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마가복음 6:1-29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6:7).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은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편견과 선입견을 네 가지 우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 둘째는 동굴의 우상, 셋째는 시장의 우상, 넷째는 극장의 우상입니다. 우리가 진리 가운데 들어가려면 이런 편견과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토머스 키다생각의 오류에서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심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편견이고 선입견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 프레임에 갇혀 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고향에 가셔서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지혜와 권능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혈루증 앓는 여인과 대조가 됩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한 편견과 오류,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중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단순히 믿고 복음을 전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을 통해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6:1).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시다가 오랜만에 고향 나사렛에 가셨습니다. 고향은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나 그립고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때만 되면 2,500만 명이 고향을 찾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고향에 가서 고향 친구들과 회포를 풀다가 돌아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고향에 가셔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시나 가르치시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배운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in season and out of season)란 기회가 있든 없든, 조건이 좋든 나쁘든 항상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이 좋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말씀을 전하기 좋은 시절은 없었습니다. 1990년대는 1990년대대로, 2000년대는 2000년대대로 어려웠고, 지금은 지금대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환경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고향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 한지라”(6:2-3).

 

그들은 예수님께 대해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옛날 친구, 인간 예수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와 같이 편견과 선입견은 말씀을 배척하게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말씀을 듣고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 됩니다. 비판은 자기 시각으로 보는 데서 옵니다. 반면에 감동은 자기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높은 차원보다 자기 시각으로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하기는 쉬워도 감동받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감동은 알아야 감동할 수 있습니다.

여행의 법칙 중에 아는 만큼 보이고, 알아야 감동이 되고 감탄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갈 때는 알고 가든지, 아니면 가이드를 잘 만나야 합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내용을 알고 보면 작가의 영감에 감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옆에 마리아가 있는 데 예수님이 고개를 돌리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있습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 때는 마리아의 청탁도, 아니 누구의 청탁도 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조건 남을 비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편견과 선입견, 교만을 버리고 배우고 알아서 감동받는 사람, 감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마음이 상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문제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속담을 인용해 그들의 배척에 응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6:4)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아무 권능도 행하지 못하시고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만 안수하여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배척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시고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42:4). 왜냐하면 세상에는 복음을 배척하고 세상일에만 관심을 가진 자도 있지만 진리를 사랑하는 자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진리를 사랑하는 소수의 영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계승, 발전, 확장되어갑니다.

제자들은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요? 그들은 인간적인 생각, 편견과 선입견이 복음의 적이라는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어디를 가나 인기가 많으신 예수님을 보며 자신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따르다 보면 배척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시고 외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배척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예수님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53:3).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버린바 되셨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 되셨습니다(벧전 2:4).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영광에 앞서 배척받으신 예수님을 겸손하게 배워야 합니다.

 

열두 제자를 둘씩 보내신 예수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향에서 핍박받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에 머물지 않으시고 실천을 가르치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6:7).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둘씩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할 것은 왜 예수님이 둘씩 보내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한 명씩 보내면 여러 곳에 복음을 더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둘씩 보내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면 낙심하고, 낙심하다가 시험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둘씩 가면 어려울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합심 기도하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4:9-10).

 

둘째,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18:20).

 

1973730일부터 83일까지 우리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의도로, 여의도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무척 가난했습니다.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아서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시골에는 초가집들이 즐비했습니다. 자가용이란 용어조차 낯설던 시기였습니다. 낡은 흑백텔레비전 하나라도 있으면 동네에서 큰 자랑거리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인구가 600만 명이었는데, 그 집회에 약 100만 명이 참석했습니다. 의자도 없었고, 방석도 없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야 했는데, 사람들은 신문지를 깔고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차비조차 없어서 두세 시간씩 걸어서 집회에 왔다가 끝나면 다시 두세 시간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쌀과 냄비를 가지고 와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교파와 이해관계를 초월해 모든 교단과 교회들이 연합하여 여의도에 100만 명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민족의 살길을 간구했습니다.

그 집회를 계기로 기독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모든 교회들이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면서 세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만 부흥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계 10대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는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민족이 부지런해서, 고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1973년도에 여의도에 100만 명이 모여서 우리 민족을 구원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하고 하나님께 합심기도 했기 때문에 일어난 기적인 줄 믿습니다.

말 한 마리가 있는 힘을 다하면 2톤을 끌 수 있다고 합니다. 두 마리가 힘을 합하면 산술적으로 4톤을 끌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두 마리의 말이 한 방향으로 힘을 다해 끌게 되면 23톤을 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861여 만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그 어떤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의 행복을 원한다면 온 가정이 합심해서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한다면 한 목적을 가지고 같은 마음(one mind), 같은 생각(one spirit)으로 기도하면 부흥의 불길, 부흥의 파도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의 청년 세대를 일컬어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썩을 양식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 치신 자니라”(6:27).

 

우리는 썩을 양식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이 시대를 이끌고 갈 그리스도인 리더들로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가서 회개를 전파하는 제자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려면 학위와 타이틀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도는 결코 인간의 능력과 지혜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전도는 위로부터 영적 권세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탄과의 영적 싸움이기 때문입니다(6:12).

예수님은 여행을 위해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행을 위해서는 먹을 것을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고, 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철저히 금하셨을까요? 이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복음 역사를 섬길 때 물질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반면에 전심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세상을 이기는 영적 지도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면 의식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친히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종들을 섬기는 이들을 준비해 두시고 섬기게 하십니다. 이때 그들은 영접하는 자의 집에서 떠나기까지 머물러야 합니다. 반찬이 좋지 않다거나 잠자리가 불편하다며 이 집 저 집 옮겨 다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영접하는 자들이 있고 영접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배척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때 우리는 기가 죽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또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기 쉽습니다. 그리고 혹시 복음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고 복음에 대해 회의하기 쉽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나 시대 상황에 맞게 타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어떤 경우에서든 타협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어떤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분명하게 선포되어야 하는 절대성과 우월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복음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3:19-21). 그러므로 복음의 종들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분명한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 복음을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나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6:12).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진 삶에서 방향을 바꿔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회개해야 합니까?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3:23).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9:27). 이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받는 둘째 사망입니다(21:8). 인간은 죄 때문에 영원히 멸망에 처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행을 해도 안 되고, 선한 일을 해도 안 되고, 울어도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을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셔서 우리가 십자가의 강도와 같이 어떤 몹쓸 죄를 지었을지라도 진실하게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사죄의 은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회개는 구원의 필수 요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는 싫어하고 구원은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하면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냅니다. 회개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 없이 구원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생명 구원 역사는 반드시 회개를 통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메시지는 사랑의 메시지요, 구원의 메시지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전권대사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보다 부담스러운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왕궁에 있는 헤롯까지 놀랄 정도로 큰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할 뿐만 아니라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병자들을 고쳐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드러낸 제자들

 

제자들의 전도 여행을 통해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6:14).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반응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엘리야라 하고 어떤 이는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했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목 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하고 놀랐습니다. 헤롯은 왕궁에서 섬김을 받았지만 내면은 죄로 인해 행복이 없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늘 불안하고 악령에 시달렸습니다.

마가복음 617-29절은 의인 세례 요한이 어떻게 목 베어 죽임을 당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했을 때 그가 비록 왕이지만 그의 행위가 옳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헤로디아를 위해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일날 요사스러운 헤로디아의 간계에 넘어가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였습니다.

그 시대는 마치 이세벨이 조종하는 아합 시대와 같았습니다. 그 시대는 음란하고 불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대에 열두 제자를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그들의 복음 전파는 작고 미미한 일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한 예수님의 이름이 온 나라를 진동시켰습니다. 복음은 시대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중에 열두 제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회개를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했을 때 온 나라가 흔들렸습니다. 이처럼 회개의 메시지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그것은 회개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여 세상을 바꾸는 역사의 주역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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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서에서 만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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