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마가복음 8:1-26

 

아직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8:17).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역사란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오늘의 상황을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까마귀 고기를 먹어서 그런지 과거의 역사를 쉽게 잊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빈 들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셨습니다. 제자들은 현장에서 그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제자들은 광야라는 상황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귀머거리, 영적인 맹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영적인 귀와 눈을 여시어 세상을 밝히 듣게 하시고 신령한 세계를 보게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그들의 눈과 귀를 여시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계시해 주셨습니다(8:27-30). 본문을 통해 영적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내면성과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불쌍히 여기노라

 

그즈음에 또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마가복음 6장에 나온 무리와는 다른 무리입니다. 6장의 배경은 이스라엘이고, 본문의 배경은 이방인 지역입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할 것 없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의 구주가 아니라 세상 만민을 위한 구주요, 목자이십니다. 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사람들의 근본 문제는 참 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목자의 사랑이 갈급해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님을 사흘이나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이들을 보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8:2-3).

 

이곳은 지리적으로 데가볼리 근처의 갈릴리 바다 주변입니다. 그들은 음식이 없어 허기져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먼 곳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허기진 배를 안고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배고픈 사정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인간의 육의 문제는 무시하시고 영혼의 문제에만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현실 문제, 곧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기는 결핍의 문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십니다. 배고픈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육신의 질병도 고쳐주시고, 귀신 들려 울부짖는 자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물질문제, 건강문제, 성격문제, 학점문제, 결혼문제도 다 아시고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각종 문제를 잘 아시고 동참하셔서 함께 슬퍼하시고 고통을 함께하시며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잔머리를 굴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실제적인 문제를 주님께 들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아뢰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는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8:4).

 

그들은 5,000명을 먹일 때도 부정적이었는데 이번에도 또 부정적이었습니다. 다만 이 사람들을 배부르게먹이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좀 진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여전히 광야라는 현실 앞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사람을 운명적으로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불가능한 현실에 도전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어떤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를 타개해 나가고자 하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현실만 바라보았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믿음이란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답을 찾다가 문제에 빠집니다. 답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믿음은 정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기대하는 것입니다. 윌리엄 캐리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것을 시도하라. 하나님에게서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답을 찾다가 광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8:5).

 

예수님은 없는 것을 찾느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현재 있는 것을 찾아보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불가능한 가운데서 어떤 가능성을 찾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찾았을 때 떡 일곱 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보잘것없는 떡 일곱 개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보리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받으시고 축사하사 4,000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차고 넘쳤습니다.

우리 앞에는 이웃을 향한 지역복음화, 미래를 향한 대학복음화, 열방을 향한 세계선교가 놓여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어느 하나 쉽지 않습니다. 대학복음화는 갈수록 어렵습니다. 극도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지역복음화 또한 쉽지 않습니다. 세계선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광야들을 생각하면 선교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답을 찾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면 답이 보입니다.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면 답이 보입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막막하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먹이고자 하시는 목자의 심정에 동참하면 답이 보입니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면 현재의 문제 앞에 절망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 상황을 믿음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길이 보입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떡 몇 개가 보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이것을 들고 나아가면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달마누다 지방에 이르자 바리새인들이 나와 예수님을 힐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메시아라면 표적을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신 목적은 이를 통해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20:31). 그러나 그들은 불신과 완악한 마음 때문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원하는 지상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메시아로 영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메시아의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인해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표적 구하기에 익숙해 있는 그들을 인해 심히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을 슬퍼하시고 외식을 슬퍼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의 교만을 슬퍼하시고 마음의 완악함을 인해 슬퍼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시대를 깊이 염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만과 불신으로 가득 찬 그들에게 표적을 베풀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일곱 광주리를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떡 한 개밖에 없어서 당장 저녁 식사가 염려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8:15).

 

여기서 누룩은 좋지 못한 악영향을 말합니다.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침투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극히 작은 악영향이라 할지라도 순수한 성도들의 모임에 침투하면 모임 전체를 오염시켜버립니다. 특히 악영향은 침투력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신천지라는 이단이 무섭게 파고듭니다. 그리고 각종 이단들이 그럴듯하게 교회와 대학을 침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망이나 불평, 비방 등도 악영향입니다. 반두라의 보보인형 실험을 보면 사랑과 관심인 선한 것보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좋지 못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안 좋은 소문은 좋은 소문보다 훨씬 빨리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긍정적이고 좋은 소식을 듣고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 종류의 악영향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바리새인들이요, 또 하나는 헤롯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이고 헤롯은 정치지도자입니다. 지도자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 시대에 영향력을 끼칩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지도자로서 백성들의 정신세계와 영적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백성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로부터 악영향을 받지 말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의 악영향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첫째, 바리새인들의 외식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열심히 손도 씻고 목욕도 하며 깨끗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온갖 탐욕으로 가득해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 살지 않고 사람 앞에 사는 인본주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쳤지만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신앙은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의 특징은 회개, 순종, 헌신, 사명, 절대성 등의 단어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은혜, 축복, 자유 등의 단어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신자의 기본 생활은 무시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이중생활을 합니다.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우리가 죽은 신앙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둘째, 헤롯의 음란과 불의

헤롯은 동생의 아내를 취했습니다. 헤롯은 이를 책망하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음란하고 불의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음란과 불의를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음란 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물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물질로 평가합니다. 음란과 물욕은 항상 공생 공존합니다. 음욕이 있는 곳에 물욕이 있고, 물욕이 있는 곳에 음란이 있습니다. 이런 누룩들은 우리 신앙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세속화되게 합니다.

특히 교회에 육신주의의 누룩이 침투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한창 성장해야 할 청년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믿음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누룩 없는 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적극적으로 이 세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떡 생각만 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누룩 말씀을 하시자 즉시 떡과 연결시켰습니다(8:16). 이런 그들을 보신 예수님은 심히 답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깨달음이 없는 그들을 심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8:17-18).

 

예수님은 마음으로부터 눈, , 머리에 이르기까지 연발탄으로 그들을 사정없이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떡 다섯 개를 5,000명에게 떼어줄 때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8:19).

 

그러자 그들은 힘없이 열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또 일곱 개로 4,000명에게 떼어줄 때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일곱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렇게까지 심하게 책망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이렇게 책망하신 것은 영적 지도자로서 큰 희망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바리새인들로부터 악영향을 받아 불신의 죄악에 빠져 현실 문제로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얼마 전에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도 염려하고 근심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역사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사관이 없으면 과거의 사건이 현재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관을 가질 때 과거에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현재에도 도우시고, 미래에도 반드시 도와주시고,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때 염려 대신 주님을 의뢰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4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 교육을 시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12지파에서 12명을 뽑아 요단 한가운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서 있는 곳에서 12개의 돌을 취해 기념비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간사합니다. 이를 아시는 하나님은 요단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역사의식을 심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토록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셨습니다. 역사의식이 있는 민족이나 개인은 타락하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와 교회에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늘 기억해 오늘의 현실 문제를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이 보이느냐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맹인을 고쳐주셨습니다(8:22-26).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단번에 고쳐주지 않으시고 단계적으로 고쳐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정도로 희미하게 고쳐주시고, 그 후에 만물을 밝히 보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제자들을 염두에 두시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심한 책망을 듣고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깊은 불의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무식한 갈릴리 촌놈들이라 할 수 없다는 깊은 운명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들을 잘못 택하셔서 너무 고생하시는 것 같아 제자 생활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맹인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현재 영적 상태는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듯 희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알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영적 세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언젠가 영적 눈이 뜨여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소망을 가지고 영적으로 둔한 이들을 인내하시며 키우셨습니다.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인격을 형성하고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악영향을 받아 복음신앙을 잃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말씀을 굳게 붙들고 지켜 내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 문제를 믿음으로 극복해 불신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아울러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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