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마가복음 9:1-13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9:2).

 

인간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안주하는 마음은 현실의 편안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만하면 됐지’,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일을 해’, ‘이대로 살다가 가는 거지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접고 사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은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안주와 변화, 이들 단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생각해야 할 단어입니다.

스펜서 존슨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안주와 변화에 대해 재미있게 썼습니다. 이 책에는 스니퍼와 스커리라는 두 마리의 생쥐와 햄과 허라는 두 꼬마 인간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큰 치즈 창고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마음껏 치즈를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스니프와 스커리는 언젠가 치즈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른 창고를 찾아나섰습니다. 그러나 두 꼬마 인간은 현재의 치즈 맛에 빠져 자기들이 좋아하는 치즈가 이곳에 항상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이 창고에 도착했을 때 더 이상 치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생쥐들은 다른 치즈 창고를 찾아두었기에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 꼬마 인간들은 눈앞의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그들은 소리를 질러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도태되기 마련입니다. 본문을 통해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이 우리 내면에 조각되고,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9:1).

 

이 말씀은 가까이는 제자들이 변화 산에서 변형되실 예수님을 볼 사건을 일컫는 말씀이요, 멀리는 오순절 성령 강림과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9:2-3).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근심과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 중 셋만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여기서 높은 산이란 헬몬 산을 말합니다. 이 산은 일명 설산이라 할 만큼 항상 눈으로 덮여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세 제자들에게 변형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변형되었다’(transfigure)는 것은 헬라어로 메타모르포데’(μεταμορφωφη), 외형의 변화가 아니라 본질의 변화를 뜻합니다. 이는 빌립보서 26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본체”(essential form)와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되셨습니다.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변화 산에서 변형되기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2-3).

 

그러나 예수님의 본래 모습은 이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감히 그 앞에 설 수 없는 영광스럽고 찬란하신 분이십니다. ‘흰 옷은 영광과 권세, 거룩함과 순결, 승리의 상징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영광스러우시고 거룩하시며 순결하신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1:13-16).

 

예수님은 가슴에 금 띠를 띤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머리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이 순결하시고 거룩하십니다. 그분의 눈은 불꽃같이 영적인 통찰력이 있어 그 앞에서는 죄악을 숨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이 심판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은 청아하고 우렁찹니다. 그분의 입에는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갤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분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과 같이 힘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찬란히 빛납니다. 이는 전 세계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전 세계의 교회를 통치하십니다. 요한은 이러한 예수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영화로우시고 영광스러우시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높은 보좌에 앉으셔서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장차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만왕의 왕이십니다(8:38). 예수님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5:2).

예수님은 영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관이요, 구원 역사 방법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엄청난 구원의 도리를 이해할 수 없었고,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가 부담스러워서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을 각인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변형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9:4).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의 대화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있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9:31). 예수님은 엘리야와 모세와 대화하심으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통 사람들의 죽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요, 패배요, 실패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결사반대했습니다(8:32). 그런 베드로가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본 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9:5).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옹기종기 모여 살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서 하는 말 같지만 사실 그의 속마음은 자신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을 지어 자신은 예수님의 비서실장, 야고보는 모세의 비서실장, 요한은 엘리야의 비서실장이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저자는 이 상황에 대해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9:6)라고 설명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내뱉은 것입니다. 이는 그의 잠재의식 속에 숨어 있던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 밑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성격 문제로 동역하기 어려운 다른 제자들과 귀신 들려 날뛰는 무리들과 말썽 피우는 양떼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고난이 남아 있을까? 얼마나 더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힘든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변화 산에서 십자가 없는 영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헬몬 산 위에 아담한 원룸을 짓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모시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베드로의 이런 신앙을 일명 초막신앙이라고 합니다. 초막신앙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도 잠재해 있습니다. 초막신앙은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추구합니다. 현실에 안주합니다. 도전과 개척정신이 없습니다.

만약 베드로의 요청대로 예수님이 변화 산 위에 초막을 짓고 사시게 된다면 산 아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3:16)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죄와 질병과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변화 산 위가 아무리 좋아도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합니다. 현실의 축복에 안주해 세상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변형되신 예수님 앞에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9:7).

 

하나님은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제자들의 요구를 단호히 물리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를 통한 영광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영광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계급장과 같습니다. 고난의 계급장 없이는 천국에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언제 계급장을 받습니까? 계급장은 훈련장에서 훈련을 다 마친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저는 4개월간 피나는 해병대 장교 훈련을 받았습니다. 장교로 임관하기 전 임시 계급장은 육각형 모양의 헝겊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계급장을 달고 마산 한일합성에서 나오는 시궁창을 포복해 기기도 하고, 일주일간 잠을 재우지 않는 지옥훈련도 받았습니다. 4월의 진해 날씨는 보통 추운 것이 아닙니다. 4월의 새벽 1시에 속옷만 입고 서 있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턱이 떨리고 어금니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7월 한여름에 동절기 내복, 판초, 우비 등을 입고 군에서 지급된 모든 장비를 배낭에 넣어 메고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구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동기생은 쓰러져 의무실로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7월 여름, 비 오는 밤에 속옷만 입고 M1소총을 한 손에 들고 알 철모 위에 원산폭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모기가 얼마나 물었는지 모릅니다. 만일 모기를 쫓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몽둥이가 날아왔습니다.

이런 훈련 중에도 구대장은 다음과 같은 구호를 수없이 외치도록 했습니다. “피와 땀으로 육각형을 채워야 다이아몬드 소위 계급장이 만들어진다. 다이아몬드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피와 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4개월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해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임관식을 하는데, 그날 제 어깨에 육각형의 계급장이 떼어지고 드디어 다이아몬드 계급장이 달렸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훈련을 마친 자에게만 승리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예수님의 영광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고난이 있기에 영광도 있습니다. 영광이 있기에 고난도 있습니다. 고난과 영광은 함수 관계로,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영광과 고난을 따로 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뒤에는 반드시 영광이 따르고, 영광이 있으면 반드시 고난의 흔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바울은 십자가의 고난을 사랑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셨음을 확신했습니다. 바울은 힘들 때 주경기장에서 환호하는 믿음의 선배들 앞에서 예수님이 주실 영광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어느 것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의의 면류관이 자신뿐만이 아니라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도 준비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만 주어지고 영광이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고난이 있으면 반드시 영광이 있습니다. 따라서 영광을 얻으려면 반드시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적으면 하늘의 영광도 적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고난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이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값지게 하고, 위대하게 하고, 열매 맺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고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합니다.

신앙이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신앙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욕심과 사심을 버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때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어떤 말씀을 듣기를 좋아합니까?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소리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쉽고 편하게 사는 법에 관심이 많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은 손쉽게 재테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 투기, 아파트 투기, 주식 투기, 다단계를 통해 일확천금하고자 합니다. 은사 운동을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이에 해당됩니다. 그들은 고난 없이 어떤 기적을 체험하고자 합니다. 사이비나 이단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선교사가 이제 힘들게 일대일 말씀 공부를 하고 힘들게 일대일로 전도하기보다는 쉽게 캠퍼스 사역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은사주의에 빠져 있는 한 사람의 소개로 이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안수기도를 해주며 매일 세 번을 한 시간씩 100일 동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생 동안 우울증으로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기도 세 시간을 못 채울 경우 다시 시작해서 100일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를 채우지 못해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정신이 이상해졌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후 그는 쉽게 사역을 하고자 하는 죄를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 후 정신이 돌아와 이전보다 더 열심히 십자가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소리를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속과 쾌락의 소리를 들으면 세속과 쾌락의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절망의 소리를 들으면 소망을 잃어버리고 심하면 자살을 하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의 상대적인 소리를 들으면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면 생명과 영생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119:105). 또한 말씀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영적인 힘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문득 둘러보니 예수님과 자기들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세도, 엘리야도, 자기들의 아름다운 꿈과 이상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믿고 소망하고 따라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의 길, 완전한 길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의 생명을 보호해 주시며, 우리의 슬픈 눈물을 닦아주시며, 아픔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와 메시아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참된 메시아관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영광을 얻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구약에 예언된 엘리야는 세례 요한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릅니까?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모습입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처절하게 돌아가신 분이십니까? 우리는 십자가에 처절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 후에 임할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마음 깊이 새겨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승리의 예수님, 빛나고 높은 보좌에 오르신 예수님, 장차 오실 영광의 예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예수님을 마음에 새길 때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가 됩니다. 그리고 고난의 십자가를 사랑하게 됩니다.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참 아름다워라 그 향기 내 맘에 사무쳐 내 기쁨 되도다 시온 성보다 더 찬란한 저 천성 떠나서 이 세상 오신 예수님 참 내 구세주(새찬송가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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