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마가복음 10:32-45

 

도리어 섬기려 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누구를 배우려 하고, 또한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어 보면, “나는 누구의 영향과 무슨 책으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격과 성향을 알려면 누구와 사귀고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알아보면 됩니다. 불교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스럽게 불교 신도가 되는 것이고, 유교에 관한 책을 많이 읽으면 유교 신도가 되는 것이며, 성경을 읽으면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를 지신 삶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삶은 겸손이요, 겸손은 섬기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2:6).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부유하십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십니다. 예수님은 존귀하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예수님은 영광이십니다. 그런데 영광스러우신 예수님이 모든 특권과 영광과 권세를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가장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한계적인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이 종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부유하신 하나님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까지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시기까지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고난과 침 뱉음과 십자가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곳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피해 가든지, 아니면 그곳을 아예 가려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장한 각오로 제자들 앞에 서서 그 길을 향해 가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은 중대한 결의에 차 있으셨습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하루아침에 예루살렘 성을 접수해 왕이 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10:32-34).

 

예수님은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다(8:31, 9:9-13, 9:31). 그러나 본문은 이전에 하신 말씀보다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지게 될 것이며 3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란 로마 군병들로,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게 넘겨지는 것은 가장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의 인기와 영광을 얻으실 것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으시고 능욕을 당하시고 채찍질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다고 하니 두려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마 버림받는 슬픔일 것입니다. 요즘 신문지상을 보면 자녀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는 소식이 종종 들립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로부터 버림받고, 남편이 아내로부터 버림받는 기사도 나옵니다. 그들이 버림받았을 때의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능욕과 침 뱉음과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3:4).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질고’(infirmities)란 질병, 병약함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성한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질병과 병약함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누구도 나의 질병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아니 해결은 그만두고 이해만이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이해하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슬픔의 사람이요, 고난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예수님이 반복해서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필연적인 사건임을 가르쳐주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셔서 갑자기 돌아가시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우연히, 아니면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되신 줄 알고 실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능욕을 받으시고, 침 뱉음과 채찍질을 맞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악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나의 추한 생각 때문에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나의 시기심과 거짓과 미움이 예수님의 뺨을 때렸습니다. 나의 정욕이 채찍이 되어 예수님의 살을 찢었습니다. 나의 불신앙과 불순종이 굵은 대못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나의 탐욕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의 말씀을 영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이야기만 나오면 반발하고, 귀를 막고, 묻기조차 두려워하고,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줄기차게 심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의 복음으로만 인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8:18).

그런데 사람들은 누구나 영광을 좋아하지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욕망대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쉬운 길을 가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또한 목에 십자가를 달고 다니기를 좋아하지만 십자가를 지기는 싫어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기 본성대로 살고 싶은 마음을 부인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도는 한탕주의를 버리고 땀 흘려 일해 번 돈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인정을 받기 위해 다니는 사교의 장이 아닙니다. 교회는 자기 생각을 죽이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속의 욕망을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의 욕망을 죽이고 버리고 하늘의 소망으로 채우는 곳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7-8).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그리스도인은 땅만 쳐다보는 넝마인생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꿈과 비전을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독수리는 화살에 맞아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독수리는 낮게 날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 구름 위로 올라가 숨기도 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통해 독수리처럼 드높은 이상과 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현재와 미래를 향해 기쁨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삶입니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주가 고난을 당한 표라 험한 십자가를 내가 사랑함은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새찬송가 150).

 

자리를 구하는 야고보와 요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제자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말은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실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나아와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소원을 물어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재빠르게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영광을 얻으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말씀이 곧 이루어지리라 확신했습니다(19:28). 그리고 변화 산에서 체험했던 영광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10:38).

 

두 제자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구하는지, 주의 영광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이 무엇인지, 그 자리가 얼마나 고난과 책임이 따르는 자리인지, 또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가 그냥 좋아 보였습니다. 여기에서 마시는 잔은 십자가의 고난을 말하고, ‘받는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뜻합니다(6:3-4). 예수님은 영광을 얻기 전에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영광만 주신다면 그 어떤 것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인정해 주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대답대로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가장 먼저 순교의 잔을 마셨고(12:2), 요한은 오랫동안 밧모 섬에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그들이 주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을 아시고 긍정적으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자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해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 살도록 방향을 잡아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은밀히 청탁했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 분을 내었습니다. 한 수 놓쳤다는 데서 오는 분함이 더 컸습니다. 제자들은 드러내지 않았을 뿐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망은 비극으로 끝납니다. 야망은 자기 욕망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비전은 사람을 위대하게 합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을 통한 유럽 통일의 야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엄청난 피를 흘렸습니다. 반면 존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가졌습니다. 이 비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었으며, 또 실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야망을 버리고 주님 안에서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야망으로 속이 시끄러운 제자들을 불러모으신 후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구이며, 가장 위대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10:42).

 

이방인의 집권자들이란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의 정치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비롯해 세계를 강압적으로 다스리고 임의로 주관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남용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법을 만들어 통치했습니다. 이것이 세상 역사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는 장로 대통령이 나오면 괜찮지 않겠나 생각해 두 명의 장로 대통령을 뽑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장로 대통령을 뽑아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는 정치는 힘의 역학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 힘의 역학은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의 역학에는 막강한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쥐고자 합니다. 제자들도 이런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올라 백마를 타고 다니며 한번 원하는 대로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크고자 하고 으뜸이 되려면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3-44).

 

당시에는 주인이 하인을 섬기고, 스승이 제자를 섬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기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섬기는 일은 언제나 낮은 자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역설적인 것 같지만 만고불변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구약성경에 룻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 이방 여인입니다. 그녀는 이방 여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방 여인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습니까? 그녀가 섬김의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집으로 시집와서 일찍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과부인 시어머니와 살아야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룻이 고향에 가서 재혼하도록 했지만 그녀는 시어머니를 끝까지 섬겼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와서도 매일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이삭을 줍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이삭을 주워도 한 되도 되지 않았습니다. 수고한 것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룻의 이런 섬김은 베들레헴의 보아스를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룻은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입니다. 룻은 마침내 다윗의 증조모가 되어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섬기는 자가 위대해집니다. 그런데 섬기되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합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4).

 

섬기는 사람은 종의 자세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종의 자세로 섬기지 않을 때 나는 이만큼 했으니 너도 이만큼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종은 요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섬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종은 섬긴 후에 자기 의를 구하거나 내세우지 않습니다(17:7-10).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17:7-10).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섬기는 것입니까?

 

첫째, 관심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나친 관심은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관심은 사랑입니다. 관심에는 희생과 헌신과 겸손과 이해가 요구됩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리고, 이기심을 깨고,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사람의 위대한 정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느냐에 비례합니다. 아기와 자기에게만 관심을 갖게 되면 한 아내의 남편과 아버지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면 세계인이 됩니다. 관심의 폭과 깊이는 섬김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둘째, 말씀과 기도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끝내는 안 됩니다. 관심에는 구체적인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의 구체적인 표현은 말씀과 기도로 돕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틈만 있으면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실질적인 문제를 놓고 도우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섬기고 돕는 것이 피상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실제적인 문제를 위해 기도해 주고 함께해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보듬고 도와야 합니다.

 

셋째, 섬김의 본

예수님의 섬김의 본을 배워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느 정도로, 어떻게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까?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이십니다(2:6).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과 특권을 버리고 인생들을 섬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이 되기까지 섬기셨습니다. 구약에 보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속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대속물’(ransom)이란 몸값을 지불하다, 희생제물이라는 뜻입니다. 대속물은 반드시 죽여서 드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살리시고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고난을 받을 자리에서 나 대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침 뱉음을 받아야 할 자리에서 나 대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의 자리에서 나 대신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나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이나 생명의 역사 뒤에는 반드시 희생적인 섬김이 있습니다. 섬김은 곧 희생이요 헌신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직장에서, 각기 공동체 내에서 서로 섬기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의 자리는 제한되어 있지만 누구든지 예수님을 배우기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섬기는 곳에 은혜와 기쁨과 사랑과 용서가 있습니다. 섬김이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섬김의 예수님을 배워 위대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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