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마가복음 6:30-44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6:37).

 

불어에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합니다. 이 말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봉사와 기부, 헌신의 전통이 강했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귀족들의 전쟁 참여는 절대적이었습니다.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집정관의 전사자 수가 13명에 이르렀습니다. 귀족들의 책무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취한다면, 다른 사람은 어찌 되든 나만 잘살면 되고 나만 좋은 직장에 취업해 여우 같은 아내를 얻어 토끼 같은 자식 낳고 살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한다면 조국의 앞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본문은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이 시대에 대한 책임감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 그리고 목자의 심정을 갖기를 기도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며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세상 속에 파송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 제자들은 돌아와서 예수님께 선교보고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선교보고를 들으신 후에 제자들더러 잠깐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쉼과 휴식을 잠시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귀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6:34).

 

예수님은 휴식보다 불쌍한 무리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굶주려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갈 길을 못 찾아 방황합니다. 목자 없는 양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다를 뜻하는 ‘compassion’함께’(com)고난’(passion)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말해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고난에 함께 참여해 고통을 함께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은 상대방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보고 함께 그 자리에 내려가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은 상대방을 억누르지 않고 일어서도록 돕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은 상대방에게 받기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은 상처를 덮고 싸매고 보듬어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김은 자기의 가진 것, 권리, , 능력과 소유를 사용해 형제와 이웃을 살리고, 자기 스스로도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한편 불쌍히 여김의 반대는 비난입니다. 비난은 상처를 들추고 파헤치며 고통을 가중시킵니다. 비난은 자기와 다른 형제들을 괴롭히고 파괴시켜 하나님 나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6:34)

 

여러 가지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합니다(9:11).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해 현실에만 얽매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해 육신과 정욕과 감정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해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지해 인간의 근원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의 영적 무지를 깨우쳐주시고자 여러 가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없어 비전이 없는 그들에게 비전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돼지처럼 한 번도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에 코를 박고 사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최고로 잘산다고 말합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영조가 왕후를 간택할 때 장차 정순왕후가 될 여식에게 물었습니다. “고개 중에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들다고 생각하느냐?” 그녀는 대관령, 추풍령, 한계령이라고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보릿고개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중에는 아마 보릿고개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보릿고개란 겨울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지고,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않은 5-6월 빈궁한 시기를 일컫습니다. 이 시기는 식사 한 끼를 채우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진 지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릿고개가 어디 있습니까? 쌀이 남아돌아서 문제요, 과식이 문제입니다. 과식은 살찌게 하고, 살찐 몸은 각종 질병, 즉히 고혈압의 원인이 됩니다. 지금 고혈압 환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뿐입니까? 사람들은 요즘 체중을 줄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못 먹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잘 먹어 배가 나와서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의 문제는 바로 육신의 배는 부르지만 영혼이 피폐하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는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어 기갈이 아니라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8:11).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지금 현대인들은 외적으로는 부유할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허무로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절망의 암세포가 온 몸에 퍼져 희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극도의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썩을 양식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에게 꿈을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썩을 양식을 위해 살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살아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너희가 먹이라고 하신 예수님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6:35).

 

제자들은 잠깐의 쉼을 포기하고 인내심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저물어갔습니다. 제자들의 배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해가 서산으로 지는 것도 모르시는 듯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나저제나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6:36).

 

제자들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이곳이 빈 들이고, 때는 저물었고, 사람들은 남자만 오천 명이고, 자신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동전 한 닢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지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6:37).

 

제자들은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라라는 말은 헬라어로 과거명령형으로, 계속적인 뜻이 있습니다. 계속 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형편을 알지 못해서 하신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제자들의 형편과 주위의 여건을 잘 아셨습니다. 이곳은 빈 들이요, 때가 저물어가는 것도 잘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리더는 그러므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은 빈 들이다. 때는 저물어간다.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없다. 보내자. 이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리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이자. 한번 해보자고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은 현실을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처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환경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은 도저히 먹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과 사건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시대의 상황을 넘어서 그 시대를 섬기는 리더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리더의 덕목이 무엇입니까?

 

첫째, 책임감

책임감은 리더의 덕목 중에 덕목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무리들에 대해 책임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리들의 문제 제기로 끝났습니다. 리더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리더는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하며 나 몰라라 하면 안 됩니다. 리더는 자기 형편을 넘어서서 위기를 극복하고, 그 문제를 책임감 있게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리더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책임지려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임감에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희생을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는 이튼칼리지가 있습니다. 그 학교 출신들 중에 2,000명이 제1, 2차 세계대전 때 전사했습니다. 6·25전쟁 때 참전용사 중 미국의 장성 아들들이 142명 포함되었는데, 그중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습니다. 서방뿐만 아니라 중공의 모택동 주석의 아들도 6·25전쟁에 의용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습니다.

우리나라와 얼마나 대조가 됩니까? 한때 청와대 비서실 직원 중에 44%, 장관급 28명 중에 8, 33.3%가 군 미필이었습니다. 본인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군대에 안 보내고 위장전입을 통해 부동산 투기를 커피 마시듯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현실로 인해 적지 않은 국민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대와 민족, 그리고 교회의 리더들입니다. 그렇다면 시대와 민족, 그리고 교회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섬겨야 합니다. 리더는 명칭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목자의 심정

리더는 책임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리더에게는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목자의 심정은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한마디로 눈물이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때로 왜 저들을 도와야 하고, 왜 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냐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말을 잘 듣지 않는 백성들로 인해 속이 상해 하나님께 제가 이들을 낳았습니까? 제가 왜 이들을 도와야 됩니까?” 하고 울부짖으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북방 선교와 열방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러시아는 스탈린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추운 겨울에 열차에 태워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열차로 호송하며 영하 몇십 도 되는 아무 곳에다 던져버렸습니다. 왜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이는 우리가 목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일본과 미국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를 보내야 합니까? 미국과 일본은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필리핀과 조선을 나눠 가지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35년간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왜 이런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이는 우리가 목자의 나라요, 세계에 대한 제사장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목자의 심정은 빚진 자의 심정에서 옵니다. 우리는 미국 선교사들에게 사랑과 은혜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은혜와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예수님께 구원의 빚, 은혜의 빚,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빚진 자는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 그 이전의 문제입니다. 사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빚진 자의 심정에서 옵니다.

 

셋째, 믿음

제자들이 무리들을 먹이고자 하는 책임감과 목자의 심정이 있어도 현실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어떻게 그 많은 무리들을 먹일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예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안경을 쓰고 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긍정과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역사 속에 발자취를 남긴 거성들을 보면 모두가 매사를 긍정적인 시각, 믿음의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창조적인 역사를 남겼습니다.

미국의 어느 구두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구두를 팔기 위해 시장조사 팀을 보냈습니다. 한 팀은 시장성 전무라고 보고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구두를 신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구두가 팔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팀의 보고는 시장성 무한대라고 보고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도 구두를 신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두를 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관주의자, 불신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 믿음의 사람, 가능성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믿음의 시각으로 봅니다. 긍정적인 사고, 믿음의 사고를 가능성의 사고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비전을 가지고 대상을 봅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비전의 사람’(visionary)라고 합니다.

쥐 두 마리가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한 마리는 내가 물속에서도 헤엄치기가 어려운데 우유 통에 빠졌으니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하니 힘이 빠지고 살 의욕을 잃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마리는 내가 우유 통 속에 빠졌는데 우유는 얼마든지 있으니 죽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앞다리, 뒷다리를 놀려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자 우유가 버터가 되었습니다. 결국 그 쥐는 살아남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처한 상황을 긍정의 관점, 믿음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 부정의 관점, 불신의 관점에서 볼 것인지, 적극적인 사고로 볼 것인지 소극적인 사고로 볼 것인지에 따라서 결과와 미래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매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사전에 불가능이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4:13).

 

감사기도 하시는 예수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6:37).

 

제자들은 5,000명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계산했습니다. 200데나리온은 200일의 장정 품삯에 해당되는 거금이었습니다. 그들은 없는 200데나리온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없는 200데나리온만 계산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6:38).

 

예수님은 앉아서 부정적인 생각만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민완 형사들은 전화통만 붙들고 소리 지르지 않고 발로 뛴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목자는 앉아서 계산만 하지 않습니다. 목자는 믿음의 행동을 합니다.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제자들은 가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들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예수님께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을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손에 들고 감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6:41).

 

예수님은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오병이어)를 원하십니다. 시간의 52, 물질의 52, 기도의 52, 일대일 성경 공부의 52, 눈물의 52, 그리고 각기 재능의 52어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믿음으로 드린 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만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음식을 열두 바구니에 차도록 거두게 하셨습니다.

 

리더는 긍휼이 있어야 합니다.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상한 목자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52어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대해 긍휼함과 책임감, 그리고 믿음을 가진 리더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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