집니다. 내게 이익이 되면 모이고, 이익이 안 되면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는 곳입니다. 만일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말씀이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나온다면 그것은 성도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를 보면 그들은 사도들로부터 배우는 데 힘썼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2:42).

 

힘쓰다’(devoted)는 헌신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도들로부터 배우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배우는 데 시간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배우는 데 물질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배우는 데 자신의 마음을 드렸습니다. 대개 성령 충만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직통 계시를 받는다면서 자신의 주관적 체험에 만족하여 성경을 읽거나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그들은 더욱더 열심히 사도들로부터 배우고자 모였습니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이 가정으로서의 교회입니다.

 

넷째, 교회는 신분과 계층을 초월

예수님의 가족관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기 때문에 모든 계층과 종족과 나라를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신분고하, 계층, 종족, 민족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3:28-29). 교회에는 지역감정과 이념의 분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정으로서의 교회는 지역감정과 이념의 벽을 허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가족은 영원합니다.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인해 헤어집니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인해 남보다 더 좋지 않은 관계로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도 함께 살 영원한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가족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새 가족으로 삼으시고 귀히 여기시고 보호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육신의 부모와 형제들과의 관계를 끊으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어머님의 장래를 생각하셨습니다(19:26-27). 이로 인해 예수님 생전에는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동생 야고보가 후에 변화되어 초대교회 예루살렘 총회를 이끌었습니다(7:5, 15:13). 우리는 믿지 않는 부모님과 가족이 예수님을 믿도록 전도해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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