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마가복음 11:27-33, 12:1-12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12:6).

 

프랑스 파리에 가면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찾는 두 곳이 있습니다. 그것은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파리 개선문과 세느 강변에 있는 에펠탑입니다. 에펠탑은 1889331일에 열린 만국박람회의를 기념하기 위한 철탑 조형물입니다. 에펠탑이 세워지자 프랑스의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어떻게 파리에 철탑 조형물을 세울 수 있느냐며 에펠탑 철거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에펠탑이 프랑스에서 제1위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노출효과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에펠탑 효과’(Eiffel tower effect), 또는 심리학으로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라고 합니다. 이를 쉬운 말로 하면 자주 보면 그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자주 보면 호감이 갑니다. 자꾸 보면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증가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꾸 보면 말씀이 은혜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주님께 예배를 드리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관계성이란 보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매일 바라보고, 성경을 매일 읽고, 무시로 기도하고, 기회가 되는 대로 전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집니다.

본문에는 인간을 위해 아무 부족함이 없는 포도원을 만드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나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인간의 죄악상과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포도원을 주신 하나님

 

마가복음 1127-33절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동기입니다.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이 종교지도자들의 사리사욕으로 말미암아 물질과 세속으로 변질된 것을 보시고 무섭게 분노하시고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셨습니다.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은 심하게 반발하며 예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11:28).

 

이 질문은 네가 도대체 누구관대 무슨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하는가? 또 그 권위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모든 권위는 공회에 있으며 공회가 인정하지 않는 권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역으로 질문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11:30).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자를 거부한 불신의 죄에 빠지고, 동시에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님의 영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또 만약 요한의 세례가 사람으로부터라고 하면 백성들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겼으므로 백성들이 두려워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거짓되고 정치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해서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암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임을 계시하시고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12:1).

 

어떤 한 사람이 크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5:1-2). 도적이 틈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견고하게 쳤습니다. 또 즙을 짜는 구유를 파서 포도주나 포도즙 등을 만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적의 침입을 사전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망대를 높이 세웠습니다. 주인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을 갖췄습니다. 그런 후에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당시 농부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날품팔이들이었습니다. 일할 곳이 없어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주인의 특별한 은혜로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의 소유권만 없을 뿐이지 실상 주인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으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껏 자율적으로 포도원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떠나자 농부들은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과거 날품팔이 시절에는 주인의 눈치를 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일당만 받아 가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경영자의 위치에서 마음을 드려 일했습니다. 그들이 3년 정도 열심히 일하자 탐스러운 포도 열매가 맺혔습니다. 농부들이 그동안 돈 주고 사먹던 포도와는 그 맛이 달랐습니다. 포도나무는 보통 심은 지 3년 후에 첫 열매가 맺힙니다. 그러나 세를 바칠 만큼 충분하게 열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심은 지 5년 후부터 세를 받았습니다(19:23-25).

주인이 때가 되자 세를 받으려고 종을 농부들에게 보냈습니다. 보통 주인들은 소작농과 5 5 내지는 6 4, 73의 비율로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농부들에게 최소한의 세를 바치도록 했습니다. 아마 10분의 1만 바치도록 했을 것입니다. 10분의 1은 주인과 농부들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최소한의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것만 드리면 농부들은 얼마든지 포도원을 경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농부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좀 더 넒은 의미로 보면, 포도원은 세상, 농부는 인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위해 아무 부족함이 없는 에덴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하시고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심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2:16-17). 인간은 복된 환경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영적 질서를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이로 인해 에덴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택하사 만민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양자로 삼으시고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율법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온 세계가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섬기고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예배제도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모세, 다윗 등 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주셨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온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9:4-5).

무엇보다도 나 자신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포도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을 내주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양 좋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가정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를 주셨고 귀여운 자녀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장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식의 보고, 인재의 산실인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는 축복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열방을 향한 선교의 사명도 주셨습니다. 이 은혜와 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때가 되자 주인은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농부들에게 종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공항까지 나가서 영접하고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주인의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종의 보고를 받은 주인은 당장에 달려가서 농부들을 요절을 내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의 행실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순간적으로 실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종이 너무 거만하게 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좀 더 훈련되고 성숙한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더욱 악해졌습니다. 그들은 종을 능욕했습니다. 종은 머리에 붕대를 감고 다리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당장 달려가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농부들에게 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경우 농부들이 다시 과거처럼 날품팔이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 해도 그들의 마음이 이 농부들처럼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악한 농부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또 다른 종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이제 그 종을 아예 죽여버렸습니다. 주인은 그래도 끝까지 인내하며 계속해서 종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주인의 마음을 모르고 계속해서 때리고, 혹은 죽였습니다.

주인은 이제 농부들에게 세를 받는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더 이상 보낼 만한 종들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인은 농부들에 대한 사랑을 거둬들이고 군대를 보내 그들을 진멸하고 다른 사람에게 포도원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12:6).

 

주인이 마지막으로 보내기로 결심한 아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난폭해진 농부들에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농부들과 바른 관계성을 회복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보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이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내면서 농부들이 자기 아들만큼은 존대하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습니다. 주인은 아들만 존대하면 지금까지 행한 모든 죄를 용서하고, 이전보다 더 깊은 사랑과 신뢰 속에서 포도원을 맡기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 포도원 주인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수많은 종들을 보내시면서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죄악되었는가를 확인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은 영접하고 존대할 줄 아셨습니다.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라는 말씀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이 조금도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의 수순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믿어주고 끝까지 기대를 걸며 소망을 가져주셨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3: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요한복음 21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망간 제자들을 찾아가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21:12)고 초청하셨습니다. 은혜를 배반한 사람은 원수보다 밉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13:8).

 

예수님의 사랑은 끝없는 사랑(endless love), 변함없는 사랑(unchangeable love),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 거룩한 사랑(holy love)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영접할 때 태산을 옮기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의 내면에 소망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12:7-8).

 

농부들은 주인의 아들을 상속자로 알고 고의적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밖에 내던졌습니다. 상속자만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 은혜를 잊어버림

은혜를 잊어버린 대표적인 사람은 사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혜를 잊고 교만해졌습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아 악신이 들려 고통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삼상 31:4). 반면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는 본래 시골에서 양을 치던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이스라엘의 왕이요, 목자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바울도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격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감사의 단을 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둘째, 욕심에 끌려 미혹됨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4-15).

 

사람이 미혹을 받는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미혹이란 낚시꾼이 고기를 잡기 위해 던지는 떡밥을 말합니다. 미끼는 아름다울수록 좋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것을 던져서 꾑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나타납니다(고후 11:14). 사탄이 에덴에서 여자를 유혹할 때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사탄은 여자로 하여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느끼도록 미혹해 유혹의 덫에 넘어가도록 했습니다(3:6). 한마디로 침이 꼴깍 삼켜지도록 유혹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땅을 선택할 때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습니다(13:10-11). 그런데 그 도시는 음란과 광란의 도시였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한 여인의 목욕하는 심히 아름다운 것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삼하 11:2).

이처럼 사탄은 죄의 결과를 보여주지 않고 쾌락만을 보여줍니다. 사탄은 십자가가 없는 달콤한 것만을 보여줍니다. 달콤한 유혹에는 반드시 사탄의 덫이 숨겨져 있습니다. 죄는 우리에게 거부감이나 불쾌감을 주지 않습니다. 죄에는 낙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죄악의 낙”(11:25)이라고 했습니다. 죄에는 모험, 전율, 박진감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청년의 때에는 성적 유혹으로, 중년의 때에는 혈기로, 그리고 노년 때에는 노욕을 가지고 미혹해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가 가져다주는 궁극적인 결과가 사망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것을 내 것인 양 움켜쥐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고로 얻은 것 또한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주신 모든 것들, 시간과 물질과 은사 등 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탐욕의 결과가 어떠합니까?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12:9).

 

주인은 아들까지 죽인 배은망덕한 원수들을 진멸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길이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철저히 진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님

 

포도원의 주인은 농부들이 죽인 아들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버린 돌과 모퉁이의 머릿돌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12:10-11).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3일 만에 부활시키셔서 인류 구속 역사의 머릿돌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당시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모퉁이의 머릿돌이었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을 기초로 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갔습니다. 그러므로 모퉁이의 머릿돌이 잘못 놓이면 집 전체가 뒤틀리고, 모퉁이의 머릿돌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집이 붕괴됩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기준석입니다. 그리고 그 머릿돌에 건축자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방향과 기초가 되는 기초석이 되게 하셨습니다(고전 3:11). 하나님은 예수님을 생명수의 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고전 10:4). 하나님은 예수님을 교회의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딪치는 돌, 심판의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8).

 

이 역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라운 역사입니다(12:11). 하나님은 놀랍고 신기한 방법으로 승리하십니다.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으시고 오직 승리만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복을 누리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완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끝까지 나를 참아주시고 믿어주시고 소망을 끊지 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욕심을 버리고 청지기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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